아프고부터 아주 급한 일이거나
내 마음이 간절해서 원하는 나들이가 아니면
하룻밤 온전히 거처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그저 동네 주변과 그리 멀지 않은 학교,
시장,
근처 마트만 오가는
전형적인 노인네 행보에 만족했다
3월 달부터 딸애의 간곡한 부탁이 있으니
올해 어버이날엔 근처 어디라도 좋으니
바깥 잠을 자고 오자는 것이다
강릉은 멀지 않은 곳에
숙박시설 좋고 풍광 좋은 곳이 많으니
엄마만 허락하면 원하는 곳을 하루만 빌리겠으니
이번엔 제발 가자가자 졸라댄다.
그간 사위와 딸은 사돈어른 모시고
외국 여행 갈 적마다 나에게 엄청 미안해 하기에
오히려 내 쪽에서 손사래 치며
“아유! 난 같이 가자 할까봐 겁난다.
“어여, 너희들이나 실컷 다녀라,
”난 집이 젤 좋다!
그렇게 피하기만 했던 터라
이번엔 어쩔까 하다가
“어디 아담한 초가 한 채 빌려 자고 올까? 했더니
딸애가 반색을 한다.
“엄마 그래 초가집 있지,
근처 선교장에 가면 초가집도 기와집도 많아
내가 초가 한 채 빌려 놓을 터이니
꼭 가서 하룻밤 자고 오셔요.
사실 초가 어쩌고 한 것은
별로 내키지 않은 맘에 뱉은 말인데
막상 정해 뒀다는 연락을 받으니
에구~ 집 떠나 낮선 곳에서 어찌 잠을 자누 걱정도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인원 제한도 있고 해서
삼척 동생과 운전기사 대행 조카까지
셋이서 가게 되었다
여행이랄 것도 없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도착해보니 주방 용품이 부족해서
집에 있던 아들이 가위도 가져오고
그릇도 갖다 주느라 오가는 걸 보니
그냥 이웃에 마실 온 거지 여행은 무슨,
강릉 선교장
아흔 아홉 칸 역사가 깊은 고택들에 둘러싸인 곳
사방이 쥐죽은 듯 모든 게 가라앉아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묵는 손님도 없다나
입구에 있는 연꽃 연못은
온갖 쓰레기와 부유물로 더럽고
시설은 고치지도 않고
고장 난 채로 방치 되어있다
우리가 묵을 초가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
옛 전성기에 행랑으로 쓰던 작은 초가
방 2칸
낡은 문살 문짝은 덜컹거리고
마루는 내려앉았는지
긴 송판 가로로 덧대어 놔 얼룩덜룩 한데
그 위로 송화 가루가 소복하다
방에 들어가니 천장 한 쪽은 기울어 있지만
그래도 고가구 몇 개가 마음을 안정시킨다.
난 이런 곳에서 자랐고
그 시기가 길기도 했지
아니 예전 자랐던 집보단
이집이 더 낮지 라는 생각까지 하며
정감 있는 눈으로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옛 고옥들을 너무도 좋아 하는 나,
낡고 허물어진 옛것들에게 참을 수 없는 애정을 ]
표하곤 하는데
그건 동시대를 살아온 나의 상처와 경험
그 속에서 부대끼며 겪었던 삶의 편린들을
찾아내어 함께 공유하고 싶은 호기심어린 마음이랄까
깨진 장독 허물어진 흙 봉당
아무렇게나 던져둔 듯 놓여진 모나고 투박한 댓돌
시꺼먼 서까래
아! 그리고 정지 간 은 특히 좋아 한다
아궁이에 불 피워 밥 잦히고
남은 불 긁어내어 꽁치를 굽거나
그을음으로 시커먼 냄비
삼발이에 걸쳐놓고 국 끓이던 나
몇 년 전...
병원에서 나온 나를 데리고 딸애가 간 곳은
시내에서 한참 들어간 과객이라는 한정식 집이었다.
그날 음식보다
그 집 주변을 돌면서
흙바닥에 앉아 있어도 보고
마루와 뒤란 허물어진 담벼락 마다
쓸어보고 들여다보느라 분주했던 나,
우울증으로 인해
마음이 모래알처럼 가라앉았던 그 즈음
그날 그 집은
잠시지만 내게 치유의 은혜를 주었다
됫박같이 작은 방에
벽처럼 붙은 방이 또 나오는
겹집 형태인 옛 집의 모습까지
강릉 선교장 2칸 초가집..
낡고 시설이 미비해도 그런대로
옛 기억 소환해내어 즐기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밤이 문제다
그 넓은 아흔 아홉 칸 집들이 다 비었다는 것
어둠이 오니 바람은 더욱 거세져
집 주변 나무들의 휙휙, 쏴아! 이리저리 쓸리는 소리
바람 속에서 접동새 소리도 들었던가?
전날 잠을 설쳤다고 초저녁에 잠든 동생과 조카 곁에서
할 일없이 바람소리나 듣는다.
무서웠다. 사람이 무섭다 고들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다
바람소리는 밤새 빈약한
문살을 흔들어댄다
뮨풍지에 귀를 대고 가만히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
마루로 나왔다
울퉁불퉁한 마루 한 쪽에 쪼그리고 앉아
바람으로 요동치는 어둠속 나무를 쳐다보노라니
나는 절해고도 심심산골에 귀양살이 온 듯하다
고개 홰홰 돌려 어둠 짙은 사방을 보노라니
허름한 집과 조잡한 문짝들
낡고 부서져있는 것들조차
어찌 그리 지금의 내 꼬라지와 닮았는가,
서글프고 외로운 감정을 불러 모아
한참을 그러고 있는 것도 괜찮았다.
