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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다녔다.
일주일 쯤 다니자 정순이 이젠 그만 오거라 해서 인사를 그만 다니게 되었다.
야근을 하는 날 아침에 물골안으로 가서 혼인 신고를 하러 갔다.
운수리에 내려서 면사무소에서 혼인 신고서를 받아서 쓰는데 본관 란에 務安 이름 란에 朴英子 라고 썼다.
혼인 신고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방기환내 집터를 구경을 했다.
이 집은 친일파 방기환내 집터로 후일 기도교 단체에서 구입을 해서 캠프장으로 쓰고 있는 곳인데 정원이 예뻐서 볼만 했다.
그리고 수동이는 얼마 후 퇴근을 하다가 병조내 집에서 장기를 두다가 집에 늦게 도착 했다.
그렇게 첫 부부싸움도 이었다.
이어서 진승이가 마장동 터미널 삼층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진승이 결혼식 사회는 중학교 동창이 순익이가 보았다.
진승이는 중학교를 나오고 사교성이 높아서 많은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야간 근무 중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라면을 들고서 20분을 걸어서 집으로 와서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공장으로 가서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였다.
그리고 명옥이는 내촌에서 월곡동 정능천 부근에 셋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딸 효순이는 경자가 다니는 공민학교에 그리고 상묵이와 광묵이는 숭례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재순은 월곡아파트를 팔고 홍능 앞에 주택을 사서 이사를 했다.
이는 재순의 남편 교현이 개인택시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여축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어서 정순도 아파트를 팔고 재순의 집에서 가까운 쪽에 허름하지만 방의 수요가 많은 집을 샀다.
재덕과 정순도 수동이 결혼식 때 영동이 에게 빌린 오만 원을 갚으려고 궁리 끝에 집을 내놓았는데 바로 팔려서 팔고 홍능에 낡은 주택을 계약하고 이사를 했다.
방이 아래층에 세게 위층에 하나 여서 두 개를 전세를 안고 샀다.
이는 전세를 끼고 금액이 많은 것을 사는 지렛대 효과를 노린 선택으로 탁월한 선택으로 그렇게 함으로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빚도 못 갚고 정자를 시집보내기 위해 든 계돈 밀린 것 밖에 해결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재덕 외에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순이 재순의 동서와 부동산을 하겠다고 세 여인이 재순의 동서 집 앞에 모여앉아서 손님을 기다렸으나 오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영린이 수동이가 근무 나간 사이에 술에 취한 체 찾아와서 영자가 놀라 명옥이를 데리고 와 보니 가고 없었다.
그렇게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수동이는 작업 현장에서 누군가 벗어놓은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고 나서 사타구니 부근이 가려워 긁었더니 빨개지고 작은 물집이 생겼다.
처음에 약국에서 약을 사다 발랐는데 낳지를 않아서 다시 병원에 가서 자외선 치료도 밭아보았지만 낳지를 않았다.
그리고 여름휴가 되었다.
수동이는 영자와 같이 반계리를 찾았다.
진이 반색을 하며 맞아 드리고 닭을 한 마리 잡았다.
임신 중인 영자는 동내에 돌아다니며 울타리 너머로 늘어진 막 익기 시작하는 오야를 따 먹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강가에 가서 햇볕에 다리를 벌리고 태워도 보고 영자가 진에게 애기해서 천복이 가죽나무 삶은 물로 씻어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자 문둥이 촌에서 나왔다는 하얀 알약을 먹고 가루를 내어 발라도 보았다.
그렇게 정신을 빼놓고 서울로 올라 왔다.
그리고 쉬는 날 바닷물에 담그면 나을 수 있을까? 하여 인천 송도에 가서 해수욕을 했지만 낳지를 않았다.
직장 동료가 더위를 먹어서 영자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서 즙을 짜서 주기도 했다.
영자는 처음으로 시집을 와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차례 상에 올릴 음식은 어릴 적 큰집에서 엄마와 큰엄마가 하는 것을 본 것이 전부여서 두려웠다.
그나마 정순은 말로 이것저것 시켜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나마 시누이 들은 작당을 했는지 발탄강아지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몇 가지를 했는데, 정순과 고종사촌 언니인 명옥이 술이 얼큰해 가지고,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나타나서 술상을 까지 봐 오라고 했다.
언니라는 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안 돼.
술상을 차려다 주니 둘이서 술이 취해서 횡설 수설 하면서 술을 주고받고 하였다.
그러더니 둘이 서로 욕을 해 데더니 옆에서 송편을 빚고 있는 영자 쪽으로 명옥이가 술상을 엎고 나갔다.
급히 엎어진 술상을 치우고 송편을 빚었다.
그렇게 추석 전전날부터 준비를 해서 추석전날 재덕도 수동이도 쉬기 시작 했고, 추석음식을 다 하고, 수동이와 같이 집으로 왔더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튿날 서툴러 아침 일찍 내려가 다시 차례준비를 해서 차례를 지내고 나서 아침상을 보았다.
아침을 먹고 무거운 몸을 끌고 설거지를 했다.
재덕은 시집오기 전엔 영자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정자한테 네 새언니 설거지하고 있지 않니 네가 좀 도와라 하더니 이번엔 아무 소리가 없다.
점심 조금 전에 진수가 과일과 인삼주 한 병을 사가지고 왔다.
정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수의 실망한 눈빛이 역력 했다.
추석이 지나고, 수동이는 숭인동에 들렸다.
영덕이 반색을 하며 맞았다.
실상은 이번 겨울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 특별히 디자인을 바꿀 만큼 뾰족한 아이디어도 없고 해서 해마다 잘나가는 바이어스 무늬를 짜야 하겠는데, 사람도 그렇고 더구나 다이마루를 놓고 짜던 기계실이 소방도로로 나가는 바람에 놓고 짤만한 장소가 없고, 여기저기 알아봤으나 마땅치가 않아서 고민하다가 대안으로 수동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계를 빌려 주고 한 파운드 당 120원을 줄 태니 해보겠냐고 했다.
수동이가 수락을 하고 집으로 와서 영자에게 말을 하니 결혼 전 친정에 맡겨둔 돈이 있으니 가져다 공장세를 얻자고 해서 영자는 친정에 편지를 써서 보증금으로 쓸 6만 원을 영철이 가지고 와서 공장을 아파트상가 지하를 얻었다.
그리고 영덕이 사람을 사서 기계를 옮겨왔다,
밤늦도록 기계를 설치를 하고, 실을 감고해서 물건을 짜대기 시작할 무렵 양자내서 방을 다 쓴다고 해서 방을 얻으러 다닌 끝에 종점에서 조금 떨어진 세사는 사람들이 많은 열두 가구 집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영자와 수동이가 같이 일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
무채김치를 해서 계란을 깨 넣고 비벼먹기도 했다.
