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전 스트레이트 사수를 했던 놈입니다(남자이지만 빠른 82년생이라 올해까지는 군대 문제 없었습니다.) 4번에 걸친 수능으로 인해 그간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저도 맘 푹놓고 잘수 있는 시간들을 즐기고 있어요^^; 3번의 수능 실패로 생긴 열등감.. 그 열등감이 4번째 수능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해소 되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군요. 보장되는건 아무것도 없고 왜 나만 계속 실패하나 하는 한탄.. 아무튼 삼수 이후로는 수능에 대한 공포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많이 방황했었답니다^^;
우선 전 문과생이고 이번에 고려대 법학과와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해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등록했습니다. 제 수능 성적은 00수능에서 원점 344.5(문과 8% 가량),01수능은 367(문과 9%가량),02수능은 328(문과 4%가량),03수능 376(문과 0.1%가량) 입니다.
일단 고3 시절은 제 실력대로 점수가 나온것이었습니다. 고3때 제 모의고사 성적은 3월에 302점을 시작으로 꾸준히 올라 9월 무렵엔 340점대를 유지했고 수능도 그정도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재수,삼수때는 평소 성적에 비해 점수가 너무 안 나왔었습니다. 분명히 재수때가 고3때보다 실력이 월등히 늘었고 모의점수도 크게 올랐습니다만 정작 수능에선 고3때보다 %가 떨어졌었습니다. 그해 유달리 고득점 재수생이 많았고 거기다 수능까지 터무니 없이 쉬워서 손해본 감이 없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정도가 좀 심했지요. 그리고 삼수때는 모의고사에서 줄곧 0.5%안에 들었었습니다. 사수해서 서울대 경영까지 붙었습니다만 솔직히 제 실력이 삼수때보다 크게 향상됐다고는 못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삼수때 점수 역시 너무나 안 나왔던거죠. 그로인해 저의 삼,사수 생활은 열등감으로 점철됐었죠. '유형화된 모의고사에만 강하고 실전엔 약한놈' 이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특히 제가 재수,삼수때 한눈 팔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저러한 결과들은 저로 하여금 엄청난 열등감을 갖게 만들었었습니다. 삼수때 저와 비슷한 실력이었던 애들은 다 삼수를 끝으로 의대나 서울대등을 가는데 저는 스카이 지원하기도 민망한 성적을 얻었으니까요. 그때는 정말이지 수능끝나고 엄청나게 저자신을 자학하고 좋은 대학 들어간 친구들을 피해 자폐적인 생활을 하기에 바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쓰리긴합니다만 추억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그걸 계기로 저 자신은 많이 겸손해지고 인생의 쓰라림이란걸 조금이나마 알게 된거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루에 한개씩 제 지난 수험생활을 쓰겠습니다.. 이건 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간 제 수험생활에 대한 한탄을 쓰는것도 아닌 그냥 지나온 제 자신의 수험생활을 통해 여러분들은 제가 실수한 점이라든지 뭐 그런점들을 보고 그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맘에서 글을 쓰겠습니다.
내용이 무척 허접할지 모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그럼 내일부터 본격적인 제 수험생활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이제 부터는 지난 제 수험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길었던 수험생활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순식간에 지나간 옛일들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일단 전 고교 시절 공부를 잘 한다 하는 아이는 아니였습니다. 중학교때는 공부에 어느 정도 흥미도 있었고 해서 나름대로 잘하는 축에 꼈습니다만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즘 해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전 강남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반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 9등이라는 비교적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반이 10개가 넘었기때문에 반 1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무렵의 전 막연히 고3때 1년만 열심히 하면 서울대학 입학할수 있을줄 아는,즉 대학입시에 대해 무지한 녀석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전 고1,2 시절을 그야말로 허송세월로 보냈습니다. 그땐 무엇에 대한 갈망이나 열의도 없이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무미건조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것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기억들이네요.. 그리고 공부에 손을 놓은 만큼 성적도 알아서 떨어지더군요^^; 고1 첫 모의고사는 330점을 받아 반에서 2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6월 무렵에 본 모의고사에선 310점대를 받았고 2학기때 본 모의고사는 300점 밑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당시의 전 모의고사 성적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신이야 대학 갈때 영향을 준다니까 약간 있었지만.. 그리고 고2 시절은 280~90점대에서 밑돌았습니다. 반에서 6~7등 수준이었죠. 고2말에도 그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제가 공부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어느날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무척이나 화를 내셨습니다. 어머닌 제게 아무런 목적없이 사는 한심한 아들을 나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그 말에 충격받은 저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년가까이 안한 섭이 있어서인지 공부하는 흉내만 낼뿐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당시의 전 수능이나 모의고사에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었습니다.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대해 아는건 시험 과목수와 과목별 배점수 정도였습니다-_-+ 당연히 뭐가 중요한지,아니 그동안 고등학교 다니면서 뭘 배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은 막연히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잘 해결될 문제라 생각하고 태평하게 공부했습니다.
