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은 수동이에게 설을 잘 쇠라고 떡값 천원을 주었다.
떡 값을 받아든 수동이는 동대문시장에서 북어 세 마리를 오백 원에 사고 사과와 배를 이백 원에 사가지고 오다가 오백 원을 주고 점퍼를 사 입고 물골안행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수동이가 내 놓은 북어는 다른 북어보다 배는 더 되게 컸고. 사과 배도 커서 실했다.
양묵은 흐뭇했다.
벌써 녀석이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할미 차례에 쓸 제물을 사 오다니 설날 차례를 지내고 석고개 용단의 상청에 들려서 선복과 만석 삼순에게 세배를 했다.
그러나 생각이 짧았음인지 간단한 술 한 병도 준비하지 않고 선복에게만 동대문 시장에서 산 라이터를 선물로 했다.
선복은 엄청 좋아했다.
다음엔 돈을 마련하여 보청기라도 사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꽃재로 안마산으로 세배를 다녔고 사흘이 지나서 서울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칠 후 수동이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청소를 하다가 횡편기를 달아서 받쳐놓은 막대를 처서 횡편기가 1.3m 높이에서 떨어져 횡편기 머리가 두 동강이 났다.
수동이는 만원이 넘는 기계가 망가져 당황해 하고 있는데 놀란 사장이 달려왔으나 혀만 차고 내려갔다.
자다가 그걸 쳐서 머리에 떨어졌으면 죽거나 다리에 떨어졌으면 다리병신이 되었을 텐데 대부분의 스웨터 공장이 그렇게 해 놓고 일을 하고 그 아래서 잠들을 잤다.
수동이의 전날 저녁 꿈에 용분이와 결혼식을 시킨다고 하는데 용분이가 도망을 간 꿈을 꾸었는데 꿈땜을 한 모양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봄 상품을 준비했는데 13게이지 30인치 쟈카드를 위판을 쓰지 않는 자카드 단면 싱카로 개조를 해서 은사를 네 코 마다 한 코씩 짚어주는 물고기 비늘무니 원단을 만들어 여자용 폴로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카드 기계는 원판을 돌리기 때문에 속도도 떨어지고 불량률도 많으니 단면 메리야스원단을 짜는 기계에 보조 장치를 달아서 짜면 생산성도 높고 불량률이 적을 것 이라는 결론으로 기계에 보조 장치를 달아 왔다.
그런데 바늘을 구하다 보니 없었다.
그래서 삼단 바늘을 사다가 필요가 없는 답부(버드)분분을 그라인더에 갈아 버리고 쓰기로 하고 그라인더에 가는데 너무 많은 양이라 수동 그라인더로는 어림없었다.
수동 그라인더로 오버록 미싱의 칼이나 환편기 횡편기의 부속을 갈거나 할 적에 썼는데 많은 양의 바늘을 갈아야 해서 전동 그라인더를 사왔다.
그리고 보니 양쪽에 연마석이 있어서 하나를 빼내고 하나는 부러쉬를 끼우려고 하니 넛트가 안 풀렸다.
영린이 너무 조여있나 싶어서 반대로 돌렸다 가 풀면 잘 풀리려나? 하고 힘을 가하니 너트가 풀렸다.
원래 회전하는 기계에는 회전방향에 따라 L너트 나 볼트 R 너트나 볼트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그렇게 꽂이는 바늘에 절반 가까이를 갈아서 우여곡절 끝에 생산을 시작하고 나서야 오장동 삼신상사에서 바늘이 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한 데에는 지난 가을 거금을 들려서 사온 은사재고를 써먹으려는 의도였는데 별로 판매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전에 길섭이가 수동이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며 밖에 잠깐 나가자고 했다.
수동이는 불안한 마음으로 끌려 나가서 길섭과 마주 섰다.
다짜고짜 길섭이의 주먹이 날아왔고 한 대를 맞은 수동이는 바로 반격을 해서 주먹을 몇 대 날렸다.
생각지도 않은 수동이의 반격에 몇 대를 맞고 난 길섭은 자존심이 상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나이도 두 살 많고 이틀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며 심부름은 수동이가 도맡아 했는데 이해심이 없는 것 같았다.
“형 미안해.”
