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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追跡者)-08
오후 정각 6 시에 러만 잉거스터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는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다른 일을 볼 사람이 아닌 걸로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는 RCMP 고위층 출신이며 전형적인 캐나다 신사로 믿고 있었다. 약속을 지킬 수 없어 미안하다는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나와의 약속을 뭉개버린 것이다. 왜? 그가 그런 행동을 나에게 했을까?
머리맡에 둔 휴대폰의 벨 소리에 놀라 깬 것은10시가 좀 넘어서였다. 에드였다.
“제임스. 아직도 자면 어떻게 해.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아~ 에드. 벌써 도착한 건가? 어딘가 그곳은. 공항?”
“아니. 지금 막 집에 도착하였네. 아내가 마중와서 편안하게 잘 도착하였네. 일어나는 대로 집으로 와주겠나.”
“미안하네. 마중을 못해서.”
“그런 소리 말게. 아침에 도착이니 아내가 마중 나오기로 하였잖은가. 잊어버리게.”
에드는 사람 좋은 목소리로 쾌활하게 말하였다. 잠시 후 나는 에드와 거실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그동안 획득한 이 일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였다. 한국에서 에드가 얻은 정보는 특별한 것은 없었으며, 현재 여동생 박인서가 살아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 그 정보로 추정하면, 시카고에서 캐나다로 넘어온 박인혜가 동생 박인서의 이름과 주소를 신문 끝부분에 연필로 써 두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나에게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일 수가 있었다. 나는 에드가 여행의 피곤으로 쉬겠다는 것을 뒤로하고 다시 잉거스터를 만나기 위하여 다운 타운으로 갔다. 내가 에드를 떠난 시각은 오전 11 시 10 분이었다. 그리고 잉거스터와 만나 구소련 KGB의 요원들이 최근에 캐나다에서 재결성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러나 그와의 이야기 중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나도 그에게 YEKEJ 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다시 만날 것으로 짐작하였다. 잉거스터와 헤어져 주차장으로 가는 중에 폴리스라고 영어로 자동차 바디 옆 부분에 인쇄되지않은 언더커버 경찰차인 검정색 포드 리전드가 입구에 서 있는 것에 관심이 갔다. 그들은 대부분을 작전 외에는 외곽지대에서 불심 검문하거나 급습하기 위하여 동원되는데 이곳에서 보았다. 그때 휴대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시각은 오후 1 시 20 분 이었다.
6.
“헬로우~”
나는 받았지만, 예감이 안 좋았다. 영어 발음이 시작과 함께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오’ 하고
표를 내었다. 에드였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과 놀람으로 떨렸다.
“제임스. 나 에드야. 와이프가 죽었어. 애들 엄마가 죽었단 말일세.”
“뭐라고! 에드. 그 말 사실이야. 어디에서 어떻게 언제?”
“좀 전에 내가 지하 계단에서 발견했네. 살해된 것 같네. 빨리 좀 와주게.”
“에드. 경찰에 신고는 했고? 주변을 흩으려 놓지는 않았겠지. 현장을 잘 봐두게. 내 곧 달려갈 테니”
“음. 911 에는 신고했네. 나도 지금 정신이 없고 죽을 지경이네. 빨리 와주게.”
그는 울음으로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았다. 놀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면, 그들은 잘못한 것이다. 그들 중 누가 지시했는지는 아직 정확지 않으나 분명 그들은 일을 잘못 시작한 거다. 나를 찾아 왔었고, 엘리자벳을 상해하였고 마침내 내 친구를 죽였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들이 잘못 시작한것에 대하여 처절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나는 바로 앞 길거리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 샾 앞의 파티오에 손님들을 위하여 놓여 있는 빈 의자에 바로 앉았다. 두 손을 무릎에 놓고 힘을 뺏다. 머리를 바로 들고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서너 번 한 후 두 손을 깍지끼고 아랫배에 올려놓았다. 가쁜 숨이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생각을 해야 한다. 정리를 해야 한다. 스스로 복 바쳐 오르는 감정을 달랬다. 지금부터 그동안 닦은 내공을 정리하여 사용 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함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실행을 시작하였다. 야수의 본능이 냉정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엘리자벳을 상해하고 조경순을 살해했어야 할 이유와 가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가치가 그곳에서 발견된 마미로부터 다시 생성된 것이다. 나를 찾아온 그들을 움직이는 상부조직이 활동을 시작한 거다. 뭔가 조급해지기 시작하였음 이리라. 잉거스터가 말한 구 KGB 의 재구성 움직임 그리고 발리듀에 홀스를 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듀발리에의 정체가 구 KGB 요원이었으며 그들은 그를 추적하고 있었다는 추리에 다다르자 나는 놀랐다. 그들의 중간에 듀발리에가, 죽은 듀발리에가 있으며 그의 아들인 역시 홀스 스탁톤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사르지에 홀스가 살던 집이 마미의 발견으로 그 핵심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조직 이탈자에 대한 단순 응징으로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정보 누출 방지라 하더라도 너무 늦었다. 잉거스터의 정보는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금이 필요하다.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서는 자체조달 자금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엘리자벳이 시작부터 바로 옆집이었고 조경순이 그 집 지하실에서 살해되었다. 그렇다면 그 집 어딘가에 그들이 무엇인가 찾으려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에드의 또 다른 가족과 엘리자벳이 위험하다.