고2 겨울방학.. 그래도 이때부터 공부를 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던거 같습니다. 학원은 전혀 안 다녔고 가까운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 했습니다. 집나와 도서관가있는 시간은 10시간 정도 였는데 공부하겠다고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은 4시간 안팎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방학동안 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도서관에 나갔다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방학동안 제가 공부한건 개념 원리 공통수학과 지학사에서 나온 언어 문제집 한권,신사고에서 나온 피드백 과학탐구를 본거 였습니다. 그리고 개학을 하고 3학년이 올라가기 전까지 개념원리 수1을 봤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 시작과 첫 모의고사의 충격
그렇게 기본기가 전혀 안 잡혀 있는 상태로 3학년에 올라갔고 모의고사는 3주앞으로 성큼 다가왔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왔고 빨리 모의고사를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던거죠--; 실제 제 실력은 고2말에 비해 나아진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은 겨울방학때나 그럴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실력이 많이 뛰었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어쨌거나 3월 모의고사 치기전 제 기대점수는 350점이었습니다^^; 그렇게 고3 첫모의고사를 치고.. 그때 채점을 다하고서 그 참담했던 심정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요^^;; 302점 나왔었습니다(수리1 41점) 그때부터 수능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패자가 되나 하는 두려움(그때의 전 재수란건 염두에 조차 두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막연히 좋은 대학을 못가면 인생의 패자 취급을 받는줄 알았구요)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모의고사를 기점으로 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다. 10시 30분까지 진행되는 야자에도 남기 시작했고 4월 모의고사를 잘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반타작한 수리영역을 60점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3월말에서 4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수리영역만 3권을 풀었습니다-_- 어쨌거나 4월달 모의고사를 보고 목표 했던대로 수리영역1은 61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탐2 점수가 폭삭 내려앉았죠.. 그리고 나머지 과목에선 소폭 상승. 결국 3월보다 10점 정도 상승에 그쳤습니다(제 기대치는 +30이었습니다--) 5월은 모의고사도 없고 체육대회도 있는데다 슬슬 고3 생활도 익숙해져서 뭔가가 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야자도 자주 빠지고.. 5월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고 6월엔 종로 모의고사가 있었기 때문에 1달간의 방황(?)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허나 그때 저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모의고사를 응시하진 못 했습니다. 그리고 7월에 모의고사를 봤고 이때 330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때 전 무척이나 기뻤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회복했었습니다(사실 이 시험은 방학직전 고3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무척 쉽게 출제됐었습니다-_-;; 예를 들어 6월 종로모의고사 저희반 5등 점수가 340정도 였다면 7월 모의고사는 360정도였습니다.)
최초로 공부다운 공부를 했던 여름방학
어쨌거나 전 방학동안 30점 이상 올리겠다는 의욕을 갖고 여름방학을 맞았었습니다. 허나 막상 방학이 시작되니 장애요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학교 보충학습이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방학동안에도 의무적으로 5교시 수업을 들어야했습니다. 그때 저희반에 들어온 선생님들 수업은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고 반분위기도 개판이어서 정말 공부가 안 됐습니다. 학교가서는 잠만 자고 도통 공부를 할수가 없었죠. 그러다보니 무척이나 초조해졌습니다. 한창 공부에 열을 올려야할때 이게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그런 회의를 품고 있을때 제 보충 학습 문제집 한권이 없어졌습니다. 그때 전 쌓여있던 화가 폭발해서 제 자리를 뒤엎어 버리고 집에왔고 그 후로 학교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때가 방학 15일 정도를 남긴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방학끝날때까지 방학동안 집과 독서실만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이 2주동안 디딤돌에서 나온 수탐2 9권으로 분권된(공통과학 4과목,사탐 선택포함 5과목) 책을 사서 풀었습니다. 그렇게 15일정도나마 열심히 하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 생각해보면 그때가 고3시절중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데 개학을 하니 반분위기는 그야말로 극을 달리더군요.. 안 그래도 저희반은 제가 다니던 학교의 반중에서 분위기가 가장 안 좋았는데 방학이 끝나니 방학을 잘못 보냈다 싶은 애들이 재수를 결심하고 반분위기를 맘껏 개판으로 만들더군요--; 어쨌거나 개학하고 나서 학교에선 공부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문과임에도 불구하고 물리1이나 생물1 수업등을 듣기하길 강요하는 선생님들(거기다 자신의 선택과목이 아닌 선택과목 선생님들도 자신들의 수업 듣길 강요했습니다)만 해도 버거운데 반분위기까지 그러니.. 아무튼 방학이후 제 2학기 생활은 악몽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각은 있는데 주변 여건은 안따라주고.. 아무튼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학교를 자퇴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이땐 검정고시 패스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걸 몰랐었습니다) 어쨋거나 9월에 본 모의고사는 340점대가 나왔습니다. 그나마 여름방학 15일간 열심히 해뒀기때문에 얻은 성적이었습니다. 문과 전국 9%정도에 반석차 6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적은 11월까지 이어졌습니다..