하는 수동이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길섭이는 가방을 싸서 고만 두겠다고 하고 떠났다.
큰 아버지가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지 장사를 해서 꽤 부유해 보이고 쉬는 날이면 양복을 빼 입고 외출을 하고 했는데.
그래서 수동이는 석고개 사는 친구 영체를 데리고 와서 같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월급도 오백 원을 더 올려줘 3,000원이 되었다.
그리고 재운의 딸 옥순이 대왕코너 나비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해서 재덕이 혼수로 화장대를 해주고 수동이도 예식장에 가서 찹쌀떡 2개를 받아왔고 재덕은 후황으로 가평 하면 상판리에 다녀왔다.
그리고 수동이는 또다시 쉬는 날 이번엔 면목동 개천 뚝 위에 무허가 불럭 집을 짓고 구멍가게를 하는 재운의 집으로 갔다.
점심은 라면을 먹고 심심해하고 무료해 하는 수동이를 보고 연순은 가계에 나무판에 영화포스터를 붙이고 주는 초대권 가지고 가서 영화 보고 오라고 해서 면목극장에서 입장세인 10원만 주고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정이 그리운 수동이가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는 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골을 가는데 차비도 아까워 쉬는 날이면 작업복을 빨아서 널어놓고 면목동을 가서지냈다.
거기에는 영동이 그리고 흥묵의 아들 재봉이 그리고 작년에 결혼식을 한 누나 옥자부부가 영동이의 주선으로 올라왔는데 얼마 후 창진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 내외에 동생 셋 까지 대 식구들이 올라와 각기 개천 옆 뚝 위에 불럭으로 무허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집에서 편지가 왔는데 정자가 성환 평락의 집으로 놀러 갔는데 소식이 없어서 그러니 주소를 가지고 찾아가 보라는 재덕의 편지였다.
수동이는 오후에 사장에게 이야기를 해서 허락을 받아서 서울역 앞에서 직행 버스를 타고 천안에 어슬녘에 도착했다.
거기서 완행을 타고 성환에 도착해서 평락이 동생이 살고 있는 과수원을 찾아갔는데 정자는 오늘 아침에 서울 큰집(재운의집)으로 간다고 떠난 뒤였다.
그날은 평락의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날이어서 저녁에 형제가 제사를 지내고 났는데 아직 민숙이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서 그런지 형제만 있었다.
다음 날 수동이 급히 올라와서 면목동에 가보니 정자가 와 있었다.
면목동을 찾아오는데 오다가 때가 지나서 국화빵을 파는 집에서 국화빵을 사먹으며 길을 물어서 간신히 어제 찾아왔다고 했다.
수동이가 청량리 시외버스 차부에서 물골안 가는 버스를 태워서 보내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방이동 연사(실을 꼬아서 가공)공장 박 사장이 사장에게 은사를 인견사와 꼬아서 반짝이는 한복 원단을 생산해 보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은사의 반에 반도 소비를 하지 않았는데 귀가 솔깃해진 사장은 흰색 인견사를 사다가 염색을 시켜서 방이동 박 사장에게 연사를 맡겼다.
그런데 연사 공장에 실 감는 해사가 그만 두었는지 사람을 빌려 달라고 해서, 해사 두 명과 파견 근무를 하러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일을 하고 저녁 여덟시가 넘어서 돌아 왔는데 두 번을 갔다 왔다.
공장에서는 실을 감아서 연사한 실 한 올에 인견사 한 올을 이중 사도(원하는 면에 은사로 꼰 연사가 많이 나오게) 달아서 짰는데 실을 감기도 힘들고 불량이 많이 나서 이번에는 보빙에 감겨 있는 검은색 인견사(비스코스)를 사다가 짜는데 기계를 세우면 얼마나 실이 부드러운지 사르르 실이 보빙 밑으로 흘러 내려서 끊어지기 일 수였다.
생각 끝에 부드러운 모래를 쟁반에 담아서 실을 앉혀서 해결을 했다.
그러다 보니 모래가 날려 일을 끝내고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서 모래가 나왔다.
그리고 흰색 인견사를 들여다 짜서 염색을 하고 가공을 해서 동대문 시장 한복을 파는 원단가게에 납품을 하는데 가운데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괜찮게 잘 나갔으나 문제점이 있었다.
