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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12월 24일
내가 닷새 전 경수 씨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는데 경수씨 에게 서도 크리스마스카드가 왔다.
성탄과 희망찬 새해를 맞으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벌써 펜팔로 편지를 주고받은 지가 육 개월이 넘어서 한번 보고 싶다.
사진이 오갔지만 만나고 싶다.
지난주 편지에는 다음번 휴가에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 보고 싶다.
이제 내 나이 스물넷 이제 지겨운 식모살이를 끝내고 가정을 가지고 싶다.
경수씨와 새해에는 그러나 아버지가 연애결혼을 승낙 하실까?
12월29일
사모님이 여고동창회를 간다고 나가면서 아저씨 오시면 조금 늦는다고 해라.
하면서 나갔다.
그리고 지호와 지혜는 방학이라 외가에 가서 아무도 없는데 주인아저씨가 퇴근을 해 와서 아줌마가 동창 송년회가 가서 늦으신다고 하였더니 그래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옷을 챙겨서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놓고 나오려는데.
주인남자가 나와서 방문을 잠그더니 나를 덮쳐왔다.
안 된다고 몸부림을 쳤지만 확 풍겨오는 술 냄새와 완강한 힘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겁이 나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팬티가 찢겨져 나가고 몇 번 소리를 쳤지만 이미 늦어서 기운이 쭉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아픔도 아랑곳없이 짐승 같은 짓을 하고는 그 악마는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픔보다 흐르는 눈물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찢어진 팬티를 주어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에 남겨진 흔적을 지워야했다.
‘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몸을 해가지고 경수씨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난 방으로 들어와 한참을 울어야 했다.
벨 소리가 들리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악마가 대문을 열어주는 모양이었다.
“명자는 어디가고 당신이 나와요.”
“응 어디 아픈 모양이야.”
그 악마가 능청스럽게 둘려댔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 하면서 일기를 쓴다.
경수씨가 날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이 몸을 해가지고 그이를 사랑할 수 있을 까?
12월30일
오늘은 일요일이라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조금 늦게 일어났다.
거울에 얼굴을 보니 퉁퉁 부어있다.
세수를 하고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어떻게 주인아줌마를 보나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아침밥을 차리느냐 왔다가다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몇 번을 오가는데 주인아줌마가
“그래 아프다더니 좀 낳았냐?”
간신히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니 쑥스러움도 조금 가시고 주인아줌마에게 미안한 생각도 조금은 가셨다.
그나저나 어떤 핑계를 대고 그만 둔담 그리고 아줌마에게 꿔준 돈은 어떻게 받아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1월 1일
주인아줌마가 그 악마와 같이 친정에 간다고 하면서 문단속 잘 하라고 하면서 떠났다.
모처럼 혼자 남으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아 어떻게 하던 고만 둔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1월3일
저녁 그 악마만 돌아왔다.
걱정이 이다.
주인아줌마는 일요일 저녁에나 온다고 했다.
지호와 지혜도 일요일 저녁에 같이 온다고 하면서 그 악마는 출근을 해야 해서 돌아왔다고 했다.
능글맞은 눈빛을 피하면서 간신히 저녁을 차려다 주었는데 저녁상을 치우러 들어가 나에게 또 그 짓을 하려고 덤볐다.
발버둥을 치면서 반항을 하는 나에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랑해 줄게.” 비열한 소리를 지껄이며 욕심을 채웠다.
죽고 싶은 심정이고 악마를 죽이고 싶다.
이젠 이곳이 지옥이다.
지옥이다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1월 12일
아줌마는 저녁 약속이 있다면서 나갈 준비를 하는 주인아줌마에게 그만 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어디 좋은 자리라도 있어?”
“아니요.”
“그럼 왜 그만두려고 해 갑자기 그만 둔다고 하면 어떻게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죄송하지만 이번 설 때 내려가서 시집이나 가려고요.”
“그래도 좀 더 있다가 가지 그래.”
