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1학년 때였다. 할머니는 내게 목이 긴 양말에 굽이 높은 신발을 신겨서 학교에 보냈는데 그것은 초라한 시골뜨기의 모습이었다. 초라한 시골뜨기와 같은 모습이 내 감정까지도 그런 초라함으로 몰아넣었다. 그 이유는 다른 아이들은 전혀 그런 복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심각한 열등감이 놀랍게도 40년 동안이나 나를 지배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이 40년 동안이나 나에게 영향을 주도록 내 자신이 허락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였으며, 치유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서 자유를 얻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한 일은 죄를 고백하는 일이었다. 그 다음에, 기억을 치유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오랜 세월 동안 열등감을 허용했던 것은 하나님의 법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탄에 의해서 주장되어졌던 것이다. 사탄이 하는 일은 우리를 혼미케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돈을 주고 괴롭게 하면서 같이 존재하고 있다.
당신도 사탄에게 틈을 주어 눌리거나 붙잡혀 있는 것은 없으십니까?
엡 4:26-27 26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새 사람을 입으라 말씀 : 엡4:22-24
땅만 보고 줄곧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천국을 보고 사는 변화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이라는 새로운 출발은 어떤 변화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될까요? 절에 빌던 손, 절에 가던 발이 예배당에 가서 빌고, 예배당에 가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변화된 시점을 이제부터, 새로운, 다시, 전에는 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며 뭔가 한참 구별된 삶이 시작된다는 선포입니다.
바울의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가르침의 대상이 본문에 "너희"입니다.
너희는 바로 예수님 짜리 입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 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 짜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지불하고 즉 예수님을 지불하고 산 것으로 우리 몸은 소유주가 하나님이며 값은 예수님 짜리 입니다. 바울은 바로 예수님 짜리 즉 구원받은 성도에게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강조하는 것을 볼 때에 성화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짜리의 신분을 체험적으로 옛사람을 끊어 버리고 벗는 분명한 시작이 있어야 하고 또 끊 임없이 새 옷을 입는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인의 삶은 어 떤 모습일까요?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발견하고 신분에 걸맞게 살 필요성을 인식하며 나를 사신 주인의 목적에 초 점을 맞추는 동기에서 출발하여 매일매일 조심스럽게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훈련 속에서 성숙해져가야 합니다.
우리는 유교, 불교와 같은 단순한 기독교라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늘 함께 하시는 성전이고 천국 끝까지 한 운명으로 같이 갈 교회 공동체가 있기에 우리 는 세상사람으로 종교인과는 구별되어 달라도 한참 다른 소금과 빛 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말씀대로 욕심과 구습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옷이 더 럽다고 생각해야 그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우리는 먼저 나의 욕망과 성취 욕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옛사람의 잔유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더러 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 위에다 새 옷을 입겠다고 덤벼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교인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정신상태와 말 그리고 행동은 분명히 세상사람과 똑 같은 데 종교란 에는 기독교라고 쓰고 일요일에는 틀림없이 교회에 나갑니다. 남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의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 다.
옛사람의 인생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성취욕망에 사로잡힌 인생입니다. 직장의 평사원으 로도 먹고살고 자녀교육 시키며 행복을 영위하는데 별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도 승진해서 간부가 되고 부하직원을 거스르려고 애를 씁니다. 땀의 열매에 만족 않고 편법, 불법을 씁니다. 그것이 곧 성취욕망입니다. 권력의 성취욕망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을 죽입니다. 세상의 정복의 성취욕망이 전쟁을 일으키며 살상하며 죽은 자 무덤 위에서 승리에 도취되곤 합니다. 제물 성취 욕망에서 거짓, 사기, 절도 살인이 나오고 정욕 성취욕망에서 우수한 간음죄 발생되며 심지어 성취욕망이 거룩한 종교로 포장되며 예배당 규모, 신도수, 사례금, 교인들이 떠받는 충성도, 교단의 직책 등으로 성취욕망을 대리만족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런 성취욕망을 십자가 위에 못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제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인생의 가치기준이 마음에 자리잡고 그 가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입 니다. 이제까지의 가치 기준은 모두 세상 것들로 인하여 형성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안다는 부모, 형제, 친척, 친구, 학교, 선생님, TV, 책, 문화, 돈, 음식, 오락 등 이런 세 상 것들이 지금의 나라는 가치기준을 형성 시켰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세상 것 들에 의해서 형성된 가치 기준에 따라 요지부동의 인생관, 물질관, 결혼관, 출세관 등이 형성됩니 다.
가령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라는 가치기준이 있다면 그는 돈이 많을수록 나는 행복하다. 돈벌 생각에 늘 사로잡히고 돈벌 기회만 주어지면 만사 제쳐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그렇게 돈을 많이 벌면 돈을 자랑하기 위해서 고액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대변시키고자 고 급 집, 고급 차등으로 자신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치기준이 형성된 사람은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내 판단대로 사는 옛사람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영적 시체입니다. 그의 돈 자랑은 시체 썩은 냄새에 불과하며 우리들도 조금 전까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에 개입하셔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예수님 짜리 라는 새 신분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제는 가치 기준에 대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이 아 니라 죄 없는 천국, 거짓 없는 천국 사랑만이 가득 찬 천국, 용서하고 베푸는 천국의 가치관으로 다시 정립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예수 믿는다 하면서 가치기준은 세상 것으로 가득 찬 사람들 세상 의 명예욕, 출세욕, 재물 욕을 성취시키고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자신의 옛사람이 십자가 위에 서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베려하지 못하고 끝까지 자존심 이기적 성격을 고치지 못하는 천성 탓으로 돌리며 타 형제 자매에게 가슴에 대 못을 박는 사람들, 그야말로 믿음 따로 행동 따로, 교회 따로 세상 따로 이런 교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까요? 가치기준의 변화 없이 열심 있는 종교가 남을 용서할 마음 없이도 일요일에는 꼭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으로 목사와 장로와 여러 형제를 측량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앞에서 복음적인 참 목사는 그렇게 미약하고 힘없고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살후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 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러나 목사의 눈에는 그의 가치관이 다 보입니다. 누구보다 불쌍해 보입니다. 누구보다 그가 꼭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천대받으면서도 위해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새 옷을 입은 사람,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3가지 면에서 옛사람의 습성이 사라져야 합니다. 마음, 생각, 말, 행동,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 세 가지를 보고 달라져도 한참 다른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옛사람의 습성대로 남을 헐뜯고 음담패 설하며 거짓말하고 욕하면서 주일 성수 잘하고 십일조 잘해도 그는 거듭난 자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옛사람의 청산 없이는 새 사람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 수많은 우리가 뒤따랐지만 대부분이 짠맛 없는 가짜 소금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심을 죽이고자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따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이 좋아서 예수 믿는 식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소방수의 은사처럼 냉철한 언어의 물을 뿌립 니다.
"짠맛이 없으면 가짜니라"
여러분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맛을 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속한 맛이 나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함부로 따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도 좋고 예수도 좋고 인생의 목적을 세 상이면서 교회도 좋더라. 수 십 년의 독립된 나의 가치관 인생 길 물질 관을 깨버리고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깨고 부수고 새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받고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영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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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103:5
좋은것으로 네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청춘 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펑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