모의고사와 달랐던 수능.. 재수 결심.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1999년 11월 중순이 됐습니다. 남의 얘기처럼만 느껴졌던 수능을 저도 봐야할 시기가 다가 왔던거죠. 그무렵에는 공부할때 집중은 안 되고 머리속은 수능이 끝난후의 낭만적인 상상 아니면 수능에 대한 무서운 상상(^^;)으로 가득찼었습니다. 수능 전날.. 후배들에게 엿과 찹살떡등을 받고 학교배정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배정받은 학교 예비 소집일도 갔다왔습니다. 예비 소집을 갖다 오니 수능이란게 정말로 피부에 와닺더군요-- 암튼 시험전날은 이래저래 심란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 했습니다. 그다지 좋지 못한 컨디션을 안고 수능 시험장에 도착했습니다. 시험장에는 각학교 후배들이 모여서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반면에 시험보러 가는 수험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습니다. 애써 태연한척하며 시험장에 들어가니 교실 분위기가 생소하더군요. 같은 교실에 아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에게 커피도 얻어마시고 같이 얘기하다 보니 긴장이 조금 풀리더군요.
그리고 담당 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이런저런 주의사항 전달과 함게 노란 뚜껑의 컴퓨터 싸인팬을 나눠주더군요. 잠시후 음침한 목소리의 시험 예비 방송이 나오더군요. 그때부터 초긴장^^; 언어 시험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몰래 시험지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데 딱봐도 모의고사와 문제 형태가 많이 다르더군요. 일단 시험지 자체가 누리끼리하고 활자도 컸습니다. 그리고 모의고사보다 시각자료를 활용한 문제도 훨씬 많고 문제들도 생소해 보였습니다. 뭔가 찜찜하단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듣기 평가가 시작됐습니다. 모의고사와 성우들 목소리가 많이 달라 당황했습니다-.- 음질도 꽤나 안 좋았구요.. 그리고 듣기도 모의고사에 비해 많이 어려웠구요. 다행히 쓰기는 쉬웠구요.. 하지만 현대시와 고전시가를 묶어 9문제를 묶어 출제한 부분에서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거의 무중력 상태로 문제를 풀었구요.. 어떻게 어떻게 1교시를 다풀고나니 어벙벙 했습니다. 이게 수능이란거구나 하는 느낌.. 낯설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치다보니 집에서 수능 기출 푸는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아무튼 1교시 언어가 어려웠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화장실엔 삮은 형들이(-_-) 몰려와서 담배를 피면서 시험 정말 어렵다고 한탄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만 어려운건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2교시 수리1.. 그래도 고3때 수학공부한다고 시간좀 많이 투자했는데 언제나 부담스럽더군요.. 다행히 수리1은 쉬웠습니다. 집합과 관련된 실생활 문제라던지 하는 몇몇 생소한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만 모의고사보다 어려운거 같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친구들과 '역시 수능은 달랐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3교시 수리2.. 과탐은 쉬웠으나 사탐에선 몇몇 까다로운 문제들이 보였습니다.. 모의고사완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때쯤 되니 마음이 풀어져 잠이 몰려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다 풀었구요..
외국어는 듣기 음질이 너무 안 좋아 놀랐습니다. 모의고사 음질과는 너무 다르더군요. 네이티브 스피커들 목소리나 발음도 이상한거 같고.. 듣기에서 한방 먹었습니다만 다행히 독해는 많이 쉬웠습니다. 특히 문법 문제가 너무 쉽게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어쨌거나 다 끝나고 나니 후련하다기보단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들더군요. 친구들도 모두 그렇다 했습니다. 겨우 이 시험을 위해 내가 1년간 그 고생을 했나 하는 느낌.. 미련이 너무 남더군요.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에는 늦게 들어갔고 채점은 다음날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했습니다. 344.5나왔더군요. 평소 모의와 비슷한 점수여서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만 재수해야겠단 생각은 들더군요-.- 제 고3 시절 목표는 고대경영이었고 이곳에 가기엔 점수가 많이 모자랐기때문에 미련없이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그때부턴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막상 재수를 선택하니 맘이 홀가분하더군요. 다른 친구들은 대학가려고 머리 싸매며 배치표 보고 그러지만 저나 재수를 결심한 친구들은 가끔 재수학원 방문해서 상담받아 봤을뿐 대학지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수 학원은 강남대성과 강남종로등을 생각해놨습니다. 결국 전 시험을 봐야 들어갈 수 있는 강남대성 대신 강남종로를 택했습니다. 1년더해서 스카이 가자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그렇게 저의 재수생활은 시작되려 했습니다^^;
희망에 찬 재수생활 시작과 재수생활에 대한 실망
2000년 2월부터 저의 재수생활은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종로학원과 강남 대성학원을 동급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때는 수능이 쉬워지면서 강남 대성학원이 뜨고 종로학원은 추락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무시험 점수도 강남 대성이 종로에 비해 다소 높았죠. 강남대성 무시험 점수가 원점 350점으로 전 5.5점이 모자라 유시험을 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거기다 강남대성 유시험 경쟁률은 13:1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시험을 봐야하는 강남대성을 포기하고 강남종로를 택했습니다. 그당시의 전 종로학원이나 대성학원에 들어가면 스카이 입학이 보장되는줄 알았습니다-.- 학교보다 훨씬 좋은곳에서 1년더하는데 점수가 몇십점 퍽퍽 뛰는건 지극히 정상이라 생각했죠.. 아무튼 희망을 안고 재수생활에 돌입했습니다. 제 친구중 한 녀석과 같이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원을 다녀보니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일단 학원선생님들 연세들이 너무 많으셨습니다. 