“아버지가 빨리 시집이나 가래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아줌마가 나갔다
그래도 오늘은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무도 없을 때는 그 악마가 겁이 난다.
1월19일
그만두기로 한 날도 열흘 남았구나.
아줌마가 일찍 돌아와 오후에 지호 지혜 성화에 지호할머니 댁으로 떠나면서 집보고 있다가 모래 아침에 버스를 타고 와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우라고 했다.
아 이제부터 적어도 내일 모래 아침까지는 자유다!
집안 청소를 하고 저녁을 대충 남을 것으로 먹어치우고 TV를 틀었다
연속극 세나의 집을 보고 이어서 쇼, 쇼, 쇼를 보고 이어서 정선달을 보다가 맹 사또를 보다가 끝날 무렵 어머니를 보고 데릴사위 까지 보고 나서 주말의 명화 추억을 보고 있는데 벨이 울려서 나가 보니 그 악마가 들어 왔다.
흠칫 놀라는 나에게 “자리 봐 놔라.” 해서 목욕을 들어간 사이에 요를 깔고 이불을 내려서 펴는데 악마가 벌거벗은 채로 욕실을 나와서 나에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들었다.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시작 된 것이다.
이젠 저항을 해 봐야 힘만 빠지고 될 때로 되라고 포기한 상태로 누어서 당해야만 했다.
그 악마의 숨소리와 거친 몸놀림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문이 덜컹 열리고.
“뭐 하는 짓이야!”
순간 그 악마는 잽싸게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야 이년아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런 화냥년 같은 이라고.”
하면서 내 머리끄덩이를 움켜잡고 흔들어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야 이년아 당장 나가 이년아”
나는 머리끄덩이를 잡힌 체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인간 어디 로 숨어 나와 이 인간아!”
아줌마는 욕실 문을 두드리며 욕을 퍼 붓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악마의 소굴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서 가방을 쌌다.
그리고 대문을 나와서 한참을 걸으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겨서 정리를 하면서 보니 멀리 여인숙의 불빛이 보여서 누가 볼세라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숙 아줌마는 혼자 들어온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힐금거리며 숙박계를 내밀었다.
숙박계를 적어주고 누우니 한숨부터 나왔다. 이젠 눈물도 말라붙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걱정은 아줌마에게 빌려준 이십오만 원을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가 문제다.
그렇게 뒤척이는데, 옆방에서 조차 그 소리가 들렸다.
아 차라리 귀를 막고 싶다.
1월 20일
물골안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한 몸 쉴 곳은 그래도 할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는 물골안 꽃재다.
집에 돌아오니 좋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께 절을 올리고 집을 나서서 아랫말 할아버지가 살던 집 뒤 산자락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절을 올렸다.
생각은 할아버지 묘에 엎드려 실켠 울어버리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밭 가장자리 길을 따라 걸어서 밭머리에 있는 엄마의 산소에 도착해 절을 올렸지만 역시 한숨만 나오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원망스런 생각이 미어 올라왔다.
‘왜 이 어린 핏덩이를 던져 놓고 혼자 가서…….’
그제야 울컥 하고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그리움에 대한 눈물보다 원망에 대한 눈물인가 보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노란 잔디가 덥힌 엄마의 산소를 바라보다 눈물이 말라버린 다음 내려와 집으로 왔다.
할머니 곁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뭘 그렇게 쓰냐?”
“일기요.”
하면서 웃어 넘겼다.
그래도 할머니가 있어서 좋다.
1월 23일
설날이다.
할아버지 얼굴도 본적 없지만 아버지가 상호가 할아버지 지방을 붙이고 상호 만호 덕호가 죽 늘어서서 절을 올리고 명옥이와 명화도 나도 절을 올렸다.
그리고 상호가 亡室孺人 宜寧 南氏 神位라고 쓴 지방을 붙이고 아버지를 따라서 차례를 지냈다.
할머니 아버지 계모 영란에게 세배를 하였다.
