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둑길에서 들녘으로
팔월 초순 둘째 목요일이다. 어제는 한낮 기온이 꽤 높고 소나기 예보가 있어도 강변으로 산책을 나서봤다. 연일 마을 도서관에 머문 공간에 변화를 가져왔다. 배낭엔 접이 우산을 챙겨 비가 오면 꺼내 펼칠 요량이었는데 끝내 쓸모가 없었다. 가술에서 유등 강둑으로 나가니 자전거길 가로수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자외선은 피할 수 있었다. 둑길을 따라 한림정역까지 걸었다.
유등 배수장을 지날 즈음 맞은편에서 내 나이 또래 한 사내를 만났다. 수원에 산다는 그는 사흘 전 다대포에서 걷기 시작해 화명과 김해에서 하룻밤씩 묶고 어제 아침은 생림 마사마을에서 길을 나섰다고 했다. 아마 어제 오후 본포를 거쳐 북면 온천장에서 여독을 풀었지 싶다. 안동댐까지 걸어 새재를 넘어가 남한강 줄기를 따라 인천 아라 뱃길에 닿으면 추석 전후가 되지 않을까.
새날이 밝아온 목요일 새벽 내 자연학교 등굣길은 팔룡동 창원역 앞으로 나가질 않고 원이대로로 진출했다. 간선 급행버스 정류소에서 불모산동을 출발해 본포를 둘러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에서 창원대로로 잠시 나갔다가 명곡교차로로 되돌아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났다.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화목과 동전을 거쳐 용산마을에 이르러 내렸다.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가 수문으로 연결된 둑에서 용산마을로 나갔다.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수면 위 넓은 잎을 펼쳐 자란 연이 분홍 꽃잎을 펼쳐 화사했다. 한두 송이가 아닌 수십 송이 무리 지어 피어나 장엄한 불국 정토를 연상하게 했다. 저수지 가장자리 갯버들은 단감단지와 맞닿아 숲을 이루었다. 목책 테크를 따라 걸으니 맞은편에 노부부가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저수지 둑길을 따라 배수문에 이르니 한 처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갓길로 피했더니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와 내외하듯 멀리한 내가 오히려 머쓱했다. 새벽이다시피 이른 시각 시내 어디쯤에서 차를 몰아와 탐조관 근처 주차 시켜 놓고 둑길을 산책하고 되돌아가는 동선이 아닐까 싶었다. 새벽 운동을 수영장이나 헬스장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게 보내는 처자의 적극성이 돋보였다.
아득한 저수지 둑길을 걸어 낙조대 쉼터에 이르러 둑에서 내려서 들녘으로 향했다. 넓디넓은 들판은 벼들이 한창 자랐는데 가까이 다가간 일부 구역은 잡초가 무성해 폐농이다시피 방치된 논도 있었다. 모를 낸 이후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는지 피를 비롯한 잡초가 벼보다 더 무성했다. 같은 벼 경작지라도 주인이 돌보는 논과 그렇지 않은 논은 커다란 차가 있어 결실도 다르지 싶었다.
사방이 논으로만 펼쳐져 어느 마을에서 사는지 모를 한 아낙이 자전거를 타고 와 세워두고 논 가운데서 김을 매었다. 번지는 햇살에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무성한 벼 이랑을 헤쳐 피를 비롯해 웃자란 잡초를 뽑아 한 움큼 쥐고는 논 바깥으로 던졌다. 벼와 섞여 경쟁하듯 자라는 잡초를 지금 제압하지 않으면 추수에 알곡이 적음을 아는 분이었다.
들녘 들길을 걸어 백양마을과 이어지는 찻길에서 신동마을 앞으로 갔다. 한 농부는 비닐하우스 곁에서 농약을 뿌릴 채비였는데 그가 가꾸는 작물은 멜론으로 지주를 세운 넝쿨에 자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신동마을 농가와 제법 떨어진 논 가운데 노거수 굴참나무 당산목이 우뚝했다. 장등마을을 지난 가술 거리에 닿아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얼음 커피로 땀을 식혔다.
카페에서 나와 안전지킴이 동료들을 만나 아침나절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고는 마을 도서관을 찾았다. 어제는 둑길 산책으로 하루 빠졌더니 사서와 평생학습관 센터장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인가 은근히 걱정되더라 했다. 같은 공간에서 머물며 익혀둔 얼굴이라 사전 통보 없이 자리를 비웠더니 가족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점심 식후 해가 기울도록 도서관에서 지내다 귀가했다. 2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