6.25참전 용사도 있었으니까요-_-;; 그리고 수업 자체가 수능과는 약간 괴리감이 있는듯 했습니다. 일단 학원 수업에 대해 실망을 적잖게 했구요. 그리고 남학교만 다녔기때문에 남녀공학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수학원 다니면 꽤나 낭만적인 생활이 될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희반엔 여자애들이 무척이나 적었고 남자,여자가 완전히 구별돼서 놀았기때문에 제 꿈은 그야말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종로학원은 거의 매달 월례고사만 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능이 한창 쉬워지던 시기로 종로학원의 월례고사는 당시 추세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외부 학원에 나가 전국모의고사를 치면 360~70점정도가 나오는데 종로 월례고사는 320정도에서 머물더군요.. 그 시험을 볼때마다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불만을 안고 학원을 다니는데 저의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학원을 그만둬 버렸습니다. 그 무렵 악몽의 8월 월례고사를 쳤고.. 전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점수를 얻었습니다.. 그당시 저희 학원 1등이 380이었습니다(종로학원 1등은 전국 1등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그리고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 공학부 다니다 문과로 저희반에 들어온 여자아이가 316점을 얻은 징그러운 시험이었습니다(물론 그 여자애가 시험을 무지 못봐서 이기도 합니다) 전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을 그야말로 x같이 봤고 그래서 그걸 계기로 학원을 관뒀습니다. 사기만 떨어진다는 판단이 서서--; 그래서 학원을 그만둔 친구와 함께 단과학원을 전전하며 다녔습니다. 당시에 들었던 수업은 조진만 언어와 이범 공통과학이었습니다. 종합반처럼 빡빡한곳에서 살다 여유롭게 독학생활을 하니 무척 좋더군요.. 제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헌데 제가 그때 실수한게 늦잠 자고 새벽에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던겁니다. 독학생들이 실패를 많이 하는 이유가 리듬이 깨진 생활을 해서 인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습니다.. 아무튼 학원을 그만둔 시점부터 하루 10시간 공부 체제에 들어갔고 뭔가가 정리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고3 여름방학에 받았던 느낌)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냈답니다^^; 모의고사 성적도 오르기 시작해 375점 정도를 고수했습니다. 학원에 모의고사 성적표 들고가 상담해보니 연고대 중위권 정도는 가능하고 남은 기간동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연고대 상위권 학과도 가능할거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정말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습니다..
난 할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나 수능이 가까워지면서 전 무너졌습니다. 새벽 4시에 자고 12시에 일어나는 생활은 수능보기전까지 계속됐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능보기 4일전부터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했고 갑자기 생활리듬이 바뀐데다 날씨까지 추워져 내성이 약해진 전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평소때는 걸리지도 않던 감기가 긴장이 한참 돼 있고 하니까 턱 걸리더군요. 초조한 상태로 계속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감기가 떨어지지도 않고..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습니다. 신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냐고 한탄했습니다(따지고 보면 몸관리 못한 제 잘못인데도 말이죠^^;) 그래도 수능은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허망한 2001수능.. 지옥을 보다-.-
어쨌거나 수능은 봤습니다. 몸이 무척 아픈상태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픈건 수리1 풀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문제를 풀었고 검토도 잘 못했습니다. 그나마 오후에 감기약 먹고 시험을 봐 좀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수능을 정말 망쳤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스카이는 물건너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재수생활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실패이니.. 너무 허망해 방황하다 하루 날새고 집에 들어가 채점을 했습니다. 점수는 의외로 잘나와 370가까이 나왔습니다. 수학에서 무려 13점이나 계산실수를(이거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어떻게 수학 한 과목에서만 5문제나 실수를<제가 틀린 문제를 남들에게 말해주면 누구나 어이없어하며 실수했구나 라고 인정해줬을 정도입니다.> 할수 있는건지..) 했는데도 점수가 저정도라니.. 그래서 연고대 낮은과는 갈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흐믓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에 자주들어가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모의고사 385~390나오던 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396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흠.. 이 녀석 대박났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380이상이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당황해서 모교에 전화해봤습니다. 담임 선생님 말씀 '애들이 모의고사보다 평균 20점 올랐다'
그말을 듣고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뉴스에서 이번 수능 20점 오를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고3때와 별 달라진바 없는 결과를 얻은것이죠. 고3때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어째서 점수는 그렇게 나온것인지.. 아무리 아팠다지만.. 시험이 쉬우니 실수 몇개만 해도 끝없이 추락한다는걸 피부로 실감했습니다.
