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분중에 자신이 군대생활을 할 때, 적은 월급으로 한달에 두세권의 책을 사서 보았던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장길산'이라고 합니다.
그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 '장길산'이 홍길동과 임꺽정을 잇는 의적소설로 조선후기 사회의 세태와 풍속, 낡은 사회를 개혁하려는 민중들의 절절한 염원을 실감있게 그려낸 대하소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장길산'의 저자인 황석영씨의 다른 소설인 '손님'을 오늘 말씀 드릴까 합니다.
황석영씨는 잘 아시겠지만 앞서의 '장길산'과 예전에 '객지' '삼포가는 길' '무기의 그늘' 최근에는 '오래된 정원'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인데, 1989년에 방북하였다가 5년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손님'이라는 소설도 어쩌면 작가가 북한을 가지 않았다면 아마 나오지 못하였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것은 이 작품의 배경과 주제 자체가, 남북간의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하나의 부산물 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분단이 만들어지기까지 우리가 많이 고민하였고 실제로 싸워왔던 이념적인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요섭은 목사입니다.
개신교가 조선에 들어와서 얼마되지 않아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신앙을 받아들인 선조의 영향으로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 되었는데, 결국 자신은 미국에 와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고, 형 요한은 교회 장로이기도 합니다.
두 형제는 고향이 황해도로 전쟁때 월남하였는데 차츰 나이도 들면서 고향을 생각하다가 '재외동포 고향방문단'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향을 가기 사흘전 형이 죽고 그때쯤부터 요섭은 꿈같은-생시같은 귀신들을 보게 되는데, 그 귀신들은 옛날에 고향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들도 있고, 동네 어른들도 가끔씩 보이는데, 그 꿈이 하나의 줄거리가 조금씩 연결될것도 같지만 단편적인 모습들로 인해서 요섭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와중에 형이 죽은것인데요,
요섭이 북한을 방문할 때 귀신이 된 형은 동생에게 다가가 나도 같이 고향에 가야겠다고 하며 동생의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물론 이 이야기도 꿈입니다.
이 소설의 특징이 이러한 현실과 꿈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꿈을 통해서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아무튼 요섭은 고향엘 가게되고 같이 간 귀신이 된 형과 또 고향에서 만난 당시 같이 살았던 동네 친구들과 고향 마을에서 먼저 죽은 마을 사람들이 요섭에게 모두 모여 옛날에 있었던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줄거리가 이어 집니다.
여기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이 죽음도 보통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고 이 죽임을 당한 경우가 이데올로기와의 충돌 때문인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을 맞고, 해방후 옛 지주였던 사람들이 또 다시 그 지방의 유지를 자처하고, 그리고 맑스주의가 들어오면서 그 기득권세력을 허물어 가는 과정에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충돌이 생기게 되는데요,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나타납니다.
요섭의 형 요한은 그 과정에서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을 철사줄로 묶고,
몽둥이로, 또 총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결국 그 한이 맺힌 사람들이 이제 한자리에 모여 서로가 자신의 한을 이야기하고 선도 악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는데요,
이 작품은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되어 있는데
지노귀굿은 망자(亡者)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형식의 '넋굿'으로 지방에 따라 진오귀, 오구, 지노귀 등으로 불립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것이 작가의 본뜻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앞서의 '장길산'과 같이 독자를 끌어 당기는 그 흡인력이 상당한 소설로 보입니다.
또한 글에서 나오는 사투리가 그냥 눈으로 읽기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정도로 색다른 느낌으 주기도 하였습니다.
다소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이지만 황석영 이라는 작가의 그 이름만으로도 한번은 읽어 봄직한 책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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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손님'은 천연두를 서병(西病), 그러니까 서양병으로 생각하고
이를 막아내고자 했던 중세의 조선 민중들이 '마마'또는 '손님'이라 부른것에 착안해서 작가는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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