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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재덕의 옆에 서있던 영동이가
“작은 아버지! 작은 아버지!”
하더니 바로 졸도해 버렸다.
조카벌인 경동이가 욕을 하면서 덤비는 것에 화가 치민 영동이 화를 참지 못하고 졸도를 한 것이었다.
평소 조카들이라면 벌벌 떠는 재덕은 손에 힘이 빠져 낫을 놓고 영동이를 재덕과 옆에 있던 수동이와 만석이 부축해 건넌방에 눕히고 물을 마시게 하고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서
“영동아, 영동아 정신 좀 차려라.”
조금 후 눈은 뜬 영동이가
“작은 아버지.”
하면서 울었다.
“우리가 없어서 작은아버지가 이 수모를. 으 흐 흐 .”
재덕의 완강한 저항도 있었지만 싸울 상대가 영동이를 부축해 들어가고 나니 경동은 말리는 재구 재혁 등에 못이기는 척 도림개 버스차부로 발길을 옮겼다.
그보다 수분 전 재순의 배웅을 받은 현균은 버스를 타고 불쾌한 마음을 안고서 떠났다.
그리고 재순은 바로 꽃재 순례에게로 갔다.
건넌방에 누워있는 순례는 몇 칠을 제대로 못 먹었는지 손마디가 마른 삭정이처럼 되어있었다.
“엄마. 으 흐 흐.”
재순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엄마 뭘 좀 드셔야지 이러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마침 명자가 올라와 미음을 끓여서 가지고 들어왔고 재순이 입에 수저로 떠 넣었다.
그 시간 수동이는 도림개 버스 차부에 와서 차를 기다리는 경동이를 비롯한 재구 재혁 재봉 재흥 등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재혁이
“그래 너 참 잘 생각했다. 이렇게 인사를 받고 떠나니 맘이 조금 개운하다.”
그리고 몇 사람이 남아서 반혼제를 지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났다.
삼우제를 지내고 수동이는 다시 서울 공장으로 올라갔다.
재순은 순례가 조금 기운을 차리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서울로 올라왔는데 얼굴을 들지 못 하고 고스란히 앉아서 시어머니의 꾸중을 들어야 했고, 시동생 중현이 까지 당장 따지러 가겠다고 길길이 뛰어서 난감하게 했다.
겨울용 남자 가디건이 그런대로 나가고 그 사이에 배추를 들여다 김장을 하는데 올해는 배추 값이 비싸서 반 트럭만 했다.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윤희는 영동이를 보러 왔는데 살림살이가 말이 아닌 것을 보았다.
입동이 지난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 김장할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옥자의 시어머니가 윤희에게
“사돈 우리 배추 주우러 갑시다.”
하여 용기를 내어 둘이서 면목시장에 열린 김장시장에서 배추 다듬은 우거지를 주어다 작은 단지로 두 개의 김치를 담갔다.
12월 말 겨울제품 생산이 끝나고 봄 제품을 준비 중 설을 맞아 시골로 내려가서 보니 재덕은 모든 재산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전기 공사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먼저 잽싸게 터를 잡아서 온 기업이 있었으니 천일곡산에서 워랑골에 돼지농장을 짓겠다며 산을 사가지고 와서 돼지우리를 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돈벌이가 터졌다며 환영을 했고 젊은이들이 일을 나가서 돈을 벌었다.
안마산으로 세배를 갔는데 진외가 아저씨 벌 되는 부희는 천일 곡산에 일을 해서 한 달에 삼만 원을 넘게 벌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렇게 설을 보내고 수동이가 서울로 올라가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나서 물막골 성기가 재덕을 찾아왔다.
“형님 전답 팔 생각 없소.”
재덕에게는 귀가 번쩍 뜨는 소리였다.
“그래 작자가 있어.”
“서울서 노부부가 내려와 농사나 지으며 살려고 하는 사람인데 집 째 논밭 다 샀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그럼 흥정을 붙여봐.”
그렇게 몇 칠 후 성기는 이기영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사람은 제기동에서 복덕방에 나가며 소일을 하는 사람으로 이제에 밝았다.
수동면에 전기 공사를 해서 조만간 전기가 들어오면 전원생활을 하는데 불편이 없을 거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흥정은 쉽게 이뤄졌다.
양묵의 산소 40평을 뺀 전 답 집 까지 사십이만 원에 팔기로 계약을 했다.