그러다 출산일이 다가와서 대둔리 사는 열여덟 살 먹은 아이를 허진이 데리고, 와서 일을 하게하고 허진은 영자가 아이를 낳을 때가 다 되어서, 영자와 같이 있게 되었다.
겨울이 되어도 지하라 별도에 난방시설을 하지 않아도 지낼만해서 10시 까지 기계를 돌려서 원단을 짜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기계를 돌리고 집으로 와서 밥을 먹고 바로 공장으로 가서 기계를 돌렸다.
12월 16일 저녁을 먹고 난 영자는 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이가 나오려는지 조금 아프다 멈추다 했다.
그러더니 열두시가 지나자 진통은 점점 심해졌다.
“엄마 어떻게 점점 더 아파.”
“그래 다 그렇게 낳았어, 조그만 참아.”
새벽에 수도이가 잠을 자고 있는 공장 문을 허진이 세차게 두드렸다.
“여보게 김 서방 여보게 김 서방.”
어제 밤부터 살살 진통이 오더니 심해진 모양이었다.
급히 수동이가 따라 나서자.
“여보게 김 서방 여기 어디 한약방 있으면 한약 한 첩 지어오게”
수동이가 대답을 하고 급히 제기동 쪽으로 갔으나, 이 새벽에 문을 연 한약방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급히 와 보니 영자는 벌써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네 아들이야.”
진이는 싱글 벙글 웃으며 나왔다.
수동이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진이가
“여보게 아직 후산을 안 했으니 이리 와서 예, 배를 살살 문지르며 이 탯줄을 살짝 당기게.”
시키는 대로 했더니 영자가 움찔 하는 것 같더니 후산을 했다.
“이 태를 정갈한 곳을 찾아서 땅을 깊이 파고 묻고 오게.”
수동이는 비닐에 꼭꼭 싸서 월곡아파트 뒤로 돌아가 산 밑에다 묻었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리에 재덕과 정순 또한 기뻐하며 좋아 했다.
그리고 재순이도 기뻐하며 아기 포대기를 사왔다.
일주일 후 진이도 문막으로 내려가고,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방옥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인숙의 집에 가서 수동이가 책을 보고 지어서 방옥에게 물어 보니 괜찮다고 하여서 출생신고를 했다.
어느 날 영자는 옷을 걷으러 나와 보니, 팬티 두 장과 생리대로 쓰는 면수건 세장이 없어졌다.
옆방 아줌마가 훔쳐간 것이었다.
옆방 여자는 결혼한지 6년이 지났는데 아직 아이가 없어서 첫아이를 낳은 여자의 팬티를 훔쳐다 입으면 임신을 한다고 해서 가지고 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말처럼 열두 가구라 세 칸이 있는 화장실 앞에서는 줄을 서야 했고 문을 열면 부엌이 있고 부엌에서 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은 창호지로 발라져 있는데 사이가 넓어서 문틈 사이로 가스가 들어오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들어오더라도 워낙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 아픈 적이 없었다.
방바닥이 따듯해 그렇지 시멘트 불럭에 슬레이트 지붕이라 웃풍이 세서 준광이의 코끝이 빨갛게 되어 영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12월을 넘기자 일은 겨울일이 끝났고. 일의 양이 없어서 대둔리에서 데리고 온 아이를 왕십리에 있는 다른 공장에 취직을 시켜 주고, 봄옷 준비에 들어가 여러 가지 실을 사다가 몇 가지 견본을 뽑다가 보니 설날이 다가왔다.
진수가 또 찾아 왔으나 정자를 만나지 못했고, 정순도 반겨주지를 않았고, 어께를 축 늘어트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친구 태희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곳에는 신종희 선생의 부인도 참석을 했고 여자 동창생 명숙이와 순희도 왔다. 이번에는 눈 덮인 워커힐은 드라이브 하였다.
설이 지나고 그리프사(필라멘트사를 양말기계에 길게 짜서 열을 가한 다음 풀어서 감아놓은 실)를 사다가 16게이지 쟈카드에다 물건을 생산 했는데, 괜찮아 보였는데, 별로 나가지를 않아서 고심 끝에 6개월 만에 공장을 비워주고 기계를 실려 보냈다.
그리고 병조를 만나보니 영일에도 일이 없어서 그만두고 월곡동 일양약품에 픽업 운전사로 취직을 해서 야근도 안하고 월급을 공장에 다닐 때 보다 배 가까이 더 받는다고 했다.
영일사장이 판단을 잘못 한 것 이었다.
벌써 시장은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는 사향길이였고, A/C 아크릴에 면을 혼방한실이 나오고 T/C 테트론에 면을 혼방한 실이 나오는 때에 테트론을 가공해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설비에 투자한 것이 잘못된 설비투자 이었다.
수동이는 용두동에 싱카 기계 30대가 있는 공장에 취직을 하면서 운전을 배우기 위해 야근만 한다는 조건으로 취업을 했다.
그곳은 사장 동생이 있었고 기사 한명과 부 기사 한명이 있었는데 둘이 교대를 해야 하는데, 수동이를 기사가 있는 조로 집어넣고 기사는 야간을 하지 않으면 되겠다면서 그렇게 하라는 승낙을 받고 취업을 했다.
야근을 끝내고 퇴근을 하고 번동에 있는 신진 북부자동차운전학원에 2종으로 수강 신청을 하고 학원비를 내니 책 두 권이 나왔다.
차량구조와 교통법령으로 강의를 받아야 했는데, 강의 중에는 조는 시간이 많았다.
학원차가 미아삼거리 쪽으로 다녀서 학원차를 이용하였고, 2주 동안 강의를 열심히 들었고 책을 보았다.
어느 날 낮 아들 준광이의 울음소리가 이상하게 들려서 영자가 급히 들어가 보니 수동이가 뒤척이다 이불을 준광이 에게 씌워서 애가 질식 일보전 까지 간 일이 있었다.
78년 3월 정순은 구옥을 150만원에 팔고, 전세금을 돌려주고 남은 돈 100만 원으로 재순이 소개한 월곡아파트를 110만원에 사기로 계약을 했는데, 부동산을 하는 용만 엄마가 120만원에 넘기라고 해서 팔아넘기고, 제기동 방이 1층에 하나 2층에 하나인 2층 단독 주택을 130만원에 계약을 했다.
아래층은 40만원에 전세를 놓고 2층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곗돈을 붓기 위해 꾼 돈을 갚았다.
그리고 준광이의 백일도 지나고, 공장에서는 전세 버스를 불러서 산정호수로 봄나들이를 떠났다.
영자도 준광이를 안고 따라 갔다.
한 가족에 통닭 한 마리씩 주었고 노래자랑으로 선물도 나눠 줬다.
수동이가 8년이 넘도록 여러회사를 다녔지만 처음으로 단체관광을 해보았다.
그리고 남은 통닭을 집으로 싸 가지고 와서 다시 물을 붓고 고아서 먹었다.
