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살이의 연조가 늘어가면서 경험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현외에 달리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만날 때입니다.
부 교역자 시절, 교우 중 한분의 사위가 수도권에서 부목사로 섬기다가 금요 심야기도회를 마치고 자택에서 돌연사하는 비보를 접했었습니다.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젊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좋아하며 뛰어다니던 어린 자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십 몇 년 넘은 세월의 이야기니 아이들도 다 장성하였겠지요.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결론이 “천벌 받았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 중에는 천벌 운운하며 탓하기만도 쉽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차량운행을 하시던 목사님이 빙판에 미끄러져 현장에서 즉사한 것을 천벌 운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난 11월 23일, 강원도 춘천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 23일 오전 강원도 춘천의 한 장례식장. 빈소 분위기는 안타까움과 참담함으로 가득했다.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다 횡단보도로 돌진한 차량에 치어 여 성도 3명이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난 현실이 다들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60, 70대 권사와 집사였던 생전의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던 교인들은 유족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그럼에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함께 품자고 유족을 위로했다.
사고는 전날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 남춘천역 인근 도로에서 발생했다. 80대 A씨가 몰던 차량이 신호를 위반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모(61) 박모(72) 권사와 태모(64) 집사를 들이받았다.
이들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국민일보 11월 24일 기사 일부 인용)
사고를 낸 이는 80대 운전자로 운동을 가던 길로 확인되었다 합니다.
발생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하나님을 부정하며 원망과 불평으로 자신을 망치며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사고를 당한 춘천의 교회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분들이 있다는 전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만 구약성경을 읽는다면 여러 곳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청천벽력의 일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면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아들이 짐승의 밥이 되었다는 다른 아들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식잃은 부정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 잃은 야곱의 비통함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세기 37:35)”
이 외에 또 대표적인 예를 들면 욥이라는 동방의 의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기1:8下)라는 평가를 들었던 인물이 바로 욥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 아침에 자식들을 사고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재난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인과응보로 결론 낼 수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욥기서의 결론인 42장에는 욥이 하나님께 대하여 고백하는 신앙고백에서,
그동안의 신앙은 귀로 듣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눈으로 뵙는다고 고백하므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재난과 재앙을 당한 이들이 주위에 있다면 비극의 원인 규명보다, 아픔을 당한 이를 자신이 도울 힘이 있고 방법이 있다면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우는 자와 함께 우는”(롬12:15)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이런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어찌 이런 일이...
그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하나님의 심판으로 정죄 하여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경우지요.
춘천의 그 비참한 사고,..
무슨 뜻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일하심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서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 경험으로 필요한 것은 많은 말보다
따스한 손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오늘도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