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Gerrod Jay Davis
출생 : 1970년 10월 3일
키 / 체중 : 키 183cm, 체중 84kg
아이디에서 눈치 채셨다 싶이 대전 사는 데이비스 빠돌이 입니다 ㅎㅎ
잡다 신변 잡기는 집어치우고 잠이 오지 않는 이 밤에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 데이비스에 대해서 주절이 읊어 볼까 합니다.
야구 고수님들 죄송합니다..그냥 하도 잠이 안와서 ㅎㅎ 말투도 경어로 하게 되었네욤..
그를 처음 본 것은 99년, 한창 고3 수능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한화 예기가 잠깐 나와서 말인데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이끌던 화려했던 90년대 초반의 영광을 뒤로하고 95년 5위를 시작으로 96년 턱걸이4위(당시 대성불패 신화 년도) 97년 6위까지 떨어지더니 급기야 용병제도가 처음 도입된 98년에는 7위라는 (사실 롯데 아니었음 무조건 꼴찌였음 ㅡ.ㅡ;;) 완전 바닥으로 처박히게 된다.
아마 본인이 이때 야구장을 지금처럼 많이 찾을수 있었다면 이글스 구단버스를 뒤집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여튼 한화 최악의 해 98년도 한화이글스는 치멜리스 그리고 마이크 부시라는 용병을 보유했는데 치멜리스는 본인 기억에도 나름 괜찮았다. 2할 후반의 타격에 나름대로 깔끔한 수비 그런데 이 쓰레기 같은 마이크 부시는 자기가 무슨 홈런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턱걸이 2할 타율에 겨우 17개 홈런으로 이글스에게 전체 7위라는 성적을 선물한다. ㅡ.ㅡ;;
그리고 영광의 해 99년 당시 한화이글스는 타격 보강에 주력하기로 결정, 댄 로마이어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 제이 데이비스를 영입한다.
당시 데이비스는 8월에 이미 외국인 타자 최초로 20-20 클럽(프로야구전체 27번째) 가입하더니 시즌종료 직전인 10월중에는 30-30 클럽에 가입하는 역대 최초의 외국인 타자가 된다.
당해 데이비스의 성적도 출중했지만 로마이어의 그늘에 약간 가린감이 있었다. 당시 로마이어는 한시즌 외국인 최다홈런(45홈런)을 기록하며 한화이글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난 그때부터 이미 로마이어보단 데이비스에 호감이 갔었다. 내가 선호하는 공수주 3박자를 갖춘 플레이어 이어서 일까...
당시 데이비스의 성적은 0.328 30홈런 106타점 35도루 그야말로 호타준족의 대명사와도 같은 스탯에 3번이 아닌 4번에 어울릴만한 106타점... 크하 대단하삼 ^^;;
99년 한화의 2명이 합작한 타점이 무려 215타점(로마이어 109타점) 참으로 대박 대박 초대박 용병농사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99년은 투저타고의 정점을 달리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오로지 박재홍과 이종범만 가지고 있던 30-30을 무려 4명의 선수가 기록했으니 기억나는 선수만 해도 이병규 박재홍 홍연우 맞나..?
하지만 그로 인해 데이비스의 기록이 저평가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타고투저가 계속 됬을 지라도 향후 10년간 외국인 타자 30-30이 나올 확률은 내가 로또 4등 맞을 확률보다 낮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거기에다 빠른 발을 이용 수비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는데 당시 99년 좌익수가 수비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이영우였던 것을 감안하면 좌중간까지 폭넓게 커버하는 수비범위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히 센터쪽에 오버되는 즉 잡을 수 없는 타구를 마치 잡은 것처럼 플레이하는 페이크 모션.. 일종의 은구(隱球)플레이에 있어서는 국내 1인자라고 자신있게 예기할수 있다.
