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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동이가 쉬는 날 선복이 딸 정순을 보러 올라왔다.
“수동아 동문 안이 볼만 하다는데 거기 구경 갔으면 좋겠다.”
수동이가 무슨 말일까 생각해 보다가
“뭐가 볼만 하데요?”
“응 그곳에 가면 호랑이도 있고 코끼린가 뭔가 있다고 들 하던데.”
“아 창경원이요.”
그렇게 해서 수동이는 그날 선복이를 모시고 금자와 은자를 데리고 창경원 구경을 갔다.
하긴 수동이도 창경원 구경은 처음이었다.
선복은 수동이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으로 서는 어쩔 수 없이 용단의 의지에 의하여 그렇게 살았다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복은 일주일을 넘게 있다가 정순이 데려다 주는 바람에 석고개로 내려갔다.
그리고 삼층 인순이네는 점을 보면서 철학을 한다는 이방옥이란 사람에게 옆방을 세를 받기로 하고 주었고 정순은 수동이 월급을 인순이가 하는 계에 들어서 매달 부어 나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재덕은 일을 마치고 올 무렵이면 공사현장에서 전기공사 할 때 잘라버리는 배선을 옷 가방에 주어들고 와 칼로 벗겨내고 뚤뚤 뭉쳐서 작은 가방에 모아서 두었다 팔아서 담배를 사서 피우기도 하고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였다.
그리고도 돈이 남으면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오백 원짜리 돈이 보푸라기가 날 정도로 쓰지 않고 있었다.
유류파동의 여파는 봉재실에도 미쳐서 대규모 감원이 있었고, 혜자도 눈에 보이지 않고 재단사도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떠났다.
그리고 인조 밍크로 동물모양의 완구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 되었다.
재단도 의류재단과 달리 잘 포개놓은 원단에 날이 달린 틀을 올려놓고 프레스로 눌러서 다량재단을 해서 수동이보다 두 서너 살 작은 남자직원 두 명이 프레스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발판을 재봉보조 아가씨가 밟는 바람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봉합수술이 보급되지 않아서 그대로 손가락을 잃고 말았다.
한편 편직실도 일이 줄어들면서 용진이가 나가고 복싱을 한다는 사람이 들어오고 이은호편직 실장 겸 기사와 부기사 박관우가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부기사 황인주 다른 부기사로 온 정완수가 편직실을 꾸려 나가고 있었는데 복싱을 한다는 친구는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자 그만두고 두 번 월급을 받으러 왔다가 안 주자 행패를 부리는 단계에 이르자 얼른 회사 비상금으로 줘 버렸다.
그리고 그 사람 대신 김동규 라는 사람이 와서 수동이와 짝을 이뤄 교대를 했다.
그리고 편직실을 매일 새로운 패턴의 견본을 뽑는 일이 많아졌다.
드럼자카드로 가로 무늬 는 드럼을 돌려주는 장치를 작동을 안 하게 하면 얼마든지 무니의 크기를 원단 크기까지 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세로무늬도
바늘을 올려주는 답부가 같은 것으로 반복해서 끼워주면 얼마든지 원단의 폭만큼 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아가씨들은 서너 명만 남고 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점심시간에는 여유를 가지고 배구도 하고 어떤 때에는 심심하니 힘자랑을 했는데 수동이가 식당에서 시장을 봐올 때 쓰는 짐자전거를 한손으로 들어 올리자 남자들이 모두 해보고자 했으나 쉽사리 성공하지 못했다.
지기 싫어하는 황인주가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성공을 했다.
짐자전거를 한손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힘도 있어야 하지만 중심을 잡는 요령이 있어야 했다.
얼마 후 봉재실 일마저 없어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고, 몇 사람만 경비실 방에서 자고 있었고 구내식당을 운영하던 장씨는 밥값 때문에 사무실에서 옥신각신 끝에 나가고. 밥은 몇 남은 사람들이 지접 해먹는 데까지 오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일이 없을 때에는 지금의 광명시 논으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기도 하였고 그때 처음 알게 된 근로자의 날이라는 3월10일을 관악산으로 생전 처음 등산을 가기도 했다.
사람이 바쁘면 아무생각이 없지만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 사고를 치나 보다. 수동이가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편직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남은 아가씨 하나를 어떻게 사귀어 보려고, 식당 방에 혼자 있는 아가씨 방에 들어가 우리한번 사귀어 보자고 하였다가 무안할 정도로 훈계를 들었고, 이튿날 그 아가씨를 볼 면목이 없었는데. 바로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그 무렵 국도극장에서는 별들의 고향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입장료는 350원 이었다.
그리고 부기사 황인주가 이은호가 기사로 있는 수색역 뒤 상암동으로 이직을 하면서, 사무실에 이야기를 해서 수동이 동규 셋이 월급을 받아 가지고 상암동에 이직을 했다.
그곳은 기계가 다섯 대 밖에 없었고. 염색공장 이층 건물에 세를 얻어서 하고 직원을 모두 여섯이고 밥은 염색공장 구내식당에서 먹고 좀 떨어진 곳에 방을 얻어 주어서 걸어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초여름이 되었을 무렵 정순은 양묵의 대상을 지내고 남은 삼베 두루마기를 잘라서 반바지를 만들어서 재덕이 두 개 수동이가 두 개를 가져다 입었는데 시원하고 기름이 묻어도 때가 잘 갔다.
재덕은 옆에 짓고 있던 건물이 거의 완성이 되어서 회사가 대전 대덕에 연구단지 짓는 공사를 하는 곳으로 내려갔다.