재덕의 생각은 정자도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몇 년 만 지나면 제 밥벌이는 할 것이고. 수동이는 걱정할 것이 없으니 내가 열심히 일하면 이 지긋지긋한 이곳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우르릉 쾅, 쾅 천둥지기 논, 그리고 매년 보습이 깨어지는 돌밭, 그리고 젊을 여자 둘이나 죽어서 원혼이 깃들어서 그런지 자꾸만 아파서 지난겨울 양묵이 죽기 전에 마누라 까지 죽는 게 아닌가? 했던 여름이 되어 장마가 지면 집 주위로 선샘이 나와서 음습하기 까지 한 집을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재덕이 한수 꺾기고 계약을 한 것이었다.
재덕은 조금치고 땅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그렇게 양묵이 오십 여년을 피땀 흘려 마련한 전답이 헐값에 팔려 나간 것이었다.
한사람은 싸게 사서 좋고 한사람은 지겨운 것을 벗어버린다는 만족한 계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입양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모든 것을 정리 하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많았다.
기영이가 코치를 했다.
“우선 아무소리 못하게 재순에게서 인감증명을 받아오시오 그리고 한쪽으로 입양신고를 서두르고 쉬운 방법을 재순에게 상속을 했다가 재순이 파는 걸로 하면은 쉬운데 그건 모든 게 안 될 적 이야기이고 인감의 시효가 석 달이니 재순의 인감증명부터 받아오시오.”
그래서 재덕은 운수리 우체국에 가서 수동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군, 김 군 전화 왔다.”
마침 봄 상품 준비 중이어서 영린 수동이 광춘이 연직이 까지 네 명이나 되었다.
여름을 겨냥해 필라멘트 그래프 사를 구상하고 있었다,
작년 일본에서는 필라멘트 그래프사로 짠 티셔츠가 유행을 했다고 해서 알아보니 국내에는 그래프사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프사를 만들기 위하여 양말 짜는 환편기를 들여다가 필라멘트사를 짰다가 우선 뜨거운 물에 삶아서 풀어서 감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용도 없이 네 사람씩 있는 인원을 활용하려고 했었다.
사장의 전화 왔다는 소리에 수동이는 뛰어 내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동아 애빈데 너 청량리 고모한테 찾아가서 고모 인감증명서 한 통만 떼 달라고 해라.”
“네.”
“여일을 젖혀놓고 받아와야 하는데 사장 어르신 뵈면 인사 잘하고.”
“네.”
“꼭 받아와야 한다.”
“예.”
하면서 전화가 끊겼다.
“사장님 저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하루만 시간을 내어 주시면 안 될까요.”
사장은 계산이 빨랐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심부름할 아이 하나면 족한데 둘이나 더 있어서 내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어떡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옳다구나 하고
“그러려면 그만 둬.”
“네 꼭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만 두겠습니다.”
하고 올라와 가방에 옷을 주섬주섬 쌌다.
인사를 하고 나가는 수동에게 사장은 정확하게 날짜 계산까지 해서 돈을 주었다.
그리고 빠르게 걸어서 라사라 양재학원 앞에서 홍능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청량리전화국 앞에서 내려서 재순의 집을 찾아갔다.
우선 시아버지 현균 내외에게 절을 올린 수동이가
“사장어르신 지난번 저의할아버지 장사 때 오셔서 불쾌한 일을 겪게 해 들려서 송구스럽습니다.”
“어 흠 흠. 이렇게 젊은이가 찾아와 사과까지 하니 내 별말을 하지 않겠네,
우리 평산 신 씨 집안이 뭐 자내 네 집에 비하여 결코 뒤지는 집안이 아닐 세. 뭐 이런 말이 소용 있겠냐만 서도 불쾌 했지만 늦게라도 찾아온 젊은이가 기득하이.”
“네 사장 어르신 감사하옵니다.”
문안 인사를 하고 나와서 수동이가 재순에게
“고모 아버지가 상속신고 때문에 필요하니 인감증명서 한 통만 떼어 달라고 하시던 데요.”
순간 재순은 그동안 시아버지로부터 ‘그래 나에게 그렇게 모욕을 주고도 찾아와 사과 한 번 하는 놈들이 없어’ 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어서 이번 기회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내가 인감증명을 떼어 놓을 테니 아버지보고 찾으려 오시라고 해라 오셔서 정식으로 사과의 말씀도 드리라고 해. 알았니?”
“네 알았어요.”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수동이는 물골안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와 전말을 이야기 했다.
이틀 후 재덕은 수동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수동이는 마석에서 내려서 황골로 향했고 서울로 간 재덕은 면목동에 들려서 성동이와 함께 재순의 집을 방문하여 현균에게 사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현균은 볼일이 있다며 나갔고, 재순은 생전 처음으로 동생의 집을 방문한 재덕에게 술상을 봐 올렸다.