(뭐 이런 플레이는 하는 선수도 없고.. 잘 나오지 않는 플레이지만..;;)
99년 데이비스의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수많은 홈런과 결승타가 아닌 위에서 언급한 페이크플레이 인데 현대 박종호가 친 타구가 분명 데이비스가 잡기 힘들 정도로 뻗어나갔는데 펜스 근처까지 뛰어간 데이비스가 마치 공을 잡은 것 같은 모션을 취하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1루주자(누군지 정확한 기억이..ㅡ.ㅡ;;)가 2루까지 갔다가 귀루하고 데이비스는 재빨리 송구 완벽한 2루타를 단타로 만들어 버린 장면과(사실 이러한 상황을 실제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약간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이후 데이비스에게서 이러한 플레이를 몇 번 더 볼수 있었다.)
그리고 시즌 막판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울 기세였던 이승엽의 홈런성 타구를 멋지게 잡아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이 수비로 인해 대구구장에 있던 삼성팬들이 오물을 던지는 쓰레기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경기가 끝난 후 비단 삼성팬뿐 아니라 국내 야구 팬들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았지만 본인은 당연한 지극히 당연하고 멋진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본인이 보기에 그 타구는 홈런되기 힘들 것 같은 타구였는데.....;;)
여하튼 99년 우승후 한화이글스는 당연히 2명의 용병타자와 재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듬해 2000년에도 데이비스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다.
2000년 데이비스는 0.334 22홈런 80타점 22도루를 기록하면서 2년 연속 20-20 클럽에 가입한다.(2년 연속 20-20클럽은 박재홍 이종범 선수가 유이함) 홈런수가 약간 줄어들었지만 이것은 리그의 추세와 맞물려 있기도 하고(99년 홈런왕이 54개를 친 이승엽에서 2000년 홈런왕이 40개를 친 박경완이었으니...) 출장경기수도 약간 줄어든것(130경기에서 107경기로)대한 결과이다.
데이비스가 기록한 0.334의 타율은 당해 수위타자 박종호가 기록한 0.340(사실 너무 조작된 느낌이 많았던 타율 ..;;)에 불과 6리 차의 호성적 이었고 굳이 하나의 단점을 꺼내자면 99년에 비해 타점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것 정도였다. 이때 찬스에 약하다는 소리가 불거져 나왔으나 그것은 전체적으로 약해져 있던 테이블 세터진과 줄어든 출장경기수 와 홈런수 따른 현상이라고 변명해본다 ^^;;.
하지만 데이비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다시 한번 7위로 곤두박질 치며 로마이어는 재계약에 실패 LG로 둥지를 옮겼으나 구단과의 마찰로 2001년 중반 리그를 떠나게 된다. 로마이어는 재계약에 실패한 것이 성적부진도 약간 있었으나 구단과의 마찰이 한몫 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구단이 01년 용병을 투수로 뽑으려고 했던 것이지만서도....
그런데 2000년 로마이어의 성적은 0.296 29홈런 96타점으로 그렇게 부진한 편도 아니었는데 이부분을 당시 나는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계속해서 들어온 용병투수가 게리 리스인가(?) 이전까지 계속 삽만 푸다가 돌아가서 더욱더 안타까워했다.
이만한 용병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찌되었건 로마이어를 재치고 재계약에 성공한 데이비스는 구단에 보답하기라도 하듯이 활약해줬다.
2001년 데이비스는 한국야구에 완벽한 적응을 끝낸 듯 정말 미친 듯이 몰아쳤는데 0.335 30홈런 96타점 15도루 의 성적은 그야말로 타격의 정확함과 파워를 동시에 갖춘 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고 시즌 후반에는 한경기 3홈런을 몰아치면서 최고용병은 누구인가라는 네이버 설문까지 만들었다. 결국 자신의 통산 2번째 30홈런을 채우면서 한화의 타선의 중심에 서서 팀을 가을잔치로 이끌었던 데이비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시즌 종반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166안타를 기록 이병규와 함께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을 위해서 남은 경기에 출전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으헝.. 내가 시즌 막판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데..ㅡ.ㅜ
3년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변변한 수상 타이틀 하나 없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본인으로서는 이병규가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도록 기도했지만 결국 당해 최다안타 타이틀은 167개를 기록한 이병규가 차지하게 된다.