설이라고 하지만 그 옛날처럼 색동옷으로 호사를 하고 이집 저집으로 몰려다니며 특히 할아버지 양묵이 살아 계실 때 제일 먼저 달려갔던 할아버지도 없다.
지루하게 하루 종일 지내는데 동생들은 세배를 다니는지 나가고 없다.
1월25일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청량리 고모를 찾았다.
고모내 집을 정초부터 방문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밖에서 고모가 나오기를 기다려서 한참만에야 만났다.
고모가 놀라서 웬 일이냐고 물었다.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차마 고모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고모가 우리 수동이네 집에 가자고 했다.
하기야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수동이네 집에서 보내는 것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동이내서 저녁을 먹고 고모를 따라 나서서 이제 가볼게요 하고 인사를 하고 났지만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조금 걷다가 다시 여인숙에 들었다.
1월 26일
어젯밤 밤새 고민을 해서 결정한 대로 직업소개소에 들려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봤더니 지금은 없고 내일은 일요일이니 모래 다시 오라고 했다.
죽기보다 싫지만 돈을 받기 위하여 먼저 일하던 집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다.
아줌마가 나오더니 도끼눈을 해가지고.
“야 이년아 여기가 어디라고 와 이런 나뿐 년 같으니라고, 너 이년 온 김에 간통죄로 집어넣어야 갰다.”
“아주머니 잘못 했어요. 용서해 주시고 제 돈이나 돌려주세요.”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네 너 같은 년은 콩밥을 먹어야 해, 어딜 식모 주제에 남의 서방을 넘봐.”
“제가 원해서 그런 게 아녜요. 전 억울해요.”
“이년아 억울하단 년이 세 번이나 그 짓을 해. 당하는 것도 한번이지 세 번 이나 했으면 네년이 내 서방하고 간통을 한 것이지 아냐, 야 이년아 정신 나간소리 작작해 길가는 사람보고 물어봐 어떻게 강간을 세 번이나 당하느냐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아녜요 정말 억울해요. 믿어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잖아요.”
“이년아 빌께 따로 있지 우리 집을 풍비박산을 내 놓고 용서해 달래 이런 개 같은 년 같으니라고, 야 이년아 다신 내 집 앞에 얼씬도 하지 마 이년아.”
“저도 제 돈만 주시면 오라고 해도 오지 않겠어요.”
“오호라 돈 이년이 돈을 달라고 이년아 내가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받아야겠다. 너 이년 얼마 줄래 너 돈 많은 년이니까 돈 으로 때우려고.”
“저한테 꾼 돈 주시면 다신 안 올게요.”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네년이 기어이 콩밥을 먹고 싶은 모양인데 네년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면서 전화기 다이얼을 돌려서 그만 빠져 나오고 말았다.
여인숙에 들어와서 밤새 생각해 봐도 억울해서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방을 살며시 나가서 골목 어귀에 있는 약국을 찾아서 수면제를 달라고 하니 이십 알 이상은 팔수 없다고 해서 스무 알을 사가지고 와서 세알을 먹었다.
1월27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누구에겐가 위로 받고 싶으나 위로 받을 곳이…….
그래 경수씨를 찾아가자 오늘 일요일이라 경수씨 면회를 가자 마장동에서 화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세 시간을 달려서 화천에 도착을 했다.
아침도 못 먹고 점심때가 훨씬 지났는데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주소를 들고 물어서 부대가 있는 곳 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는 시골길을 달려서 부대 정문 앞에 내렸다.
위병소에서 면회를 신청하고 유행가 가사처럼 팔짱을 끼고 돌부리 차며 조금 기다리자 환하게 웃는 모습의 경수씨가 팔에 완장을 두르고 나왔다.
“그렇게 시간이 없다던 명자씨가 웬일 이예요.”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웃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직을 바꿀 걸 그랬나 봐요.”
하면서 면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서로 편지로만 교제를 하다가 처음 대면이라 조금은 쑥스러웠다.