그때 몇 년 전에 결혼한 팔팔한 시동생 중현이 들어와 대작을 하였다.
중현은 학교선생을 하는 사람으로 사돈이라면 어려운 사이이고 나이도 연배여서 어려울 텐데 지난번 아버지가 모욕을 당했다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형수 오빠가 왔으니 한 마디 해 보내려고 했다.
“사돈 내술 한 잔 받으시오.”
“아닙니다, 제가 한잔.”
“아닙니다, 제집에 오셨으니 제가 한잔 올려야 지요.”
그렇게 한 순배의 술이 오갈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다.
“어떻게 대단한 집안에서 이렇게 까지 와 주시니 광영입니다.”
당사자인 현균에게 했으면 됐지 자기도 사괄 하라는 의미였다.
재덕은 밸이 꼬이는 것을 참고 넌지시 받아 넘겼다.
“과찬 이십니다. 저의 집안이 어디 평산 신씨에 비하겠습니까?”
“사람이라는 것이 어디 가문만 가지고 됩니까. 됨됨이가 중요하지요. 무릇 상하를 몰라보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상하는 바로 보셔야지요.”
밸이 뒤틀린 재덕이 하는 말이었다.
너는 상하를 바로 보아 네 형수의 오빠고 너에게 큰 형님 연세나 든 나에게 하는 말이냐 하는 비아냥거림이었다.
“작은 아버지 저 가봐야 하는데요.”
성동이가 얼른 재덕의 입을 막고 사태가 험악해 지려는 것을 막고 나섰다.
“가만히 있게 나 높으신 분의 충고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느냐.”
“서두르셔요. 차 놓치겠어요.”
하면서 재덕을 독촉했다.
“고모님 저 갈게요.”
하고 재순을 불렀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재순이
“조카님도 바쁘시고 오라버니도 차 놓치시겠네.”
그제야 제 정신이 돌아온 재덕이
“이거 제가 시간이 없어서 한잔 더 올리고 떠나야 하겠습니다.”
하면서 술병을 들어 한잔 따라주고 일어서며.
“사돈 충고의 말씀은 다음에 듣겠습니다.”
그렇게 마무리 되고 밖에 나오면서 재순으로부터 인감증명서를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동이는 강촌역에서 내려서 미니버스를 타고 황골에 도착하니 윤희가 반갑게 맞으며, 늘 그랬듯이 수동이의 손을 감싸 쥐며.
“어서 오너라. 추운데 어떻게 오니. 어여 들어가자.”
수동이가 절을 올리고 용동내외에게도 절을 하고 용동에게 호적등본을 떼러 왔다고 하자 다음날 용동이가 강촌에 나가서 떼어 왔는데 그날 저녁부터 진눈개비가 내려서 차가 다니질 않아서 하루를 더 묵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슬러니 고개를 넘어서 방하리에서 배를 타도 건너가 가평에서 차를 타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는데 마침 새창벌 수동이보다 10여 살이나 많은 달식이를 만나서 같이 오게 되어서 그나마 한적한 산길에 길동무가 되어서 방하리 나룻터에서 나룻배를 탔는데 다시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 했고 바람까지 불었다.
사공까지 다섯 사람이 배에 올랐는데 배의 가운데에는 다른 한 사람이 앉고 고물(배의 뒷부분)에는 달식이 웅크리고 앉았다.
수동이는 사공이 지정해 준대로 나룻배의 이물(앞부분)에 앉았는데.
“흔들리지 않게 잘 잡으셔, 자 갑니다.”
하면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내리던 진눈개비는 더 심해지고 강바람을 세차게 이물을 잡고 앉은 수동이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몰아쳤다.
뿐만 아니라 이물을 잡은 손등을 출렁이는 파도와 진눈개비에 맞으니 놓지도 못하고 손이시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가평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마석서 물골안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물골안에 도착해 보니 오늘 기영이 부부가 서울에서 내려와 안방에서 기거를 하면서 살림을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날 재덕이 입양신고를 하려고 하니 호적에는 무덕과 사이에 1926년에 태어난, 재준과 28년에 태어난 재운이라는 죽은 딸이 둘씩이나 호적에 올라 있었고, 그중 장녀 재준은 살아 있는 걸로 되어 있어 71년 이월에 사망한 걸로 사망신고를 했고, 입양은 삼월에 한 것으로 간신히 아는 면 직원을 점심을 사주면서 했다.
