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젊은 마네는 여행과 모사작업을 통해 고전적인 훈련을 하였고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옛 명화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 많았고 때로 옛 명화들의 배경을 완전히 새롭고 엉뚱한
현대적인 것으로 바꿔놓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으로 새롭게 다가온
스페인은 마네가 스페인적인 주제에 몰두하게 했고 벨라스케스의 발견을 바탕으로 1861년에는
[스페인 가수]라는 그림으로 살롱전에서 수상하게 되었다. 이 같은 성공은 마네를 젊은 사실주의
그룹의 선두에 서게 했다.

Street Singer 1862

The old Musician 1862
1863년 개최된 살롱전에서는 400여 점의 그림들이 낙선되자 화가들은 심사에 불만을 품고 진정서를
제출하여 「낙선작 전시회」가 개최되었는데, 마네는 이 전시회에 참가하여 [풀밭 위의 점심]을
포함한 세 점을 전시하였다.

풀밭위의 점심 1863

detail
역사화나 신화적인 주제의 그림만 전시되던 살롱전에 벌거벗은 여자가 나오는 한적한 시골의 피크닉
장면은 대중을 놀라게 했지만 그 그림은 충격적이면서 흥미로운 것이었고 현대예술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근대 회화사에 있어 아카데믹한 경향과 도미에, 쿠르베, 마네가 속해있던
현대주의적인 경향사이의 분열이 끝을 맺게 된다.
같은 해 마네는 [올랭피아]를 그려서 1865년의 살롱전에 선보인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수정하여 그린 작품이지만 [올랭피아]는 순식간에 도전적인 모든 현대성에 불을 붙이는 영웅이자 새로
운 회화의 충격이 되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마네는 파리의 상류층 부르주아의 매혹적이며 현실 순응적
인 모습을 벗어 던지고 질서의 파괴자, 전복자가 되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수록 멋져 보였고
배척 당하지만 거만하고, 비판받지만 인정받는 자가 되었다.
마네는 평생 줄곧 일년에 두 세 점의 작품을 살롱에 전시하려고 애썼다. 대부분이 화실에서 그려진
초상화나 현대적 생활상들을 그린 그림들이었고, 인상파의 그룹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거나 그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꺼렸으나, 1875년에는 [아르장퇴이유]를 출품함으로써 인상주의를 구사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가장 고전적인 작품 [올랭피아]의 파문이후 두 번째의 심각한 파문이었다.
한편 인상파의 화가들은 일찍이 마네를 알고 감탄하던 사람들로, 그를 그들의 선구자로 여겼고,
자유로우면서 거의 생략에 가까운 기법과 사물을 보고 그리는 새로운 화법, 자립심과 용기를 지닌
인간 모델을 배웠다. 마네는 이름이 비슷하여 젊은 화가 모네와 자신을 혼동하는 것을 불쾌해 했지만
결국 좋은친구가 되었으며, 인상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마네의 색감은 점점 더 밝게 변해갔고 현대
생활을 보다 덜 의도적인 모습으로 그리게 되었다.
흔히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여겨 왔으나 그는 위대한 고전미술과 현대성 사이에서 천재적인
중개역을 맡고 있는 화가였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난과 야유를 받았지만 들라크루아, 드가, 모네
등과 같은 당시의 거장들로부터는 지지를 받은 화가였다. 그는 도시와 도시의 밤, 도시가 주는
모든 새로운 광경에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매력을 끄는 인물로 외적으로는
여유와 자신감이 가득한 인상을 보였지만 반대로는 늘 자기회의에 젖어 '사람들이 내게 온갖
악평을 퍼붓고 있다. 분명히 뭔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1878년부터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에 시달렸고 51세의 한창의 나이로 아깝게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