다른 공사장을 가려고 했으나 추어져 일이 없으면 놀아야 했으나 그래도 여기는 오래 다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망치에 정만 가지면 되는 하스리(콘크리트가 잘못 된 부분을 깨 내는 일)는 늘 있고 틈틈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해서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내려가기로 했다.
공사장 한쪽에 판자로 입시로 지은 숙소에서 생활을 하고 밥은 밥집(함바)에서 해결을 하면서 한 달 또는 보름에 한 번씩 집에 다니러 갔다.
집에 있는 정자도 삼층 인순이 딸 순자 경자 경옥이처럼 피복 공장에 나가서 재봉을 배워서 밥벌이 더 나가 시집 밑천이라도 했으면 했지만, 발탄강아지처럼 여기저기 쏘다니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에다 학교를 가고 싶어 하던 경자를 정순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학교를 보냈으련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중학교를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 교사라는 여자의 아이를 봐주면 돈을 주고 공부도 틈틈이 가르쳐 주겠다는 종현 엄마의 꼬임이 혹해서 보냈으나 몇 칠을 못 있다가 나와서 결국에는 경자가 원하던 공민학교에 중학교 과정을 공부 하러 입학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수동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다 집에 와봐야 책 한번 들려다 보는 적도 없으니 공부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동이가 열심히 해서 집칸을 마련하고 수동이를 위해서 정순이 계까지 들었으니 이삼 년 공사 끝날 때까지 고생을 하면 수동이도 장가보내고 정자도 시집을 보내고 하나 씩 내 할 일을 해나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옆방에 살던 일수 아줌마 모녀가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정순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삼층 인순이네 살던 방옥에게 인심 좋게 보증금도 없이 옆방을 월세로 주었다.
나중에 집에 다니러 온 재덕으로서는 기분 나뿐 일이었지만 정순의 사교성과 전에 물골안에 살적에 사랑방을 여러 번 빌려준 적이 없어서 큰 마찰 없이 넘어갔지만, 한구석 에 남아있는 찝찝함은 지울 수 없었다.
수동이는 쉬는 날 정순의 손가방에서 은박지로 진공 포장되고 월 화 수 목 금 토 일표시가 되어 있는 빨간 알약을 발견했다.
뭔 약일까 하다가 이내 정답이 나왔다. 아 이게 피임약이로구나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순이 아들을 포기하고 남은 애들이나 키우려는 생각이로 구나.’
하긴 재덕의 나이로 보아도 포기할 때가 되긴 됐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생활을 하는 방옥의 밥을 해 주게 되어서 방옥은 하숙생이 되었고 건넌방에는 단을 놓고 탱화를 붙이고 부처를 모셔놓았다.
그리고 혼자 인줄 알았더니 아내라는 여자가 내촌서 한 달에 한 번씩 다녀갔다.
얼마 후에는 아들이라는 정수를 인순의 소개로 주유소에 취직을 시켜서 주어서 자주 들락거리고 석유곤로에 쓸 기름을 사러 가면 조금 더 주어서 정순이와 인순이를 기분 좋게 했다.
정수는 머리가 명석해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하모니카 목걸이를 하고 키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재주도 있었다.
나중에는 통 키타에 앰프까지 연결하여 연주를 하면서 작곡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수와 정수의 형 정복이 누나 정희는 지금 부인의 소생이 아닌 전 처 소생으로 한 달에 한 번 오는 아내에게도 따로 삼남매가 있었다.
참으로 묘한 동거였으나 수동이는 재덕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었고 정자나 경자 도 순응을 하며 지내고 있어서 속을 태우는 것은 재덕이었으나 정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무렵 정순은 야매로 이를 해 넣으려고 치과기공사를 만나서 싸게 이를 해 넣었다.
그렇게 그해 추석이 지나고 수동이는 추석 다음날 숭인동을 놀러 갔더니 영린은 해외섬유라고 선경계열사에 취업을 가 있어서 사장이 다른데 주는 만큼 줄 테니 오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그렇게 돌아다녀도 부기사도 못하고 무엇보다 야간근무가 없고 기사가 되어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출근은 해보니 광춘이의 동생 명춘이가 일을 배우기 위해서 와 있었다.
그리고 한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수동이가 방옥에게 부탁을 해서 그의 처조카 대복이가 원주 문막에서 올라왔다.
곧바로 겨울 제품을 만들기 위하여 기계를 조립하기 전에 수동이가 사장에게.
“사장님 쟈카드 기계 밑판을 개조를 했으면 하는데요.”
“어케 하면 되는데.”
“지금의 밑판은 답부를 눌러서 도(실의 올)를 맞추는 장치가 고정이 되어 있어서 아래 위 바늘이 아래 바늘 헤라가 닫히고 위 바늘 헤라가 닫혀야 하내(코 빠짐)나 펑크(뚫어짐)가 안 나는데 아래 답부를 눌러주는 장치가 좌우로 음직이게 해오면 정확하게 맞추어서 하내나 펑크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 내가 기계 수리하는 곳에 알아볼게.
“그리고 하는 길에 위 실 고리 위에 있는 안전기도 새로운 것으로 바꿨으면 하는 데요.”
“어드런 걸로.”
“지금 있는 건 구형이라 실이 끊어지면 아래 까지 와서야 마그네틱을 처서 기계가 서게 되거나 오동포가 난 다음에 서게 되는데 안전기를 조금 위에다 달게 해주고 요즈음 나오는 것으로 달면 실이 끊어지면 서는 게 조금 빨라 오동포가 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왕십리에 있는 환편기 공장에서 일주일 만에 기계를 개조해 가지고 와서 조립을 시작 했다.