#1123. 내가 살고 있는 콘도미니엄 방 번호이다. 집은 늘 같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문 뒤에 걸려있는 국방색 필드파커를 입고 검정색 락포드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다. 밑창이 강력 압축된 요철이 뚜렷하고 미끄럼 방지가되어 있는 검정색 천연고무로 되었다. 가볍고 앞부분은 안쪽에 강철 안전판이 대어져 있다. 첼시부츠와는 또 다른 안정감이 있어서 좋아하며 안쪽의 지퍼만 올렸다 내렸다 하면 신고 벗기가 간단하였다. 옷장 위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내어 그 속에서 7 개의 단도를 꺼냈다. 문 뒤에 달아 둔 과녁을 겨냥하여 심호흡을 한 후 그 중 하나를 던졌다. 녹슬지않은 솜씨는 정확하게 검은색 원안에 꽂혔다. 뒷 트렁크를 열고 5 센티의 날을 가진 단도 6 개와 군용 대검 한 개를 검은 비닐에 싸서 자동차 트렁크 밑바닥 커버를 들고는 아래에 숨겼다. 과녁에 꽂혀 있던 다른 1 개의 단검은 가죽 케이스와 함께 왼쪽 발목에 묶어 꼽았다. 바지를 내리니 특별히 표나지 않았다. 준비를 마치고 말리부에 올라 시동을 걸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DVP(돈벨리 파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돈벨리 계곡은 이미 단풍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흐린 날씨에 계곡 양옆으로 짙게 물든 그것들은 핏빛 같았다. DVP 의 남쪽 끝 온타리오 호수와 맞닿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서쪽으로 가디너 익스프레스를 탔을 때는 이미 출근 러시아워 시간이 지나 한가하였다. 에드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은 지 10 분 지났지만, 마음은 이미 차분해졌다. 그러나 전의가 불같이 타오름을 느꼈다. 도착하여 에드의 집 건너편에 차를 주차하였을 때는 이미 경찰 가드라인 테이프가 집 주변을 둘러 처져 있었다. 릭 경감과 에드가 포치에서 대화를 나누다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나에게로 왔다. 나는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서 그들과 만났다. 에드는 나를 보자 눈물이 글썽하였으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릭 경감의 시선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수줍은 듯 웃고 있었지만 눈은 날카로웠다. 그는 눈인사를 한 후 곧 돌아서 집 뒤를 돌아 사라졌다. 나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지를 잠시 고민하였다. 적이 될 건가 아니면 아군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그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이 보이는 옅은 황색 얼굴에 무표정이었다. 그를 보고 있는 내 눈에 거실의 창가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한 개의 시선이 띄었다. 그는 아크샤였다. OPP 수사관이다.
“제임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에드는 채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슬프게 울었다. 그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심장이 발기 찢어지는 아픔으로 울었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산 사람을 떠나 보내도 죽을 것처럼 아팠는데, 이제 영 영 못 보게 될 사람의 죽음을 목도한 지아비가 목 놓아 우는데 감히 무슨 말로 위로한단 말인가. 에드의 울음에 난처해져서 물러서 있던 릭 경감이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표정은 난감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잔디를 내려다보며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끌었다. 그는 나무 둥지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른팔을 그에게 잡힌 채 그와 보조를 맞추었다. 그의 덩치에 비하여 그는 가볍게 내 팔을 잡았다는 것은 악의가 없음을 뜻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렇다면 그는 나에게 뭔가를 의논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는 백 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그의 체구를 겨우 나무에 한 손을 기대어 중심을 잡았다. 나는 아직도 이런 경찰이 캐나다에 있는가 하고 헛웃음을 속으로 지었다. 우리는 그 접촉으로 인하여 우호적이 되었다. 에드는 조경순이 아내라서 청천벽력같이 놀라고 가슴을 지어 뜯는듯한 아픔을 느끼고 있지만, 나는 황당하였다. 예상한 위험이 조경순의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아이들을 납치할 수도 있겠다 짐작하였었다.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그렇게 말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경순은 죽었다. 어서 지하실로 가서 조경순의 죽음을 확인하여야 하는데, 릭 경감은 침울한 채 나를 잡고 있다. 그는 집을 등지고 나무기둥에 기대어 섰다. 내가 집 안 창가를 보려면 머리를 좌측으로 혹은 우측으로 움직여야 볼 수 있는, 릭 경감의 그늘에 숨듯이 하여 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한 개비를 나에게 권했다. 드 모리에였다. 나는 피러앤잭슨을 피운다. 그러나 그 때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아 맑은 하늘에 뿜어 낼 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하여야 한다. 나는 아직 그에게 먼저 말하여야 할 정도로 친근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제임스. 내가 당신을 믿어도 좋겠소?”
