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을 사다
백화점에 들렀다 복숭아통조림 한 박스를 샀다.
이 복숭아 철에 웬 통조림이냐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내 마음의 무릉도원 한 세트를 들고 신이 났다
아홉 살이던가 열 살
나는 홍역을 앓아 펄펄 열이 끓고
사흘 동안 미음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설탕물을 끓여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먹는 족족 나는 게워내고
할머니 이러다 우리 장손 큰일 나겠다고
쌀됫박을 퍼다주고 사오신 복숭아통조림
나는 꿈결인가 잠결인가 언뜻언뜻 도원(桃園)을 거닐며
따먹은 기억이 생생한 부귀복록의 천도(天桃) 복숭아
아내는 한참 동안 제철 과일 이야기로 바가지를 긁고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생각에 미리 즐겁고
나는 몽유도원 한 세트를 샀다
- 성선경 -
어린 시절,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신 적이 있었다. 병실에 들렀다가 누군가 문병을 와 놓고 간 바나나를 처음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바나나 송이에서 한 개를 따 먹으라며 내게 주셨다.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왔다는 그 바나나를 먹으며 세상에 이런 과일도 있구나, 어쩌면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싶었다. 50년도 더 훌쩍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다만 그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맛난 바나나를 먹어보질 못했다.
누구든 잊지 못하는 맛이 있을 것이다. 그 맛은 다른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혹은 별로 내키지 않는 맛일지 몰라도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다. 그것이 유년 시절 처음 먹었던 것이건 아니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먹었던 것이건 유난히 그 맛에 매료되어 평생을 잊지 못하기도 한다. 성선경의 시 <몽유도원을 사다>는 바로 그런 맛을 이야기한다.
시인이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들렀다 복숭아통조림 한 박스를 샀다’고 한다. 마침 복숭아를 수확하는 계절인데 ‘이 복숭아 철에 웬 통조림이냐는 아내의 핀잔을 들’었을 게다. 진열대에서 통조림 상자를 들었을 때에도 계산대를 지날 때에도 아내의 잔소리는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내 마음의 무릉도원 한 세트를 들고 신이 났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시인이 ‘아홉 살이던가 열 살’ 적에 심한 홍역을 앓았던 모양이다. ‘펄펄 열이 끓고 / 사흘 동안 미음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때 ‘어머니는 설탕물을 끓여 숟가락으로 떠먹’여줬지만 ‘먹는 족족 나는 게워내고’ 말았다고 한다. 마침 할머니가 ‘이러다 우리 장손 큰일 나겠다고 / 쌀됫박을 퍼다주고’ 복숭아통조림을 사왔단다. 아마 복숭아 철이 아니었고 게다가 통조림이 귀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복숭아통조림을 먹으며 마치 ‘꿈결인가 잠결인가 언뜻언뜻 도원(桃園)을 거닐며’ 복숭아를 따먹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 아니 홍역을 앓던 어린 시인의 입에 딱 맞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부귀복록의 천도(天桃) 복숭아’가 바로 복숭아통조림이란 것이다. 복숭아 맛이 부귀복록(富貴福祿)이라니…… 그런 시인을 보며 ‘아내는 한참 동안 제철 과일 이야기로 바가지를 긁’지만 시인은 그런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집에가 복숭아통조림을 따서는 내가 너희들보다 어렸을 적에 말이야…… 하며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생각에 미리 즐’거울 수밖에 없다.
아홉 살 열 살 시절에 도원(桃園), 즉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말을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무릉도원이 무엇인가. 바로 복숭아나무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무릉에 있는 복숭아꽃이 활짝 핀 세계 즉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운 곳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 먹었던 복숭아통조림 맛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일 게다. 그렇게 시인의 뇌리에 복숭아통조림은 자신이 무릉도원을 거닐며 직접 따먹는 복숭아 맛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복숭아통조림만 보면 침이 돌 것이 분명하다.
4연까지만 읽으면 그저 그런 소소한 일상사를 기록한 생활글이다. 긴 글을 적절히 정리하여 행과 연을 구분해놓았을 뿐이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시로 만드는 것은 마로 마지막 연 한 줄이다. 독립된 한 연에 단 한 줄 - ‘나는 몽유도원 한 세트를 샀다’는 말. 이것이 시 전체를 아우르며 평범한 일상사를 시로 승화시킨다.
시인에게 복숭아통조림의 맛은 무릉도원을 연상시키고 것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산 ‘복숭아통조림 한 박스’는 시인에게 ‘몽유도원’ - 꿈 속에 복숭아밭을 거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몽유도원 한 세트’를 샀다고 표현하고 이를 제목으로 했다. ‘복숭아통조림 한 박스’가 무릉도원을 넘어 ‘몽유도원 한 세트’로 진행되는 과정 - 그것이 바로 시 창작과정이리라.
시를 읽으면 복숭아통조림 깡통을 따서 아이들과 먹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시인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문득 복숭아통조림이 먹고 싶어진다. 나도 시인처럼 무릉도원과 몽유도원을 느껴봐야겠다. ♣
- 이병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