아무튼 그때의 전 kice를 매우 비난했습니다.. 안티 수능인플레이션에 가입하기도 하고.. 그래봐야 핑계에 불과합니다만 그 당시 제겐 핑계거리가 필요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성적이었던 친구들은 보통 385안팎으로 나왔더군요.. 그 친구들과 함께 있을때면 뭔가가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걔네들보다 공부도 더 많이 한거 같고 더 잘했던거 같은데 막상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내가 걔들보다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 결과가 나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 수능 성적표를 받은후 1달간의 방황을 접고 삼수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그땐 오기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비록 삼수까지 하게됐지만 이번엔 비교 내신도 적용받겠다 서울대나 가자 하는 위안을 하며^^;
악몽같던 2001수능후 전 삼수를하게 됐습니다. 재수때까지만해도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삼수쯤 하게 되니 제 신분에 대해 부끄러움이 많이 느껴지더군요-_-ㅋ 남들이 학교 어디다니냐고 물을 때의 곤혹스러움.. 아무튼 삼수때부터 제게 가장 힘들었던것은 남들에게 제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는겁니다. 사실 삼수든 사수든 가족을 제외한 다른 분들에겐 특별히 힘들게 하는 것도 없고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전 그런 태도들때문에 항상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수능이란 큰 시험의 압박감에 약해서 삼수나 그 이상 하는 사람들이 따스한 시선이 아닌 경멸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이 사회가 너무 싫었습니다. 재수때만 해도 그런게 적었는데 삼수때쯤 되니 상대적 박탈감이란 감정도 일어나더 군요. 그다지 공부도 안 하고 잘하지도 못했던 애들이 수능 한번 잘봐 좋은대학가고 그런 경우도 많이봤고,저처럼 공부를 열심히했어도(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생각입니다-_-) 수능 당일 한번 삐끗해 1년더 하는 애들이 수도없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외국에 살다왔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을 특례입학하는걸 보니 배알이 많이 상했었습니다. 연예인등 특별한 능력이나 경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학 특례 입학은 이해하겠습니다만 단지 외국에 살다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생들은 피터지게 해도 들어가기 힘든 대학들을 손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건 정말 말도 않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더 화가 났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당시의 전 수능외적인 요소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구정때 사촌누나와의 마찰도 빼놓을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얘기는 해줄 수 없지만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그 누나가 삼수를 하게된 저에게 비아냥 거리며 제 열등감을 자극해 서로 싸우게 된 일인데요.. 그 누난 저보다 2살많은데 저에게 '이번에 수능 쉬워서 내 친구들 다 시험 잘 봤던데 넌 연고대 간다고 그러더니 어떻게 된거냐. 모의고사볼때 컨닝했던거냐.. 아님 겨우 그 실력으로 연고대를 넘본거냐' 이러더군요.. 아무튼 그 소리 듣고 너무 화가나 친척들 앞에서 추태좀 보였습니다-_-+ 그 사건은 제게 많은 상처를 줌과 동시에 제게 오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후 입을 앙다물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삼수때 전 어느 종합학원을 잠깐 다녔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원에 다닐때 같은반 여학생이 제게 호감을 보여왔습니다. 그때 저희반 까페에선 1주일에 한번씩 정팅을 했고 그때 그 여학생이 제게 따로 귓속말을 보내오며 제 핸폰 번호를 묻곤 했습니다-_-; 그 여자아이는 제 이상형과도 많이 달랐고(그당시의 전 기가 많이 죽어있었기때문에 그 아이처럼 자유분방한 아이들은 부담스러웠었습니다.) 더욱이 삼수생이라는 신분의 부담감으로 전 그 아이의 호의를 무시했었습니다. 가끔 적극적인 그 아이에게 휘둘리기도 했지만(영화보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간다던지 하는.. 저는 남중 입학후 여자와는 거의 말도 안 하는 그런 소심한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팔짱을끼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해 많이 놀랐었습니다-_-;;)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일들로 4월에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그때 핸폰도 끊고 저희반 까페에서 탈퇴함은 물론 이멜주소나 메신져 주소도 바꾸는 등해서 그 아이와 연락은 한동안 끊겼었습니다.