그리고 6월 한남동 2종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면허시험 접수를 하러 갔다.
먼저 신체검사를 하는데 시력 색맹 여부 사지의 움직임 등을 보아 신체검사에 합격을 해서 응시원서를 접수를 하고 시험날짜를 배정받았다.
필기는 90점이 넘는 성적으로 합격을 하고 실기는 부리샤라는 기아에서 만든 차로 시험을 봐서 간신히 합격을 했다.
그리고 1종을 따야 해서 삼성동에 있는 1종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신체검사를 하고 응시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봤다.
2종 면허가 있는 사람은 필기시험이 면제지만 합격증만 가지고 있어서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다.
그리고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에서 1종 시험 차인 1.5톤을 시간당 얼마씩 주고 세 시간을 타고 삼성동 탄천 둔치에 있는 면허시험장에 가보니 그 시간에 시험을 치는 사람이 삼백 명 가까이 있었다.
하천 뚝 계단에 않아서 차례를 기다리면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남이 떨어지는 게, 재미있는지 웃고들 했다.
시험 생이 떨어지면 학원에서 지원을 나온 조교들이 차를 운전을 해다가 시험의 첫 코스인 굴절 코스 앞에 차를 대주는데, 조교가 들어가기 좋게 대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대주거나, 바빠서 핸들을 정열을 해놓지 않고 내리면, 잔득 긴장한 시험 생은 그냥 출발 하면 코스를 이탈해서 불합격, 시험에 얼마나 합격을 하나 보았더니 합격률이 20%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조의 시험 코스가 있는데. 1시험장과 2시험장은 시험 관독관이 두 명씩 보는데 3시험장은 감독관이 한 명이고, 합격률이 5%도 되지 않았다.
저 사람에게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있는데 드디어 시험차례가 되어서 집합을 했다.
시험 번호표대로 세 개조로 나뉘는 숫자를 계산해 보니 수동이는 2시험장이 되겠구나 하여 안심하고 있었다.
그 3조에 속한 사람들은 얼굴이 우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험시간이 다가와 시험번호와 이름을 불러가며 출석을 하고 있었는데, 수동이의 조 출석을 부르는 중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감독관이 이사람 오지 않았구나 하고 다음사람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에 뒤늦게 뛰어 오면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어 감독관이 약이 올랐는지 배정을 하는 스피커에서.
“1조는 1시험 장 2조는 3시험 장 3조는 2시험 장.”
하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아주 군대식으로 해 버리는 것이었다.
3조에 속한 사람들이 와 했고, 2조에 속한 사람들은 에이 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3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게 된 수동이는 속으로 이번엔 합격하기 힘들게 생겼구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진 에이스인 1.5톤을 올라타서 굴절 S코스 T코스에서 후진 중 시동이 꺼져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고 하니.
“3시험장 T 코스 수험생 시간초과 불합격,”
하는 멘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장한 탓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시험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정체가 되었고, 매일 접수비로 거두어들이는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다음 시험을 보기위해 접수를 하러 올라갔더니, 천이백 원하는 인지를 사는데도 20여명이 줄을 서 있었고 접수창구에는 두 줄로 접수를 받는데도. 처음 면허시험 접수하는 사람 떨어져 재 접수하는 사람을 합해서 한 줄에 30명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접수를 하고 집으로 왔더니 영자가 어떻게 됐어 물었다.
“떨어졌어.”
“차 더 안타 봐도 돼”
“붙고 떨어지는 건 재수야.”
하면서 오늘 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그 재수 없는 자식 때문에 떨어졌어.”
“정말 재수 없었네.”
그리고 재시험을 보기 몇 칠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열두 가구 집은 예외 없이 천장에서 비가 새 그릇을 받쳐놓아야 했다.
비도 어지간히 많이 와서 탄천이 넘치는 바람에 시험은 능동 건대 옆 동아자동차학원에서 보게 되었다.
그날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운이 좋았다.
수동이 차례 앞에서 시험을 본 사람이 떨어진 게 억울했는지, 시험관에게 따지고 있는 사이에 코스를 돌아버렸다.
마지막 나올 때 라인을 살짝 밟은 것 같았지만 코스시험은 통과되고, 코스시험이 다 끝난 후 코스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주행시험을 보았다.
시험관이 바빴는지, 까다롭게 하지 않아서 합격을 했다. 펄쩍 펄쩍 뛰었다. 그리고 삼성동으로 가서 면허증 원본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하여 30분은 넘게 기다리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에 운전면허를 따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하고 정상적으로 주야 교대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정상적으로 주야 교대를 하며 직장을 나갔고 여름휴가를 맞아 반계리로 내려갔다.
그때 까지 수동이에 사타구니에 생긴 습진은 낳지를 않았다.
결국은 그 독 하다는 발가락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독한 무좀약을 발라고 소용이 없더니 무좀연고를 발랐더니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순에게서 순례의 팔순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려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 성남에 살고 있다는 을선이와 순자 부부를 만났다.
을선이도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에 도착하여 아침에 순례의 팔순이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재덕과 정순이 오지 못해서 수동이와 영자가 준광이를 안고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영자는 그동안 생활비를 아껴 쓰면서 계를 들어서 곗돈을 타서 열두 가구 집에서 정능천 옆에 있는 한복을 만들어 납품하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정자가 영자의 파마 기구를 빌려가고 안돌려 주어서 다툼이 생겼다.
정순이
“별걸 다 가지고 아내 편을 든다고 했다.”
정자는 패대기치다시피 파마기구를 내 주었다.
그리고 추석이 되어서 제기동으로 갔더니 정순이 집을 팔려고 내놨다고 했다.
수동이가
“이집을 팔면 이 많은 식구가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팔지 마세요.”
“집을 팔아서 빚 갚아야 할 것 아니냐? 빚이 얼마나 무섭다고.”
하는 재덕의 말에 정순은
“누가 한 푼 보태줄 사람 있냐?”
하면서 거드는 바람에 수동이는 입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재순이 까지 와서
“오라버니 팔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 보세요.”
“그렇다고 너한테 줄 오만 원이 새긴다던.”
“시누한테 줄 돈 오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져요?”
재순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10월에 집을 팔고 홍릉 갈비 집 뒷골목에 있는 일식주택을 독채전세를 얻어 가지고 이층 다다미방에서 살림을 하면서 난로로 난방을 하고 아래층 보증금으로 나온 돈으로 그동안 곗돈을 붓기 위해 빌린 재순의 오만 원부터 갚았다.
그리고 나머지 방들을 월세로 놓아서 나오는 돈으로 계가 끝날 때 까지 붓고 계를 타서 집을 다시 사야지 하고 생각 했다.
그러나 재덕과 정순의 생각대로 되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벌어서 곗돈을 부면 무었을 하겠는가?
