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인자수(金印紫綬)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는 자색 끈이 달린 금으로 만든 인장
金 : 쇠 금(金/0)
印 : 도장 인(卩/4)
紫 : 자줏빛 자(糸/6)
綬 : 끈 수(糹/8)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는 금으로 만든 인장(印章)과 붉은색의 인끈을 이르는 말이다. 한(漢)나라 때 승상(丞相)과 태위(太尉) 등이 모두 황금(黃金) 인장(印章)에 자색(紫色) 수대(綬帶; 인장을 매는 끈)를 띠었던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에 따르면 금인자수(金印紫綬)는 상국(相國, 혹은 丞相), 태위(太尉), 대사마(大司馬), 대사공(大司空), 태부(太傅), 태사(太師), 태보(太保)와 같은 고관들에게만 주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속국(屬國)의 군주도 아닌 고관(高官)들에게까지 금인자수(金印紫綬)를 하사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로 보인다.
금자(金紫)는 줄임말로 금인(金印)과 자수(紫綬)를 말한다. 벼슬이 높은 사람이 차는 것으로 고관(高官)의 의장(儀章)인데, 전하여 품계(品階)가 높은 벼슬을 말하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에 승상(丞相)이 자색(紫色) 조복을 입고 금으로 만든 인(印)을 비단 끈에 달았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옛날 중국에 형주출신으로 자는 사원이고, 호는 봉추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린시절 순박하고 둔하여 알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삼촌 방덕공은 그를 중하게 여겨서 18살에 평소 친밀했던 사마휘에게 평가를 받으러 갔다.
사마휘는 영천군 사람으로 청아하면서도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봉추는 영천군까지 2000리를 달려가서 사마휘를 만나는데 뽕을 따던 사마휘에게 수레 안에서 말했다.
이르기를 "듣건대 장부가 세상에 나와서는 마땅히 금인자수(金印紫綬)를 차야 한다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넓디넓은 도량을 굽히고 아낙네가 하는 일을 하고 있소이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마휘는 "그대는 부정한길이 빠른 줄만 알고 있지 길을 잃고 해매이게 될 줄은 모르는가보오, 옛날에 백성자고(伯成子高)는 논밭을 갈면서도 제후의 영화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원헌(原憲)은 뽕나무로 지도리를 한 가난한 집에 살면서도 관리의 저택과 바꾸지 않았다는데, 어찌 화려한 집에 앉아야 하고, 살찐 말을 타야하고, 시녀가 수십 명이어야 귀하다고 하겠소? 이것이 바로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강개한 바이며, 백이와 숙제가 탄식한바 아니겠소, 또 여불위가 진나라를 훔쳐 사두마차 천대의 부를 누렸지만 귀하다고 하기는 부족하니, 그대도 마차에서 내리시오" 라고 답했다.
이에 방통이 "저는 변방 구석에서 태어나 대의(大義)를 만나본 적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큰 종과 뇌고(雷鼓)를 쳐보지 않았더라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를 뻔했습니다" 하고 말하며 마차에서 내려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고,
사마휘는 방통이 비록 5살 아래지만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그로인해서 방통의 이름이 점점 얼려져서 남군 주유의 휘하에서 공조(功曹)로 일을 하게 되었다.
주유가 죽은 후 방통은 유비를 찾아가게 되었으나, 제갈량과 노숙의 추천장을 내지 않고 대면하였는데, 짙은 눈썹, 들창코에 검은 얼굴과 짧은 구레나룻 등 괴상한 용모로 중용 받지 못하고 뇌양 현령을 받고 임지로 떠났다. 그런데 부임한지 100여일이 지나도록 사무는 처리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그러자 유비의 명을 받고 장비와 손건이 순시를 왔는데도 숙취가 깨지 않아 마중을 나가지 않자 업무태만에 대한 벌을 주려하였는데 그는 "걱정하지 말라, 내일이면 모두 끝난다"고 했다.
다음날 봉추가 한건한 건 처리하는 것이 신속하고 정확한 것에 장비가 크게 놀라서 유비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제갈량도 그의 재주를 인정해서 그때부터 치중종사로 발탁하여, 제갈량과 함께 군사중랑장이 되었다.
당시 그의 평가는 '복룡과 봉추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여기서 복룡이란 와룡(臥龍)으로 불리던 제갈량을 말하고, 그와 견줄만한 봉추라고 한 것으로 봉추 또한 스스로를 제왕을 보좌할 재능이 있다고 평했다고 한다.