바람소리에 잠이 깬 새벽
십여 년을 해온 새벽밥 덕에
신체리듬마저 새벽으로 맞춰져
아침 늦잠 자 본적 없는 나지만 이곳서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그저 조용히 있을 뿐,
동행이라고 데리고 온 두 모녀는 (동생과 조카 )
이 초가집 터가 명당인 모양이다
초저녁부터 바닥에 머리를 누이더니
동이 터도 그 머리 들 생각 없이 여전히 꿈나라
정말 자러 온 사람으로서 손색이 없는 모녀다
전날은 저들이 일찍 잠들어
내 행동이 제약을 받더니
이날 아침은 늦잠들을 자니
또 그들이 깰까봐 조심스럽다
선교장
초가에서의 하룻밤
동이 터오는 새벽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와 바람이 내는 소리
슥슥 ~ 풀들이 내는 소리
과거 어린 나로 다시 돌아간
하룻밤.... 흠 ...괜찮았다.
첫댓글 울운선님
두고두고 되새겨도 될만한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드셨습니다. ^^~
위치가 좋고 풍광이 좋아 가보고 싶은데
오래된 건물로 난방이나 샤워시설에
문제가 없는지?
어머니를 극진하게 생각해주는 딸이 있다니
내기분이 좋아집니다. 잘하셨습니다.
집도 나서본 사람이 나서야 제집인듯 편안합니다.
잠자리 텃하는 저는 어딜가면 꼬빡 새우면서 지냈는데
세상 살이 여기저기 살다 보니 어딜가도 잠도 잘잡니다.
근데 운선님 하룻밤 머무신 곳은 쫌~ㅎㅎㅎ
칡흙같이 어둔밤 바람소리가 무서울것같은데 즐기셨내요!
글을 읽으며 또릿하게 상상이 됐습니다!
여행은 완전 새로운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도 좋지만
익숙한 곳에 가서
공감하는 것이 여행의 품격 같아요
저도 쉬엄쉬엄 익숙한곳에 가서 새로움발견을 좋아합니다
흐미 호랭이간을
주식으로 드셧나 보네유.
한적 으슥한곳 그큰집에
오만 으시시한 사연이
있을낀데? 꿈자리 사납어서
우째 잡미꺼??
난 공짜로 일당주며 자라고
하면 고민쫌 해보겟지만
돈주곤 못갑니다.
뻥튀기 기술자 운선님.
전 뷰 좋고, 대궐같은 쏠비치 콘도 갔다와도
한 줄 쓰기 힘든데
초가집 갔다와서도 볼펜심이 모자라네요~**
여름가을내내 쟁골산에 오르락내리락하며,
반공일(토요일) 한짐~ 공일날(일요일) 두짐 ~겨울땔감하러다니는게 싫어
지는 주말과 휴일이 그렇게도 싫었지요.....
정지에서 불을때 저녁밥짖고 뜸들일때쯤~곰배로 알불을 끄집어내 석쇠로
소금을뿌린 꽁치를 구우면 온집안이 고기굽는냄새로 진동했지요.....
밥을푸고 소대끼(누룽지) 글거대는 소리가 빠강빠강~우리집에서 난다했드니 아랫집순이네집에서도 납니다....
둥글게조그마하게 뭉쳐서 4형제에게 똑같이나누어주시던엄니~~
님의글속에서 우찌 엄니냄새가나는듯해, 가슴아려~옵니다.....
저~지금 옛생각에 눈물고였어요.........운선님~! ㅠㅠ
글을 읽으니 으시시
무섭게 느껴지네요
추억을 소환해 글로 풀어내는 운선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 유명한 선교장에서의 하룻밤.
불편할 지라도 운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은 가슴 설레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서도
잠시의 떠나감은 좋은 것인데 이제 자주 여행도 다니세요.
운선님은 어찌 나와 똑같은지~
나도 어렵게 살다보니
변변한 여행 한번 못하는게 안돼 보였는지
딸과 동생들이 여행갈때 마다
같이 가길 종용 하나
어느핸가 한번 따라 갔다가
꼴딱 새고 온후로 집 떠나면
잠 못 자는게 너무 싫어 못가네요
그래도 운선님 이번에 다녀온것이 마음에
괜찮았다 하니 괜히 나도 기분 좋아지네요
잘하셨어요~^^
잘다녀오셨네요
운선님 기분 전환
따님에게는 마음의 짐하나
덜어준 여행이었네요
마지막
음 괜찮았어를 읽으며
제가 휴우~했네요 ㅎ
훈훈한 봄바람 이었겠지요.
더욱 건강 해지시길 바랍니다.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상처와 경험 부대끼며 겪었던 삶의 편린들을 떠 올리게 하는 무엇
그것은 때로
장소 시간 공간 기억 사람 일수도 있지요
제 경우는 그런 아픔을 되세기게 하는 것을 몹시 싫어 하는 편이라 의외였습니다
관리가 부실하다면
단체나 기관에서 선교장을 관리 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자식들 의견 모른체 하고 받아 주시는게 어때요
고집센 노인네, 자식들이 힘들어요 ㅎ
시부모만 모시고 해외여행 가는 따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 에효~
딸내외의 마음이 참 이쁩니다..
대하소설 읽는 것처럼..초가집
여행의 글에 빠져보았습니다.
앳고옥들을..좋아하는 마음과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선교장에서 하루가 지나온
과거를 회상 하는 힐링이
되었군요
한옥초가집이 이젠 귀한 집이 되었지요.
요즘엔 벼 지푸락이 짧고.끈기가 없어서 새끼를 꼬거나 집이엉을 이는것도
잘 않될것 같고요.
집떠나 하룻밤 지내시는것도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엔 해볼만한 경험 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