기계를 조립해 원단을 조금 짜보니 하내나 펑크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무니를 넣었을 때 잘 짜지면 된다.
이틀째 되는 날 바이어스 무늬를 짜기 위해 본래 쓰던 원판보다 큰 원판을 사용했는데, 기계가 한 바퀴 돌때 원판은 두 바퀴를 도는데 한 쌍이 두 개로. 원판 한 개는 기계의 바늘 수의 반보다 두 개가 많고 하나는 두 개가 적어서 바이어스 무늬를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원단이 짜여 나오자 사장은 몇 번을 들락날락 거렸다.
동생 영린이 해오던 것을 수동이에게 맡기고 보니 제대로 되는지 의심스러워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단을 짜서 기모(원단을 긁어서 솜털을 형성하는 방법)를 내서 세팅을 해서 티샤스와 가디건을 생산했다.
그리고 원단을 재단하면서 보니 하내가 전혀 없고 펑크도 어쩌다 하나 있거나 바늘이 부러져 갈아 넣은 자리만 불량이어서 그 자리를 돌려서 재단을 하면서 사장은 싱글벙글했다.
불량률이 확 떨어지자 수동이는 기계의 속도를 일분에 9회전 하던 것을 13회로 높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서 일분에 18회를 돌리니 생산량이 배 가까이 오르자 사장은 연일 싱글벙글 했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아예 고무단을 횡편기 대신 양면 환편기로 한 가지 바늘 즉 고 답부 바늘을 아래에 두 개, 위에 하나 아래에 두 개 위에 하나 식으로 꼽아서 고무단을 짜기로 하고 이틀 만에 기계를 조립해서 24개가 들어가는 양면기계를 12개만 들어가게 해서 고무단을 짰다.
그러니 사람이 세 사람 이상 붙어서 짜야 했던 고무단을 양면 기계로 두 시간만 돌리면 되었다.
그런데 펑크가 나던지 오동포가 나면 아래의 바늘 두 개가 한 코를 형성해서 하나는 다시코를 빼 줘야 했다.
그러다 무늬가 조금 커야 좋겠다는 옷가게의 건의를 받아들여 무니를 배 정도 크게 하였더니 더 잘 나갔다.
그리고 가디건의 단은 횡편기로 짤 수밖에 없는데 저번에 짜던 방식에서 헌 기계를 쌓아둔 창고에 가보니 지난여름 티셔츠용 원단을 짜려고 양말 기계를 사다가 P.P필라멘트사로 짜서 열을 가해서 그레이프 사를 만들어 다시 16게이지 싱카자카드에 짜다가 시중에 그레이프 사가 나오는 바람에 실패한 양말짜는 기계의 아래 부분의 원단을 당겨주는 부분을 떼어다가 횡편기가 일회전 할 적마다 밀어주게 만들었고. 텐숀 부분에 전선을 연결해 마그네틱 크러치에 연결하여 실이 끊어지면 횡편기를 멈추게 하였다.
그랬더니 사람 다섯이 짜는 역할을 한 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편직은 생산성이 배 가까이 오르고 불량률도 줄였고, 사람 수도 줄어든 반면 재봉을 하는 사람은 두 명이나 더 써야 했으니 사장은 신이 났으나 거기에 따른 대가는 지불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장사를 잘해서 사장은 동대문종합시장 일층에 점포를 분양 받았다,
그때 사장이 수동이와 많은 대화를 해서 시장 돌아가는 거나 아니면 다른 공장에 있는 기계를 보고 다녔으면 원단장사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히 사업하는 사람은 견문을 넓혀야 많은 발전을 할 수 가 있다.
74년 정순은 딸을 낳았다.
옆방에 방옥이 수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재순이 재덕의 아파트 옆 동인 12동을 사서 이사를 했다.
연동이가 장가를 들게 되어서 이번에도 채단을 해가지고 내려갔고 정순은 가지 않고 재덕이만 찬치를 보러 갔다.
그런 재덕을 영동이는 후황을 보냈다.
재운이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영동이의 생각은 지난 번 옥자가 시집을 갈 때 후황을 갔다 올 때 조카딸을 떼어 놓고 오는 게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훔친 재덕의 마음을 헤아려 이번에는 재덕을 보낸 것이었다.
하긴 재덕으로서는 지난번 옥순이 시집을 갈 때도 후황을 다녀와서 공교롭게도 꼭 시집가는 조카딸들 후왕을 가게 되었으나 이번에는 조카며느리를 데리고 돌아오는 후황을 갔다 왔으니 기분이 엄청 좋아서 서울에 올라와서도 이번에 맞은 조카며느리가 키가 크고 달덩이 같다며 몇 번을 이야기 했다.
하긴 성동이 결혼식이 있었으나 성동이는 신식 결혼식을 해서 후황을 가보지도 못하다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후황을 갔다 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74년 11월 3일 새벽 대왕코너에서 불이나 타임고고에서 춤추던 사람들 중 72명을 신원을 알아 볼수 없을 정도를 새카맣게 타 죽는 등 모두 88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12월16일 저녁 여섯 시경 별안간 전기가 나갔다.
“야, 전기 나갔으니 텔레비전 보자.” 누군가 웃으라고 소리를 쳤지만 곧 타다 다탕 하는 사격 소리가 들렸고 북한산 쪽에서 하늘을 향하여 서치라이트 (search-light)가 대 여섯 개 켜지고 하늘에선 불꽃이 일었다 사라졌다.