그 후 유장이 성도로 돌아가고 유비는 가맹현(葭萌縣)으로 올라간 후 한중을 치려했는데, 방통이 유장부터 무찔러야 한다며 상·중·하책을 제시했다.
이르기를 "상책은 은밀히 뽑은 정예병을 데리고 곧장 성도를 습격하면, 유장은 대비나 전략이 없을 테니 단번에 평정할 수 있으며, 중책은 양회와 고패는 유장의 명장이므로 강력한 병사로 관두(關頭)를 지키고 있으나, 이들은 장군을 형주로 돌려보내라고 여러 차례 간언했던 사람들이니, 장군께서 그들에게 형주가 위급하여 구하러 간다고 행장을 꾸려 돌아가는 척 꾸미면, 그들은 틀림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만나러 올 것입니다. 그때 그들을 붙잡고 군대를 차지하여 성도로 향하는 것이요, 하책은 백제성으로 물러나 형주와 연대하여 서서히 일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망설이기만 한다면 큰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그 말은 들은 유비는 중책을 추진하여 민심부터 휘어잡으면서 양회와 고패의 목을 베고 성도로 남진하였다.
그 후 방통이 유비에게 "형주는 황폐해졌고 동쪽에는 손권, 북쪽에는 조조가있어서 정족지계(鼎足之計)라 계획을 이루기가 어렵고, 익주는 부유해서 인구와 병마 생산되는 물자가 많으니 이를 취해서 펼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비는 "현재 나에게 물과 불 같은 사람은 조조이기 때문에 조조가 조이면 나는 풀어주었고, 조조가 사나우면 인자하게 대했고, 조조가 농간을 부리면 나는 진실로 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을 이룰 수 있었소.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천하의 신의를 잃는 것은 취할 바가 아니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방통은 "난세는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약하면 겸병하고 혼매하면 공격하는 것은 오패 도 했던 일입니다. 어긋난 도리도 바른 도리로 다스리고, 유장 에게도 의(義)로써 보답하여 큰 나라에 봉한다면 어찌 신의를 저버렸다 하겠습니까? 오늘 확보하지 않으면 끝내는 다른 사람의 이익만 될 뿐입니다" 라고 재차 청하자 유비가 마침내 따랐다고 한다.
또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은 조조군을 대패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을 봉추가 제공하게 되는데, 당시 강동으로 피신했다가 장간과 함께 위나라로 넘어가 조조를 돕는 척하면서 조조군의 익숙하지 않은 수상생활로 고생하는 병사가 많은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배와 배끼리 쇠사슬로 연결하고 그 위에 판자를 깔면 육지와 같이 생활할 수 있다고 진언하자 조조는 크게 기뻐했는데, 기실은 화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환계(連環計)였음을 후에 알고 크게 후회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또 인물 평가를 잘하는 한편 인재 육성에도 힘을 썼는데, 남군 공조시절에 항상 타인을 치켜세우는 것이 실제 그 사람의 재주보다는 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천하의 아름다운 도리가 무너져 황폐화되니, 착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이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풍속과 도리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운 말로 칭송하지 않는다면 그 명성이 본뜨기에 부족할 것이고, 본보기가 부족하다면 선한 일을 하는 자도 적어질 것입니다. 열 명 중에 다섯 명은 아니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을 얻어 세상의 교화를 높이고 뜻있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분발하게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답하니 그 명성이 오나라에 더욱 퍼졌다고 한다.
방통이 오나라에 있을 때 고소가 "경은 사람을 알아보기로 유명한데, 저와 경을 비교하면 누가 더 낫습니까?" 라고 물었다.
방통이 말하기를 "세속을 도야(陶冶)하고 인물을 품평하는 것은 제가 경만 못합니다. 하지만 제왕의 비책을 논하고 의복(倚伏) 의 요체를 파악하는 것은 제가 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소가 그 말에 만족해하며 친근하게 대했다고 한다.
옛날 유비가 사마휘에게 세상일에 대한 의견을 구했을 때, "저같이 견식이 모자란 유생이 어찌 알겠습니까. 시무를 아는 자가 준걸인데, 근래에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가 있습니다" 라고 답할 정도로 유명했던 봉추였는데,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 것인지, 욕심이 많으면 운명도 바뀌는지 알 수는 없으나, 봉추도 작은 욕심으로 운명을 마무리 지을 줄이야….
낙성으로 향하던 차에 마령 편에 천문의 징조가 좋지 않다는 제갈량의 서신이 도착하였다.