직기로 짜는 것 보다 곱고 좋았으나 한복 재봉을 하는 사람들이 니트에 경험이 없어서 재봉한 부분이 울고 하니 기피하였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은사를 많이 들여왔다.
1970년 3월31일 오전 7시 33분 승객 131명, 승무원 7명)을 태우고 도쿄하네다를 이륙하여 이타즈케공항(현 후쿠오카공항)으로 향하던 일본항공 JL351편(B727-89, 기체번호 JA8315)은 승객을 가장한 9명의 탈취범들이 일본도와 권총, 폭탄으로 무장한 채 공중 하는 J.A.L기 납치사건이 있어서 TV로 생중계 방송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여름옷을 만들 때가 되어서 이번에는 개조해온 싱카로 타월조직의 원단을 짜서 티셔츠를 만들려고 시도 했다,
사장에 앞서 가기는 했다.
그러나 타월조직은 면사로 짰어야 했다.
이듬해 면으로 짠 타월조직으로 된 티셔츠가 유행을 했다.
그러나 사장의 생각은 필라멘트사를 꼬아서 링구사를 만들어 오는 값을 줄이기 위해서 타월조직을 선택했는데 너무 조밀하고 두터워서 생산에 들어가지 못했다.
재봉실을 놀릴 수 없다고 생각한 사장은 나일론 염색사를 들여다 싸구려 티셔츠를 생산했으나 잘 나가지 않으니 이번에는 할 수 없이 작년에 생산했던 식으로 연사한 링구사를 만들어 와서 8게이지 자카드 위판을 떼어내고 단면 원단을 짜 티셔츠를 짜서 시장에 내 놓았는데 작년 보다 덜 팔렸다고 했다.
그 무렵 재봉보조 두 명이 새로 들어 왔는데. 하나는 조그마하고 통통 했으며 한명은 키가 커서 시원스럽게 생겼는데, 작은 아가씨는 숙자는 가정부 일을 키가 큰 혜자는 재봉 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서 경찰이 숙자를 데리고 와 취직을 시켜준 아주머니를 대동하고 와서 숙자를 불러내어 한참을 이야기 하고 갔다.
내용은 먼저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서 월급이 석 달이나 밀리자 금반지 한 개를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한참을 조사하던 순경이 조정을 해서 훈방 되었는데, 나오기 전에 시골에 있는 친구 혜자를 편지로 연락해서 혜자는 전남 집에서 돈을 훔쳐 가지고 올라와 둘이서 만나서 소개소를 통해서 숭인동에 취직을 한 간 큰 아가씨 들이었다.
일주일쯤에 엄마 둘이 숭인동까지 찾아와서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내려갔다.
그런가 하면 남산 어린이 회관에서 어린이 잔치가 있어서 사장의 막내아들이 구경을 갔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전화가 와서 영체가 가서 데리고 왔다.
그러다 보니 다시 수영복을 짜서 만들어야 할 때가 되어서 남자용은 양면기계에다 나일론으로 짜고 옆면은 드럼자카드라는 환편기로 무늬가 나오게 짜는데 이 기계는 쟈카드와 무니를 넣는 방식이 약간 달라서 기계가 1회전 할 적 마다 무늬를 넣는 원기둥 모양의 통이 한 칸씩 움직여 무니를 내는데 옆에 붙은 원통형에 못을 잘라 낸 못 같은 핀을 꽂았는데 기계가 40 회전을 해야 한 패턴의 무니가 짜여 진다.
그렇게 짠 원단을 남자 수영복 양쪽에 오려 붙여서 남자 수영복을 만들고 여자 수영복은 곱창 입체무늬 원단을 구입해 오고 동화시장 삼층에서 브래지어를 만드는 스펀지를 사다가 넣어서 만들고 위에는 광장시장 조화가게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를 사다 붙여서 시장에 내었다.
그렇게 여름장사가 끝나고 사장의 식구들은 인천 용유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공장에 남은 사람들은 오랜만에 안방으로 몰려와 저녁 어린이 만화 시간에서부터 애국가가 나올 때 까지 TV를 보았고 출퇴근 하는 미스리와 영린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방이동 박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나 방이동 박 인데.”
“사장님 용유도로 피서 가셨는데요.”