잠시 후 사격이 멈춰지고 한참 후 불이 들어왔는데 다음날 신문에 칼 기가 비행경로를 벗어나서 사격이 가해진 것이었다.
이 때 청계5가 고가 밑을 지나던 버스의 지붕을 뚫고 들어온 유탄에 51세의 안 모 여인이 숨지고, 서울시내 곳곳에서 27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계를 탔는데 삼층에 사는 영숙이 아버지가 개인택시를 사는데 모자라서 빌려갔고, 이자를 받아서 쓰는 정순은 신이 났다.
조금 생각이 있었으면 그 돈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한 채 더 샀으면 좋았을 텐데, 정순은 인플레이션 (inflation)의 개념도 전무한지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다
한 마디로 그걸 방치한 재덕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혹시나 나가서 살려고 벌써부터 준비를 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 까봐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복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정순과 재덕이 급히 물골안으로 내려갔다.
죽음을 앞둔 선복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눈치였다.
“아버지 누굴 찾으세요.”
정순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수 수 수동이.”
“안 내려 왔어요.”
“나뿐 년.”
하면서 정순을 쏘아 보았다.
그러면서도 선복은 두리번거리며 수동이를 찾았다.
동학난을 피해서 어린나이에 아버지 등에 업혀서 황골에 들어와 류씨집안 몸종이었던 용단을 아내로 맞이한 바람에 종 아닌 종처럼 살면서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으나 큰아들을 육이오 때 의용군으로 빼앗기고 죽을 목숨을 재운의 배려로 천명을 다하고 가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건 수동이에게 미안 했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딸을 대신해서 꼭 하고 싶었다.
그 말마저 못하고 그렇게 선복은 눈을 감고 말았다.
그는 재덕이 마련해 준 밭머리 산기슭 용단의 산소 옆에 묻혔다.
그리고 대복이가 하루는 다리에서 피를 많이 흘려서 보니 면도칼로 베었는데 숨기고 있어서 야단을 치고 명춘이가 업고 병원에 가서 꿰매오기도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군에 가 있던 친구 윤회가 휴가를 받아서 왔다.
둘이서 만나서 오랜만에 통행금지가 풀린 서울 시내를 걸었다.
장충단 공원을 걸어서 남산을 향했다.
가는 길에 아가씨 두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남산을 올라갔다가 남대문 쪽을 지나서 명동성당 앞에서 수동이는 그만 세 사람을 일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다섯 시가 넘어있었는데 한 30분 지나서 윤회가 들어 왔다.
정순이 지어준 아침을 먹고 낮에 극장구경이라도 가자는 수동이를 만류하고 윤회는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용동이의 아들 준용이가 숙부 영동이네 집에 왔다가 작은 할아버지 댁이라고 들렸다.
수동이가 마침 쉬는 날이라 중학생인 준용이를 데리고 답십리에 있는 경미극장에 가서 동시 상영하는 영화 두 편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고 봄 상품은 몇 가지를 시도했으나 별로 나가지를 않아서 일찌감치 여름에 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시도 하던 중 사장이 지금 일본에서 잘 나간다는 티셔츠를 한 장을 사가지고 왔다.
수동이가 어떻게 짰는지 보아야 하겠다고 안 보이는 옷의 안쪽 귀퉁이 부분을 잘라 내어 실올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니 16게이지 쟈카드싱카로 짤 수 있을 것 같아서 기계를 사흘에 걸쳐서 손을 보고 실은 카사리사를 사다가 짜서 염색 가공을 해서 생산을 했으나 모양만 흉내 냈을 뿐 똑같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조금씩은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에 걸린 수동이가 감기약을 두 번이나 사다 먹었는데도 낳지를 않아 다른 약국에서 다른 약을 사다가 미련하게 두 약국의 약을 혼용하여 더 심해졌다.
하루 시간을 내어 집에 온 수동이를 정순이 답십리 한약방으로 데리고 가서 약을 지어와 약탕관을 가지고 숭인동 공장으로 와서 일주일을 넘게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때 복덕방 광옥이 정순에게 자기조카 딸이 용두동 시립병원에 수간호사로 있는데 내 이야기를 하면 잘 해줄 것이라며 가라고 해서 또 하루를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서 가슴과 얼굴부분을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결핵초기에 축농증이라고 했다.
우선 축농증이 심 하다며 코에 마취를 하고 커다란 주사바늘을 왼쪽 콧구멍에 속으로 넣으며 의사가 “해머” 하니 수간호사 종숙이 고무망치를 주니 주사바늘을 두드려 박았다.
아무리 의자 머리받침이 있어도 머리가 울려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증유수를 주입하니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종숙이 따라 나오며 일주일 후에 또 오라고 하면서 일 년 이상을 약을 먹으려면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으면 약값이 많이 나오니 종로오가로 가서 약을 사서먹으면 싸게 먹힌다며 약 종류와 먹는 법을 적어주며, 결핵약이 독하니 간을 보호하는 약 위를 보호하는 건위제 그리고 축농증 치료제도 사왔다.
일주일 후에 또 코에 망치로 주사바늘을 꽂았는데, 이번에는 먼저보다 고름이 덜 나왔다.
그리고 정순은 종숙에게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태반을 구해달라고 했고, 다시 2주 후 한 달 후 한번 두 번의 치료를 받았다.
집에 다니러온 재덕과 정순이 결론은 먼지 많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폐병이 든 것 같다며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해서 성수내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유영근의 소개로 천호동 고분다리에 있는 다리미 보온병을 월부로 파는 곳에 취업을 했다.