“정말 반가워요. 명자씨 그런데 이럴게 아니라 내가 당직이라서 어떻게 할 수 없고, 당직이 끝나고 저녁에 만나요. 읍내 터미널에 화천 다방에서 7시에 만나요.”
경수씨의 목소리는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다시 나와서 버스를 타고 화천읍내로 나와서 중국집이 보여서 자장면을 먹었다.
근 하루 만에 넘기는 음식이지만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뭔 맛인지도 모르고 배를 채우고 읍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걷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화천다방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앉아서 경수씨를 기다렸다.
일곱 시가 훨씬 지나서 경수씨가 나왔다.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걷다가 차를 마시고 그와의 데이트는 사간 가는 줄 모르고 10시가 넘어가고 그는 뭐에 쫓기듯 시계를 자주 봤다.
그리고 경수씨는 내가 의도 했던 대로 여인숙 앞에서 섰다.
고갯짓으로 여인숙을 가리키면서.
“이젠 쉬어야 지요.”
나는 머뭇머뭇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이제 부터가 중요하다는 계산을 넣고.
“경수씨 즐거웠어요.”
내 말에 경수씨는 머뭇머뭇 하더니 따라 들어왔다.
“이젠 가 보셔야. 읍.”
경수씨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그의 억센 팔이 나를 감싸고 나는 그의 품에 안겨서 조금 몸을 비틀다 말고 그대로 숨을 멈추고, 그렇게 쏟아져 내리는 별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숨소리는 높아지고 굳어 있던 나의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는 나의 성을 하나, 하나 허물어 들어왔다.
중간 중간 몸을 빼기도 했지만 내가 의도한 대로 그는 그렇게 격렬하게 나를 점령해 버렸다.
내 계산은 어느 정도의 저항을 하려고 했으나 의도한 대로 하지 못하고 그의 옆에 누워있는걸 보니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경수씨.”
“사랑해 명자.”
그가 꼭 끌어안고 입술을 덮어오는 바람에 나는 말할 기회를 잃었다.
“사랑해 명자.”
“저도요.”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는데 내가 말을 걸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그가 시계를 보더니
“벌써 열한 시가 넘었네, 잘 자요. 명자씨. 나 당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왔거든 얼른 들어가 봐야해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 그 다방에서 만나요.”
하면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오려는 나를 그냥 누워 있어 하면서 급히 돌아갔다.
그래 내일을 어떤 식이라도 결혼 이야기를 해야지. 오늘 밤은 모든 걸 잊고 잠들 것 같다.
1월 28일
아침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홉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았다.
아침은 생각도 없었지만 문을 연 식당이 없어서 구멍가게에서 빵 하나에 우유 한 병을 마시고 터미널 앞에 있는 화천 다방으로 가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너무 쉽게 몸을 허락한 것 때문에 숫처녀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챘나. 더 빼다가 허락 할 걸 그랬나.’
그러나 어제 경수씨를 갈망하던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쉽게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부대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에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만나서 결혼이야기도 하고 서울로 올라갈 생각에 서둘러 버스를 타고 부대 앞에 내려서 위병소에 면회를 신청하고 조금 기다리니 위병소 병사가 다가와.
“김 중사님 퇴근하고 없습니다.”
“ 아 네.”
아 길이 어긋났구나.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읍내로 돌아와 화천 다방에 갔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뭘 드시겠어요.”
“아 네 커피요. 그런데 여기 두 시간 안에 군인 한 안 왔다 갔나요?”
“어 디 군인이 하나 둘 이예요.”
“아 네.”
레지가 껌을 짝짝 싶으며 답하는 소리에 앉아서 타는 속을 태우며 앉아서 그렇게 두 시간을 더 기다려 이젠 서울로 올라가 보았자 직업소개소에도 갈 시간이 지났으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경수씨를 만나서 꼭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마냥 그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그 시간이 지나서 경수씨가 나타났다.