진수도 그렇게 와서 만나자고 했지만 정자는 외면을 하고 이모라고 부르던 복덕방 여자의 아들 용현과 사귀더니 아주 용현의 집에서 살림을 시작 했다.
정순은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괜찮은 사윗감을 버리고 정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모, 이모 하고 따르던 종현이 와의 동거를
비호해서 그런지 아니면 재덕이 방관했는지 그렇게 지나고 말았다.
그만큼 재덕이 늙었는지 아니면 정순이 재덕을 다루는 솜씨가 늘었는지 딸 들 문제에는 관대 했다.
쉬는 날 문막을 갔더니 처제 영철이가 선을 보러 간다고 해서 허진과 영자의 큰어머니를 대동하고 원주 중앙시장에 있는 다방으로 갔다.
큰 처형인 문자도 와 있었다.
신랑감을 보고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부근에 있는 중국집에 들려서 짬뽕을 시켜서 먹었고, 수동이가 식대를 지불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수동이는 야근을 하는 틈에 시간을 내어 허가 없이 시내연수를 시켜주는 곳을 찾아가 한 시간에 2천 원씩 주고 시내연수를 받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는 제기동 사는 친구 정 종철이를 만났는데 자기가 연수를 시켜 줄 테니 새벽에 나오라고 했다.
새벽에 나가보니 종철이가 나와 있었다.
차는 기아에서 나온 브리사라는 차였다.
차를 몰고 다니는데 어떤 때에는 신호 위반을 해서 앞뒤로 차가 스쳐지나가 가슴이 철렁 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연수를 시키는 중에 손님도 태우고 다녔다.
간이 실종을 한 건지 총철이는 고맙게도 수동이를 아주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게 고맙게도 두 시간을 넘게 다니다 수동이를 내려주어서 돈을 주려고 하자 받지 않았다.
이틀 후 종철이가 근무하는 날 또 두 시간 넘게 연수를 받았는데 그날을 손님을 태우고 다녔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 종철이가 오지 않아서. 이친구가 마음이 변했나 했더니. 수동이가 쉬는 일요일 아침에 종철이는 택시를 끌고 와서 일을 나가라고 했다.
옆에 아무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일을 나갔다.
타는 손님 마다 오늘 처음 영업용을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고 길을 모르니 가르쳐 달라면서 운전을 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아침을 안 먹고 나갔는데, 11시가 되어도 배가 고프질 않아서 밥을 11시에 먹었다.
고속터미널에서 손님을 태웠는데, 테헤란로로 가자고 해서 길을 잘 모르니 잘 가르쳐 주세요.
하고 출발을 했다.
그리고 손님이
“우회전 하세요.”
해서 우회전을 하고 바로
“다음에서 좌회전 하세요.”
해서 좌회전을 해서 가다가 손님이 뭐라고 했는데 우측으로 가자는 줄 알고 우측으로 핸들을 돌려서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선 것이었다.
손님도 당황 해가지고
“왜 이리로 가요.”
“죄송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연발하며 간신이 남부 순환도로로 빠져나와 가지고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테헤란로로 가서 손님을 내려주고
“향상 주시던 대로 주세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는데, 문화촌에서 정능 오는 손 을 태우고 북악터널을 나오면서 통행료를 지불하려고 앞 창문을 내리는 손잡이를 돌리는데 조금 내려오더니 안 내려왔다.
다시 올렸다가 내렸는데, 이번엔 반쯤 내려가고 또 안 내려 가는 것이었다.
뒤차의 경음기 소리가 들리고 당황한 수동이는 반쯤 내려진 문틈 사이로 손을 뻗혀서 백 원을 주었다.
‘부지직.’
돈을 주면서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져서 요금 부스 아래 벽에 차의 앞부분이 부딪친 모양이었다.
손님을 목적지에 내려놓고 차를 살펴보니 우측 fender(휀더)가 찌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이왕에 나온 거 좀 더 해보자는 생각에 손님을 태우고 다니다
이번엔 퇴계로 대원각 호텔 건너편에서 손님을 태우고 한남동으로 가기 위해 남산 1호 터널 쪽으로 우회전을 하는데 시동이 꺼졌다.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하다가 또 꺼졌다.
뒤차는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났다.
침착하자면서 다시 시동을 걸었는데 출발하면서 뒤로 밀려서 뒤차 헤드램프를 깨고 말았다.
그러니 차에 탔던 손님은 내려서 다른 차를 잡기 위하여 가고 뒤차 기사는 남산 쪽으로 차를 돌려서 세우고 따라온 수동이에게
“어떻게 할 거야?”
“물어. 드려야지요. 얼마나 드리면 돼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퍽’ 하면서 뒤차 손님이 수동이의 뒤통수를 치면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손님한테 미안 하다는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아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했지만 또 한 대를 쳤다.
“너 새끼 따라와.”
“기사 갑시다.”
하면서 기사를 재촉해 가자고 했다.
할 수 없이 그 차를 따라 갔더니 호텔 주차장에서 내려서
“너 이 새끼 나와.”
하면서 수동이를 끌어내어 또 쥐어박고
“잘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하는데 또 때리려 하는 것을 그 기사가 말리는데
“이 새끼 너 운 좋은 줄 알아.”
그러는데 젊은 사람 너 댓이 다가와
“형님 왜 그러세요.”
“짜시기 말이야…….”
손을 탁탁 털더니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호텔로 들어갔다.
수동이는 헤드램프 값 삼천 원을 주고 나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핸들에 얼굴을 묻고 앉아있는데.
‘똑, 똑.’ 하면서 젊은 손님이 남녀가.
“아저씨 이차 안가요?”
“가긴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세요.”
“종암동이요.”
“네 타세요.”
그 남녀를 태우고 출발을 하면서
“손님 오늘 제가 처음 나와서 그러는데 길을 잘 모르니 가르쳐 주세요.”
하면서 조금 가고 있었다.
“아저씨 차 옆으로 대세요. 제가 몰고 가는 게 났겠어요.”
수동이가 내려서 조수석에 앉고 젊은 남자가 운전을 하면서
“차가 엉망이구만.”
“왜?”
“어이구 이런 차를 내보내서 돈을 벌어오라고 하다니 원 세상에 아저씨 이런 차 다신 운전하지 마세요.”
차는 고려대 앞을 지나 종암교를 건너서 차를 세우더니
“아저씨 다 왔어요.”
하면서 요금을 계산해 주고서 운전석에 앉은 수동이에게
“아저씨 조심해서 가세요.”
원, 세상에 내가 오고자 하는 목적지에 오는 손님을 만나다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차를 종철내 집 앞에 세우고 종철이를 불렀더니.
“왜 벌써 들어왔어?”
“차를 잘 못해서 찌그러트렸어.”
“많이?”
머뭇머뭇 대답을 못하는 사이에 차있는 곳까지 와서 보더니.
“야 타.”
하고 무허가 판금과 도장을 하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가서 흥정을 했다.
“얼마면 돼.”
