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저택.
보기만해도 아찔하니 현기증이 느껴질만큼 넓디 넓은 정원을 들어서는 한 여자.
가느다랗고 곱슬한 갈색머리칼이 새하얀 목을 감싸흘러내렸고,
쉬폰소재의 푸른빛 샤넬원피스와 금빛의 페레가모 펌프스구두는 그녀의 갸냘픈 몸과 아주 잘 어우려졌다.
게다가 작고 새하얀 얼굴과 새초롬한 눈이 고양이를 닮은 인상의 그녀...가
사정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본건가.
해은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어머니가 늘 강조했듯
사뿐사뿐히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까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두 남자의 모습.
그 중 화려한 외모의 미남자가 그녀를 향해 환하게 미소지으며 두 팔을 벌려온다.
"웰컴, 반해은. 우리 꽤 오랜만이지?"
"오랜만 좋아하시네. 어제 클럽에서 본 그 한심한 인간은 누구였단거야? 그리고 여긴 우리집이야!"
"아아, 오늘따라 더 까칠해주시네"
"알았으면 손 내려, 이재인. 반기는 건 네가 아니라 네 옆의 인간이 해야할 거 같은데"
해은이 고갯짓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유한을 가리켰다.
반해은(18)
이 으리으리한 저택의 무남독녀 금지옥엽 외동딸이자 사교계의 여왕벌인 현대판 오리지날 공주님이자,
명문사립고에 표면상으로는 모범생으로 재학중이며,
삐까뻔쩍한 백그라운드와 타고난 외모를 잘 이용해먹을 줄 아는 영리하고도 영악한 아가씨.
그리고, 그녀의 탑클래스 친구들 이재인(18), 신유한(18)
조각같은 외모와 다소 불량스러운 옷차림, 여자만 보면 술술 잘도 흘러나오는 작업멘트가
천성적으로 바람둥이인 재인.
그와 달리 윤곽이 뚜렷한 얼굴과 과묵함이 남성다움을 물씬 풍기는 유한.
사교계의 여왕과, 최고의 킹카 둘.
유한이 몇 달 전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전만해도 사교계 최고의 관심사는
이들의 관계는 무엇인가, 였을 정도로 위화감까지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그들이었다.
하여간 지금 해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자면..
저 인간이 대체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한서오빠가 너 온거 알아?"
"잘 지냈어?"
"제발 말 할때는 표정변화를 주길바래. 대화하기 무섭거든."
그제서야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다가와서 해은을 끌어안았다.
품에 다 들어오고도 남는게 못본 새에 많이 마른 듯했다.
유달리 희고 가느다란 체구가 안타까워서 유한은 해은을 쉽게 품에서 떼어내질 못했다.
"감동적인데? 로얄 스위트로 하나 잡아줘?"
"닥쳐. 왜 주말에 네 얼굴을 봐야하는지 모르겠어. 오늘 재수 더럽게 없을 것 같아."
멍하니 있던 해은이 톡하니 쏘아대자 재인이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공주님이 빠지시라면야. 뜨거운 밤을 불사르길바래."
"하려면 너나 해. 그리고 환영은 이걸로 됐어. 데리고 가."
해은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세한 얘기는 특별히 날 잡아서 터뜨려주셔야지. 지금 듣기엔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저녁에 한서오빠네서 봐. 오빤 나와 달리 그리 관대하지 않아서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유한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데리고 가야겠네. 몇 시간 후의 결전을 위해 한 잔 하겠어, 친구?"
"그러지. 맞아죽을 수도 있겠는데."
"오빠가 만약 그런다고 해도 넌 할 말 없는거 알고있을거라 생각해.
어쨌든 돌아온 걸 환영해. 나도 널 위해 한잔 들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선약이 있어서. 잘 가."
해은이 고개를 까닥이며 미소짓고는 그들을 뒤로 하고 유유히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유한의 모습에 재인이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대로인거 같은데."
그에 유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그런 의미 없는 방황을 뭘 하며 보냈는지 궁금하지만.."
