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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 사랑하기 (잠2-127)
2024년 6월16일 (주일)
찬양 : 전능왕 오셔서
본문 : 잠25:18-20절
☞ https://youtu.be/GzI1yxhVcQY?si=T81o7ZMfNZ7Yr2Gr
거룩한 주일 아침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어 이제는 밤에도 더위를 느끼고 있다. 이런 날씨에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심도 감사이며, 또 우리의 삶에 주인되신 주님을 바라볼 믿음을 주심에 감사하다.
오늘은 예배 후 바로 제주도에서 있을 강사수련회를 위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 강사님들에게 회비를 받아 강사수련회를 하게 되어 참으로 죄송하다. 자비량으로 섬겨주신 강사님들을 위로하고 새로움을 입기 위해 계획된 수련회인데 강사님들의 회비를 받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다니 참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주님 ~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며, 또 참여하지 못하시면서도 후원까지 해 주시는 강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주님 축복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죄로 타락한 세상에 나타나는 삶의 어려움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역으로 말씀한다. 잠25:18-20절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삶은 곧 바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연결될 때 바른 신앙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정리하면서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으로 정리하여 말씀해 주셨다.
본문은 죄로 타락한 세상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웃과의 참된 관계는 거짓 증거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거짓 증거를 세 가지를 사용하여 그 위험성을 표현하고 있다.
<방망이, 칼, 뾰족한 화살>
방망이는 거짓 증거가 주는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고통과 피해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거짓말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평판과 삶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칼은 거짓말이 상대방의 명예를 찢어버리고 날카롭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음을 나타낸다.
뽀족한 화살은 화살이 멀리 날아가듯이 거짓말이 멀리 퍼져나가며, 오랜 시간 동안 상대방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거짓 증거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경고하며 이웃을 향해 거짓 증거하지 않아야 함을 말씀한다.
두 번째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웃관계에서 진실로 신뢰를 주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있듯 사람이 어려울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을 가진다.
오늘 본문 19절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비유적으로 <부러진 이, 위골된 발>로 표현하고 있다.
이가 부러지면 씹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고,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하여 고통을 당한다. 환난 날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이웃 관계는 바로 상대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신뢰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이웃이 되어주는 것임을 말씀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이라는 것이며, 건강한 이웃 관계의 핵심 요소다.
위골된 발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 빨리 걸어야 하는데 발이 위골되어 즉 탈구된 상태라면 발을 딛는 순간이 고통이고 걸을 수 없으니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힘겨움을 주는 순간이 된다. 이때 뛸 수 있는 발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주님 ~ 저와 라마나욧선교회가 환난 날에 작은교회에 뛸 수 있는 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아무리 해도 환난 날에 의뢰할 만한 힘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환난 날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산성이 되시며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시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진실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해 중보하며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간구로 기도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작은 힘이 되어주는 자가 되어야 함을 배운다. 주님 ~
세 번째는 이웃관계에서 이웃을 상황을 배려하는 삶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임을 말씀한다.
이웃이 어려움을 겪을 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래하는 것을 본문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다>고 비유한다.
추운 날에 옷을 벗으면 얼마나 더 추운가? 예전 군에서 추운 날 옷을 벗고 찬물에 들어가 기합받으며 모든 훈련병이 교관에게 항복한 기억이 난다. 추운 날 옷을 벗기는 것 같은 아픔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옆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다고도 한다. 소다에 식초를 부으면 강력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많은 거품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예측하지 못한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말씀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함을 말씀한다.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적절한 위로와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 건강한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침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세상 이웃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번째로 거짓 증거가 아닌 정직한 삶이어야 하고, 덕이 담긴 언어로 상대를 축복하는 삶이다. 두 번째는 환난 당한 자에게 신뢰를 주어 기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참된 피난처이신 주님과 연결시키는 삶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음이 상한 자들을 형편을 잘 살펴서 적절한 위로가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이런 이웃이 될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시며, 친구가 되시는 주님이 계실 때 그분 안에서 우리는 소중한 친구로 이웃을 대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오늘 거룩한 주일에 더욱 주님앞으로 나아간다. 주님, 오늘도 내 안에 주님을 채워져 주님과 같은 삶으로 이웃에게 주님을 보여주는 삶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사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진짜 목사가 세워지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충주 라마나욧이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
첫댓글 아멘 🙏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믿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품으며 주님의 위로를 나누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우리 하나님 아버ㅣ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