양묵의 사망신고 까지 하려고 하니 더는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오면서 속을 태우면서 집으로 오니 기영이 그러면 증여를 받은 걸로 하던지 매매를 한 걸로 하면 된다고 해서 매매로 하려고, 양묵의 인감을 떼어서 수동이를 시켜서 신설동 등기소 앞에 있는 사법사무소에 가니 이번에는 등기부에 기록된 良黙의 이름이 良熙로 되어 있어서 이름을 정정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보증을 서야 하므로 인감증명과 보증인 도장을 받아 오라고 서류를 받아서 집으로 와서 이야기를 하니 재덕은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구나 하면서 이튿날 병욱에게 보증을 서 줄 것을 부탁했으나 해주질 않았다.
병욱이 그런 데에는 몇 년 전 정제 사건이 떠올라서 그랬으나 재덕은
“그놈의 도장을 누가 뜯어먹나 삶아먹나.”
했지만 재덕의 성격을 잘 아는 병욱은 대꾸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도림개말 운선과 성기의 인감증명을 받아서 사법서사 사무실에서 받아온 서류에 도장을 찍어서 수동이가 갖다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법사무소 여직원의 실수로 밭 한 필지가 또 빠져 버려서 한 필지를 뺀 나머지를 매매를 원인으로 양묵에게서 재덕으로 소유권을 넘겼고 그동안 계약금은 길거리에서 다 소비하고 말았다.
기영은 한 필지 값 칠천 원을 빼기로 하고 다시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소는 45,000원에 팔아서 영동이에게 구멍가계를 할 만한 장소를 알아보게 했다.
영동이는 이곳저곳 다니며 물색 끝에 이문동 주택가에 방하나 딸린 가계를 전세 삼십만 원에 기한은 일 년으로 우선 소판 돈으로 계약을 했다.
어렵사리 일이 마무리 되어 재덕이 서울로 떠난다고 하자 동내에서 송별식이 있었고 서울살림에 쓸 수 없는 물건들은 남에게 팔거나 주었다.
그러던 중 뒤주를 팔기위해 뒤주에 올려놓았던 물건들을 치우는 중 등잔을 잘못 건드려 등잔에 있던 석유가 쏟아져 안에 든 쌀에 석유가 흘러들고 말았다.
급히 석유가 묻은 쌀을 펴내고 씻어서 말렸으나 냄새가 사라지지 않고 햇볕에 말린 쌀은 잘게 부서져 싸라기가 되었고, 한 달 가까이 석유 냄새나는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하는 날 영회가 서울서 이삿짐 차를 타고 내려와 동내 사람들이 이삿짐을 동내어귀에 있는 트럭까지 저다 주어서 차에다 실었고 떠나기 전 수동이가 순례에게 절을 하며
“할머니 만수무강 하세요.”
하고 절을 하고 안방에 둘러 앉아 있던 순례의 친구들에게도 공손히 인사를 하자 모두 고개를 끄떡여가며 무언의 칭송을 했다.
방을 나와서 그동안 애 써준 동네 어른들을 향해
“잘 살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고개를 숙여서 공손이 인사를 했다.
잘 살아라 하는 말을 뒤로 하고 재덕과 정자가 트럭 앞에 타고, 수동이와 영동이가 짐 속에 숨어서 타고 서울로 출발을 했다.
정순은 경자 금자 은자와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각자의 감회가 교차 했다.
재덕은 십오 년이 넘는 동안 격은 일을 생각하니 후련한 생각이 났고, 정순 또한 버스에 올라 지난 일을 돌아보니 고통의 땅을 벗어난다는 생각뿐이었고, 다만 석고개 홀로 된 선복이 마음에 걸렸다.
이문동에 도착하여 잔금을 치루고 이삿짐을 내려놓고 조금 지나니 정순과 애들이 도착을 해서 청소를 하고 방에 형광등을 사다 달고, 청소를 하고 짐을 드려놓고 연탄을 사다 연탄재 하나를 주어다 넣고 종이에 불을 붙여 넣은 다음 숯을 넣어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한 다음 연탄을 넣었다.
그리고 아랫목에는 작은 소반을 놓고 벽에는 한지를 바르고 한지 위에는 이사 올 때 상청을 치우면서 떼어온 지방을 붙이고 위에는 한지로 덮개를 만들어 붙이고 술 한 잔을 따라 놓았다.
