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겨울 / 이시영
아버지 돌아가신 날은 동짓달 스무 엿샛날. 발인 날은
바람 매섭고 눈발 날렸다, 구례 곡성 순천 인근에서 온 유생들이
차일 친 마당의 상청에 모여 ‘어이 石泉!’하며 곡을 한 뒤
두루마기 자락에서 弔辭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향촌의
어른들답게 예의범절이 깍듯하여 상주인 나를 당황케 했다.
멍석 깔린 마당에는 상이 차려지고 펄펄 끓는 국밥과 술을
나르느라 동네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는데, 갓방 솥에서
더운 김을 내뿜는 돼지머리 국밥을 한 투가리 뚝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과방 일을 하는 도동 아재는
빨간 코로 손님들 상에만 눈길을 줄뿐 상주 따위엔 관심
없었다.
붉고 흰 바탕의 만장을 앞세우고 꽃상여는 드디어 마당을
나섰지만 요령을 든 선소리꾼의 선창으로 ‘어허 노 어허 노’
다섯 걸음 가면 세 걸음 뒤로 돌아왔다. 삼베 굴건제복에
대지팡이를 짚은 손이 시려왔지만 나는 상여 뒤에 바짝
붙은 채 오가기만을 반복했다. 상여가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노제를 지낸 시각은 이미 오후 네 시경. 이장이 나와 재배를
하고 마을 일에 얽힌 故事를 얘기하자 이번엔 또 거기가
상청이었다.
해가 한 뼘쯤 남아서야 상두꾼들의 재촉으로 선산을 향해
상여는 떠났는데 여기서도 ‘어허 노 어허 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며 다섯 걸음 가면 세 걸음 뒤로 였다.
날이 완전히 저물어서야 비탈을 오르고 계곡을 건너 장지에
도착했다. 만장을 줄느런히 세우고 마지막 고별 의식이
치러진 뒤 아버지 관은 아래로 내려가 비로소 자신의 거처에
닿았다. 무엇이 딸깍하고 닫히는 소리가 저 밑에서 들리는
듯 했다. 지상엔 바람 불고 눈발 날렸다.
- 이시영 시집 <하동> 2017
[출처] 이시영 시인 32|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