“칠천 원은 줘야 돼.”
“조금 싸게 해줘.”
“알았어. 오늘은 우선 fender(휀다)를 펴서 퍼티(빠다)를 먹여 놓을 테니 이따가 아홉시 넘어서 가지고 나가서 일을 해.”
종철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며.
“야 얼마나 벌었니?”
“이만 칠천 원.”
“입금 이만 원 하고 연료비 내가 알아서 할 게 그 돈 나주고 들어가.”
“그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하면서 종철이네 집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두고 이틀 후 총철이가 쉬는 날 자동차 고친 값과 가스비를 주려고 지갑에 만원을 넣어가지고 종철이내 집에 찾아갔더니 동내 친구 몇 몇이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
“어제 차 고친 값 줘야지?”
했더니 종철이는 고맙게도
“야 관둬 내가 깎아서 오천 원 주기로 하고 가스 넣고도 삼천 원 벌었다.”
“그래도 차 고친 값은 줘야지.”
“관둬 그리고 내일 일곱 시에 요 아래 삼거리 다리 위 지입차들 교대 하는 곳으로 나와.”
“그래 고마워.”
그렇게 해서 수동이는 다음날 종철이가 나오라는 곳에 나가니 스페어 기사가 서너 명 있었다.
그러나 그날 수동이는 스페어를 못 탔다.
수동이는 할 수 없이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진승이 아들 희영이의 첫돌에 초대 받아서 갔다 왔다.
그날 저녁 영자는 자다가 준광이가 울고 보체서 일어나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이 봐요 준광 아빠 일어나 봐 연탄가스 들어왔나 봐.
“나도 어지러운 게 가스 들어온 게 맞나 봐.”
수동이가 창문을 열어 놓으면서.
“동치미 국물 좀 떠와.”
영자가 동치미 국물을 가지러 일어나서 나오다 문 앞에 쓰러져서 수동이가 부축을 해서 방에다 눕혔다.
그리고 수동이가 동치미 국물을 떠다 먹이고, 문을 열어놓은 체로 오돌오돌 떨면서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에 주인아줌마에게 이야기를 해서 장판을 들어내고 방바닥 갈라진 부분을 시멘트로 때우고 종이를 발랐다.
준광이가 울며 보채지 않았다면 세 식구 고스란히 연탄가스 마시고 죽을 뻔 했다.
그리고 어렵게 꿈에 떡 맛보듯 일주일에 한번 정도 스페어를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진승이 아들 희영이의 첫돌이 있어서 성수동 진승이네 집에 초청 받아서 몇 몇 동창이 모여서 축하를 해 줬다.
그러면서도 영자는 준광이 재롱을 보는 맛에 흠뻑 빠졌다.
녀석은 장롱 서랍을 열어놓고 옷이란 옷은 다 끄집어내고 들어앉아 있기도 하고 밥상에 앉아서 상 끝을 붙잡고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드르륵 하면서 그릇이 떨리는 소리에 까르르 웃었다.
그러던 녀석이 일어나서 몇 발자국씩 걷기 시작할 무렵에 허진은 외손자 준광이 첫돌을 해주기 위해 허진이 지난여름 휴가 때 수동이가 뒤울안에 있던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서 설탕을 섞어서 담근 포도주를 들고 올라왔다.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하고 첫 돌 상을 차렸다.
정순이 준광이를 안고 있는데 수동이는 왠지 그 자리에 준광이를 안고 기뻐해야 할 사람이 없는 게 자꾸 생각이 나서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슬프고 괴로울 때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기쁨을 같이할 사람이 없을 때 가장 눈물이 나는 것인가 보다.
그날 저녁 종철이를 비롯한 제기동 동내 친구들이 와서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포도주가 맛있다고 엄청 들 좋아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초 봄 무렵 수동이는 천동이 엄마인 당숙모 슬기의 주선으로 건설회사 상무로 있는 천동이 이모부의 그러니까 복기 남편이 자가용기사로 취업을 했다.
첫날 수동이가 종로에 있는 회사에 출근을 하니 직원이 모시게 될 상무에게 인사를 시켰다.
사돈어른이라도 처음 뵙는다.
직원이 지하에 있는 운전사 대기실로 안내를 하고 같이 일을 할 운전사들을 소개 해 주었다.
그리고 운전사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인터폰으로 호출을 하면 바로 빌딩 정문으로 가서 모시고 목적지로 모시고 나가야 한다.
차종은 제미니로 지하주차장은 그리 넓은 편이 못 되서 차를 빼는데 애를 먹었고, 기다리던 상무는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지하차고로 내려 왔다.
상무의 수신호를 받아가며 간신히 차를 빼서 나올 수 있었다.
상무가 목적지를 에기 했으나 길을 알 턱이 없어 지시에 따라 운전을 하는데, 광화문 앞에서 사직터널 쪽으로 좌회전을 하다 신호위반으로 걸려서 면허증을 받고서 첫 딱지를 끊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독립문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그만 후진 단추를 눌러서 후진기어가 들어간 것도 모르고 출발을 했으니 뒤차가 빵빵 거려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후진기어를 넣은 것을 알았다.
다행이 사고는 없었지만 뒤에 탔던 상무는 엔간히 놀라고 말았다.
제미니는 그냥 뒤로 밀면 1단 앞으로 밀면 2단 옆으로 해서 뒤로 밀면 3단 그 상태에서 앞으로 밀면 4단 이 들어가는데 일단을 넣을 때, 기어 변속레버손잡이 아래에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당겨서 일단을 넣어서 후진 기어가 들어간 것이었다.
간신히 목적지를 갔다 오고 두 시간 후 또 호출이 있어서 또 한 번을 나갔다 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올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고맙게도 범칙금을 내야 하니 통지서를 내 놓으라고 해서 통지서를 주었다.
수동이가 저녁에 퇴근을 해서 집으로 왔더니 영자는 와이셔츠를 대려서 다음날 깔끔하게 출근 하도록 준비를 해 놓았다.
다음날은 차를 가지고 일찍 퇴근을 하라고 해서 차를 가지고 와서 자고 이튿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끝난 시간쯤 사무실에서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갔더니, 도저히 안 되겠으니 그만두라고 했다.
수동이는 그렇게 다시 스페어 기사를 나가게 되었고, 하루는 운전을 하다가 길이 심하게 파인 곳을 크게 덜컹 하고 지나가고 한 8km 쯤 운행을 했는데, 차가 서 버렸다.
배운 대로 프라그 선을 빼서 드라이버 끝을 프라그선 끝에 꽂고 엔진차체에다 대고 손님에게 시동키를 돌려 보라고 했더니 불이 반짝 반짝 튀는 게 확인 되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연료가 떨어져서 그러니 다른 차를 이용해 주세요.”