가식이지만 그래도 재순이가 왔을 때 섭섭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면목동서 장사를 하는 재봉이를 따라서 영동이 수동이 만석이 청량리에 있는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다 팔 물건들을 진열 했다
다음날부터 장사를 시작 했는데 생각처럼 물건이 잘나가지 않았고, 재덕은 일을 나갔는데 새벽에 콩나물공장 사장이 자전거에 콩나물을 실고 와서 내려놓으며 재덕에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며 말을 걸었는데, 군 생활을 같이한 전우여서 특별히 재덕의 가계에는 특별히 콩나물을 더 많이 주었다. .
그리고 재덕은 홍능에 과학기술연구소를 짓고 있는 신성기계에 취업을 해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물건을 팔고 물건을 다시 사려고 보면 물건 값이 모자라 물건의 양을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던 어느 날 만석이 와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재덕과 같이 소주병을 놓고 통조림 하나를 따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 두 병을 비우고 다시 또 한 병을 달라고 하자 수동이가 철없이 한마디 했다.
“이제 좀 그만 드세요.”
그 말에 재덕의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어린놈이 그런 소리를 해. 이런 돼 먹지 못한 자식.”
수동이는 수동이대로 가계에 물건이 늘어나지는 않고 자꾸 줄어드는데 신경이 쓰여서 한마디 한 게 화근이 되어 목소리가 커졌고 문밖을 나선 수동이는 전봇대를 있는 힘껏 들이 받았다.
머리가 띵 하고 별이 보이고 잠시 멍했다.
경원선 철길을 건널목을 지나 다시 중앙선 철길 건널목을 지나서 중랑교를 건너 판잣집이 즐비한 둑길을 걸어 재운의 집으로 갔다.
이틀 뒤 재덕이 와서 재운과 한참을 이야기 했고 재운은 수동이를 불러.
“인석아 처남 매부가 술을 좀 마셨기로서니 그걸 말하면 네 애비 체면이 뭐가 되니.”
“잘 알겠어요.”
“가게의 술을 다 마셔도 말하지 마라.”
“그래도 만석이가 맘이 넓은 편이네요. 화도 안내고 참는걸 보니.”
재덕이 한마디 거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수동이는 다시 취직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숭인동에서 혹시나 나를 다시 써 주지나 않을까 하고 갔었는데 일이 없는지 광춘이와 연직이 보따리를 들고서 시장에서 물건을 도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날 낮에 수동이는 장춘단 공원에서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 유세에 갔었는데 어디에 연단이 있는지 찾아가는데 사람은 많고 가로등마다 달아놓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연설을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정에 다닌다던 집 주인을 장춘단 김대중 선거 유세를 다녀와서 사표를 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4월27일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을 했다.
그리고 몇 칠 뒤 놀러온 운열이가 성북동에 횡편기를 놓고 수출용 스웨터를 하청 받아서 짜는 곳을 소개해 주어서 취직을 해서 그 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12게이지로 소매 한 장당 30원 앞 판이나 뒤판은 50원을 받는데. 전에 숭인동에 있을 때 몇 번 짜 보기는 했는데 초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는 남자 세 명 여자 도 두 명에 실을 운열의 처제가 감고 있었다.
그러니까 운열의 동서의 집이었다.
수동이는 초짜보다 나으니 배우기가 수월 했다.
먼저 앞판 가마의 바늘을 2개 건너 하나씩 오도시(하나 건너 두 개씩 남기도록 철판에 턱이 나와 있는)판으로 눌러서 잭 (Jack)이 아래로 내려서 캐리지(구라, Carriage)를 움직일 때. 바트 (Butt)가 하나건너 바늘 두 개씩 올라오게 하였다.
그리고 후리(Racking, Needle-Bed Shifting)대를 아래로 눌러서 뒤 가마가 한 칸 움직여 앞 가마의 바늘과 바늘사이로 바늘이 올라오게 하였다.
그래야 앞 가마 바늘하나에 코가 하나씩 형성되지 두 바늘이 하나의 코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좌측에 있는 캐리지를 우측으로 밀고 비조에서 가는 철사를 빼고 비조를 가마와 가마 사이에 넣고 비조에 가는 철사를 꽂고 비조아래 구멍에 추를 달고 캐리지에 앞쪽과 뒤쪽에 있는 바트(대각선 방향에 있는)손잡이를 눌러서 캐리지를 일회전 하면서 후리대를 위로 올려서 원위치 시킴과 동시에 아까 눌러 놓았던 바트를 열어놓고 천천히 캐리지를 반 바퀴 즉 좌측으로 이동하면서 코가 제대로 형성되기 시작했나 보고 나서 다시 캐리지를 우측으로 옮기면 1회전으로 본다.