“알았어요. 언제 오신데요.”
“넬 이나 모래 오시겠지요.”
그렇게 빈둥거리며 먹고 TV만 보니 살이 쩌 2kg이나 체중이 늘었다.
그리고 사장이 돌아온 날 박사장은 은사, 아크릴72수, 나일론 필라멘트사, 넣어서 꼰 링구사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 돌아갔다.
사장은 동생 영린을 불러서 기계를 손질하라고 했다.
8게이지 자카드 환편기 한 면 곱먹는 무늬를 넣어서 36수 고급 아크릴사를 들여다 2개의 아크릴에 하나의 링구사를 넣어서 원단 견본이 나왔다.
“김군 더기 종로오가 하고 사가 사이에 청계천 나가는 길 그러니끼니, 왜 디난 번 수영복에 꽃 단거 있디 안니 기거 서온 꽃가게 계단을 올라가면 동도 백화점 아이가 거기 길켠에 동도다방이 있어 거기가면 김넝감 있디않니 뻔대 넝감말이야. 지난번에 우리 공장에 왔던 머리 이렇게 벗겨진 넝감 있니 않아 그 넝감이 있으니 끼니 이 쌤풀을 겠다주고 오라우.”
하면서 여섯 가지 색상의 견본을 수동이에게 주어서 갖다 주라고 했다.
김영감이 원단 견본을 보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는지 물건을 계속 생산했다. 봉제 실에서는 원단을 사전에 검사하고 뒤집어서 원단은 세팅 공장에 보내는 한편 윤옥은 수동이와 영채를 불러서, 2cm짜리 각목을 사다가 자르고 못을 박아서 원단을 만드는 틀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풀을 쑤어서 포장지로 붙여서 세팅공장에서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가공해온 원단을 보조아가씨 들을 시켜서 감아서 동대문 시장으로 내 갔다.
수동이가 보기에도 빳빳하고 은은한 색깔이 멋져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불렀다.
“김 군 저 아래 학교앞에 있디 거기에 가면 은행 알디 거기 가서 돈 좀 찾아 오라우.”
하면서 통장하고 청구서를 내주었다.
수동이는 창구에 통장과 청구서를 주고 아크릴 번호표를 받았다.
그리고 한참 후 창구 직원이
“변윤옥씨 변윤옥씨.”
하고 불렀다 대답이 없자.
“27번 손님 27번 손님.”
“네.”
수동이가 급히 대답을 하고 창구로 갔다.
은행창구 여직원이 이상한 듯 처다 보곤,
“육만 원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오백 원짜리 지폐 한 뭉치와 오백 원 20장을 내어 주었다.
20장을 먼저 받아서 세어 보고나서, 이번에는 띠에 도장이 찍힌 오만 원을 세기 시작했다.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세었을 때, 은행 여직원이 작은 소리로 “그냥 가지고 가세요.”
못 들은 수동이가 마흔아홉 쉰 쉰하나 쉰둘 을 세었을 때, 여직원은 조금 더 큰소리로
“그냥 가지고 가셔도 되요.”
그제 서야 직원이 뭐라고 한말을 듣고서
“내.”
하고 대답을 하고 나서 보니 어디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렸다.
다시 하나 둘 셋 넷 여직원은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려서 자랄 때 어른들 말씀이 돈은 확실하게 세어서 주고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열심히 백장을 직원이 보는데서 다세어보고 돌아오는데, 누가 뒤쫓아 오지 않나 불안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처음 만져보기 때문이었다.
대문을 넘어서면서 통장을 보니 변윤옥 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 제서야 통장이 부인명의로 된 것을 알았다.
그런 한편에서는 지난봄에 개조해온 13게이지 32인치 싱카자카드에 72수 아크릴사로 무늬를 넣어서 짜서 여자 가디건을 생산하면서 고무단은 해방촌에서 일을 하다 놀러온 연선이에게 한 장 당 얼마씩 주기로 하고 짜서 달아서 시장에 내었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또 일을 하러오는 데는 사장만의 한 가지 철칙 때문이었다.
종업원들에 대한 신용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키는 것이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월급날은 꼭 돈을 지급했다.