화가 났지만 볼멘소리로
“경수씨. 어떻게 된 거예요?”
“미안해 명자씨. 내 가면서 이야기 할게. 우선 저녁부터 먹자고.”
둘이는 일어나 근처 식당으로 발을 옮기면서.
“오늘 퇴근해서 바로 오려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숙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오셨더라고. 그래서 어머니 하고 이것저것 하다가보니.”
“그래요. 그럼 어머니 한 번 뵈면 안돼요.”
“아니 안 돼 그렇지 않아도 선을 보라며 아가씨 사진을 가지고 오셨더라고. 그래서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거든.”
“그래요 그럼 저도 힘들겠네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시간을 보아서 이야기 해야지.”
그렇게 경수씨와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고 다시 어두워진 길을 걸어서 여인숙에 들었다.
“사랑해 명자.”
경수씨의 뜨거운 입맞춤에 이은 사랑의 공세가 나를 녹아들게 했다.
“사랑해요 경수씨.”
그리고 나란히 누어서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실은 여기서 경수씨와 살면 안 될까?”
경수씨가 흠칫 놀라면서.
“안 돼 결혼식도 안올리고 어떻게 동거에 들어가.”
믿음이 가는 말에 내가 한 말이 부끄러웠지만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경수씨가 더욱 미더웠다.
그래, 다시 서울로 올라가 취직도 하고 돈도 받아내야지.
그렇게 다시 경수씨의 포옹에 내려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명자씨 내일 갔다가 언제 또 올 거야?”
“시간이 나는 대로 자주 내려올게요.”
아홉시가 조금 넘어서 경수씨는 집으로 간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골목 어귀를 돌아서며 다시 나를 포옹해 주었다.
나는 아쉬움에 손을 흔들다가 문득 어디에 살고 있고 내일 아침에 얼굴이라도 다시보고 싶은 마음에 숨어서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고 살금살금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 20분을 숨어서 따라가면서 스릴을 느꼈다.
몇 번 들킬 뻔 했지만 재미있었다.
그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움에 달려가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벌써 그는 대문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밤은 행복을 꿈꾸며 잠들 것 같다.
1월29일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을 하고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해 가지고 여인숙을 나섰다.
이 시간쯤이면 경수씨가 출근을 위하여 집을 나설 시간이 되어가서 서둘러 어제 경수씨가 들어간 집이 보이는 골목길 입구에서 누가 볼세라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기다리니 경수씨가 나오고 있었고, 돌 지난 여자아이를 안은 여인이 나와서 경수씨에게 손을 흔들고 여자아이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은 당장 달려가 누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선득 나설 수가 없었다.
몸을 골목 안으로 숨기고 나니 현기증이 와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앉아있으면서 보니 어느새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며 생각을 해봤다 조카일까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머리를 몇 번 흔들다 보니 그래 확인해 보자 확인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에 손거울을 꺼내어 얼굴을 보니 얼굴은 아이라인을 그린 검은 물이 흘러 나와 엉망 이었다.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내고 쪼그리고 앉아서 화장을 고치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뻔뻔하게도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후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저 할머니 여기 김경수씨라 군인아저씨 사시죠?”
“아 마나 아빠 찾으시나 보네, 미나 엄마, 미나 엄마, 손님 오셨어.”
나는 미나 엄마가 나오는 동안 얼굴빛을 감추려 엄청 노력을 해야 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저 고향에 살던 먼촌 동생 되는 사람인데요.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오빠가 살고 있다는 오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들렸어요.”
“아 그래요 미나 아빠는 출근하고 없는 데요. 정 급한 일이면 면회라도.”
“아 아네요.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갈까하고 왔어요.”
“아 그럴게 아니라 들어오세요. 차 한 잔 하시고 퇴근 후에 보고 가시던지.”
“그게 아니고 차 시간이 좀 남아서 들렸어요. 바로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안녕이 계세요.”
“그럼 누가 오셨다 갔다고 할까요?”