이제부터는 숫자를 세면서 고무단을 짜 나가는데 30회전 마지막에 캐리지 뒤 좌측에 있는 바트에 나비너트를 풀어서 코를 조금 크게 형성시키며 우측으로 캐리지를 옮겨서 나비너트를 올려서 조이고 개리지 뒤에 바트 손잡이를 눌러 넣어 바늘이 먹지 않게 하고 오도시판으로 아까 눌러 놓았던 앞 가마의 잭을 밀어올리고 앞 가마를 가볍게 톡톡 처서 바늘의 혀(배라)가 열리게 한 다음에 뒤 바늘에 코를 트랜스퍼 (Transfer, 곳동)과 오도시판을 이용해 앞 바늘로 떠넘기면 고무단 작업이 끝나고 편면 뜨기 작업인[가다면(민짜, Plain Stich)]작업이 시작된다.
각 정해진 회전 마다 앞 가마의 좌우의 잭을 올려(후야시(Wldening) :바늘 침수를 늘여 나가는 것)주는데 바늘을 하나씩 올려야 곱고 바늘2개에 한 코가 형성되는 경우를 방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간에 실의 색깔을 바꾸어 넣는 단 칼라의 경우 도 있어서 끝부분에서 실을 손가락으로 비벼 넣고 끊어내고 하는데 미숙하면 오동포가 나기도 해서 애를 먹였다.
거의 다 짜서 오동포가 나면 코를 줍는다고 바늘에다 일일이 걸어서 짜기도 하는데 잘못해서 짠 숫자를 착각을 일으키면 불량이 되어서 다 풀어서 다시 짜야하는데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자동의 경우 색상 숫자만큼의 우수(Yarn Carrier)(편직을 위하여 실을 끌고 다니는 사도 장치)를 두어서 단 칼라를 짠다.
앞판의 경우 뒤 가마의 일부를 가다면 뜨기를 하면서 헤라시(Narrowing)를 이용해 케이블 (꽈배기, Cable)작업은 단가를 비싸게 주었다.
그러게 짜나가면서 코를 줄이는 헤라시(Narrowing)를 치면서 다 짜면 캐리지의 나비너트를 풀고서 1회전을 하고서 오도시판으로 바늘을 올렸다 내리면 바늘의 코를 벗겨냄으로서 한 장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밥값을 제하고 열심히 일해야 오천 원 벌기가 쉽지 않고 도급은 체질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중부시장에 있는 삼신상사에 갔더니 구로공단에 있는 환편기로 원단을 짜는 삼경물산에 전화를 해주며 가서 윤반장을 찾으라고 해서 윤반장을 만나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고 여덟시 반이 교대시간이고 12시간 근무를 하는 이 교대 근무며 저녁에는 7시 퇴근으로 야간근무 시간이 시간 반 길고 월급은 만 이천 원 준다고 했다.
이튿날 7시전에는 출발을 해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출근을 하니 비슷한 또래들이 4명이나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근무에 들어가니 실도 아크릴사가 아닌 폴리에스터로 한번 연결해주면 여덟 시간 넘게 짜지니 반장을 포함한 5명이 30개 이상의 실이 들어가는 기계 20대를 돌아다니며 실이 떨어지면 갈아 주고, 원단에 이상이 있나 없나 하고 원단을 살펴보고 이상이 있으면 바늘을 갈아주고 하면 되었다.
황희동이란 친구가 매일 공장장이 순시를 하는데 바닥에 실이나 바늘이 떨어져 있으면 편직과장이 불려가 혼이 난다고 하며 바늘을 갈아도 폐 바늘통에 넣어야 하고 실을 갈아 이을 때 나온 실밥도 그때그때 바로 쓸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저녁 7시가 되니 야간 근무조가 출근을 해서 인수인계를 하고 퇴근을 해서 집에 오니 여덟시 반이 지나 있었다.
그렇게 몇 칠을 다니는데, 반장이 화물용 1.5톤 탑 차(신진에이스)운전사가 안암동에서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출근시간에 맞추어 신설동 뒤에 있는 골목으로 나오면 차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나왔더니, 뒤 화물칸에 태우고 세 군데를 들려서 모두 여덟이나 뒤에 타고 공장에 내려서 제각기 자기 부서로 갔다.
몇 칠 뒤 출근길에 편직부기사와 염색부반장이 출근을 하면서 원단에 가로로 무니가 나는 불량에 대하여 옥신각신 하면서 말다툼을 하는데, 책임소제에 대하여는 편직부가 밀렸다.