대부분의 사장들이 어려우면 월급을 제때 주지 않고 나가서도 일주일 보름 한 달 그런 식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아서 월급에 대하여는 반드시 지급하고
그만 두고 나가는 사람도 다음 월급 때 준다거나 하는 게 없이 당일 지급을 철칙으로 삼아서였다.
디자인이 별로 이었는지 별로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한복지로 내보낸 원단이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방안 가득이 쌓였다.
그러다 보니 통장에 잔고는 줄어들고 통장이란 통장을 다 찾아서 돈을 찾아야 하는데 청구서를 서너 장 써가지고 도장을 찍어 주면서 수동이에게 찾아오라고 했다.
수동이가 은행창구에 통장과 청구서를 내자 지점장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확인 까지 하고 돈을 내어 주었다.
고심하던 사장은 부인의 제의를 받아들여 추석 상품으로 아동용 원피스를 만들어 시장에 내 놨다.
이때 수동이는 헤어드라이기로 옷의 모양을 잡아서 개는 일을 했다.
그날은 포루투칼에 검은 표범 유세비오가 방한하여 한국 국가대표와 친선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유세비오가 페널티킥을 차게 되었다.
“데걸, 데걸 막아야 하는데 야 데거 막으면 영웅이디, 거럼 영웅이고 말구.”
“에구 들어가고 말았구만.”
수동이는 사장의 호들갑에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보다가 그만 헤어드라이에서 나온 열에 의하여 제품이 타서 구멍이 났다.
난감해 하는 수동이를 보고.
“네 레 덩신을 어데다 두고 있는 게야.”
했고 그 부분만 다시 뜯어내고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나고 영체가 공장을 고만두고 왕십리 시장으로 취직이 되어서 갔다 거기에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왔는데 거기에서 양두라는 기계도 있는데 거기는 기계가 여섯 대나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수동이가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재덕이 가경자에 살다가 새창벌로 이사와 살고 있는 박영호의 아들 광춘이를 수동이가 데리고 올라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용 남자 가디건을 만들 원단을 짜기 위해 쟈카드 기계손질에 들어갔다.
그리고 횡편기로 V텍 가디건의 단[깃(한복의 동정)]을 짜기 위해서 해방촌에서 일하던 태성이가 기술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깃은 한발을 짜는데 얼마 식으로 도급제니 모두 열심히 짰고. 소매 고무단도 도급으로 주었으나 모자라자 이번에는 영린이 광춘이를 실습을 시켜보니 손도 빠르고 눈썰미가 있어서 하루가 지나자 기존기술자 만큼 짰다.
그러나 샘이 난 수동이가 영린에게 투정을 부려서 자기가 짰으나 광춘이의 절반에도 못 미쳐서 다시 광춘이 짜게 되었다.
영린이 제대로 본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은 아무리 세 사람이 짜도 모자랐다.
그렇다고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단가를 많이 주면 되는데 많이 주면 원가가 비싸게 먹혀서 곤란했다.
그런데 태성이가 견습공으로 일을 할 때 24게이지 17인치 메리야스를 짜서 팬티를 만들어 라텍스를 뿌려서 세팅 가마에 구어서 생리팬티를 만들 때 쓰던 녹이나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에어 컴프레서에서 벨트풀리(벨트바퀴)를 떼어와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짜니 편하고 능률이 올랐다.
그것을 다시 수동이가 환편기에 쓰는 모터와 17인치 환편기 크러치를 이용해 세울 수 있게 하고 달아 매놓은 추에 전선을 달아 단이 아래 까지 짜여져, 합선이 되면 마그네틱 차단기를 이용해 크러치가 떨어지게 해서 돌아가지 않게 하여 사람이 추를 올려주고 다시 돌리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이 서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추를 올리고 크러치를 넣으면 되었다.
그리고 횡편기 위에 실이 겹치는 것을 방지하는 스프링텐선 에도 전선을 마그네틱에 연결해 자동으로 세우게 했다 그러다 보니 반자동이 되었다.
그렇게 되니 세 사람 몫을 하고도 남았다.
태성을 비롯한 세 사람의 횡편기 기술자는 다른 곳으로 취업을 해서 나갔다.
그리고 광춘이가 가경자에 고향친구 연직이를 데리고 와서 세 사람이 되었다.
그 무렵 박정희 대통령이 수동면을 방문하게 되었다.