방통은 자신이 혼자 큰 공을 세울까 시기한 제갈량이 말을 지어낸 것이라며, 간과 뇌가 땅에 떨어져 죽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간뇌도지(肝腦塗地)를 말하며, 방통과 위연은 좁은 길로, 유비와 황충은 넓은 길로 나누어 진격하기로 약속하고, 출발하는데 방통이 타고 있는 말이 좋지 않음을 보고 유비가 자신이 타던 말과 바꿔 타게 했다.
방통의 부대가 양쪽 산 사이에 낀 비좁은 곳에 이르자 이곳의 지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한 장수가 "낙봉파(落鳳坡)" 라고 대답하니 방통이 놀라 이르기를, "나의 도호(道號)가 봉추(鳳 雛)인데, 이곳의 지명이 낙봉파라면 나에게 불리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뒤따라오는 군대에게 급히 후퇴하라는 영을 내렸다.
그러나 장임이 이끄는 부대가 이미 그곳에 매복하여, 방통이 후퇴하려는 찰라, 산언덕으로부터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수 없이 날아들었다.
장임은 유비가 타는 말이 흰 색깔의 백마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방통에게 화살을 집중시키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방통은 하얀색의 적토마(赤菟馬)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화살아래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 金(성씨 김, 쇠 금)은 ❶형성문자로 钅은 간자(簡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今(금)의 생략형과 흙(土) 속에 광물(두 개의 점)을 담고 있다는 뜻을 합(合)하여 쇠나 금을 뜻한다. 金(금)은 처음에 주로 銅(동)을 가리켰으나 나중에 금속의 총칭이 되고 또 특히 황금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또한 한자의 부수가 되어 광물, 금속, 날붙이 따위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金자는 '금속'이나 '화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예전에는 金자가 금(金)이나 은(銀), 동(銅), 석(錫), 철(鐵)과 같은 다섯 가지 금속을 통칭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금속이 발견되면서 지금은 모든 금속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금문에 나온 金자를 보면 상단에는 뜨거운 열기가 빠져나가는 연통과 아래로는 불을 피우던 가마가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金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금속'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金(김, 금)은 ①성(姓)의 하나, 그리고 ⓐ쇠(금) ⓑ금(금) ⓒ돈, 화폐(貨幣)(금) ⓓ금나라(金--)(금) ⓔ누른빛(금) ⓕ귀하다(貴--)(금)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돈의 융통을 금융(金融), 금전의 액수를 금액(金額), 금붙이나 쇠붙이를 금속(金屬), 빌려 준 돈의 이자를 금리(金利), 쇠붙이로 만든 돈을 금전(金錢), 돈과 물품을 (金品), 돈이나 재물을 넣어 두는 창고를 금고(金庫), 생활의 본보기로 할 만한 귀중한 내용을 지닌 짧은 어귀를 금언(金言), 금을 파내는 광산을 금광(金鑛), 벼가 누렇게 익은 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금파(金波),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간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을 금란지교(金蘭之交), 쇠로 만든 성과 끓는 물을 채운 못이란 뜻으로 매우 견고한 성과 해자 또는 전하여 침해받기 어려운 장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성탕지(金城湯池), 사이 좋은 벗끼리 마음을 합치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는 뜻으로 아주 친밀한 친구 사이를 이르는 말을 금란지의(金蘭之誼), 금 가지에 옥 잎사귀란 뜻으로 임금의 자손이나 집안을 이르는 말이나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 또는 아름다운 구름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금지옥엽(金枝玉葉), 금이나 돌과 같이 굳은 사귐을 이르는 말을 금석지계(金石之契), 금석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쇠와 돌처럼 변함없는 굳은 사귐을 이르는 말을 금석지교(金石之交), 전쟁의 고난을 일컫는 말을 금혁지난(金革之難),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이르는 말을 금곡주수(金谷酒數), 친목의 뜻으로 친한 친구끼리 모은 계를 일컫는 말을 금란계(金蘭契), 금과 돌같은 굳은 언약이라는 뜻으로 서로 언약함이 매우 굳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석뇌약(金石牢約), 쇠와 돌같이 굳게 맹세하여 맺은 약속을 일컫는 말을 금석맹약(金石盟約), 금옥과 같은 법률이라는 뜻으로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교훈을 이르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 귀중한 말을 할 수 있는 입을 다물고 혀를 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침묵함을 이르는 말을 금설폐구(金舌蔽口), 이집트의 피라밋을 번역한 말로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임 또는 길이 후세에 전하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자탑(金字塔), 진중의 종소리와 북소리가 하늘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격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금고진천(金鼓振天),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한다는 뜻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미지취(金迷紙醉), 