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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한국인’ 이싸빅, “한국에서의 도전,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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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9년째 뛰고 있는 '파란 눈의 한국인' 이싸빅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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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크로아티아 출신의 젊은 청년이 한국 땅을 밟았다. '야센코 사비토비치'. 크로아티아 명문 '자그레브 자그레브(이하 자그레브)' 에서 뛰던 그가 유럽 빅클럽들의 제의를 마다하고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도전.
98년 당시 K리그에 뛰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별로 없었다. 사비토비치 역시 K리그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고, 단지 한국 축구에 대해 아는 것은 차범근과 홍명보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젊은 청년의 가슴 속에는 '도전' 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다른 리그 클럽들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한국행을 택하게 된다. '싸빅'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그 후 9년.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이름 역시 '이싸빅'이라고 고친 그는 K리그의 장수 용병으로서, 아니 이제는 K리그의 베테랑 한국 선수로서 오늘도 피치를 누비고 있다.
장수의 원동력은 한국어 구사능력
이싸빅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이 바로 '한국어 구사능력'이다. 햇수로 9년 째를 맞는 이싸빅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포항에서의 5년 생활로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있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제는 경기 중 자신의 모국어인 크로아티아어보다 한국어가 먼저 튀어나올 정도.
"처음 한국어를 배우게 된 것은 축구 때문이에요. 수비수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면 수비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기로 했죠. 감독님이나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과외 선생님을 구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한국말이 늘었고, 수비 조직력도 훨씬 좋아졌어요.(웃음)"
축구를 좀 더 잘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특히 함께 센터백으로 호흡을 맞췄던 안익수(현 KFA 기술위원)는 젊은 그를 세심히 보살피며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한국어를 배워나가던 그에게도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바로 '사투리'였다.
"포항에서 5년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성남으로 옮긴 후에 훈련을 나갔는데 나도 모르게 '아, 춥데이' 가 나왔어요.(웃음) 그러자 주위 친구들이 한바탕 웃더라고요. 제가 사투리 쓰니까 참 재미있었나 봐요."
언젠가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 만찬에 초청되어 유창한 한국어로 노무현 대통령을 놀라게도 했던 이싸빅. 그는 현 소속팀 수원에서도 마토와 데니스 등에게 코칭 스태프의 주문을 통역하며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통역은 당연하지요. 우리 팀이 1% 더 잘할 수 있다면 저는 뭐든지 할 것입니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한 모습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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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를 처음 접했던 98년, 너무나 놀라
이싸빅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8년. 그 전 이싸빅은 촉망받는 젊은 수비수였다.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던 그는 시미치(AC밀란) 등과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며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예선에 참가했다.
우크라이나, 이탈리아와 함께 한 조에 있었던 크로아티아는 셰브첸코 등이 버틴 우크라이나를 격파하고 이탈리아와 올림픽 출전 티켓을 다투게 되었다. 팔레르모에서 열린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크로아티아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델 베키오에게 두 골을 허용하며 패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비록 올림픽은 나서지 못했지만 이싸빅은 유럽 각국 클럽들이 주시하는 젊은 수비수가 되었고, 실제로 유럽 빅클럽에 이적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싸빅은 여러 가지 사정상 이적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97년 말 포항에게서 제의를 받았다.
포항으로부터 제의를 받을 당시 이싸빅의 머리 속에 있는 한국 축구는 '차범근'과 '홍명보' 뿐이었다. 그만큼 한국 축구는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고, 유럽 사람들 역시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국축구를 접한 이싸빅은 그 역동성과 빠른 템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처음에 왔을 때 정말 놀랐어요. 한국 축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죠. 하지만 90분 내내 쉬는 것도 없고 선수들이 다 뛰어 다니고 그 템포가 너무나 빨랐어요. 선수들도 힘이 좋고 기술과 스피드가 있고 전술 이해도도 좋았어요. 언젠가 크로아티아 대표팀에 뽑혀 고국에 갔을 때 기자들이 한국 축구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 때 한국 축구에 대해서 제가 느낀 것을 말하니까 다 놀라더라고요. 정말 한국에 온 것에 대해 후회가 없어요."
한국 축구의 역동성에 놀랐던 이싸빅. 하지만 이내 K리그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역동적인 도전 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사비토비치가 한국행을 선택하게 된 이유 역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라는 도시에는 좋은 팀들이 많아요. 디나모 자그레브, 제가 뛰던 자그레브, 하이둑 스플리트 등 크로아티아의 명문 클럽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죠. 제가 자그레브에서 뛰면서 UEFA컵도 나갔었고,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도 하니까 다른 클럽에서 러브콜이 들어왔어요. 그 중에 포항도 있었죠.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포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도전이었죠."
