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신 - 2 > '낯설게 하기'의 장치들 / 임보 (시인, 교수)
3. 낯선 주장(역설적 논리의 제시)
일반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뻔한 얘기를 목청껏 돋우며 주장해 보아도 주위에 관심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역설은 겉으로 보기에 논리적 모순을 지닌 주장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부분
봄날의 소쩍새의 울음과 여름날의 천둥소리가 가을에 국화꽃을 피게 했다는 진술입니다. 소쩍새와 천둥은 국화꽃을 피게 하는 물리적 요인이 될 수 없으니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리 굽고 귀도 절벽인 노승이 누덕옷 속에 길을 모두 감추고 떠나버려서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뜻밖에 일찍 뜬 달이 둑 위 가랑잎과 누워 섹스하는 모습만 훔쳐보고 돌아왔다 ― 이성선 「도피안사到彼岸寺」
화자가 도피안사라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혹 피안(이상향)에 이르는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갔습니다. 그런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노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누더기 옷 속에 길을 모두 감추어 버려서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옷 속에 길을 감춘다는 것은 기막힌 역설입니다.
4. 낯선 이미지 제시=낯선 비유(은유, 의인, 활유 등)
이미지는 어떤 사물이 환기시키는 감각적 정서입니다. 그 감각적 정서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양하게 유발됩니다. 유사한 것을 환기시키는 유추적 이미지, 친근한 것들을 끌어내는 연상적 이미지 등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옵니다.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후두둑 문밖에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 이성선 「여름비」
보해소주 같은 이 봄날의 생을 오래도록 기억하라고 누군가 공중에 꾹 낙관落欵을 찍어 놓았다 ― 이진영 「자목련」
이성선은 여름 소낙비 소리에서 선방의 죽비 소리를 끌어냈고, 이진영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돋아나 있는 자목련에서 화폭의 한 귀퉁이에 찍힌 낙관의 이미지를 끌어냈습니다. 둘 다 유추적 이미지인데 보통 사람들이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한 개성적인 것이어서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와 닿습니다. 그런데 시인들이 구사한 이미지 가운데는 유추나 연상과는 상관없이 아주 낯선 것들이 없지 않습니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창조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푸른 사과'나 '붉은 사과'는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과'에서 '푸른'이나 '붉은' 빛깔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런 연상적 이미지가 됩니다. 하지만 누가 만일 '검은 사과'라고 한다면 이는 비현실의 낯선 상황입니다. '검은 빛'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부패, 독, 죽음,......' 같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검은 사과'는 '썩은 사과', '독성이 있는 사과' 혹은 '죽음을 불러온 사과' 등의 은유의 구조를 띄게 됩니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 생명체의 속성을 부여하는 활유나, 인간이 아닌 사물에 인간적인 속성을 부여하는 의인법도 비유의 낯선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 속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머리통만 커다랗고 몸들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세계를 불태우려고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 이세룡 「성냥」
이 작품은 무생물인 성냥개비를 감옥에 갇힌 죄수로 표현했으니 활유이면서 의인법이 구사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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