쇠와 돌을 열리게 한다는 뜻으로 강한 의지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금석위개(金石爲開), 귀중한 말을 할 수 있는 입을 다물고 혀를 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침묵함을 이르는 말을 금구폐설(金口閉舌), 집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총애하는 미인을 살게 함을 이르는 말을 금옥저교(金屋貯嬌), 흠집이 전혀 없는 황금 단지라는 뜻으로 외침을 받은 적이 없는 당당한 국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금구무결(金甌無缺), 금까마귀와 옥토끼란 뜻으로 금오는 태양이고 옥토는 달을 일컫는 말을 금오옥토(金烏玉兔), 천리 땅에 걸친 견고한 성이라는 뜻으로 진시황이 그 나라의 튼튼함을 자랑하여 이르는 말을 금성천리(金城千里), 훌륭한 언설로 사회를 가르치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금구목설(金口木舌), 태평한 세월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금옥지세(金玉之世), 가장 훌륭하고 안전한 계책을 일컫는 말을 금석지책(金石之策), 돈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금권만능(金權萬能), 후세에 남겨 전할 만한 훌륭한 공적을 이르는 말을 금석지공(金石之功), 몸가짐이 금옥과 같이 깨끗하고 점잖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금옥군자(金玉君子), 우리나라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을 금은지국(金銀之國), 신선하게 부는 가을 바람과 구슬과 같은 이슬을 이르는 말을 금풍옥로(金風玉露), 쇠줄로 단단히 봉하여 비서를 넣어두는 상자라는 뜻으로 억울하거나 비밀스런 일을 글로 남겨 후세에 그 진실을 전하고자 할 때 사용하여 이르는 말을 금등지사(金縢之詞),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으로 껍질은 그대로 있고 몸만 빠져나가는 것처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허세를 꾸며 벗어남을 이르는 말을 금선탈각(金蟬脫殼) 등에 쓰인다.
▶️ 印(도장 인)은 ❶회의문자로 무릎마디, 무릎을 꿇은 모양의 병부절(卩; 옛날 약속할 때의 표이며 증명서와 같은 것)部와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손톱의 모양, 손에 가지는 일)로 이루어졌다. 즉 증표를 손에 쥐다, 사령(辭令)에 찍는 도장, 표, 표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印자는 ‘도장’이나 ‘인상’, ‘찍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印자는 爫(손톱 조)자와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印자의 갑골문을 보면 사람을 손으로 눌러 무릎을 꿇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印자는 이렇게 사람을 누른다는 의미에서 ‘누르다’, ‘억압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중국에서 도장 문화가 발달하면서 印자는 ‘도장’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扌(손 수)자가 더한 抑(누를 억)자가 ‘누르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印(인)은 (1)도장(圖章) (2)옛날 중국에서 관직(官職)의 표시로서 패용(佩用)한 금석류(金石類)의 조각물 (3)결인(結印) (4)인도(印度)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도장(圖章) ②인상(印象) ③벼슬, 관직(官職) ④찍다, 놀러서 자리를 내다, 박다 ⑤찍히다, 박히다 ⑥묻어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잉크를 사용하여 판면에 그려져 있는 글이나 그림 등을 종이나 천 따위에 박아 내는 일을 인쇄(印刷), 인쇄한 책을 인본(印本), 사진의 음화에 인화지를 겹쳐서 감광시켜 양화로 만드는 일을 인화(印畫), 서적의 발행자가 저작자에게 주는 돈을 인세(印稅),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하였을 때 그 대상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을 인상(印象), 도장을 찍는 데 쓰는 붉은빛의 재료를 인주(印朱), 도장이나 관인 등의 총칭을 인신(印信), 대조용으로 관공서 및 기타 거래처에 미리 신고하여 둔 도장을 인감(印鑑), 인장의 글자를 새긴 면을 인면(印面), 나무나 그밖의 물건에 새기는 일 또는 그 글자를 인각(印刻),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 또는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낙인(烙印), 불에 달구어 물건에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을 소인(燒印), 도장을 찍음을 날인(捺印), 도장을 새김 또는 새겨 만든 도장을 각인(刻印),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 또는 지우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화인(火印), 봉하여 붙인 자리에 도장을 찍음 또는 봉하여 붙인 자리에 찍는 도장을 봉인(封印), 관서 또는 관리가 직무 상으로 사용하는 도장의 총칭을 관인(官印), 서류나 물품에 검사를 마친 다음 그 표지를 찍는 도장을 검인(檢印), 서류에 얽어 맨 종잇장 사이에 도장을 걸쳐 찍음을 간인(間印), 남을 대신하여 도장을 찍음 또는 그 도장을 대인(代印), 서로 관련된 두 종이 위에 걸쳐서 찍는 계契자를 새긴 도장을 계인(契印), 찍힌 부분이 도드라져 나오거나 들어가도록 만든 공인을 압인(壓印), 개인이 사사로이 쓰는 도장을 사인(私印), 한 문건에 여러 사람이 도장을 찍음을 연인(連印), 원본을 사진 제판으로 복사하여 인쇄함을 영인(影印), 잎이 붙었던 자리를 엽인(葉印), 인발 위에 글자를 겹쳐 써서 표적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인상가서(印上加書),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이르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등에 쓰인다.