하고 가스 충전소에 가서 예기를 해서 가스통을 택시에 실고 와서 연결을 시키고 가스를 넣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나뿐 놈 가스를 잘라 먹어서 사람을 애를 먹여 했고, 몇 칠 후 다시 그 차 스페어를 다시 타게 되어서, 이번엔 안 속는다는 마음으로 바로 가스충전소로 가서 가스를 넣으러 후진을 하다가 남의 차를 받고 말았다. 차주가 달려와서, 물어주고 키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사고를 넨 소문이 나서 다른 차들의 차주들도 차를 태워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순은 홍릉에서 제기동으로 커다란 방을 하나를 전세로 얻어서 이사를 했다.
계를 타서 다시 집을 산다고 했지만, 계획한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재덕혼자 벌어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동이 에게 손을 벌리기는 힘들었다.
녀석도 힘들게 살아가고 그나마 운전을 배우겠다고 스페어로 나가는데 손을 벌일 형편은 영 아니었다.
결국은 인플레이션을 딸라 잡지 못하고 집은 고스란히 날아가고 시민 아파트 한 채가 결국엔 전세방 하나로 바뀌고 말았다.
계를 부어서 정자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집만 날리고 애들을 데리고 전세방을 전전 하게 되고 말았다.
진이가 딸 영자를 보려고 모처럼 시간을 내어 큰 동서 그러니까 영자의 큰엄마 옥례와 같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튿날 진이 옥례 명옥이 영자 수동이가 전철을 타고 인천에 살고 있는 옥례의 딸 인자의 집을 방문하였다.
한꺼번에 다섯이나 아니 준광이 까지 여섯이나 몰려가서 영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온 식구를 데리고 자유공원을 찾아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는데 딸 혜인이가 회전목마며 여러 가지 탈것을 보는 대로 태워달라고 했다.
그렇게 진이가 다녀가고 늦은 봄 수동이 처제 영철이가 시집을 가게 되어서 여주예식장에서 조촐하게 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천복이 양복 한 벌 얻어 입지를 못해서 수동이가 처제 영철이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해서 처제 손을 동서 손에 넘겨주는 일을 해야 했다.
영자의 결혼식에 입장을 시켰던 성증이 공교롭게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입원해 있는 바람에 수동이가 영철의 입장식에 손을 잡아주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고려대 뒤 개운사 앞에서 개인택시를 하면서 지입차를 하나 운영하는 사람의 스페어를 하루 나갔는데, 그 차는 너무 낡고 휘발유 차여서 입금이 적었지만 그래도 수입을 따져보면 가스차보다 적어서 그 차 고정기사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루 빠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정을 타기로 했는지, 다음날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차를 두 번 연속 타고 입금을 시키는데, 고정을 해달라고 해서 고정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 종철이 딸 첫 돌이 있었다.
생각은 반지를 하나 해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녀석이 만 원을 빌려가더니 안 줘서 변명 같지만 반지 하나 해주려던 것을 끝내 못해 주고 말았다.
그리고 영업용 기사로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데, 자하문로 끝에서 광화문 쪽으로 좌회전을 하는데 급하게 차선변경을 하는 택시가 수동이가 운전하는 차의 앞 펜더 부분을 뒤 펜더로 긁고 나갔다.
그리로 그 녀석은 오래 해서 그런지 자기가 교차로 내에서 차선 변경을 해서 긁어놓고 당황해 하는 수동이를 복잡한데 서있지 말고 따라오라고 하더니 세종로에서 우회전을 해서 경희궁 뒤 길에 차를 세우고 뒤에서 차를 받았으니 당신 잘 못이라면 수리비를 요구해 5천원을 주고 해결을 보았다.
다음날 차주에게 이야기 했더니
“쌍방이네.” 했다.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방법도 하나의 경험인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수동이가 운전하는 차가 10부제에 걸리는 날 우연히 윤희의 생일이어서 영동이 부부 옥자 부부 수동이 부부 해서 대 식구가 열차를 타고 춘천에서 내려서 막국수를 먹고 버스를 타고 황골에 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준광이가 연동이 아들 준민이를 쫒아 다니며 끽끽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많은 식구들을 접하니 준광이는 신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준민이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래 입술이 깨지고 말았다.
준민이는 자지러 질 듯이 울고 영자는 미안해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정자와 종현과의 동거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진수는 정자가 하자는 데로 하는 너무 착한 성격이어서 밀고 당기는 사랑의 맛은 기대하던 정자를 실망 시켜서 헤어지고 화끈한 성격에 종현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모든 정렬을 태우며 꿈같은 사랑을 했었다.
그러나 동거생활을 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둘 다 다혈질 이어서 부딪치게 되고 서로지지 않았다.
결혼이란 하나가 불같으면 하나는 물과 같아서 서로덮혀주고 식혀주고 하면서 서로 보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데 둘 다 불같은 성격이나 보니 자주 부딪치고 싸우고 제 성질을 못이긴 정자는 결국 가출을 하고 말았다.
종현은 일주일 넘게 정자를 찾아다닌 끝에 정자를 찾아서 집으로 데려와서 크게 싸우다가 급기야 정자는 쥐약을 입에 털어 넣고 말았다.
종현이 당황해 급히 경희의료원 원으로 떠나고, 종현 엄마의 연락을 받은 정순이 급히 수동이를 찾아왔다.
“애 준광 애미야 아범 어디 있니.”
“어제 일하고 자고 있는데요.”
“그래 얼른 아범 깨워라.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여보 어머니 오셨어요. 얼른 일어나요.”
“뭐야 뭔 일 있어요.”
하면서 수동이가 일어났다.
“애 애비야 저 저 정자가 지금 막 경희대 병원으로 실려 갔다.”
“왜 요. 어디 사고 났어요.”
하면서 옷을 챙겨 입고 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년이 미쳤지 쥐약을 처먹었단다.”
“뭐에요 왜요.”
그 때까지 수동이는 정자가 동거생활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순은 당황해 아직까지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수동이와 정순은 응급실에 도착했다 .
위세척을 끝낸 정자가 누워 있었다.
“오빠 나 죽어도 종현이 하곤 못살아 살기 싫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네가 싫으면 그만이지.”
참 누가 살라고 해서 산 것도 아니고 지들이 좋아서 살다가 그 난리를 피우다니 에이그.
병원비는 종현이가 지불하고 집에서 안정될 때까지 쉬었다가 종현모의 설득과 정순의 설득으로 다시 가서 살았지만 정은 벌써 식어 있었다.
그러나 재덕은 젊을 때 성질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게 제대로 제제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동이도 정자의 일에는 어떠한 충고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전혀 개입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력이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쉬는 날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새창벌 사는 정자의 친구 어정자를 만났다.
어정자는 금복이 여동생으로 아랫집에 살던 창복이와 순복이 사촌동생으로 정자와 동갑으로 매일 같이 큰집에 놀러와서 정자와 지둔리 사는 서순희와 셋이서 자주 놀다가서 수동이가 집 뒤 사립문 뒤 밤나무에 지개꼬리로 그네를 매어놓아 셋이서 타고 놀아서 잘 아는 사이였다.