면에서는 한집에 한 명씩 나와서 청소를 하고 길을 고르고 대통령 맞을 준비를 하면서 유지들이 의견을 통합해서 대답할 말까지 맞춰놓았다.
드디어 대통령이 석고개 까지 와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시급히 해 주었으면 하는 게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면 유지며 면 직원들이 일러 준대로.
“전기요.
하고 합창하듯 대답을 했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전기공사가 시작 되었다.
반면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전태일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그렇게 운동을 하고 따지고 하는 것도 한낮 배부른 사람들의 왜침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동이는 월 오천 원을 받으며 아침 일곱 시 전에 일어나서 저녁 10시에 “야 이제 그만 하자 하는 소리에 세수하고 잠자리에 들었고 쉬는 날도 매월 첫째 주 일요일 과 셋째 주 일요일만 쉬면서 일을 해야 했지만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선득 공감이 가지 않은 것은 배불이 잘 먹고 눈칫밥 안 먹고 지내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매달 적금을 부어서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것을 뿌듯해 하며 지냈는데 그 돈으로 공부를 하려는 생각도 못했다.
우선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동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연탄가스가 방바닥에 갈라진 틈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셋이서 아침도 못 먹고 한나절을 누어서 있다가 점심때가 지나서 배가 고파서 일어나 점심을 먹고 일을 시작 했다.
그리고 방바닥을 금방 고쳐줄 줄 알았는데 윤옥이 올라와 들춰보고 풀을 쒀 종이로 바르는 것으로 끝났다.
그해 가을은 엄청 가물었는데 초겨울로 접어들 무렵 양묵의 병세는 점점 나빠졌다.
뿐만 아니라 정순도 속아리가 도져서 졸지에 재덕은 두 사람의 병수발을 들어야 했다.
가을 가뭄이 들어 배추며 무가 커다란 냉이만 하게 자라서 입동에 김장을 하는데 동내 아낙들이 도와서 김장을 하는데 재덕은 느루 먹는다고 소금을 많이 뿌려서 짠 짠지가 되었다.
그렇게 김장을 겨우 마쳤는데 양묵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어서 급히 재순에게 전보를 띄웠다.
양묵이 눈을 감고 가만히 돌이켜보니 한낮 꿈같이 산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방골서 영훈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농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회영이 만주로 망명을 떠나면서 싸게 파는 전답과 산까지 마련하여 부족함 없이 살다가 16세 철없던 시절에 안마산 사는 아내 무덕과 결혼을 하여 딸 재준을 낳고 지둔리에서 접방사리 살림을 시작으로 둘째를 재분을 낳을 무렵 친구 영학이 아버지에게서 밭을 사서 집을 짓고 아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
스물셋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리고 이년 뒤 아내가 호열자에 걸려서 한꺼번에 죽고 이어 큰딸 재준이 마저 내가 누워있는 이 자리에서 숨을 거두지 않았던 가 아 꿈결 같구나.
내가 이 자리에 누워서 떠나게 생겼으니 나까지 네 번째 죽어 가는가?
아니지 아들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순례를 맞아 딸 재순도 이 자리에서 낳아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충격적인 명자 어미의 자살 그리고 몇 년 전에 죽은 상동이 까지 재덕이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아이에게 가까이 하지 않고 귀여워 해주지 않는 다고 말을 했지만 나도 딸아이의 방긋 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수동이나 정자 경자를 한번 안아주지도 귀여워 해주지 않은 것은 어디 애비 어미가 그러는데 손이 나가다 도로 오기를 몇 번이던가?
그나마 회한이 남는 것은 하나 남은 핏줄 재순이 아직도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자꾸만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슨 원수진 일도 업는데 순례가 옆에 없다.
또 다시 괜히 사촌형 현묵의 막내아들을 양자로 들인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지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 않는가.
괜히 양자는 들여 가지고, 길게 한숨이 나온다.
이제 생각하면 부질없는 것을 재산을 잘 나누어 주었다면 저 녀석이 저렇게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한구석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 부질없는 욕심이었나, 아니면 괜한 고집이었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을 다시 눈을 떠서 눈동자를 돌려 보아도 순례와 재순은 보이지 않았다.
옆에 보이는 것은 재덕과 병묵이였다.