삼수를 하면서 전 여유를 잃어갔습니다. 남들과 노는 시간도 아까웠고 지난 2번의 연달은 실패로 더이상 실패는 용납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절 내내 눌러왔습니다. 결국 전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대한 자제하며 집과 독서실만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독학을 하다보니 나름대로 여유가 있어 그때부턴 비교적 두꺼운 기본서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엔 조금 보다 말았던 정석이라던지 텍스트 공통과학등 두꺼운 책들도 봤고 영어 실력을 늘이고자 성문 종합 영어등을 보기도 했습니다. 기왕 삼수까지 하게 된거 수능을 완전히 마스터 해버리자는 목표를 가졌었기때문에(실제로 이건 삼수가 아닌 십수를 해도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밥만먹고 언어 문제만 풀고 언어를 가르치시는 언어선생님들 조차 수능 언어 110이상 맞지 못 하는 분이 허다합니다. 언어 한 과목만 해도 그럴진데 전과목을 마스터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거 같습니다. 단지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하느냐 못 하느냐가 있을뿐..) 기본기 부재인 제게는 이것저것 공부할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한권당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문원각에서 나온 글동산 시리즈만 해도 10권 가까이 됐고 성경책만한 정석 2권,백과사전만한 텍스트 공통과학,역시 백과사전만한 성문 종합영어와 종합영어 해설책 2권.. 거기다 사탐 교재까지 하면 제가 그 당시 보기로 했던 책들의 페이지수는 10000페이지가 넘었습니다. 그 책들 쌓아 놓으면 거의 70cm에 달하더군요.. 그러자 공부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볼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서일뿐 문제 풀이감각을 높이기 위해 또 풀어야 할 책들이 있었으니까요. 결국 전 여러번 두고두고 봐야 효과를 제대로 볼수 있는 기본서들을 다 봐야 한다는 압박감때문에 주마간산식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그후엔 엄청난 파이널 문제집 사재기를 한후 그 문제들을 닥치는대로 풀어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양으로 승부하는 공부의 한계를 느끼고 방식을 고치려노력했습니다만 수능이 가까워지니 맘이 조급해져 예전의 공부방식을 고수하게 됐습니다.
어쨌거나 저의 모의고사 성적은 380점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월 중앙모의고사는 무려 391점을 얻었습니다. 이때 전 엄청난 희열을 느꼈고 저희 부모님들도 제가 삼수까지 해서 서울대 갈수 있겠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전 절 비웃었던 사촌누나를 떠올렸습니다-_-; 그 누나에게 복수할 시간이 왔다고 혼자 좋아했었죠.. 그런데 그런 생각때문에 벌받은 걸까요.. 실제 수능때 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얻었고 이번엔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20년 조금 넘게 살아온 제 삶에서 가장 쓰린 순간이었죠^^;
2001년 11월에 제 인생에서 세번째 수능을 보았습니다. 수능을 보기전에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이번엔 진짜 입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설레였었습니다. 하지만 다른해와 마찬가지로 수능이 코앞에 닥치자 소심증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이틀전부터 잠을 잘 잘수가 없었습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이 안 오더군요-.- 그나마 수능 전날에 우황청심환을 먹어서 좀 낫긴 했지만 수능 당일날 컨디션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만 잘 버티면 이제 끝이라 생각하니 힘이 나서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수능 보면서 정말 당황 했습니다. 수능문제가 너무 어려웠던겁니다. 수능보기전 kice에서 이번 수능은 제가 고3때 봤던 00수능 난이도에 맞추겠다고 했었습니다. 순진한 전 그걸 믿었고 이번에야 말로 난이도 조절에 성공하겠구나 하는 맘을 갖고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본 시험 문제 난이도는 제 고3때 수능 난이도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언어,수리1,과탐등은 제가 재수시절 종로학원에서 봤던 월례고사만큼 어려웠습니다. 거기다 외국어 듣기 음질도 최악으로 안 좋았습니다. 언어풀때부터 뭔가 한방 맞은 느낌이었고 그때부터 사기가 꺽였었습니다. 남들도 다 어려울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난 수능만 보면 왜 이럴까'하는 좌절감만 들어 끝없이 추락해갔습니다. 2교시 부터는 좌절감을 안고 시험을 봤고 4교시 외국어까지 모든 과목이 어렵게 느껴져 절망하면서 풀었습니다.
수능을 다치고 참담한 심정을 못 이겨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갔었습니다. 친구들도 수능 난이도가 예상보다 너무 어려워서 당황했다고 그랬었습니다. 그때 전 정말 죽자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 몇점이나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평소 모의고사에 비해 점수가 엄청나게 떨어졌을거란 느낌이 매우 강렬하게 왔었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신후 술기운을 빌려 겜방에 가서 채점을 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재수시절보다 거의 40점이나 떨어진 328점이 나오더군요. 그때 몸이 너무 떨려와 주체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바로 한강으로 달려갔을지도 몰랐습니다. 제 친구 녀석들도 하나같이 작년보다 몇십점씩 떨어져 삼수 헛했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재수때 점수는 커녕 고3때 점수 근처로라도 나온 애 하나없어 저희들은 함께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친구 녀석들중에 가장 심하게 망한(점수가 가장 낮은게 아니라 모의고사에 비해 젤 많이 떨어졌다는.) 사람은 저였습니다. 친구들은 보통 모의에 비해 40점 떨어졌지만 전 55~60점 가량이 떨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입시 사이트를 들어가봤습니다. 여기 저기 아우성이었습니다. 모의고사에 비해 100점이상 떨어졌다는 애들도 흔하게 보이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01년에 비해 50점 안팎으로 떨어질거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채감 난이도상 50점은 훨씬 넘게 떨어질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능을 3번이나 치뤘기때문에 그정도 감은 있거든요-.- 예상대로 가채점 결과 01에 비해 66점 가량이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문과 1등급 컷을 제 점수정도로 예상들 했습니다. 저같은 경우 모의고사에서는 줄곧 1%안에 들었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수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한 친구 녀석한테 연락이 왔는데 370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의대 지원하겠다고 으쓱해있었죠. 수능보기전까진 제가 그 녀석보다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재수때까진 이녀석이 더 잘했습니다만 삼수때 제가 따라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결과가 그렇게 나오고 보니 그 녀석에게 열등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은 친구들과 신촌에서 술 한잔 하고 집에 오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현실을 수용하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갈까 아니면 사수를 할까 그것도 아님 군대를 갈까 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에 눈은 내리고 탄천 주변을 혼자 거닐다보니 자살 충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때는 수능이 끝난지 한달이 넘게 지나 원서도 써야 하고 하는 때였지요. 전 혼자서 쭈그려 앉아 울다가 죽기로 마음먹고 다리의 난간을 넘어섰습니다. 탄천은 다리에서 약 20m이상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물이 말라 있어서 바닥의 밑바닥이 보일정도였으니 떨어지면 분명히 즉사라 생각하고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난간을 넘고 난간에서 손을 놓으려 하니 겁이 너무 났습니다. 여태까지 하고싶은것 아무것도 못하고 이렇게 죽는다는건 너무나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버리면 죽어서도 남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될거같았고 전 영원한 패배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죽음의 공포감은 제게 어떠한 오기를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1년 더 하자.. 그래서 실패하면 그땐 미련없이 뛰어내리자 하는 오기 였죠.