재덕의 생각으로는 배관하는 일을 배우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아들 수동이에게 까지 공사판으로 굴러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리미를 파는 곳에는 종익이라는 사람이 사장인데, 물건을 팔아서 이익금의 일부는 파는 사람 몫이고 일부를 수금을 하는 사람 몫이고, 밥값은 한 끼에 백오십 원 제하고 주는 방식으로 방 둘에 여덟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수금을 맡은 사람이 두 명 이었고, 파는 사람이 여섯 명 정도이고 종익의 할머니가 밥을 해주며 손자 뒷바라지를 하는데, 수동이를 포함한 세 사람을 빼고는 다 사장의 동생이나 조카들로 모두 친척이나 가족으로 등에다 다리미와 보온병을 지고 다니며 상일동 하일동 황산 하남 풍산동 광주(경안읍) 마천동 거여동 평화촌 송파 잠실 풍납동 광장동 화양리 송정동 능동 동부지역으로 아침에 팔 물건을 챙기면서 난 오늘 암사동으로 해서 명일동 상일동 하일동을 돌란다.
하면 다른 사람은 오늘은 경안으로 가려내 하면서 각자가 자기가 돌아다닐 곳을 정해서 나갔다.
첫날은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영근이의 동생인 영진이를 따라 수습을 나갔다.
“전기다리미나 보온병.”
외치는데 차마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나 같이 나온 사람을 생각해서 한 나절이 못되어 따라서 작은 소리로 나마
“전기다리미 사세요, 보온병.”
하게 되었고, 한두 시간이 지나자 크게 외칠 수 있었다.
다음날은 혼자 나갔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았다.
요양을 한다는 생각이여서 그런지 벽에 붙여놓은 그래프 종이에 막대는 다른 사람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고 저조했다.
자양동 에는 흙벽돌 공장이 있었다.
그곳 자택에서 물건을 팔고 나오는데 머리를 빡빡 깍은 푸른 옷을 입은 무리들을 만났다.
이들은 벽돌공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 중이였는데, 앞뒤에 권총을 찬 감시자가 있었다.
지나가는 수동이에게
“아저씨 담배 있으면 좀 주세요.”
“저 담배 안 피우는 데요.”
“그러면 십 원짜리 있으면 하나만 주세요.”
해서 십 원을 건네니.
“고맙습니다.”
하며 받았는데 교도소에서 동전을 무엇에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양동 주택가에서 삼경물산에서 같이 일하던 정진하를 만났다.
채소를 리어카에 싫고 밀짚모자를 쓰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유류파동의 여파는 컸다.
“여 이게 누구야 그러게 오랜만이야.”
“아니 웬 채소장사.”
“그러는 넌 어떻게 다리미 장사를 잘 되.”
“아니 별로 안 팔려, 도로 일을 해야겠어.”
“그냥 저냥 해 어디 장사가 쉬워.”
“그런데 희동이는 어떻게 됐어.”
“군대 갔어 아마 제대할 때 다 됐을 거야.”
“그럼 다음에 또 보세.”
“그래 다음에 또 만나.”
그리고 구의동 한강 가 판자촌을 돌아다녀도 물건은 하나도 못 팔았는데 마침 재건대 한사람이 리어카에 고물을 싫고 지나가고 있었고,
“나도 리어카가 있었으면,”
하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 사람이 들어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넝마를 줍는 찍개로 머리를 후려 갈리며
“너 뭐라고 했어, 리어카가 뭐라고.”
“죄송합니다.”
더 이상 말대꾸를 하다간 큰일날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장사를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심을 보니 찾아갈 돈이 조금 있는데, 월부로 팔아서 수금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완치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약도 먹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환편기를 만드는 아성공업사 조립부로 들어갔다.
환편기의 몸통은 선반을 돌려서 깎고 다리는 세파라는 기계로 깎아서 가져오면 조립부에서 조립을 하고 기타 부품을 만들어 붙이는 작업인데, 부품의 일부는 자동차에 쓰이는 판스프링을 폐차장에서 사다가 달구어 프레스로 찍어내어 줄로 다듬고 구멍을 뚫고 나사를 끼울 홈을 만들고 가 조립을 해가면 맞추어 보고 분해를 해서 열처리를 하는데, 이때 알맞게 달구어진 부품을 청산가리를 묻혀서 물로 식히면 열처리가 끝나고 다시 표면을 사포로 매끄럽게 연마를 해서 조립을 하고 기타 열처리가 필요 없는 부품은 쇠톱으로 자르고 때우고 줄로 다듬고 구멍을 뚫고 해서 조립도 하지만 일부 부품은 다른 공장에서 납품받아서 달기도 하고 기계를 출고해서 공장에 가서 달기도 했다.
쇠 톱질이나 줄질은 팔의 힘만 으로는 하지 못하고, 팔은 가급적 덜 쓰고 상체를 앞뒤로 움직여야 힘이 덜 든다고 덕팔이가 가르쳐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때 짐자전거가 공장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걸 한 손으로 들어서 머리위로 올리는 힘자랑을 들을 하고 있었다.
수동이는 먼저 있던 삼일섬유에서 해 보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들어 올렸다.
모두들 와 했다.
덩치도 조그만 게 한 번에 성공을 하니, 모두가 의외라고 생각했고, 힘이 세기로 소문난 덕팔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을 했다.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힘도 있어야 하지만 요령도 있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동이가 일을 끝내고 기숙사 방청소를 하고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덕팔이를 비롯한 몇 명이 술을 먹었는지 소주병을 들고 들어와
“야 김수동 너 방청소 했어 안 했어?”