데이비스는 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한국야구에 완벽히 적응하고 제2의 장종훈이라 불리면서 신인왕을 수상했던 김태균이 4번에서 받쳐주면 내심 2002년에는 수위타자까지 기대하였는데 데이비스는 뜻하지 않은 부진을 겪게 된다. 데이비스가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야구공대신 축구공이라도 가지고 놀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성적을 기록하는데 0.287 21홈런 72타점 14도루 은 분명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었다. 그러면서 감독과의 불화로 2군행이다 어쩐다.. 말도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김태균마저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팀은 다시 한번 7위로 곤두박질 친다.
그런데 본인도 2002년의 상황을 잘 쓰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2002년 초반에 군대를 갔기 때문에 도저히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끔 휴가때 나와서 확인해 보는 데이비스의 성적은 믿고 싶지 않을 정도 였고.. 2003년 상병을 달 때쯤 들리던 소식... 재계약 실패...ㅜ.ㅠ
그렇게 내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년이 지나가고 다시금 돌아온 사회에는 데이비스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ㅎㅎㅎ
2004년 스탯은 119경기 0.291 19홈런 70득점 77타점 128안타
그저 그런 스탯이었다. 주위에 친구들은 데이비스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안된다. 이젠 바꿔야 한다. 라는 말만 잔뜩 해댔지만 하지만 본인은 당시 또 다른 용병타자 페냐의 뻘짓(포수를 보면 돈을 더달라고 생때를 쓰며 연습불참에 성적부진등등)을 보고 데이비스가 최고라고 우기고 다녔었다.
그리고 구단 또한 03년의 완전쪽박 용병농사를 경험해서인지 무난히 안정적인 활약을 해주는 데이비스와 재계약 한다.
(사실 2003년은 실제로 보지 못해서 뭐라 자세한 예기는 쓰지 못하지만 불쇼 전문 피코타와 이름도 듣지못한 로베르토 메히아, 호라시오 에스트라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틀림없이 쪽박이었을것으로 예상. 그런데 피코타는 02년에는 상당히 좋았다고 하긴 하던데..;;)
그리고 이어진 05년 데이비스는 아마 개인 역대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활약을 펼쳐준다. 0.323 의 준수한 타율 24홈런 86타점 139안타로 한화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3번 타자로써 이글스를 가을 잔치로 이끈다. 특히 90득점으로 LG의 박용택과(사실 데이비스 단독수상인데..;;) 득점왕을 차지하며 글쓴이에 있어서 최대숙원인 데이비스의 개인타이틀을 보고 거기에 더불어 골든글러브 까지 차지하며 개인 최고의 한해를 보낸다.
한화라는 비주류(?)구단에서 뛰어난 활약을 해도 그저 그런 흑인선수로 저평가 되던 데이비스. 이제는 골든글러브 까지 차지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 데이비스
그는 올해도 변함 없는 타격을 보여주며 이글스의 타선을 이끌고 있다.
지난 6년간 약간 부진했던 2년을 제외한 4년동안 언제가 전성기라고 딱히 꼬집을수 없을 정도로 꾸준한 데이비스 (개인적으로는 2001년을 전성기로 꼽고 십지만..;;)
그 꾸준함.. 사실 데이비스가 기록한 통산 타율 0.317는 700경기 이상 뛴 현역 선수 2위에 해당하며(1위양준혁ㅡ.ㅡ;;)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앞서 말한 향후 10년 간은 깨지기 힘든 기록들 외국인 타자 30-30클럽 가입, 2년 연속 20-20클럽 외에도 통산타점 안타 득점 등은 이미 기록을 깨고 계속해서 기록을 써내려 가고 있으며 향후 외국인타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생각된다.
