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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07
“예. 뭐든지요. 이 일에 관해서라면 알아야 하는 것을 다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것은 다 말할게요. 그러나 먼저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녀는 수줍어하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것이 다소 나에게는 힘이 될 수 있었다.
“이사 오면서 지하실은 직접 리노베이션하셨습니까?”
“아니에요. 저희는 하지 않았어요. 전 주인이 다 했을 거예요. 매매가를 조금 더 올리기 위해서 미리 팔 집 전체를 리노베이션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 아니에요? 왜, 무슨일이 있어요? 의심 가는 곳이라도…”
조경순이 관심 어린 눈으로 지하실 곳 곳을 살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가를 예상한 것이다.
“그랬군요. 이제 납득이 됩니다. 제가 바닥을 쿵 쿵구르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아직은 확신이 서지않습니다만, 조만간 다시 한번 수색을 해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에드는 이미 바닥 공사가다 끝나고 마무리를 한 뒤 이사를 와서 몇 가지 장비들만 위치에 두고 방치한 상태였다. 나는 계단 밑의 오일탱크 좌측 옆 바닥에서 나는 소리와 다른 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조금 다름을 느꼈다. 그러나 조경순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직 심증은 가지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계단을 오르며 조경순은 두 아이를 당분간 베리에 있는 고모 집에 있도록 하였다고 말하였다.
나는 엘리자벳이 준 일기장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 임시로 거처하는 집 뒤 정원의 한쪽 켠에 마련된 창고형 숙소로 갔다. 침대바닥 카펫에 숨겨 둔 그녀의 일기장을 꺼내 켜둔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그 책을 폈다. 컴퓨터 화면 아래에는 메일이 와 있음을 알리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에드가 내일 도착한다는 메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쎄지로에게서 온 것이었다. 보낸 시각을 보니 아침 6 시였다. 이곳은 오후 4 시. 내가 지하실에 머무는 동안 보내 온 것이었다. 먼저 메일을 열었다. 읽으며 나는 머리가 아파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박인혜와 박인서의 관계 그리고 그의 부모들과 그들이 이북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이주 상황. 그리고 박인혜의 어머니 권아라. 이북 연변에서 탄생, 가족은 여동생 권아지. 권아지? 내 할머니도 연변에서 태어났다. 너무 놀라운 정보였다. 물론 쎄지로는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는 즉시 권아지와 권아라의 관계를 확인해 줄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권아지에 대한 정보를 보내며 화급으로 요청하였다. 나는 이정보로 부터 뭔가 강렬한 직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운명과 같은 묘한 감정이었다.
내가 필연적으로 이 사건에 개입하여야 할 이유가 발생한 것이다. 숙명은 뒤에서 오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할 경우가 많지만, 운명은 앞에서 오는 것이다. 그 운명을 내가 피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받아서 내가 그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에드와의 관계 그리고 현재의 내 직업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삶의 내공들, 이 모두가 지금 이때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모티브로 삼기 시작하였다. 흥분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지는데 나무로 만든 출입문 밖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긴장하였다. 소름이 끼쳤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상황을 맞고 있었음에 후회가 되었다. 문옆에 마침 적당한 판자 조각이 보였다. 즉시 달려가 오른손에 판자를 집어들고 문 뒤에 섰다. 두 놈이라면 첫 번째 놈의 머리를 가격하고 밖으로 달려나가며 뒤에 선 놈을 바로 치고 재빨리 에드먼드의 집안으로 달려가야 했다. 조경순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삐거덕하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 곧 머리를 들이 밀었다. 나는 한번에 제압해야 하는 각오로 힘을 모았다.
“제임스! 계세요?”
고속으로 달리는 차를 급정거하는 기분이었다. 온몸에 집중했던 힘을 다시 거두어 들인다는 것 또한 기술을 요했다. 내려치려는 순간 다시 급제동을 하여야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판자는 조경순의 머리 윗쪽에서 멈추었지만 나는 휘둘렀던 그 탄력에 의하여 조경순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어머나! 아악!”
