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늦어진 산행기
언 제 : 2018. 05. 24 (목) 07:20~18:08
동 행 : Doughnut-blind
코 스 : 남양주시청~백봉산~마치고개~천마산~관음봉~된봉~영락공원~진건읍(한신그린아파트)
새벽에 일어나보니 왼쪽 눈이 무겁고 엷은 무늬가 퍼져 보인다. 간밤에 출혈이 있었단 얘기다. 잠시 주춤거리게 되지만 오래 망설이지 않고 그냥 춘천역으로 향한다. 금곡까지 한 시간, 열차 안에서 운공조식(?)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되돌아 오겠다는 마음이다. 춘천에 전철 들어온 게 벌써 8 년째, 다른 건 몰라도 가까운 곳 등산 다니기는 참 편해졌다.
하루 전 어느 후배가 걷기 좋은 길이라며 남양주 백봉 이야기를 한다. 오래전 천마산 올랐던 기억이 나 다녀오기로 마음 먹는다. 평내호평 역장을 했던 솔개님에게 물으니 천마산에서 좌틀하여 사릉까지 가는 루트가 좋다며 들머리부터 자세히 알려준다. 두 주 전 뜀박산에서 이칠봉 오를 땐 삼일리 하산 길도 알려준 솔개님이다. 요즘 유능한 등산 코디를 한 명 둔 셈이 되었다.
▲ 들머리에서 바라본 남양주시청 청사
▲ 이 벤치 주위에서 20 여분 어슬렁거려 보지만 초록 녹음 속이라 그런지 모든 게 깨끗하고 맑아 보인다 - 괜찮으리라 믿고 그냥 출발한다
▲ 30 여분 만에 주능선에 오른다
▲ 다산 14 길이라는 시민들 산책길이다 - 후배가 말한 대로 정말 걷기 좋다
▲ 오래 전 기도터 같은 곳으로 쓰였을지도.....
▲ 482 삼각점봉 - 산책 나선 시민들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 양편에서 올라오는 길이 나 있는 고갯마루
▲ 산책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사목
▲ 터널 같은 곳도 지난다
▲ 백봉산(587.2) - 기대했었는데 팔각정이 하나 있을 뿐 조망은 없다
▲ 백봉산에서 조금 내려간 곳 - 마석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 이건 573 봉 - 80년대 후반 문을 연 서울리조트 스키장 공사 때 봉우리 반쪽이 잘려 나갔다
백봉산 지나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졸리기까지 한다. 걸음 내디딜 때마다 깜빡거리더니 가끔은 휘청대기까지 한다. 마침 골프코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졸음 쉼터(?)' 를 발견한다. 배낭을 싸안은 채 등으로 따듯한 볕을 받으니 금방 잠이 든다. 30 여분 내용도 없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다. 맑아진 정신으로 다시 걷는다.
▲ 비전힐스 컨트리클럽
▲ 따듯한 볕이 잘 들던 '졸음쉼터'
▲ 마치고개
마치고개는 5공 말 4 차선 도로 개통으로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 금곡과 마석을 잇던 고개였다. 평내는 간이역만 있던 작은 마을이었고. 마석 시가지 남쪽 약간 높은 지역엔 맛있는 갈비집이 있었는데 재수하던 시절 땅꾼들 따라 구렁이 잡으러 왔다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조금 북쪽엔 오래된 스키장이 하나 있다. 80 년대 중반 스키를 처음 배운 곳이다.
▲ 마치고개 지나 능선 오르며 바라본 천마산
▲ 이건 405 봉 아래 천마산 스키장 슬로프 상단 - 스키 배우던 첫 날 만용으로 이곳까지 올라왔다가 스키를 멘 채 걸어 내려갔었다
▲ 405 봉 능선에서 뒤돌아본 서울리조트 슬로프 - 옆구리가 잘려나간 573 봉이 툭 불거져 보인다
▲ 405 봉에선 500 레벨까지는 밋밋한 능선이다 - 급경사 시작되는 곳까지는 편안히 오른다
▲ 솔개코디가 오버행이라고 표현하던 곳 - 실제로도 오버행 느낌이다
▲ 암벽 끝나는 곳은 약간 위험해 보이는 바위 전망대다 - 지나온 길, 우측은 평내호평과 금곡 시가지
▲ 가야할 능선 - 중앙부 뚝 떨어진 곳 조그만 삼각형 봉우리가 된봉이다
▲ 천마산(810) 정상부는 조금 너저분하다
▲ 땡볕 아래서 점심 식사중인 산꾼들 - 전면 중앙 송라산 자락 우측이 마석 시가지
▲ 630 암봉과 능선 사이, 뒤로 멀리 보이는 축령산과 서리산
이제까지 숲 속 걷는 동안은 느끼지 못했는데 천마산 정상 밝은 곳에 오르니 왼쪽 눈에 검은 블라인드 쳐진 게 보인다. 의사 선생에게 왜 바로 오지 않았느냐 욕 먹을 일부터 떠오른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천마산역이나 호평역으로 탈출해 춘천까지 가보아도 시간이 늦어 어짜피 진료받긴 틀렸다. 마침 내려가는 길이니 마음이라도 편히 먹고 사릉까지 가보기로 한다.