“했는데.”
“어떻게 한 청소가 이 모양이야.”
하면서 손가락으로 창문틀을 문질러서 눈앞에 갔다 대더니 주먹이 날아왔다. 수동이는 바로 이마로 덕팔이의 얼굴을 받아 버렸다.
“아이쿠.”
하면서 덕팔이는 주저앉았고, 옆에 있던 몇 명이.
“이게 헤딩을 해.”
하면서 그중에 한명이 소주병으로 수동이의 머리를 치고, 나머지 서너 명이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면서 집단구타가 시작됐다.
수동이는 필사적으로 방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어 나와서 공장이층에 있는 사장 사택으로 도망을 쳐서.
“사장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자다가 나온 송사장은.
“왠 소란이냐.”
면서 가서 자라고 했다.
뒤 쫒아온 덕팔이 일행이.
“사장님 별거 아닙니다. 야, 가서 자자.”
하면서 수동이를 기숙사로 끌려가는데, 그때 밖에는 소란으로 인하여 수동이의 방 옆에서 살림을 하고 있던 조립부 석호의 형 만호가 나와서,
“야 너희들 웬 소란이야 조용히 해라.”
무슨 원수진 일도 아니고, 한 밤 중에 속옷 바람으로 생 나리를 쳤다.
수동이는 가방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이튿날 출근을 했다.
일이 이쯤 되고 나면 사장이 불렀던지 아니면 공장장 아니면 사무실에 김중환 실장이 불러서 징계를 하던지 아이들 이라고 생각하면 야단을 쳤을 텐데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그만큼 기름장이 일은 훅하면 폭력이 난무했고 기술자가 불렀는데 기계의 소음에 못 들으면 연장을 던지기도 하고 불려가 줄(야스리)자루에 도톨도톨한 부분으로 머리를 맞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점심때를 지났는데 함석호가.
“덕팔아 너 조각실 우리 형이 너 좀 오래”
해서 덕팔이가 조각실로 갔는데, 석호가 수동이에게
“너희들 어제 사우는 바람에 우리 형수 애 떨어져서 병원에 갔어, 너도 덕팔이 오면 가봐.”
조금 후 덕팔이가 머리를 문지르면서 와서 수동이에게.
“야 김수동 너 만호 형이 오래.”
수동이가 조각실에 가니.
“너희들 어제 저녁에 왜 싸워서 소란을 피웠어.
하면서 줄을 거꾸로 들고 손잡이의 울퉁불퉁한 부분으로 머리를 때렸다.
엄청 아팠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일로해서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두 대를 더 맞았는데 아픈 기억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가 봐.”
수동이는 죄송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조각실을 나와서 돌아왔다.
그리고 덕팔이와 악수를 하고 화해를 하고 어떻게 하니 하고 걱정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어렵게 임신을 했고 살림살이가 곤궁해 공장 이층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림을 하다가 방문을 걷어차는 소리에 아이가 떨어졌는데, 석호말로는 3대 부통령을 지낸 분이 자기 할아버지라고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수동이는 출장을 나가서 기계를 조립해주고 시운전까지 하는 일을 나가게 되었다.
삼사일 이면 원단을 짤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중화동에 있는 공장에 출장을 갔는데, 처음엔 부속을 한두 개 달아서 많은 시간을 워밍업을 시킨 후 또 달아야 하는데, 일의 욕심을 내서 다섯 개 까지 다는 바람에 모터에 무리가 와서 타고 말았고 모터를 바꾸어 달라고 회사에 요구를 할 때 다른 회사모터를 달라고 하라고 납품 처 사장에게 귀띔을 해서 눈 밖에 나고 말았다.
그리고 모터가 올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왔는데, 성북역으로 가는 중앙선 화물열차 철길위에 두 아이가 울고 있었고 기차의 기적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수동이가 철길위로 뛰어 올라가는데, 벌써 열차는 10여m 앞으로 오고 있었고 화물열차 기관사가 한 아이의 팔을 낚아챘고, 한 아이는 열차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는데, 열차는 2m정도 더 나가서 멈추었고, 기관사가 낚아챈 아이는 얼굴의 뺨 부분을 열차 범퍼에 부딪쳐 살이 눈 부위까지 벗겨지고 말았다.
기관사가 얼굴 닫친 아이를 들고 뛰어가고, 이 때 한 아이는 열차 밑에서 울면서 기어 나오는데 보니 두발목 부분에 살이 모두 벗겨지고 없었다.
그 때 어떤 남자가 허둥지둥 울면서 뛰어와 아이를 안고 가 버렸다.
화물열차는 그 자리에서 세 번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더니 떠났다.
몇 칠 후 송 공장장이 사근동에 사람을 구하니 그리로 가라면서, 추천해 주어서 그 집에 가게 되었다.
그 집의 부인이 평화시장 2층에 가계를 가지고 장사를 해서 사근동 집에서는 제품을 만드는데 2층에서는 환편기로 원단을 짜고 아래층에선 월남치마를 만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기사가 따로 없고. 집사처럼 일하는 부기사란 사람이 있는데 수동이 보다 한 살 어리고 수동이는 편직공으로 으로 온 것이었다.
몇 칠 후 아성에 있던 윤기사가 조시를 봐주러 왔는데, 윤기사는 한양대 섬유과를 나온 사람인대 아성섬유에 있을 때 잠시 쟈카드 드럼 디자인을 한 사람이어서 안면이 있어서 인사를 했더니 반가워했다.
