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세이] tvN 아침토크쇼 ‘브런치’ 가능성을 발견하다
처음엔 보지 않으려 했다. 케이블TV 사상 처음으로 아침 토크쇼를 방송한 tvN <브런치>(매주 월화 오전 10시/재방송 월화 오후 4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4일 첫 방송을 본 이후 현재 지상파 방송3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아침 프로그램과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다.
연예인 ‘모셔다 놓고’ 사생활 공개하는 방식의 정형화 된 틀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사회 평범한 여성들이 아니라 ‘잘 나가는 여성 출연자들’이라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특정 주제와 테마를 가지고 솔직한 토크를 하는 방식은 나름 참신했다. 이런 방식을 계속 유지하면 ‘이들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금기시 된 ‘어떤 것’을 이슈화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을 했다.
2회 ‘초대 손님’으로 나온 이재오 특임장관
그런데 첫 방송을 보면서 느낀 이런 참신함은 2회 출연자를 보면서 반감됐다. 이재오 특임장관 출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문화 감성지수를 한 단계 높인 고품격 수다를 추구한다’는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이 두 번째 출연자로 정치인을, 그것도 MB정부 실세 정치인을 ‘초대 손님’으로 모신다? 그것도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결국 이거였구나 싶었다. 1회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은 정치인을 은근슬쩍 비판한 것도, 초대 손님으로 박칼린을 초대한 것도 ‘첫 방송 손님끌기용’이구나 - 그런 생각을 했었다. 15일 방송된 ‘이재오 특임장관 편’을 보기 전까지는.
2회 ‘이재오 장관 편’ 방송을 보니 나의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방송인 백지연을 비롯해 배우 문정희, 변호사 임윤선 씨는 1회와 패널구성이 같았다. 그런데 탤런트 김여진이 2회 패널로 새롭게 등장했다. 김여진이 누군가.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과감히 발언하고 직접 몸으로 실천해 온 탤런트이자 배우 아닌가. 다수 언론이 침묵한 홍대 청소노동자 처우개선 문제에 있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배후세력’ 가운데 한 명 아닌가.
그런 ‘그녀’가 패널로 출연한다?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TV 앞에 앉았다. ‘그녀’가 실세 정치인 이재오 장관을 앞에 두고 어떤 얘기를 할까 - 적어도 난, 김여진이 출연을 승낙했다면 ‘신변잡담’ 따위의 하나마나 한 얘기는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이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이 땅의 언론인을 부끄럽게 만든 김여진
결론부터 말하면 15일 방송된 tvN <브런치>는 탤런트 김여진 덕분에(?) ‘관변방송’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패널들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겠다.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김여진의 역할이 그만큼 지대했다는 말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이재오 장관이 지하철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하는 것들이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진 것도 김여진이었고, 국회 미화원들이 좋아하는 정치인 1위로 이재오 장관이 ‘뽑힌’ 것을 거론하며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한 것도 김여진이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이재오 장관에게,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있는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계속 거론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 것도 김여진이었다.
최근 작고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 ‘상황’을 언급하며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걸 강조한 것도 김여진이었고, “(젊은 세대들이) 꿈을 낮추고, 농촌이나 중소기업으로 가야 한다”는 이재오 장관의 발언으로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화가 났을 거라는 점을 지적한 것 역시 김여진이었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보다 더 ‘시사적인’ tvN ‘브런치’
“(젊은층들이) 꿈을 낮추는 게 아니라 더 높여야 한다”는, ‘정상적인 사회’라면 당연한 이 말을 이재오 장관에게 ‘충고’한 것도 배우이자 탤런트인 김여진이었다.
김여진이 tvN <브런치>에서 언급한 이런 내용들 - 시사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부끄럽지만 2011년 한국 언론의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아침 토크쇼에서, 그것도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MB정부 실세 이재오 장관을 ‘초대’해서, 어떤 시사프로그램 못지 않은 ‘속이 꽉 찬 토크’를 선보였다. 언론인이 아닌 배우이자 탤런트인 김여진에 의해서 말이다.
tvN 아침토크쇼 <브런치>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프로그램이 다소 산만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단점’은 프로그램 정체성을 흔들 정도의 결점은 아니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니 모 방송사에서 박칼린의 토크쇼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던데, 갑자기 김여진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템 가져갈 방송사 PD 어디 없을까.
<사진(위)=한국일보 2011년 2월15일 33면>
<사진(중간)=2월 15일 방송된 tvN '브런치' ⓒ 이재오 장관 홈페이지>
<사진(아래)=김여진 블로그 화면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