▲ 천마산에서 조금 백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 좌측이 관음봉 가는 길
▲ 멋진 벤취까지 설치된 전망대 - 능선 중앙이 관음봉, 그 왼쪽이 된봉
▲ 북쪽 방향 - 왼쪽으로 휘어지던 능선이 다시 철마산, 주금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 이건 꺽정바위란다
▲ 호평동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안부 - 사릉역까지 아직도 10.8 Km
예전엔 도(道)라는 단어가 그저 '말하다' 라는 뜻으로도 쓰였던 모양이다. 420 여년 전 이지(李贄)라는 이가 펴낸 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이라는 책이 있다. '등불을 밝히고 옛일을 논한다' 는 뜻으로 고전(古典)에 대해 벗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따로 엮어낸 책이다. 8년 전 퇴직하던 때 소박한 삶을 그리며 떠올린 것 중 하나가 책 한 권 앞에 두고 명등도고하는 그런 그림이었다.
▲ 줄곧 평평하던 능선이 이곳부터 관음봉까지는 150 M 정도 고도를 올린다
▲ 관음봉(556.9) 정상 - 솔개코디가 이곳에서 좌틀하라고 강조하던 곳이다
▲ 된봉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편안히 오를 수 있다
▲ 된봉(430.5) 정상 - 삼각점이 꽤 커 보인다
▲ 된봉 이후론 거의 이런 길이다
소박한 삶을 향한 두 번째 그림은 자주 산에 오르는 일이었다. 걷는 중에 물에 적시듯 몸과 마음을 헹궈내면서 말이다. 굳이 하나 더 들라면 작은 밭이라도 일궈 무언가 열심인 일을 가져보겠다는 마음이었고. 그런데 사람 일이 어렵다. 그저 그림만 가득할 뿐 소박한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바탕 드러날만큼 덜어내지 못하는 탓이다.
▲ 영락 공원묘원 가까이 있는 안부
▲ 등로가 잠시 공원묘원을 통과한다
▲ 영락교회와 관계있는 묘원인 듯 - 한경직 목사님이 이곳에 잠들어 계시단다
몸에 드는 병에 특별히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생노병사 운운해봐야 복잡하기만 하다. 다만 하나 '경고' 라는 느낌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경고 받을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포기해 왔다. 2 년 전 출혈이 생겼을 땐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여 좋아하던 술까지 입에서 떼어냈었다. 천마산 안부부터 내내 한 생각으로 걷는다. '이번엔 또 무엇을 내주어야 하나?'
▲ 묘원을 벗어나며 뒤돌아본 된봉 - 왼쪽은 관음봉
▲ 이곳도 시민들 산책길인 모양이다 - 다산 13길, 사릉길이라고 씌여있다
▲ 한신그린과 주공 2단지 아파트 사이 육교에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
농사는 관계 없겠으니 이젠 산에 오르는 일과 책 읽는 일 두 가지 밖에 안 남았다. 어느 것 하나라도 더 떼내어진 모습 상상하는 게 불편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일어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복잡하고 긴 하루를 마치고 사릉에서 전철에 오르니 오로지 한 마음이 남는다. 눈이 어제보다 아주 조금만 더 나빠지는 것, 그런 그림이 꿈꾸듯 지나간다.
복잡한 수술을 받고 6 일간 업드려 지내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 있다. 수술은 잘 되었다지만 아직 왼쪽 눈엔 개스가 차 있어 모든 게 희미하다. 집에 돌아온 첫 날 밤, 어차피 누워서 잘수도 없는 처지라 가족들 모두 잠든 사이 외눈으로 책 한 권을 펴든다. 늦은 밤, 불 밝힌 작은 서안(書案) 앞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맹난자 선생의 '시간의 강가에서'.
"제 몸의 잎을 죄다 털고 가벼울대로 가벼워진 나목(裸木)의 지혜가 요즘 달리 보인다. 몸 속의 수액을 온전히 땅으로 되돌리고 빈 몸으로 겨울을 날 것이다." 채우기보다 덜어내라는 지혜의 말씀이겠으나 맹 선생께선 나보다 열 살 연상이시다. 산에 오르는 일이, 책 한 권 펴드는 일이 아직은 털어내거나 땅으로 되돌릴 겨울 나목의 그것들 아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래 전 어느 크리스마스 날 오후 이칠봉 인근에서 보았던, 황금 자작나무가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망막 박리가 있었나요...? 수술은 잘 됐겠지요. 빠른 완치를 바랍니다. 몸조리 잘 하시고 항상 강건 하십시요...
망막박리는 아니구요, 5 년째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데 황반피하에서 심한 출혈이 있었답니다. 그냥 두기엔 양이 많아 응혈을 얇게 펴내는 수술을 받았지요.
유리체 제거 --> Gas 주입, 이런 수술이었는데 6 일 동안 꼼짝없이 업드려 지내느라 애를 먹었네요~ 지금도 바로 눕지는 못합니다.
수술은 잘됐다 하고 느낌도 좋습니다. 2 주 후쯤 결과가 판정된다니 희망을 갖고 기다려야지요~
문형,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네요. 빨리 회복 하시고 앞으로도 관리 잘 하셔야겠습니다.
황반변성이신데도 제법 긴산행하셨네요~ 고생많으셨슴다....근교의 좋은 산행지이지요~
의사의 조언을 잘 따르는 편입니다. 긴 산행을 특별히 말리지는 않고 단지 오름길에서 천천히 걸으라는 게 이제까지 의사의 권유였지요.
이번엔 임팩이 좀 크니 아무래도 의사와 다시 상의해봐야 될 것 같네요~
건강한 캐이님이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 하셔요 ~~^^
산에 오르는 일을 좋아하는데 뜻밖의 일이 제동을 거네요~
연어님 말처럼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어님도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눈이 불편하신 상태에서도 산에 오르셨네요~~~빨리 회복되시기 바랍니다.산 사진들이 아주 좋습니다,덕분에 주변 조망을 잘하고 갑니다
퇴원해서 회복중입니다. 두 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다 하는데.... 그때 가봐야겠지요~
덩달이님 한 마디에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