애는 꼭 보고 눈을 감아야 하는데 아직 재순은 보이지 않고 재덕과 병묵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급보를 접한 재순은 급히 서둘려 내려왔다.
“아버지 저 왔어요, 저를 한번만 더 보세요.
양묵을 힘들게 고개를 움직여 재순을 바라보면서 숨을 거두었다.
순례는 그 몹쓸 속병을 앓느냐고 끝내 양묵의 운명을 보지 못했다.
그 시각이 오후 5시었다.
통상 사람이 죽으면 초혼을 해야 하는데 재덕이 초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호적에 입양이 되어있지 않아서 하지 않겠단다.
재순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정을 아는 동리 사람들은 삐쭉 얼굴만 디밀었다 그냥 가 버렸다.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동내 사람들도 재산 싸움이 걸린 문제가 해결 될 때 까지는 재덕의 편이었다.
상주가 초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쉽사리 일하려 하지 않았다.
재순은 아무 말 없이 침묵하고 있는 재덕에게 말을 걸었다.
“오라버니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도 알다시피 입양 온지 십여 년이 되지 않았잖니 그런데 내겐 아무것도 없다 고생, 고생해서 할 도리를 했지만 아무 것도 없지 않니?”
“알아요.”
“그래서”
“제가 다 포기 할게요.”
“어떻게?”
“오빠 원하는 데로 해 드릴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4,000평도 안 되는 땅 때문에 초혼조차 부르지 않는 재덕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순은 아버지 양묵의 피땀으로 사서 모은 전답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땅에 대한 욕심은 아예 없었다.
어찌 되었던 아버지가 영면에 든 지금 재산 때문에 초혼을 안 하고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 든 풀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저 오빠들 저 좀 보세요.”
하고 병묵과 완묵의 아들 재수를 불러내었다.
“어떡했으면 좋겠어요.”
병묵이 입을 열었다.
“네가 각서를 써 주면 안 될까?”
“그거라면 열장이라도 쓰지요. 저 한 평의 땅도 미련이 없어요.”
“그럼 됐다.”
“그러면 될 꺼다.”
내가 이야기 해 볼게 재수가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방으로 들어온 재수가 재덕에게
“이보게 자네 재순이가 각서를 써 준다는데 이제 그만 초혼을 하게.”
“무슨 소리요. 나보고 또 칼침을 맞으란 말이요.”
“어떤 놈이 재산에 욕심을 내 그건 내가 막을 게.”
“그건 형님 생각이지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에이 그럼 자내 맘대로 하게 원 사람 고집은.”
재덕 또한 만사를 든든히 하고 싶었다.
재순이 땅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에 사촌의 아들인 자신 보다 가까운 조카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그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방으로 들어온 재순이 재덕에게
“오라버니 제가 포기각서를 쓸게요.”
“너 혼자 만으로는 안 되지.”
“그럼 누가 더 필요해요.”
“난 조카들의 연명이 없으면 인정할 수 없어.”
그렇게 재순의 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기긴 밤이 지세고 형묵의 아들 그러니까 영훈의 장손 재천과 흥묵의 둘째 아들 재구가 도착을 했다.
밖에서는 어젯밤부터 사태를 수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재수의 이야기를 들은 재구가
“각 형제들의 대표가 연명으로 지장을 찍으면 되겠네요. 형님들 의이 없죠.”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렇게 형묵의 아들 재천 완묵의 아들 재수 흥묵의 아들 재구가 연명으로 서명을 하고서 12시간이 훨씬 지나서 재덕은 초혼을 불렀다.
재순으로서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으나 원래부터 욕심이 없어서 얼른 지나가기만 바랄뿐이었다.
만석이 널을 꺼내 관을 짜기 시작했고, 그날 낮에 재운이 숭인동 공장에 와서 양묵의 부음을 전해서 내려온 장손 수동이는 입관 절차가 있는 안방에 있지 명자 엄마가 목을 매 죽었다는 시렁이 희미하게 보이는 윗방 구석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안방에서는 염이 끝나고 입관에 들어가자 재순은 서럽게 울었다.
자신의 처지도 처지만 야속함에 더운 눈물이 나왔다.