(하긴 더 남은건 이제 우즈의 홈런기록 정도밖에 더 있어야지...ㅡ.ㅡ;)
아니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어 통산 기록들은 지금처럼만 3년정도만 꾸준히 활약해 준다면 거의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너무 오바스러운가..^^;;)
사실 그는 우즈와 같이 엄청난 홈런타자도 아니며 호세와 같이 팬들에게 어필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그의 꾸준함과 이제는 외국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편안함이 너무 좋다.
홈런을 친 후의 거수경례도 너무 좋고 약간은 힙합스타일의 통바지도 너무 좋다. 그리고 타석에서의 배트를 흔드는 타격 준비 자세부터 잘 맞지 않았을 때의 배트, 헬멧 집어던지는 행동까지 하나 하나 너무 너무 좋다.
앞으로 더도 덜도 말고 딱 5년만 이렇게 대전 구장에서 볼 수 있길 기원하며 만약 원래 하려했던 것처럼 99년 삼성에서 데이비스를 1착으로 뽑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무서운(?) 상상을 하면서 글을 마친다.
후아 ~~ 쓰다보니 너무 허접한 스탯 나열식 글이 되어 버렸네욤..;;
ops나 출루율 같은 자료들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움이 드네욤..
첫댓글 재미있었습니다~ ^^ 저도 데이비를 첨 입단때부터 쭈욱 좋아하고 있는데~ 한화의 얌전한 이미지에서 약간의 악동 선수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던차에~ 제가 원하던 딱 그런 스타일의 선수가 데이비였습니다~! 계속 꾸준한 활약 기대합니다!! 데이비 파이팅!
근데 비주류구단은 쫌 그러네요...사실 어릴쩍 야구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팬은 분활...빙그레냐..아님 해태냐...장종훈선수의 홈런을 보면서 자란 20대 초중반이라면 한화팬 무지 많습니다...곧 팬순위 1등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ㅋ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99년에 어떻게 삼성이 뽑으려 한거죠? 그당시 농구처럼 트라이아웃제였나요??
와~~ 대단하시네요. 저도 데이비스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고맙네요. ^^ 사실 기록에대한 지식은 없어서... 데~이비스!!!
非酒類구단이란 말씀 아닌지;;; 두산은 酒類구단?-_-;;
99년도 트라이아웃제 맞아요~^^당시엔 예비지명도 있었어서 데이빗-로마이어 부도날 것에 대비해 치멜리스를 3순위로 지명했었죠,,,
우즈 홈런 기록도 깬걸로 아는데요^^;;; 함 찾아 봐야 겠네요.
아 아직 홈런은 못 넘었군요.ㅡ.ㅡ올해 6개 쳤으니 앞으로 13개만 더 치면 넘어선네요. 우즈 통산 홈런 174개네요.
잘 읽었습니다.^^ 신남연선수에 대한 애정이 팍팍 느껴지네요.
우리 데이비스 형님 쵝옵니다^^
한화라는 구단은 잘했던 시즌보다 못했던 시즌이 더 많은 구단이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선수들이 많은거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브레드 리스입니다..게리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용병은 레스(게리 레스)뿐이죠
그리고 부시선수는 잘했는데 부상 이후로 슬럼프와 바깥족 변화구 약점 노출로 중간에 보냈죠..부상 아니었으면 괜찮았을꺼라 생각합니다..당시 뒷돈주고 데려올정도 였으니
데이비스 선수 앞으로도 오래 남아서 야구 더할수 잇었으면 좋겠습니다...^^
얼은 귀화해서탁격코치하세요 이름은 신나면
그렇군요... 브레드 리스.. 지금 찾아보니 나오네욤.. 감사요 ㅎㅎ 그리고 부시선수가 부상이었군요.. ^^;;
이승엽의 타구도 펜스를 맞추는 타구였지 넘어가는 타구 아닌거 맞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