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열을 식혀준 소나기
열흘 전 장마 뒤끝이 흐지부지하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올해 장마는 좁은 국토에서도 강수량 편차가 커 일부 지역은 짧은 시간 집중 호우가 내려 물난리를 겪기도 했단다. 우리 지역은 예년 장마철에 조금 못 미친 강수량일 듯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창원천에 올여름 들어 불어난 냇물이 흘러감은 아직 보지 못했다. 앞으로 닥쳐올 태풍이 가져다줄 강수량은 가늠할 수 없다.
장마 기간에도 열대야를 겪었는데, 장마가 종료되니 낮에는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이다. 재난급에 해당하는 폭염이라 당국에서는 매일같이 안전 문자를 반복해 보내오고 있다. 오늘까지 경남에서 통계에 잡힌 올여름 온열 질환 사망자가 여섯 명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주로 농촌 고령자가 밭일 나가 변을 당하기에 가족이나 이웃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듯하다.
입추를 하루 앞둔 팔월 초순 화요일이다. 어제 오후 내가 낮에 머무는 의창구 대산면 일대는 기다린 소나기가 세차게 내려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오전에 주어진 시니어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후는 마을 도서관 열람실에서 지내다 나오던 귀갓길이었다. 버스 정류소에서 강변 신전 종점을 출발해 창원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아열대 기후에서나 볼 스콜성 강수를 만났다.
날이 밝아온 이른 아침 변함없는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창원역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타면서 아침 산책 코스는 동판저수지를 기점으로 삼으려고 생각해 두었다. 거기서부터 주천강 강둑을 따라 들녘을 거쳐 가술까지 걸으면 꽤 먼 거리임에도 전날 오후 강수로 복사열을 식혀 놓아 더위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 곁을 지났다.
타고 가던 버스는 마을과 제법 떨어진 판신 정류소에서 내렸다. 동판저수지 둑으로 올라서니 판신마을 어귀로 이어지는 길섶은 초본 백일홍이 피운 꽃이 알록달록했다. 저수지 수면에는 청송 주산지를 연상하게 하는 갯버들이 무성했다. 갯버들이 차지하지 않는 수면은 잎을 넓게 펼쳐 자란 연들이 꽃을 피워 장관이었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피기 시작한 꽃이 여태 계속 피었다.
배수문으로 가니 무점마을로 이어진 길고 긴 둑길은 어린 코스모스가 잎줄기를 한창 불려 자랐다. 코스모스 주변은 제초를 깔끔하게 마쳐 이제 여름이 지나도록 폭풍 성장을 해서 봉오리를 맺어 꽃을 피울 일만 남았더랬다. 다가올 가을이 오는 길목에 무점마을에서부터 코스모스가 화사할 둑길을 걸어볼 기대감이 앞섰다. 배수문에서 무점마을로 나아가지 않고 주천강 둑을 걸었다.
벼들이 자라는 들판 건너 자여마을과 정병산으로는 옅은 안개로 시야가 가려졌다. 좌곤리에서 국도를 따라 진영으로 이어지는 전방으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신도시 아파트가 아스라이 드러났다. 주천강을 가로지른 좁은 다리를 건너니 발아래 냇바닥 노랑어리연꽃은 여름내 계속 피고 졌다. 주천강 강둑을 따라 이어진 남포를 거쳐 상포로 가면서 천변 풍광을 감상한 걸음이었다.
상포에서 가술까지 남은 들녘 구간을 마저 걸어 대산 행정복지센터에 이르렀다. 아까 마을버스를 내렸던 판신에서부터 아침 산책으로 2시간이 걸렸다. 전날 오후 내렸던 소나기가 지열을 식혀주어 간밤은 열대야를 잊은 선선한 기운을 아침까지 받으며 싱그러운 들녘을 걸었다. 행정복지센터 현관에서 잠시 머물다 이어 아동안전지킴이 동료들을 만나 오전에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오전 자투리 시간 마을 도서관을 찾으니 냉방이 잘 되고 찾은 이가 아무도 없어 열람 여건이 좋았다. 어제 접어둔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펼쳐 읽다 점심때가 되어 바깥으로 나와 국수로 요기하고 되돌아갔다. 산사 순례 마지막을 장식한 금강산 표훈사는 상상력을 가미해 완독하고 진보 지식인으로 알려진 이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펼쳐 읽다가 해가 기울어 도서관에서 나왔다. 2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