이싸빅이 도전 삼아 선택했던 포항 스틸러스. 당시 포항은 홍명보의 이적(J리그 벨마레 히라스카)으로 인해 수비진의 공백을 메워야만 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박성화 포항 감독은 이싸빅을 소개 받았고, 경기를 지켜본 후 25세의 젊은 수비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계약은 98년 4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라는 위업으로 연결되었다.
"포항이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4강에 오르자 크로아티아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2년 전 PSV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을 때 한국 언론과 비슷했죠. 거기에다가 4강에 오른 팀인 이란 피루지 클럽의 감독이 크로아티아 감독인데, 자그레브에서 함께 했던 감독이었어요. 비록 피루지가 4강에서 대련에게 패해 맞붙지는 않았지만 호텔에서 만나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죠.”
“결승은 홍콩에서 했었는데 대련이 중국팀인지라 관중들이 일방적으로 대련만 응원했어요. 하지만 승부차기 접전 끝에 대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죠.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에요."
98년 4월 아시아 챔피언이 된 포항 스틸러스. 그 기세를 몰아 K리그 정상까지 엿보던 포항과 이싸빅이었으나 울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눈물을 삼켰어야 했다. 울산과의 플레이오프는 김병지의 극적인 헤딩 동점골로 K리그 역사에 남은 경기. 이싸빅 역시 너무나 아쉬운 경기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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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이싸빅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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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와의 만남, 그리고 Always win
포항에서 5년을 뛰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이싸빅. 많은 선수들과 만났고 도움을 받았지만 2002년 홍명보와 같이 뛰던 그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 J리그에서 전설로 남았던 홍명보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 포항으로 복귀해 19경기를 뛰었었다.
"진짜 멋있어요. 명보 형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에요.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선수죠. 하지만 스타 의식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훈련할 때도 제일 먼저 오고 몸이 안 좋아도 120%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명보 형이 있으니까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기고요."
비록 1년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홍명보와의 만남을 통해 이싸빅의 목표는 한 단계 올라갔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명보 형의 카리스마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집중하는 모습도...저도 명보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목표가 한 단계 올라갔어요.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Always Win', 항상 이기고 집중하자는 것이지요.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수준까지 오게 된 것 중 하나는 명보 형 때문이에요."
K리그 우승을 안겨다 준 성남
포항에서 5년간의 생활을 끝낸 이싸빅은 2003년 성남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K리그 우승의 꿈도 이루게 되었다. 당시 차경복 감독 아래에서 그는 33경기를 뛰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우선 감사해요. 포항, 성남, 수원. 제가 몸담고 있는 클럽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축구만 집중하게 해주잖아요. 이 클럽들 덕분에 저희 부모님, 장인 장모님, 형과 형수가 모두 한국에서 윤택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아무 걱정 없이 축구를 하니까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잖아요.”
“포항에서 아시아대회를 우승했고, 성남에서는 K리그 우승, 그리고 수원 같은 빅클럽에도 오고.. 정말 감사해요. 차경복 감독님 밑에서 많이 배웠어요. K리그에서 우승해서 좋았고,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모든 것이 잘 되었어요."
성남에 있을 때 이싸빅은 아주 잠시 스트라이커로 뛴 적이 있었다. 2004년 5월 11일 성남 제1 종합 운동장에서 벌어졌던 인도네시아의 페르시크케디리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예선전. 당시 성남은 요코하마 F마리노스에 0-1로 패해 조 2위로 내려앉았고, 골득실을 위해 다득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차경복 감독은 이싸빅에게 스트라이커로 뛰게 했고, 그는 4골-1도움을 기록하며 15-0 대승에 일조했다. 요코하마를 제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한 것은 물론이다.
"그 때는 정말 좋았었죠. 하지만 이 해 AFC 챔피언스리그는 아쉬웠어요. 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와 만났는데 원정에서 이기고도 홈에서 대패해서 졌잖아요. 특히 저는 홈경기에 뛰지 못했었는데 아내랑 보면서 너무 답답했어요. 큰 아쉬움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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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잘 일어나야 한다
2003년과 2004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이싸빅은 2005년 무릎부상으로 인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이 때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키워드가 바로 '힘들 때 잘 일어나야 한다' 는 것.
"사람이 좋을 때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어요. 힘들 때 잘 일어나는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이죠. 병지 형이 포항에 왔을 때 그를 보면서 배운 것이기도 했고요.”
