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 침묵이 있는지 두드려 보려고
비가 내린다
땅은, 지렁이가 열어주는 문
지붕은 잠을 여는 문
창문은, 두드리지 못하고
문 앞에 서 있다 되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골목으로 보여준다 흐르는 것
사라지는 것
빗소리 속에 침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침묵의 얼굴이 빗소리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불이 켜진다 가로등의 얼굴이
타고 있는데
어디로 갔을까, 가벼움이 날개인 먼지들
비가 오면
빗방울의 얼굴에서 눈코입이 되는 먼지들
어디로 가고
모든 얼굴이 사라진 밤을 기억하려고 비가 투명하다는 것을
침묵이 투명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얼굴의 불을 끄지 못한다
- 웹진〈같이 가는 기분〉VOL.16/2024 겨울호 / 21인의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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