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거리,서울 강남이 갈라지고 있다. 10∼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패션 로컬리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신세대의 패션 경향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 지역권이 나름대로 일정한 특색을 유지하면서 서로 차별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강남권 안에서도 압구정,청담,대치,강남역,송파,신천 등 동 단위로 서로 다른 패션 유형이 형성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압구정파=세미 정장과 ‘리얼힙합’ 패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장쪽으로 보면 여자들에게는 롱스커트 패션이 대세다. 이는 ‘가을동화’의 히로인 ‘은서’ 패션을 기조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송혜교가 강남 출신인 데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 ‘버버리’ 손가방 정도는 기본 소품이고 그 이상의 사치성 명품을 지양하는 습성이 있다. ‘리얼힙합’은 디제이덕류의 ‘양아치’ 힙합이 아니라 미국에서 건너온 정통 힙합패션을 벤치마킹했다. 이는 여전히 유학파가 득세하는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청담동파=말 그대로 명품 정장을 추구한다. 프라다 또는 루이비통 핸드백,페라가모 구두,구치 로고가 들어간 금색 반투명 스타킹,샤넬 파시미나,에트로 헤어 밴드 등이 기본 소품이다. 의외로 머리는 염색을 안한 생머리 스타일 혹은 검은색 코팅머리가 많으며 화려한 색조화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신세대지만 부모 말을 잘 듣는 ‘신보수파’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에 순종하는 이유는 부족함 없이 명품을 잘 구입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이 많다.
▲대치동파=단정한 모범생 패션이 주를 이룬다. 소위 ‘학원파’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의 집 밖 ‘교복’ 겸 ‘유니폼’으로 더블코트와 폴로 면바지,닥터마틴 구두,그리고 뒤가 볼록한 ‘루카스’ 가방을 선호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달려가 사고 싶은 것을 고른다. ‘짜가’는 경멸한다. 비싸지는 않지만 웬만한 백화점에 다 있는 아가타(Agatha) 브랜드의 펜던트나 목걸이를 살짝 걸기도 한다. 그다지 튀지 않는다.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단정한 스타일이 대세다.
▲강남역파=이곳의 패션스타일은 밤에 더 두드러진다. 지역의 특성상 나이를 속이고 술을 먹거나 나이트를 가려고 하는 신세대들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와 맞물려 ‘나이 들어 보이는’ 정장 스타일이 선호되고 있다. 힙합도 유행이긴 하다. 힙합이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촌스러운 ‘백댄서 힙합’이 우세하다. 다른 권역에서는 이쪽을 ‘3류’라고 평가한다. 이곳은 청담·대치동과 달리 강북에서 원정 오는 신세대들이 많아 복합적 경향을 띠기도 한다.
▲올림픽파=오륜동 올림픽아파트 주변에서부터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지역,문정동 훼미리 아파트 단지에 이르면서 퍼져 있는 패션 스타일이다. 남녀 할 것 없이 흰색 면티를 안에 받쳐 입고 폴로니트에 폴로 야구모자를 즐겨 착용한다. ‘UCLA’ ‘Havard’ 등 미 동부 대학 이름이 새겨진 라운드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 대학 티셔츠는 어학연수 자유화 초기 시절 압구정쪽에서 대 유행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짜가’가 많고 유행이 지나 다소 소강상태다.
▲신천파=강남이지만 강북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강남역과 더불어 다소 ‘떨어진다’는 뉘앙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앞이 뾰족하고 폭이 좁으며 길쭉한 ‘도로시구두’를 남녀 공히 착용하며 머릿결을 축 늘어뜨리는 ‘매직파마’를 하거나 싸구려 무스로 머리를 넘기기 때문에 말끔한 이미지와는 영 거리가 멀다. 가방도 등짝에 바짝 붙여 위로 메는 스타일이 태반이다. 한물간 MCM 가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청담동처럼 프라다나 미우미우 가방으로 발빠르게 변신하지 못하고 있다. 벙거지 모자를 연상시키는 ‘헌팅캡’이라 불리는 모자를 즐겨 착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