“오빠.”
“어 이게 누구냐 이런데서 만나다니.”
“나 이 동내 살아요.”
“그래.”
“그런데 오빠 운전 한다면서요.”
“응 그래.”
“오빠 나 부탁이 있는데, 나 운전 줌 가르쳐 주세요,”
“그래 네가 배울 건 아닐 테고 나오라고 해,”
아마 정자랑 자주 만나서 수동이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자의 신랑을 운전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원래 제품 공장에서 재단 일을 하다가 정자를 만나서 살고 있었다.
전에 종철이 에게 배운 대로 새벽에 가르쳤고 고맙다고 돈을 주어서 아침에 연수 중 손님을 태워서 번 돈을 합쳐서 아침에 보통 버는 돈을 계산해서 받았다.
그리고 사흘 쯤 지나자 곧 잘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동이는 가스를 연료로 쓰는 택시를 해달라는 곳이 있어서, 그 차를 하려는 생각에 일을 안 나갔더니 차주가 차를 가지고 와서.
“오늘은 꿈자리고 그렇고 운전할 기분이 영 아닌데 요 죄송합니다.”
“그럼 어떡하지 열시가 넘는 시간에 스페어도 없고?”
모두 계산된 수순 이었다.
물론 교대시간인 7시가 지나면 스페어 탈 사람들도 다 들어가고 없다.
“옆에 아는 후배가 있어요.”
“그래요. 믿을 수 있어요?”
“네 착실 하고 잘 해요.”
“책임지죠?”
책임이라야 도의적인 책임밖에 더 있는가.
“네.”
그렇게 해서 어정자 신랑을 불러냈다.
차주는 어정자 신랑을 아래위로 훑어본 다음
“김기사가 책임지죠?
“네.”
그 친구는 그날 10시가 넘어서 일을 나가서 입금을 한 푼도 깍지 않고 했다.
물론 이튿날 수동이는 가스차를 가지고 일을 나갔다 와서 집에서 누워서 자고 있는데 다음날 또 차를 가지고 와서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다시 그 친구가 일을 나가게 했다.
그렇게 그 친구는 그 차의 고정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가스를 연료로 쓰는 조금 나은 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
그 차는 차주와 맛 교대를 하면서 일을 나가는데, 차가 10부제로 운행을 해서 쉬는 날은 차를 정비하고 쉬어야 했다.
그런데 가스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영 알 수가 없었다.
그날도 쉬는 날이라 부라샤는 앞뒤 라이닝이 드럼형이라 수시로 조정도 해주어야 해서 라이닝을 교체하고 조정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가스 냄새가 많이 난다며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하면서 비눗물로 검사를 해보니 가스통 계량기 쪽에서 새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는 못 고친다며 빨리 가스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가라고 해서 수동이와 차주는 그곳에서 가르쳐준 마장동에 있는 가스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 기술자가 수리할 가스통에 있는 가스를 다른 곳으로 옮겨 넣으며 지금 밀어내는 가스는 질소 가스라고 했다.
그리고 가스가 나가는 것을 손을 대고 보면서 차에 달린 가스통의 밸브를 닫았다 열었다 했다.
궁금해진 수동이가
“아저씨 왜 나가는 밸브를 잠갔다 열었다 하세요?”
“아, 아 자동차 가스통에 가스밸브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갑자기 많이 나가지 말라고 안전밸브로 되어있어서 가스가 별안간 많이 나가면 잠겨요. 그리고 일정한 충격에서도 잠겨요. 뒤에서 차가 받았을 때 가스가 그냥 나오면 크게 화재가 나잖아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일정한 충격이 가해지면 밸브가 자동으로 잠겨요.”
아하 그렇구나. 먼저 스페어를 탈적에 요철 부분을 지나면서 가해진 충격에 한 4km를 가고 나서 가스가 떨어서 엔진이 꺼진 게 그것 때문이었구나. 괜히 고정기사를 의심해서 가스를 넣으려고 가서 사고만 내고 아이고 그래서 벌 받았구나.
그렇게 수동이는 열심히 벌어오고 영자는 계를 부어서 돈을 조금 더 보테 바느질집에서 월곡시민아파트에 방 하나를 얻어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처제 영철이가 기저귀 감을 비롯한 아기 배냇저고리 등을 사기 위해 올라와서 영자는 이틈에 조금 모자라는 기저귀며 아기 옷을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에 다녀왔다.
그러나 수동이는 합승을 해서 다른 손님을 많이 태워야 하는데 소심한 성격의 수동이는 합승을 잘 하지 못해서 다른 기사보다 돈벌이를 못하는 편에 속했다.
추석이 지났을 무렵 숭인동 청룡사에 손님을 내려주고 차를 세우고, 영덕의 집에 들렀더니, 영린은 해외섬유가 용인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만두고 알루미늄 문틀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 취업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 김 군 택시 해서 얼마나 벌어?”
“하루 나가면 만원 밖에 못 벌어요,”
순진하기는 아니 이만 원 번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그럼 내가 월 십오만 원 줄 테니 일 좀 해주지 않겠나?”
거기서 수동이는 또 한 번 순진함인지 이제에 밝지 않음인지.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조금만 더 달라면 아니 버티면 이십만 원도 받을 만 했는데 참 너무 세상을 몰라도 몰랐다.
그렇게 몇 칠 후 그가 하던 택시를 그만두고 숭인동 공장으로 출근을 했다.
공장에는 영덕의 작은 아들 정채와 그의 친구가 일을 도우려고 있었고, 자카드 횡편기는 똑 같지만 약간은 다른 중고 쟈카드를 하나 더 구해다 놓았다. 우선 기계를 조립을 해서 시운전을 하는데, 한 대에 사흘씩 걸렸다. 세대를 모두 돌아가게 하는데 열흘 가까이 걸려서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자, 나름대로 기술자 유세를 한다고 미싱사들이 여덟시에 출근을 하는데, 아홉시에 출근을 했고, 여덟시에 저녁을 먹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10월 1일 아침 아파트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대청소를 하는데 아침 7시 영자는 대 청소를 하고 들어오더니.
“여보 배가 이상해, 벌써 아이가 나오려나 봐, 여보 풍로에 물 올려 놔.”
수동이는 급히 물을 올려놓고, 방이 추우면 안 돼서 급히 번개탄을 사다가 불을 붙여서 연탄을 집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영자는 벌써 아이를 낳고 있었고,
“여보 들어와 봐.”
수동이가 들어가니 벌써 아이가 나오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잔득 웅크린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수동이가 아이를 살펴보았다.
딸 이었다.
“응아! 응아! 응아!”
아기의 첫울음에 정신이 번쩍 든 수동이는 진이 일러 준대로 실을 찾아서 배꼽에서 10cm 쯤 되는 곳을 실로 묶고 또 그곳에서 5cm 쯤 되는 곳을 묶었다.