조경순이 놀라서 악을 쓰며 소리쳤다. 나는 재빨리 판자를 거두어 옆에 던지고 조경순의 뒷쪽 나무벽을 짚었다. 그 바람에 조경순의 머리가 가슴에묻혔다.
“아~. 노크라도 하시지… 너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 긴장된 상황에서 조경순으로 부터 떨어져 나왔다..
“어머~ 저도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네요. 그 나무에 맞았으면 나는 살아 있을 수가 없었겠어요. 왜 그렇게 긴장하셔요?”
나는 이마에 솟은 땀을 한 손으로 씻으며 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경순은 인기척없이
방문하여 긴박한 상황을 맞아 놀란 표정이 역력하였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뭐 특별한 소식이 있습니까?”
“저는 혹시 계시지 않나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들어와 보기만 하려는 것이었는데…이렇게 놀라게 하다니요. 먼저 사과부터 하시지요.”
조경순은 겨우 안정되었는지 놀란 눈으로 제임스를 바라보며 따지듯 요구했다. 결코, 밉지 않는 표정이었다.
“예. 미안합니다. 메일을 한국에서 받아 읽은 후 너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됐네요. 사과받으려는 건 아니에요. 이제 긴장을 푸세요. 내일 에드가 도착한답니다. 좀 전에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계시면 전해주려고 왔는데…”
“저도 메일을 받았습니다.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빨리 돌아오게 되어 다행입니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슨 걱정을 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지금 긴장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조경순은 이 사건에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녀가 쓰고 있는 소설에도 참고가 될 터였다.
그녀는 시인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쓴다고 하였다. 그녀는 또한 적극적인 사건 의뢰인이잖는가. 나는 간단히라도 알려주는 것이 앞으로의 조심을 하기 위한 이유도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지금부터 각별히 아이들 포함한 가족들 모두 안전을 위하여 조심하셔야 합니다. 특히 외부인과의 접촉은 가능한 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하도록 하십시오.아이들은 에드가 오면 충분히 의논하셔서 안전한 곳에서 당분간 기거하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자벳을 상해한 두 사람은 어떤 조직의 행동대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 뒤에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조직이 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이 추측은 각종 입수된 자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마미에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살고있는 집에 있다는건가요?”
조경순은 예리하게 물어왔다.
“제 생각은 아마도 시작은 마미에서 했지만, 핵심은 이 집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박인서라는 신문 조각에 대하여도 명확히 밝혀진 것은 러만씨가 준 정보 뿐입니다. 지금부터 그런 생각으로 정리를 해야겠고 그런 생각의 근거가 확실에 가깝다면, 조만간 이 집에도 그들의 손이 뻗칠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이집의 위치와 마미에 대한 거의 자세한 내용은 신문과 방송에 의하여 노출되었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 각별히 조심하여야 합니다.”
“아! 그럴 수가 있겠군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조심하며 지내야 할까요?”
또 조경순이 물었다. 이 대화는 이렇게 계속될 것 같아서 나는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하여 간단히 말해주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마미의 일을 잊고 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든가 할 때까지 일 겁니다.”
“제임스! 그럴 수는 없어요. 이제 와서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이 집을 어떻게 구했는데요? 절대 이 집을 당분간은 떠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조경순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이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니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계면쩍은 표정으로 조경순이 한 발짝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제임스. 저는 아직 생각의 혼란 속에있어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는데… 미안해요. 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제임스. 네?”
순진한 것 같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한 것 같고, 예사스러운 것 같지 않기도 한 조경순의 생각이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견고한 이유가 오히려 궁금하였다. 왜 이렇게 집착하는가? 단순히 소설을 쓰는 여류작가이어서?