“성남에서 뛰었던 2005년에 무릎 부상 중이었지만 열심히 했어요. 마침 수원에서 불러줬고, 재활에 매진할 수 있었죠."
하지만 30대를 넘긴 나이에 무릎 부상까지 당한 그가 빅클럽인 수원에서 재기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실제로 이싸빅은 2005년 수원에서 단 9경기만을 뛰었고, 2006년 초반에도 마토, 이정수 등에 밀려 2군에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축구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부진을 털어내기 시작했고, 하우젠컵을 통해 다시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목표는 K리그와 FA컵 우승
"제가 처음 수원에 왔을 때 차범근 감독님이 너무 좋아했어요. 사실 선수가 팀을 옮기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분위기도 만들어주셨고요. 저 역시 레전드인 차 감독님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았어요. 팀의 전술 변화도 제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포백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킨 수원. 마토와 이싸빅이 함께 센터백으로 나서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다.
"포백을 쓰면 더 공격적이고 토털사커를 할 수도 있어요. (김)남일이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커버도 해주고, 밸런스가 잘 잡혀져 있어요. 또한 스리백도 혼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기대하셔도 좋을 거에요."
팀 밸런스가 점점 좋아지며 현재 FA컵 4강과 후기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수원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 그러나 이싸빅은 목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선수들 모두가 말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그냥 생각만 하고, 그것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말을 들으니 이싸빅이 목표로 삼는 모델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던 이싸빅은 두 명의 선수를 얘기했다.
"칸나바로와 리오 퍼디낸드에요. 칸나바로는 키는 작지만 위치 선정과 게임 리딩이 좋아요. 언제 몰아치고, 언제 템포를 죽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죠. 공격 전개 시에도 방향을 결정하는 데 1초도 안 걸려요. 퍼디낸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비수죠. 키 크고 공격 가담 능력도 좋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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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은퇴를 생각한 적은 없어
이싸빅은 73년생이다. 만으로 33세, 한국 나이로는 34세인 그는 이미 노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많은 K리그 선수들이 30대 중반을 넘기기 힘든 현실을 봤을 때 이싸빅 역시 은퇴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프로 선수는 축구만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 내가 세운 목표치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내 몸 역시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은퇴는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선수 생활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영원히 피치 위에서 뛴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할 것입니다. 제 눈에는 축구밖에 보이지 않아요."
영원히 피치 위에서 축구를 할 것이라는 ‘파란 눈의 한국인' 이싸빅. 분명 그를 봐왔던 기간보다 앞으로 볼 기간이 짧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가 9년간 K리그를 누비며 남긴 거대한 족적은 많은 K리그 팬들, 특히 포항과 성남, 그리고 수원 팬들의 마음 속에는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 |
첫댓글 이싸빅이 아니라 마토를 계약 안한다는거였죠..이싸빅 얘기도 있었지만 오보였고 마토는 사실이였지만 차범근감독과 수원구단주가 설득해서 잡았죠!! 김진규는 영입을 시도하지도 않았다고 하고요 스리백쓰면 곽희주-마토-이정수or이싸빅 포백은 곽희주or박주성-마토-이싸빅or이정수-송종국 포백쓸때는 센터백 호흡을 중요시해서 말이 더 잘통하는 마토-이싸빅라인을 더많이쓰는데 이정수랑 경쟁잘했으면~~
오래전에 본적이 있는 기사인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될줄이야 ^^ 다시 봐도 좋은 기사네요 이싸빅씨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선수생활 하시고 모범적인 선수네요 앞으로도 몸관리 잘해서 오랬동안 그라운드에서 볼수 있었으면 합니다 좋은일만 함께 하길~
이싸빅 근데 좀 주전에서 밀리던데 ㅠㅠ
이싸빅 왠지 정말 좋음 ㅎㅎ
싸빅.....FA컵 결승때 투혼은 최고였어........ㅜㅜ
진짜 권투 선수 같앴는데.ㅋㅋ
최고
언젠가 한번 다시 포항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싶어요 ..
싸빅 ㅠㅠ 정말 좋아요 ♥
싸빅~~~~~~~~~~~~~~~~~~~~!
대구팬이지만 싸빅..멋져요~^^
싸빅 호감형 ㅋㅋㅋ
싸빅~~~~~~!!!!!!!!!!!!!!!!!!!!!!!
싸빅,산토스 왜 떠난거야 ㅠ.ㅠ;
아 정말 완소 싸빅. 마토,싸빅 둘 다 떠나지말고 수원에서 계속 선수생활 해줘요~
싸빅~~~마지막은 포항에서 은퇴해주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