32인치 12게이지 자카드 세 대를 일주일이 넘게 조시를 보아주고 6만원을 받고 돌아갔다.
한 보름쯤 지났는데, 쟈카드에 부착된 솔이 옆으로 돌아가서 드라이버로 풀어서 제자리로 고정을 시키는데 마침 사장이 올라와서 보게 되었다.
“감히 기술자도 아니 놈이 기계에 손을 대, 지금 뭐하는 거야,”
“솔이 옆으로 돌아가서 제자리로.”
“네가 왜 기계를 만져 건방지게 이게 얼마짜리 기계데 나가 당장 나가”
하며 뒤통수를 쳤다.
가방을 챙겨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계속 때리는 바람에 넘어져서 엄지손가락을 깨진 유리에 찔려서 피가 나왔고, 수동이는 옆에 있던 삽으로 위협을 하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와서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일을 한 대가를 못 받고 나온 게 억울했다.
그 길로 왕십리 소방서 옆에 있는 경찰서로 가서 정문에 있는 순경에게 이야기를 하니 요 옆에 있는 파출소로 가보라고 하여 파출소에 가서 사정이야기를 하니 오늘 한 건 걸렸구나 생각한 순경이
“뭐 그딴 놈이 다 있어,”
하면서 순찰차를 타고 가서 사장을 데려왔다.
그리고 수동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꿰매고 머리에 붕대를 감아서, 2주 진단서를 떼가 지고 오면서, 집에 연락을 해서 마침 올라와 있던 재덕과 정순이 오게 되었다.
수동이 생각으로는 월급만 받을 생각이었는데, 장사를 하던 사장부인 사장처남 까지 파출소로 달려 왔다.
사장 처남이 재덕에게 사과를 했다.
“제 매부가 성격이 급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얼마나 화가 나십니까?.”
정순이 한마디 했다
“어쩌면 애들 때려서 저 지경을 만들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면서 합의를 종용해 왔다.
순박하기 이를 때 없는 재덕은 정순과 수동이에게 오늘 쓴 병원비 월급 그리고 2주 동안 일을 못하는 동안의 품삯을 받기로 하고 순경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머리를 극적이며 좀 더 받아내지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순진한 재덕은 어떻게 비용을 부풀리는지 몰라서 사장처남과 이야기를 하면서 순경들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을 말라고 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하고 몇 칠 후 미아리에 있는 영일섬유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기계가 아홉 대로 사장은 동대문시장서 원단 장사를 하고 있었고, 직원은 10명이였다.
기사 한 명 부시가 한 명 검단사 한 명 검단을 배우며 점심을 해주는 아가씨 한 명 그리고 편직공은 수동이를 포함해 여섯 명이었다.
검단사 아가씨와 검단 수습 아가씨는 검단하는 방에서 먹고 자면서 지냈고 나머지는 모두 출퇴근을 했다.
부 기사 병조는 종암동에 집이 있는데, 노모를 모시고 살림을 하는데,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병조 보다 한 살 많은 허봉수는 상계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 퇴근을 하고, 편직공 임형순은 약수동 형네 집에서 출 퇴근을 했다.
처음 날 보니 형순이는 황산에 기계를 설치해 주러 갔을 때 본사람 이였다. 첫 주를 보내고 둘째 주에는 야근을 하는데, 11시에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에 라면을 먹고, 12시에 기계를 끄고 모두 한숨자자고 해서 눈을 붙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 기계를 돌리고. 여덟시에 주간 조와 교대를 하는 것 이었다.
사장이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다른 공장의 생산량과 비교를 해 보았는지 모르지만 야간에 무려 6시간을 기계를 세우다니 놀라울 다름이었다.
기사는 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부 기사가 알아서 다 하고 있었다.
기사는 출근을 해서 얼굴 한 번 보이고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았고, 어떤 때에는 종일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2주일에 한 번씩 빈 박스와 실을 감았던 보빙을 고물장사에게 팔아서 그날은 돼지고기 찌개를 끓여 먹었고 강냉이를 크게 한 봉지 주어서 먹으며 일을 했다.
야근을 하고 퇴근한 수동이는 다락방에서 한숨자고 옆방에 세 들어 사는 방옥의 방에 자주 들리게 되었고, 거기서 당 사주라는 책과 이름 짓는 법 관상에 관한 책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세워둬 먼지를 뒤집어쓰고 세워져 있던 32인치 10게이지 쟈카드싱카를 돌려야 한다며, 손을 보고 오랜만에 기사는 책상에 앉아서 견본으로 온 원단 무늬를 보고 모눈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병조는 아크릴 사를 감아야 해서 해사기를 손보고 쌓여있던 깡통에 녹을 벗겨내려고 탁상그라인더에 끼우는 와이어 브러시를 사왔다.
그런데 탁상그라인더 너트를 풀지 못해 쩔쩔 매고 있었다.
수동이가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풀게.”
하고 스패너를 들고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간단히 풀었다.
모두 어 하면서 감탄을 했는데 회전하는 기계는 회전 방향으로 풀어야 풀 수 있다.
만약 회전의 역방향으로 돌려서 풀게 한다면 너트가 풀리게 된다.
특히 그라인더 같은 것은 너트가 풀리면 사고가 나기 십상인 것이다.
수동이가 숭인동에 있을 때 경험한 적이 있어서 간단히 해결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저녁 오랜만에 쟈카드 핀을 꼽았고 다음날 견본품이 나온 것을 보니 많이 틀려져 있었다.