그때 전 사수를 결심했고 원서 쓰던걸 포기하고 바로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바로 수능 공부를 준비하자 좀 쉬었다 해라,대학을 다니다 시험보는 게 낫지 않겠냐,내년에도 실패하지 말란 법은 없는데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니냐 하면 저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전 정말 사활을 걸고 공부를 하려 했습니다. 핸폰도 끊고 인터넷도 끊고 혼자서 독서실 골방안에 틀어밖힌 채 문제집들을 싸아놓고 풀어댔습니다. 삼수때 제대로 못 봤던 기본서들은 그 기간에 제대로 봤습니다. 그런 저의 독기는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다 실패했던 사건 이후로 약 2달 정도 지속됐었습니다^^; 하루에 14시간씩 2달정도 하니까 기본서들을 충족감이 들정도로 볼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글동산책 10여권,수학은 공수,수1정석,과탐은 텍스트 공통과학,외국어는 성문 종합 영어,사탐은 손선생 교재와 역사부도,지리부도 등등 봤습니다. 그 2달간 본 책들만 해도 1만 페이지가 넘었습니다. 그 정도를 보자 제게는 여유가 생겼고 제 실력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섰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능볼때까진 공부시간을 줄이고 취침시간을 늘려가며 여유있게 공부를 하였습니다.
2월까지 기본기를 잡는데 성공한 저는 수능적 마인드를 좀더 확립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남는 시간은 수능 기출 문제를 풀었습니다. 수능 기출 문제는 94~02까지 수탐2의 일부 문제를 제외하고(현 교과과정에서 빠진 부분) 모두 분석했으며 수능 이전에 7차 실험평가 문제까지도 분석했습니다. 출제자와 대등한 안목을 갖기 위해(김기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단순히 문제를 풀고 마는게 아니라 그 기출 문제를 출제하는 과정과 출제한 이유등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과정은 3월까지 계속됐습니다.
4월부터는 어느 스터디 그룹에 참여했습니다. 그 스터디 그룹은 소수정예(^^;;)였고 나이 드신 분들도 많아서 분위기가 괜찮았답니다. 당시 그분들과 어려운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역대 모의고사중 가장 어려웠던 97년 모의고사 모음집 국영수를 사서 풀었습니다. 과목당 평균 30회의 문제가 실려있었고 언어와 외국어는 02,03수능보다 약간 어려웠던 수준이었으나 수리1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형중에는 학원에서 올림피아드반 강사를 하셨던 형도 있었고 그 형 말씀을 빌리자면 97년 당시 수리 60점이면 반석차 1등이었고 70점부터는 웬만한 인문고 전교 1등보다 높은 점수였다 합니다. 당시 학원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조차 그 문제들을 풀지 못해 수업전에 해설지를 보면서 풀이를 외워서 푸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는군요.. 지금과 다른 점이 수학 경시 수준의 문제가 4문제 가량 있고 그 문제들 배점은 무려 4점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수준 높은 문제를 실제 시험보듯이 계속 풀었고 저는 국영수 280만점에(듣기 평가 다 맞았다는 가정하에) 250점 정도를 얻어 같이 공부하는 분중에 가장 좋은 점수를 얻었었습니다(당시엔 모의 400만점에 340이면 서울법대,서울의대 지망권이었습니다.) 삼수할때까지 다져놓은 실력에 기본기를 좀더 다져놓고 문제를 풀었기 때문인지 당시의 제 문제 풀이 감각은 절정에 달해있었습니다(수능볼때는 이때보다 감각이 약간 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수학 점수가 올림피아드반 강사를 하셨던 형과 비슷하게 나왔던건(그 형도 문과 문제로 풀었답니다) 제게 성취감을 줬었답니다^^ 어쨌거나 5월 중순까지 97년 모의를 풀었고 5월 중순 이후에는 그 문제들 오답 정리와 정석등을 다시 봤습니다.