야간 근무를 들어가려면, 일요일 주간 근무자는 일요일 아침8시부터 월요일 아침 8시 까지 24시간 근무를 해서 아니 출 퇴근 시간을 더 하면 28시간을 안자고 있다가 자게 되니 시차 적응이 잘되는지 야간 근무 후 퇴근하여 골아 떨어져 저녁 5시면 깨어나 7시 까지 출근을 하게 되었다.
밥은 12시 구내식당에서 먹었고 1시부터 8시 교대 시간까지 근무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퇴근한 근무자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한다,
그나마 노는 첫째 일요일이나 셋째 일요일은 야간근무자가 일요일 아침 퇴근 월요일 아침 출근 전주 주간근무자는 토요일 저녁 퇴근 월요일 저녁 출근 을 해서, 이틀간의 낮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5월15일 저녁에는 퇴근길 남대문 부근에서 마이크 소리가 나서 가보니 정일형 박사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이었다.
찬조 연사로 김대중 김수환 등이 와서 연설을 했다.
유세가 끝나고 정문을 나오는데 사람이 많아서 조심조심 소리를 하면서 천천히 밀려 나왔다.
지난 대광고 연설에서 사람이 압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앞집 백조세탁소 직원이 외상값을 갚지 않아서 외상값으로 키타를 빼앗아 오는 우여곡절 끝에 가계는 접고 월곡아파트 주인순의 소개로 13동 305로 30만원에 전세를 얻어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약식 상청은 또 만들어 졌다.
양묵이 죽고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이나 이사를 한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사를 하면서 십여만 원이 없어진 셈이었다.
재덕은 재덕대로 벌고 수동이도 월급을 타 오는데도 그러니 도깨비살림 같았다.
그렇게 공사장에서 잡부일 을 하던 재덕은 돈은 조금 더 주는 전문가 적인 것을 택해서 일을 했다,
망치와 정을 가지고 콘크리트 부분이 더 튀어나온 부분은 까내는 일을 하면서 그 일보다 돈을 더 주는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은 콘크리트 일을 하였고 잘못된 부분을 정과 망치를 들고서 까내는 일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어깨와 손목이 몹시 아팠다.
그래도 자재를 정리하거나 기공들의 뒷바라지(데모도)를 하는 것 보다 보수가 높고 나 어린 기공들의 잔소리를 안 들으니 할만 했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오자 재덕은 일하는 현장이 집에서 가까우니 추석이 끝나고 동료들을 불러서 술과 떡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에서 정순에게 음식을 많이 준비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큰 정순은 송편 빚을 쌀을 한 말이나 담그고 재덕이 아침 일찍 마장동에 가서 소 지라를 포함한 국거리도 사왔다.
소, 지라는 빈혈이 있는 정순에게도 좋고 잘 저며서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추석 전날 추석휴가에 들어가서 집에 있게 된 수동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혼자서 송편을 빚어야 했다.
정자는 하루 종일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장만한 음식이 추석 이틀이 지나서 사람을 불러서 점심대접을 했는데 반에 반도 안 먹고 남았다.
그런가 하면 정순은 은자를 데리고 살림이나 할 처지인데도 뭔가 벌어 보겠다고 신문에 나온 스텐레이스 자석 반지 판매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남대문 까지 가서 재덕이 타온 보름치 일당을 들여서 스텐레이스 자석 반지를 사가지고 물골안으로 장사를 다녔다.
아는 집을 찾아가 나침판을 놓고 자석 반지를 대면 나침판이 돌아가고 반지를 끼면 신경통이 낳는다고 하면서 팔았다.
그날도 은자를 데리고 걸리고 업고 하면서 장사를 마치고 돼지고기도 한 근 사고 희원이 과자도 사서 친정인 석고개 만석의 집에 들렀다가 버스 시간이 되어서 버스를 기다려서 탔는데 작은 보따리를 든 방꼴 사는 정호 엄마를 만났다.
정호는 정자와 한반 아이로 차학서의 아들이었다.
“정호 엄마 어딜 가세요?”
“네 그냥 어디 좀.”
하면서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렇게 둘이 한 좌석에 앉아서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길을 지나 마석에 왔는데도 정호 엄마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앉아있었다.
아스팔트길로 접어들어 조용해 저서 정순이 물어 보았다.
“어딜 그렇게 가쇼.”
그랬더니 정호 엄마는 한숨을 내쉬고 이내 눈물을 보이며.
“집 나왔어요.”
“그래 어디 갈 때라도 있어요?”
정호 엄마는 대답대신 체머리를 흔들었다.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버스는 마치고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눈물이 충분히 말랐는지 정호 엄마는 조용히 창밖을 응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버스가 망우리 고개를 넘을 때 정호 엄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정자 엄마.”