그는 엷은 미소를 띤 채 담배 연기를 허공에 천천히 뱉어내며 저음으로 물었다. 수사관이 이렇게 물어 올 경우는 추리의 장벽에 막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이나 혹은 수사상 자기편을 끌어들여야 할 상황에 봉착했을 때이다. 나는 그의 진의를 더 파악해야 할 입장이다. 서로 내공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릭. 당신이 나를 믿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도 좋겠소?”
나는 다시 물었다. 그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하여서 이다.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이 사건 접근을 막아야 합니다. 이 사건은 간단한 경우의 사건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나는 한국말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구성 환경이 한국말로 덮혀져 있오. 나는 누군가 한국말을 하는 협조자가 필요하오. 당신의 정체는 알려진 몇 개 항 밖에는 없는 걸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무슨 이유로 이 일에 가담되어 있는지 그것도 알아야 하오. 자. 숨김없이 나에게 말하시오. 서로 협조할 것인가? 아니면 이 일에서 발을 꺼내 당신 할 일로 돌아갈 것인지 당신의 의도를 말하시오. 우린 지금 곧 살인 현장에 들어가야 하며 그 전에 당신도 함께 할 것인지 결정도 해야 한단 말이오. 내가 왜 이런 물음을 당신에게 주는지 이해하겠소?”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빠르게 말하였다. 말을 다 마치자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담배를 입에 물고 그다지 맑지 못한 눈동자를 가진 눈을 내게 향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고개를 내밀어 나무 기둥을 벗어나 집안의 창가를 봤다. 아크샤 수사관이 아직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두 팔을 벌려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대편에 뭔가를 사정하고 있는 것 같았을 것이다.
“릭. 에드에 의하면, 이 사건에 대한 내 사건 의뢰인이 살해되었소. 지금 이곳 그녀의 집에서. 그리고 이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마미의 어머니가 한국사람인 것이 거의 확실하오. 또한, 그 어머니가 내 혈육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소. 당신이 한국사람의 정과 한을 어떻게 알겠오. 나도 당신에게 그것들을 이해시키려고 하지는 않겠오.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여 명백하게 밝혀야 할 운명을 받기로 하였오. 다만, 당신을 내가 믿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말하기가 어렵소.”
나는 말을 마치고 움직이려 하였다. 사건현장을 보는 것이 더 시급하였다.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제임스! 나는 당신에 대한 한국 육군에서의 기록을 캐나다 탐정 학교(Canada Private Detective Institute)로 부터 입수하여 읽었소. 법학도 공부하였더군요. 당신이…”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원래부터 스스로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발가벗긴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은 누가 적이 될지 동지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모르고 상대는알고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어차피 알고 있다면 더 생각나지 않도록 말을 막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리라.
“릭. 지금 우리는 현장을 확인하는것이 우선이오. 다음 기회를 만듭시다.”
“좋소. 들어가 보시요. 지금 현장 감식반과 조사반이 우글거려서 들어가 봐야 쓸 만한 것들을 따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요.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오.”
릭은 포기한 듯 길을 비켜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밖에서 하우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두사람의 경관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싸인이었다. 나는 입구를 향하여 걸으며 창문을 봤다. 아크샤가 막 창문을 떠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이야기 내용을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지난번에는 없었던 훅하며 호흡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 중에 퍼져 있는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피 냄새. 그것들에 역하지도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다. 피냄새는 퀘퀘한 카펫의 먼지냄새와 섞여 계단에서 부터 꽉 막힌 지하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폭풍지뢰의 파편이 관통한 다리에서 흐르는 젊은 병사의 피 냄새와는 또 달랐다. OPP 라고 형광색 페인트로 등에 인쇄한 재킷을 입은 조사반원 두 명이 시체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같은 복장의 다른 두 사람은 지문을 찾기 위해 계단의 손잡이와 노래방 기기 등을 살피고 있었다. 아크샤 수사관은 시체의 머리부분 옆에 서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나를 고개를 들어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