▶️ 紫(붉을 자)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此(차)로 이루어졌다. 자주빛으로 물들인 실의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紫자는 '자주빛'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紫자는 此(이 차)자와 糸(가는 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此자는 사람과 발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차, 자'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고대에는 자연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이용해 염색했다. 염색의 대상은 당연히 실을 엮어 만든 천이였다. 색깔과 관련된 한자 대부분에 糸자가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紫자도 그중 하나로 자줏빛으로 물들인 천을 뜻한다. 그래서 紫(자)는 ①자줏빛 ②자줏빛의 옷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자줏빛을 자주(紫朱), 또는 자색(紫色), 자두나무의 열매를 자도(紫桃), 붉은 왜가리를 자로(紫鷺), 백일홍을 자미(紫薇), 지치 뿌리를 자근(紫根), 금이 조금 섞여 있는 구리를 자동(紫銅), 검은 담비의 털가죽을 자곽(紫鞹), 출혈로 말미암아 피부 조직 속에 나타난 자붓빛 얼룩을 자반(紫斑), 보랏빛 기운을 자기(紫氣), 자줏빛과 흰빛을 자뱁(紫白), 자주빛의 연기를 자연(紫煙), 자줏빛의 구름을 자운(紫雲), 자주빛 옷을 자의(紫衣), 자줏빛 비단을 자금(紫錦), 안경에 끼우는 자줏빛 수정을 자경(紫鏡), 붉은 빛깔의 눈동자를 자동(紫瞳), 검붉은 빛깔의 걸찬 흙을 자분(紫墳), 붉은 흙에 탄가루가 섞인 흙을 자양(紫壤), 자줏빛을 띤 술을 자온(紫醞), 붉은빛과 자줏빛을 주자(朱紫), 검은 주홍빛이 나는 안료를 다자(多紫), 흰 빛깔의 사기를 백자(白紫), 엷은 보랏빛을 천자(淺紫), 붉은 빛깔과 보랏빛을 홍자(紅紫),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뜻으로 산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의 초목이 자줏빛으로 선명하고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려(山紫水麗), 울긋불긋한 여러 가지의 빛깔이라는 뜻으로 흔히 가지각색의 꽃이 만발한 것을 이르는 말을 만자천홍(萬紫千紅), 울긋불긋한 여러 가지 빛깔이라는 뜻으로 색색의 꽃이 피어 있는 상태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천자만홍(千紫萬紅), 가을에 단풍이 울긋불긋 함을 이르는 말을 감홍난자(酣紅爛紫) 등에 쓰인다.
▶️ 綬(끈 수)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실 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受(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綬(수)는 ①끈, 줄 ②인끈(印-: 실을 땋은 끈)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벼슬 자리에 임명될 때 임금에게서 받는 신분이나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관인을 몸에 차기 위한 끈을 인수(印綬), 조복 후수 아래에 늘인 실로 엮은 넓은 줄을 망수(網綬), 가죽 따위로 깔때기 모양으로 만들어 장구의 좌우 마구리에 얼기설기 얽은 줄의 두 가닥을 끼워서 한쪽으로 밀면 줄이 늘어지게 되어 장구의 소리를 조절하는 장구의 부분품의 한 가지를 축수(縮綬), 옛날에 예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에 뒤에 늘어 뜨리는 띠를 후수(後綬), 정삼품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차는 호패의 자줏빛 술실이나 술띠를 자수(紫綬), 예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뒤로 늘어뜨리는 띠를 수환(綬環), 은고리를 단 조복의 후수를 은환수(銀環綬), 구리 고리를 달아 붙인 후수를 일컫는 말을 동환수(銅環綬), 마름과 불꽃 모양의 무늬를 놓은 인끈을 일컫는 말을 조화수(藻火綬),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는 자색 끈이 달린 금으로 만든 인장을 일컫는 말을 금인자수(金印紫綬)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