정순이 눈을 맞추자.
“저 갈 때가 없어서 그러는데 하룻밤만 신세 좀 지면 안 될까요?”
“그러세요.”
그렇게 정호 엄마는 정순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부동산 앞에서 복덕방을 하는 종만 엄마를 만났다.
종만 엄마는 아파트를 얻을 때 계약을 한 인순이 또래의 여자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정호 엄마는 그간의 사정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돈도 못 벌어 오면서 바람이 났는지 몇 칠씩 안 들어온다고 했다.
그날 저녁 재덕은 의아해 하면서도 친구의 부인이라 대놓고 물어보지 못하고 정순은 통하여 대강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밤을 자고 나서 수동이가 야근을 하고 왔는데도 정호 엄마는 돌아가지 않았다.
정순이로서는 난감한데 장을 보러 나갔다 오는데, 종만 엄마가 정순을 불러 세웠다.
“정자엄마 집에 온 손님이 누구냐?”
“우리 수동 아버지 친구 부인.”
“그러데 왜 왔데?”
“응 남편이 바람이 났다나 뭐래나.”
“응 그렇구나.”
하면서 정순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호엄마는 서방님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더 버텨보려는 생각인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데, 야박하게 보내 버릴 걸 괜히…….
그리고 서너 시간이 지나서 조미료가 떨어져 조미료를 사러 가는데 종만 엄마가 정순이를 불러 세웠다.
“정자 엄마 나 좀 봐.”
“왜 언니?”
“그 여자 시집 안 가려나?”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동생 그러지 말고 내말 들어봐.
“저 강원도에서 농사를 많이 짓고 사는 영감이 있는데 상처를 하고 혼자 사는데 적당한 과부 있으면 중신 줌 서달라고 했는데 마침 올라왔어 한번 보이면 안 될까?”
정순이 실실 웃기만 하자,
“중신 잘 서면 금반지 세돈 준데.”
그 말에 정순이 마음이 동해서.
“글쎄?”
“내일 얼굴만 봬주고 밥이나 얻어먹자.”
“그러지 뭐.”
하면서 장난삼아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수동이가 야근을 하고 돌아올 무렵 정순이 웃으면서 정호 엄마에게.
“정호 엄마 오늘 선 좀 한번 볼래요?”
정호 엄마가 깜짝 놀러 손사래를 치면서.
“아유 망측하게 선은 무슨.”
“그게 아니고 그저 간단하게 얼굴만 보여주고 밥이나 한번 먹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벌써 이틀째 신세를 지고 있어서 미안한데 모처럼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데 수동이가 들어오고 바로 종만 엄마가 영감 하나를 뒤로 하고 들어서고 있었다.
수동이는 건넌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면서 그 영감과 정호 엄마가 마주 앉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정호 엄마와 그 영감만 남겨두고 정순과 종만 엄마는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정자는 숭인동에 재봉보조로 들어가 있었고 경자와 금자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그리고 정호 엄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영감이 묻는 말에만 간신히 대답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이 그 영감으로부터 점심을 얻어먹었다.
점심 식사 후 종만 엄마가 머뭇거리는 정순에게 눈짓을 보내며 빠지자는 신호를 보냈다.
정순은 끌려나오다 시피 그곳을 벗어났는데, 남녀 간의 일이란 묘해서 정순이가 의도 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길로 종만 엄마와 정순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저녁이 되어도 정호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순은 혹 하나를 뗐으나 기분이 영 개운치는 않았다.
그리고 몇 칠이 지나서 종만 엄마가 일이 잘 되어서 강원도로 내려갔다는 소식과 함께 금반지 세 돈 값을 받았다.
그리고 재덕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재덕으로서는 기분이 찝찝했지만 그 일로 해서 싸울 수도 없고 해서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순의 자석 반지 장사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졌는지 흐지부지 되고 재덕의 왼손 무명지에 반지 하나가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동이가 야간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사람들이 어디서 헝겊 탄내가 난다고 하면서 혹시나 해서 두드렸다고 했다.
“그럼 305호는 아닌 것 같고 그럼 306호 윤정이네서 나는 것 같네.”
하면서 306호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첫댓글 또하나의 작은 수동이가 되지 않는지?
정순 그는 요물일까 아니면 내 행동이 남의 행복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 까?
하는 생각조차 없는것 같군요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정호엄마의 행복을 빌어줄 마음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까요?
우리 모두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돌맹이를 던지는 일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요?
그 돌맹이를 맞아서 죽는다면 여러분은 그래도 돌맹이를 던지 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