그 때 까지 남편 교현은 오지 않았다.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해 몇 년 전에 외도를 한 이후로 한 번도 처가에 다녀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이 재순에게는 다행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사람 서럽게 소리 내어 발버둥을 지며 울고 있었으니 명자였다.
엄마 잃은 젖먹이 명자를 안고 얼러서 키우고 학교에 다닐 적에 달래 냉이를 캐오고 나물을 뜯어오면 늘 팔아다 주며 잔정을 주던 할아버지 가 이젠 얼굴조차 볼 수 없는 마지막 이라 그녀는 관위에 엎드려
“할아버지, 할아버지! 울 할아버지, 안 돼. 안 돼 울 할아버지!”
슬피 우는 명자를 재순이 떼어내면서 같이 울었다.
“명자야 이젠 그만 하자 이제 그만.”
윗방에 수동이는 양묵의 잔정도 연민도 없었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수동이의 생각은 이로서 재덕과 양묵의 갈등의 끝인가 모든 갈등을 다 안고 간 셈인가?
이젠 서로 미워하면서 살 사람이 없어졌으니 평화가 오려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재순의 시아버지 현균만 장례식 아침에 도착하였다.
재순은 섭섭해 할 여력조차 남아 있지를 않았다.
장지는 평생 그가 가꿔온 텃밭 맨 위 가운데로 정해 졌다.
하관이 있고 홍대가 깔리고 홍실 청실을 얹은 마지막 홍대에 올리면서.
“아 아버지 ”
하면서 재덕은 비로소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회한이 눈물인가 아니면 돌아간 분에 대한 미안함에 대한 눈물인가. 알 수 없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울었다.
수동이도 그때서야 비로소 눈가에 이슬이 조금 맺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명자처럼 저렇게 슬피 울 수만 있으면 아마 난 눈물이 말라서 영원히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차가운 인간이 되어 있는데 아닌가?
아니 아버지가 죽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끝나는 것 같았던 장례식이 발인에 맞추어 내려온 경동이가 장례식 내내 수군거리며 불평을 하더니, 장례식이 끝나자 재순의 시아버지인 현균에게.
“저 어르신 저 만복입니다.”
“그러셔요.”
“저 만복이라니까요”
“알아요. 사돈”
“아니 고모부는 왜 안 온 겁니까?”
나이로 치면 경동은 십여 살 아래지만 항렬로 따지면 손자 벌이다.
만복이라는 이름은 경동의 아명으로서 청량리 이웃에 살면서 경동의 어머니 즉 재천의 부인의 중매로 재순이 결혼을 해서 가까이 지낸 적이 있어서 잘 아는 처지였는데 다분히 시비조로 나오니 기가 막혔다.
“나 불쾌해 나는 자네 작은할아버지의 사돈으로 온 거야 엇다대고 시비야.”
“시비가 아니죠. 나 할 말은 하는 겁니다. 불상한 당고모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온줄 아나 뭐야 아주 형편없구먼.”
그 때 재구가 나서서 경동이를 저지하며.
“이봐요 조카님 왜 이러셔. 자내가 화가 나도 참아야지.”
“아저씨 내가 참게 됐나봐 아저씨 불상한 고모 생각하는 사람 하나나 있느냐고요.”
“내 원 참 별놈의 봉변을 다 당하는구먼. 상종도 못할 놈이네.”
하면서 현균은 서둘러 떠났고 재순은 급히 시아버지를 배웅하러 도림개말
버스차부로 쫒아갔고, 경동이 본격적으로 재덕을 향하여 도전적인 말을 했다.
“저 도둑놈이 불상한 고모 생각은 조금치도 않고 다 차지했지 않아요.”
“뭐 도둑놈이라니. 뉘더러 도둑놈이래.”
“그거 다 먹으려고 하는 게 도둑이 아니면.”
“그래 자네 할아버지 돌아가고 나서 내가 칼침까지 맞았어.”
“그게 왜 내 탓이야.”
재덕은 부르르 떨며 대문 옆 외양간에 꽂혀있던 낫을 뽑아들면서
“그래서 금순이에게 넌 뭘 해줬어. 순 강도 같은 놈을 그냥.”
첫댓글 돌아가셨지만 괜한 양자 들여서 심신이 고달프게 사셨네요.
부디 좋은 곳에 가셨으면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