“예. 알겠습니다. 이 일은 이제 저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그건 어떤 의미이지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물었다.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어린 마미의 어머니는 박인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쎄지로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저의 할머니와 박인혜의 어머니는 자매일 것 같다는 겁니다. 또한, 러만 잉거스터의 확인에 의하면, 1943 년경 시카고에서 캐나다로 입국한 한인 여성은 한 사람 바로 박인서라고 연필로 주소와 함께 글씨를 남긴 박인혜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더 상세한 것들은 좀 더 확인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관계를 입 밖에 내자 가슴속에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뭉클거리는 아련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어 나와 가슴이 답답하였다.
“어머. 그런 관계가 밝혀졌어요? 이런 어쩌면 좋아. 그렇다면 더 더욱 이 일을 밝혀야겠네요.”
조경순은 안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는 지금부터 엘리자벳의 일기책을 다시 검토하고 잉거스터를 만날 겁니다. 집에 계시는 동안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특히 지금 나눈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도 이 일이 완료될 때까지 발설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특히 인터넷에도 거론하지 마십시오. 내일이면 에드가 온다니 함께 상황을 다시 점검해 보기로 하지요.”
“예. 알겠어요. 그런데 제가 있는 인터넷 카페는 한국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저의 추리와 기억을 위하여 메모하듯 올리고 있는데, 그것도 문제가 되나요?”
“글쎄요. 이 사건이 아주 중대하다고 상대편이 생각한다면 계시는 카페에 들어가든가 이 메일을 해킹하여 정보를 얻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지요. 이곳에도 영어와 한국어를 잘하며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경순의 생각을 다시 확인한 이상 시시각각 은밀히 닥쳐오는 어떤 위험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조경순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릿속 다른 한 켠에서는 엘리자벳이 준 일기장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였다. 어서 봐야 할 것 같았다. 조경순이 인사를 하며 나가자 곧 일기책을 찾았다. 다행히 책은 그대로 있었다. 다시 찬찬히 보니 표지는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오래되어 빛이 허옇게 바래 있었다. 그러나 손때가 묻은 가장자리는 반들거렸다. 안의 종이 갈피는 같은 크기의 노트를 바늘로 기우고 접착제로 붙여서 여섯 등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첫 등분의 마지막 부분의 일부는 스태플로 찍어 매어져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다른 부분들은 일상적인 주변의 메모였다. 굉장히 꼼꼼하고 간단하게 메모를 하였다. 방문자의 이름, 나눈 이야기의 주안점 등 그날 그날 엘리자벳이 무엇을 하였는지 환히 들여다 보듯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벳이 준 일기책의 앞 커버 뒷면에 01011948 이라 적혀 있었다. 반대편 커버의 안쪽은12311950 이라 적혀 있어 이 책이 과거 근 3 년 동안의 필요한 나날들을 적어놓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칼끝으로 조심스럽게 스태플을 풀어 젖혔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장을 읽다가 나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제니는 종종 엘리자벳을 만나 영어도 배우고 커피도 마시고 하였었다. 그녀는 자취를 감추기 며칠 전 엘리자벳에게 ‘YEKEJ’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다. 홀스 스탁톤의 아버지인 발리듀에 스탁톤이 ‘에케’라며 아들에게 신중하게 말하였다고하였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리고 급한 듯한 잉거스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잉거스터는 흥분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발리듀에 스탁톤. 듀발리에 홀스는 1949 년 1 월에 의문사하였으며 사인은 뇌출혈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확인 독극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그 당시 검시관의 의견서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으며 그 일로 급히 만나자 하였다. 나는 다시 침대 안쪽 카펫을 들치고 그 속에 일기책을 감추고 오후 6 시에 잉거스터를 만나기 위하여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조경순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늦게 돌아 갈 것 같으며 도착 10 분 전에 다시 전화하겠다 하였다. 조경순은 그 일 이후로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든 휴대폰이든 기억하고 있는 번호 외에는 받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