그리고 6월달에 사수하면서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봤습니다(이때는 월드컵 때문에 공부를 약간 소홀히 하기도 했습니다^^;) 종로 모의고사 였는데 97년 모의고사를 풀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언어를 제외한 과목들은 매우 쉽게 느껴졌습니다. 393점(언어 -6,과탐 -1)을 획득했고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습니다.
7월달 대성 역시 6월달과 비슷한 점수를 얻었고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파이널 문제집과 모의고사 모음집들을 풀어댔습니다. 문제 안 좋기로 아주 악명높은 문제집이 아니면 거의다 구해서 풀어봤던거 같습니다. 가끔 마하3 언어같은데서 100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와 좌절하기도 했습니다만 실전이 아니라는데 안도하며 문제풀이 감각을 최고조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9월 3일 수능 모의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이 시험은 실제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kice가 최초로 출제한 모의고사로 다른 모의고사에 비해 의의가 아주 큰 모의고사 였습니다. 전 이 시험을 잘봐서 수능 보기전에 수능 공포증을 날려버리겠다는 각오를 갖고 시험에 임했습니다. 이 시험은 실제 수능과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사설 모의고사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고 체감난이도는 02수능과 비슷한듯 했습니다. 언어풀때 긴장해서 시간배분을 잘못해 언어를 약간 못 봤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과목은 그럭저럭 풀어냈고 총점 373.5(언어 -12)라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으로 저의 수능 컴플렉스는 많이 해소됐고 전 수능을 최초로 마음 편하게 봤습니다. 물론 실제 수능에서도 실수를 꽤 많이 해 평소 실력에 비해 점수가 약간 덜 나왔으나 다른해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03수능은 9월 3일이나 02수능에 비해선 약간 쉽긴 했으나(큰 차이는 없었던거 같습니다) 수능 보기 전에 예상했던 난이도에 비해선 다소 어려웠습니다. 특히 언어가 어려워 잠깐 당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탐도 어려워 상대적으로 과탐을 소홀히 풀었고(빠르게 풀고 별표 쳐놓은 문제 검토도 안 했습니다. 문과라 사탐이 훨씬 중요하기때문에 사탐에 집중 투자했고 덕분에 같은 점수대 애들에 비해 과탐 점수가 저조하게 나왔습니다) 외국어도 문법이 다소 어려운듯 했습니다(한정사 문제등 성문영어나 토익 공부할때 봤던 문법들이 나오더군요.)
전 ebs를 보며 채점을 했고 총점 376점을 얻었습니다(문과 0.1%안에 드는 점수라는군요-.-) 언론의 10점이상 오른다는 보도를 무시하고 가족들과 함께 축배를 올렸습니다(사수생의 경험상 02수능보다 5점이상 오르기 힘들거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수학과 과학이 02에 비해 다소 쉬웠으나 언어나 사탐이 워낙 어려워 02와 큰차이가 없었거든요) 그때 전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너무 흥분해 잠자는 것도 잊었었죠.. 그런데 그런 열기와 흥분도 하루 자고 일어나니 약간 꺼지더군요-.- 그때부터는 구술과 논술을 잘봐서 원하는 대학에 꼭 합격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방심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이 휴식을 요구해(--) 그간 잘 안 만났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어울리기도 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혼자 산책을 하며 지난 4년간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원서를 쓸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수능에서 연달아 실패를 하고 보니 고시등의 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해서 한의대등에 교차하고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많은 고민끝에 꼭 고시가 아니더라도 문과에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자는 생각에 문과쪽으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가군 고대법대와 다군 한양법대는 접수 첫날 지원했으나 나군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서울대를 쓰긴 쓸건데 법대를 쓰느냐 아니면 경영대를 쓰느냐를 놓고 고민했던거죠. 결국 전 비교과의 불리함과 수능점수가 약간 자신없어 경영대를 썼습니다(제가 재수를 하면서 법대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나 고3때까진 경영대 쪽에 관심이 많았었거든요. 그리고 저같은 경우는 법대와 경영대 모두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구요)
그리고 고대법대와 서울대경영 모두 붙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막상 붙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일단 전 고대법대만 가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법대를 붙은날 그간 제가 힘들때 제 곁에 있어주면서 위로해줬던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했고 제가 아는분들께 일일히 전화를 드려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거기다 서울대까지 붙어서 지금은 맘 편하게 제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상 제 수기아닌 수기였구요.. 다음번엔 제가 공부했던 방식에 대해서 간략하게 한번 써볼까 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사수에 성공했던 우리 과 후배의 수기를 우연히 발견해서 퍼 온 거다.
본의 아니게 훌짓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학부가 평생을 따라가니
정말 독한 마음으로 열심히 해서...내년 이맘때 여기서 내 후배들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서울대 LG 경영관. |
첫댓글 결과만 보장된다면 도전안할사람이 어디있을까요.......다만 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크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