수동이가 잘못 나온 견본을 잘라서 퇴근 후 집에서 모눈종이를 사다가 그림을 완성시켜서 가지고 가니 마침 놀러 왔던 이기사 친구가
“이 사람이 그린게 제대로 그렸네.”
해서 다시 숫자를 적고 핀도 다시 꼽아서 견본을 짜서 기사가 시장에 가서 사장에게 보였더니 비 규칙적으로 그린 기사가 뽑은 견본이 더 낫다고 하여 다시 핀을 고처 꼽아서 짜기 시작했다.
해사 아가씨도 구해서 오고 본격적으로 자카드 싱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동이가 야간 조가 되어서 출근을 했더니 부기사가 하는 말이
“자카드 싱카에 모터가 타서 내일 고처야 하니까 오늘은 이렇게 스위치를 넣고 손으로 돌려주면 돌아가.”
하면서 시범을 보여 줬다.
수동이가 웃으며
“모터가 탄 게 아니고 퓨즈가 나갔구먼.”
하고 퓨즈 박스에 가서 퓨즈를 갈아 끼우고 스위치를 넣으니 잘 돌아 갔다. 모터는 단상모터와 삼상모터가 있는데, 쉽게 이야기해서 동력 전기가 들어와 있는 곳은 삼상, 가정용 전기가 들어와 있는 곳은 단상으로 보는데 단상은 처음 회전을 시작할 때 콘덴서[condenser]에 모아 두었던 전기를 회전 방향 쪽으로 전기를 더 보내 스타트를 시켜서 돌아가기 때문에 모터의 회전방향은 모터 내무에서 배선을 바꾸면 되고 에나멜 탄 냄새가 났으면 모터가 탄 걸로 보면 되지만 스타트 할 때 과부하가 걸려서 바로 회전을 못하고 냄새가 나면 바로 스위치를 끄고 콘덴서[condenser]만 갈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단상은 부하가 걸린 체 스타트를 하면 안 되고 모터가 회전력을 얻었을 때 부하를 걸어야 한다.
삼상은 우선 동력이라고 해서 전봇대에서 세 가닥의 전선이 들어 와 있다 그리고 삼상모터는 콘덴서[condenser]가 없고 퓨즈박스에 콘덴서 [condenser]가 붙어있다.
그리고 세 가닥의 전선이 모터에 연결 되는데, 선 두 개만 서로 바꾸면 회전 방향이 바뀌고 그중 하나의 퓨즈가 나가면 스타트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큼 부하가 걸려도 스타트가 된다.
이것은 아성섬유에 있을 때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조는 서울시장이 주례를 서는 합동결혼식을 장춘체육관에서 했다.
그 무렵 사장은 데트론(tetoron) 원사를 스트레치 가공을 해서 폴리에스터를 만드는 공장을 만들기 위하여 기계를 옆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스트레치 기계를 들여왔다.
그리고 기계를 설치와 시운전을 해서 넘겨줄 기사도 일주일 넘게 손을 보고 기사한명과 일을 하는 여공 두 명이 들어 와서 일을 하는데, 열에 민감해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습도계와 온도계를 놓고 온도 습도를 유지하며 문을 향상 닫아놓고 작업을 했다.
옆에는 휴지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 여자 탈의실이 편직실하고 붙어 있었는데 하루는 형순이 기계에 실을 끊어지고 말아서 이으러 올라갔다가 여공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게 되었고, 다음날 같이 엿 보면서 킥킥 거리다가 들켰는데 여공들이 박스로 막아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정자는 공장에 봉재사로 일을 나가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서너 살 더 먹은 보영이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영이네 집인 양평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보영이의 동생인 진수를 만나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사귀게 되었다.
수동이는 연애라면 연 짜도 못 꺼내게 해서 아예 꿈도 못 꾸는데 정자는 대담하게도 연애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수동이는 누르고 억제를 해서 사교성이 전혀 없고 재덕이나 정순이 말이라면 무조건 순응하는 엄친아 아니 아친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자는 가끔씩 보영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그 애는 논다하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야외전축을 가지고 와서 방안에서 틀어놓기도 했다.
얼마 후에 보니 방옥의 둘째 아들 정수도 야외전축을 사가지고 왔다.
그러나 수동이는 자신을 위해 옷 하나 양말 한 켤레도 직접 사지 않고 돈이란 돈은 몽땅 정순을 갖다 주었고 이발 목욕 비 그리고 경동극장에서 동시 상영하는 영화 두 편을 보는 것이 씀씀이의 전부였다.
그러던 수동이가 두 아가씨 중 한 아가씨에게 관심이 있어 말을 걸었더니 애인이 있는데, 군에 가 있다고 해서 그러면 언제 시간이 있으며 우리 집에 놀러가자고 하니 퇴근 무렵 순순히 따라와 옆방에 방옥에게 공짜로 점을 보게 되었다,
정순은 수동이가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와 혹시 사귀는 여자인가 하고 물었다.
수동이가 극구 부인하며 새로 공장시설을 넓혀서 들어온 아가씨 들이고 애인이 있다고 했다.
정순이 생각해 보니 정자도 연애를 하고 있고 해서 수동이도 얼른 짝을 채워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댓글 전 회의 명자 이야기가 재미 있었는데
다시 본 괘도로 올라온 것 같네요.
다시 재미있게 읽을게요.
아깝게 꺽힌 꽃을 뒤돌아 볼 겨를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묻튼 그시정 그렇게 꺽인 꽃은 별이 되어서 흐린날 안개비라도 내리는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