풍로에 올려놓은 물이 끓기 시작해서 가위를 끓는 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양쪽 실로 묶은 가운데를 잘랐다.
“여보 지금 몇 시지?”
그제야 시계를 보니 여덟시 이십 분 이었다.
“여덟 시 이십 분이야.”
“그럼 여덟시 십 분에 낳은 거구나.”
“응. 참 아기 씻겨야지 물 들여 와.”
수동이가 풍로에 올려놓은 양은솥에서 바가지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대야에 담자.
“여보 수돗물 틀어서 솥에 한 바가지 부어 그리고 대야에는 찬물을 조금만 부어 가지고 와.”
수동이는 영자가 시키는 대로 해가지고 대야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자 영자가 손을 넣어서 온도를 보면서.
“안 되겠어 찬물을 조금 더 타야 돼.”
수동이가 찬물을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들어와서 조금 부었다.
그리고 손을 넣어본 영자가
“됐어, 세숫비누 가지고 들어와.”
비누를 가지고 들어와 둘이서 아기를 머리부터 씻겨서 누이고 지난번 준광이 낳았을 때 해 본 경험대로 영자 후산을 시켰다.
그리고 지난여름 처갓집에 들려서 가지고 온 짚으로 왼 새끼줄은 꼬아 숯덩이를 꽂아 현관위에 매달았다.
태는 잘 싸서 지난 번 준광이 태를 묻었던 옆에 묻었다.
미역을 잘라서 물에 담그고, 오늘은 출근을 못하겠다고 공중전화를 하러 나가는데. 옆방 주인아줌마가.
“아유 신기하내 청소하다 말고 배 아파 들어갈게요. 하고 들어가서 무슨 계란 낳듯이 아이를 낳았네.”
하면서 축하 한다고 했다.
약국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숭인동에 전화를 걸어서 오늘아침에 아내가 아기를 낳아서 못 간다고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지어놓은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영자가 시키는 대로 미역을 박박 문지르며 씻어놓고 쌀을 떠다가 물을 붓고 휘 저어서 버리고 박박 문질러서 씻은 뜨물을 따로 받아서 미역에 조금 붓고 풍로에 올려놓고 한 소금 끓이고 다시 물을 채워서 끓기 시작해서 국솥을 아궁이로 옮겨 놓고 풍로에다 밥을 해서 차려 주고.
“나 청량리 우체국에 가서 전보 치고 올게.”
하고 버스를 타고 청량리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쳤다.
[딸출산모상경바람]
전보는 글자 숫자대로 돈을 받아서 가급적이면 문장을 줄여서 보냈다.
가을걷이를 나갔던 진은 전보를 받고 무슨 내용이지 몰라 물어보니 딸이 아이를 낳았나 보내요.
해서 아이를 낳은 줄 알고,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서울로 향했다.
수동이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장모가 전보 받고, 길을 나서서, 동화서 세시에 기차를 타면 다섯 시 사십분에 도착하겠구나 하고 다섯 시 조금 넘어서 마중을 나갔다.
수동이가 예상한 대로 진이는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개찰구를 나오고 있었다.
한편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접한 재덕은
“에이 아들이 아니고?”
하면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고 정순은 낮에 잠깐 얼굴을 보이고 뭐가 바뿐지 금새 가 버렸다.
하긴 옆에 있어봐야 영자가 편할 리가 없지만.
진이는 일주일이 넘게 영자의 산후 조리를 도와주고 내려갔다.
천복은 그동안 형님 순길의 집에서 조카며느리가 지어주는 밥을 먹으며 지내야 했다.
수동이는 딸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영자에게
“우리 딸 이름 꽃님이 어때?”
“에이그 촌스럽게 꽃님이가 뭐야? 싫어.”
그래서 수동이는 방옥의 집에 가서 글자의 획수를 따져서 은혜 혜에 惠 맑을 영瑩 이라고 지어서 방옥에게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
영자도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출생신고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동이가 영동이네 집에 다니러 왔다가 수동이를 찾아와서, 전화번호를 주면서 자네 이모가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때 까지 수동이는 이모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하긴 수동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시집을 갔고 그리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이모가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재덕이 처형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이모의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엄마는 외삼촌 하고 남매만 있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수동이라는 사람인데요,”
“누구 수동이.”
“여보 얼른 가서 어머니 전화 받으시라고 그래.”
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래 네가 수동이냐,”
“네.”
“그래 어마나 고생을 했니, 보고 싶으니 꼭 오너라. 여기가 어디냐 하면, 의정부 가는 차를 타고, 신도봉시장 앞에 내려서 신도봉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농협공판장이 보일 거야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알았니?”
“네”
수화기 너머서는 숨 가쁘게 이야기를 했고 동전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뚜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다음 쉬는 날 이모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 영자가.
“그래 여태 이모가 있는 줄도 몰랐어?”
수동이가 고개방아를 찧었다.
수동이는 10월 셋째 일요일 날 이모를 만나러 갔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농협공판장이라고 쓰인 간판 보였고 쌀과 고기를 팔고 있었다.
들어가서
“제가 수동이입니다.”
하니 사촌형 춘식 대번 알아보고.
“자네가 수동이 맞아.”
하고 가계에서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어머니 수동이가 왔어요.”
하면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대번에 알아보겠네. 어쩌면 외삼촌 하고 꼭 닮을 수 있나?”
수동이는 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앉은 이모 근상과 이모부 광수 에게 절을 했다.
“그래 잘 왔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
하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수동이는 그렇게 모질게 살아오는 동안 눈물마저 말라 버렸는지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에이그 쯧 쯧 쯧 그래 계모 밑에서 어마나 고생을 했니.”
하면서 근상이 두 손으로 수동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전 이모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저 한태 이모가 있다는 얼마 전 사촌형이 알려줘 알았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길게 숨을 내쉰 근상은.
“그랬었구나, 네 아버지가 말해줄 리도 없고, 나 역시 네가 어렸을 적에 데려오고 싶었지만, 시부모 모시고 농사를 짖다보니 그럴 형편이 아니었어. 그때는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점심을 먹고, 저녁 무렵이 되니 누나가 둘 여동생이 하나 남동생이 하나 해서 이모는 오남매를 두고 있었고, 하나같이 외삼촌 닮았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다음에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월 26일 박대통령 저격 사건이 있었다.
얼마 후 이모에게 전화를 하자 11월 첫째 일요일 날 엄마가 온다니 와서 만나러 오라고 해서 준광이를 데리고 이모내 집으로 갔다.
근상이는 수동이가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하면서 들락거리고 있었다.
첫댓글 수동이가 오랜세월을 견디고 드디어 엄마 희상을 만나게 되네요.
얼마나 눈물을 흘릴까요?
님의 생각대로 펑펑 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