가엾은 나의 친구. 너는 절대 변할 수 없을꺼야. 너의 그녀가 그대로인 이상.
재인은 자조적으로 피식 웃고는 다소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환영식을 먼저 치러줘야겠지, 기대해. 공주님의 환영보단 멋지게 해줄테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해은은 폰을 꺼내들었다.
바쁘게 문자를 치는 듯 하더니 금세 고개를 흔들고는 전화번호를 찍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고 그녀가 폰을 던져버리기 직전에야 간신히 뭔가 들리는가 싶더니,
"지금 성훈오빠랑 있어, 나중에 걸어주길바라." 따위의 말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뚝 끊어버리는 정우다.
해은이 손톱을 깨물며 문에 기대어 스르륵 주저앉았다.
하아, 자신에게는 왜 이런 순간에 탁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란것이 이런 인간뿐이란 말인가.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며 일어나려는 찰나,
"어디 갔다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해은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주저앉았다.
고개를 드니 역시나다.
한서가 붉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느슨히 맨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다.
"오늘 왜 이렇게 무단침입이 많아?"
해은의 짜증섞인 말에 피식 웃고는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디 갔다 오냐니까."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바로 옆에서 울렸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이 목소리도 틀림없이, 빠짐없이 껴있다고 생각한 해은이
어쩔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꾸욱 깨물며 뚱하니 말을 이었다.
"현욱오빠 만나고 왔어."
"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이유를 물어오자 해은의 눈꼬리가 위로 슥 올라갔다.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 오빠 나 뒷조사 하고 다니니?"
"그렇다면"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는 듯한 차가운 눈이 그녀를 직시해오자, 해은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나, 주관적으로 봤을때나 이한서라는 놈은 확실히 잘났다.
새카만 머리칼과 살짝 그을린 피부, 남자도 반할정도로 섹시한 외모는 물론이며
국회의원 아버지에,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어머니는 유명한 작가였던 빵빵한 집안 내력에
강남에 자신명의로 가지고 있는 시가 몇십억을 호가하는 오피스텔과 클럽도 꽤나 소유하고 있으며
23살 젊은 나이에 미혼이다보니 주위에 늘씬한 미녀들이 넘치는 것은 여사라.
허나, 안타깝게도 이 잘난 놈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쁜 놈이었다, 나쁜놈.
자신이 저 좋다고 따라다닌지가 어인 3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그 많은 시간동안 단 한번도 좋다, 싫다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보란듯이 여자를(그것도 자신의 발끝에도 못 따라올 여자!) 자신의 앞에서 끼고 다니지를 않나,
그걸로도 모자라서 지쳤다 생각하여 포기할 즈음이면 애매모호한 태도와 말로 미련을 떨쳐낼 수 없게 만드는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있어서의 최대의 적인 사람.
뭐,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첫만남은 정말 끔찍했다. 다시는 기억도 하기 싫을 정도로.
BUT, 이 나쁜 인간은 자신의 저주스런 친우인 재인의 하나뿐인 형이었고
그런 말도 안되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한서는
해은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그걸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지만.
"오빠, 나 좋아하니?"
"패죽일."
이것 봐, 이럴 줄 알았어. 저 더러운 성질머리하고는.
해은이 눈을 위로 치켜뜨고는 핸드백으로 그의 어깨를 탁 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빤 진짜 최고로 나쁜 놈이야, 이재인보다 더 나빠."
"재인이는 왜 안 들어오는데?"
"어머, 재인이 온 거 알고있었어? 어떻게?"
"그와 더불어 신유한의 귀환도 알고있었는데. 나한테 말 안할 생각이었나보네."
아, 이런. 해은이 짧게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있다. 뭔가 심사가 꼬인다는 저 특유의 표정.
"나한테 다들 왜 이래, 진짜!"
해은의 미치기 일보직전이라는 목소리가 저택 곳곳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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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시작 ]
◈새침데기 줄리엣◈ 01
안뇽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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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1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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