“저 명자라는 동생이 왔다 갔다고 하세요.”
“그럼 안녕이 가세요.”
미나 엄마는 굳이 잡고 싶은 눈치가 아닌 인사치례였고 나 또한 이자를 얼른 벗어나고 푼 생각이 간절한 터라 황급히 인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났다.
한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찬 강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 더러운 세상 죽어버리자. 더럽게 복 없는 년 죽어 버리자 죽자, 죽자를 되뇌며 마냥 걷다가 강을 바라보다 얼어붙은 강가를 미친 듯이 걸었다.
저 강에 뛰어들자 저 강에 그러나 몹시 춥고 떨려서 다시 뒤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래 다시 시내로 접어들어 중국집 구석에서 우동 한 그릇을 비우고 손거울을 꺼내 눈물로 얼룩진 화장을 고쳤다.
아주 정성스럽게 고쳤다.
그리고 약국에 들러서
“저 수면제 좀 주세요.”
“얼마나 드릴 까요?”
“삼십 알 주세요.”
오십 알 이상은 팔지 않는 것을 알아서 삼십 알을 받아서 핸드백에 넣었다.
그리도 다음 약국에서 다시 삼십 알을 샀다.
그리고 또 다음 약국에서 도 삼십 알 그리고 근처 문방구에서 편지지 백 원어치와 볼펜 한 자루를 샀다.
이젠 일기도 다 썼으니 유서를 써야겠다.
일기장에는 몇 군데 눈물 자욱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불효한 소녀를 용서하세요.
아버지 소녀 이제 떠날까 하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 주시고 아껴 주셨지만 소녀 세상이 원망스러워 이제 떠나려 합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늘 저 시집가는 거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세상이 너무 험하고 무섭습니다.
어머니 길러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리고 상호 만호 덕호 명옥이 명화 잘 있어.
아버님 제 통장에 남아 있는 이십오만 원은 할머니 오만 원 고모 오만 원 동생들 각각 만원씩 주고요.
나머지는 아버지가 쓰세요.
그리고 제가 있던 집에 아줌마에게 빌려준 20만원도 받아서 쓰세요.
그럼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고모 만수무강하세요.
1974년 1월 29일 명자 올림
그리고 여인숙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제 주머니에 있는 삼만 원은 여인숙 비로 생각하고 받으세요.
그리고 저의 집에 연락을 부탁해요.
하고 꽃재 주소까지 써 놓았다.
유서를 써 놓고 수면제를 모두 꺼내 놓고, 세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다가 결심을 한 듯 입에 넣고 물을 삼켜서 넘겼다.
그리고 세 알 네 알 다섯 알 정신없이 입에 넣고 삼켰다.
졸려서 더 이상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명자는 영원히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화천서 서울로 오는 강가 산기슭에 1m 깊이의 땅속에 묻히고 위에는 청솔가지가 덮였다.
그 위에는 재덕과 병묵이 바위만한 돌덩이들을 굴러다 쌓았다.
병묵은 명자의 무덤위에 올려놓은 돌덩이 같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산을 내려오면서.
“어 흐 흐 흐.”
하며 울었다.
재덕이 담배를 꺼내 병묵의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여주며.
“이보게 내 자식이 안 되려고 그런 게 아닌가, 다 세월이 지나면 잊어지지 않겠나, 자 가세.”
수동이에게 일기장을 보여주고 난 재순은 일기장과 유서를 가지고 경찰서로 변호사 사무실로 여기저기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처벌이 힘들다는 이야기와 돈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주일을 가슴앓이를 하다가 그렇게 조용히 명자는 순례 병묵 재순 가슴에 응어리를 남기고 잊혀갔다.
첫댓글 소설 속에 소설 이네요.
명자의 기구한 운명에 눈물이 나네요.
뉘라서 그 원한을 잠들게 할 수 있을 런지요.
그녀는 그렇게 사라저 갔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약한 그녀를 지려 밟고 뭉겐 그들은 누구입니까?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