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에서 흘린 땀
입추가 지난 팔월 둘째 토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약차를 끓이면서 하루를 보낼 동선을 구상하며 시조를 한 수 다듬었다. “그 아낙 예순여덟 남편은 일흔두 살 / 당신은 수를 다해 올봄에 먼 곳으로 / 보내기 싫다는데도 영영 가고 말았다 // 가기 전 이녁 손에 심어둔 고추 자라 / 열매는 붉게 익어 이렇게 말리는데 / 거기는 열대야 없이 시원한가 몰갓소” ‘가술 아낙 고추’ 전문.
어제 아침에 유등 강변으로 나가 북부리 팽나무에서 둔치 파크골프장을 지나 들녘을 더 걸었다. 서부 배수장에서 송등마을을 거쳐 가술로 가는 길이었다. 시골 초등학교가 저만치 보이는 한갓진 외딴 농가 울타리 바깥 한 아낙이 뭔가를 바람에 쏘이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작년에 거둔 들깨였는데 들기름으로 짤 생각이라고 했다. 곁에는 붉게 익은 고추를 말렸다.
내 눈에 비치기는 부녀 손에서 지은 농사가 모두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벼농사 들녘이라 밭이 많지 않은데 정성을 들여 가꾸어 거둔 수확물이었다. 초면인데 그 아낙은 누구라도 붙들고 얘기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남편이 지난 사월 고추 모종을 심어 놓고 세상을 떠났다며 나에게 하소연하다시피 했다. 마당에는 더 많은 고추가 있다면서 나를 현장으로 인도해 보여주었다.
안마당에는 말려둔 고추가 그득했고 건조실로 넣으려고 준비해둔 고추도 있었다. 아주머니가 고추를 사 가십사 해도 내가 사 줄 처지 못 되는데 다행히도 팔 물량은 없다고 했다. 아마 가족 친지들에게 보내기로 예약된 듯했다. 농사일에 고생 많아 무슨 말로도 위로 격려가 되지 않을 듯해 얘기를 듣기만 하다 남편이 평소 몸이 어디 편찮았는지 여쭈었더니 술은 즐겨 드셨다고 했다.
그 아낙과 헤어져 남은 여정을 보내고 새날을 맞은 이튿날이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손 농사짓는 고추밭 이랑은 가보지 않았어도 말리던 고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제 만난 아낙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 예의는 현장 상황을 몇 자 글로 남기는 일이었다. 앞서 소개한 ‘가술 아낙 고추' 평소 아침 안부를 전하는 지기들에게 말리는 고추 사진과 함께 쓰려고 준비해두었다.
새날이 밝아온 토요일은 한낮 무더위를 피해 새벽 이른 시각 산행을 나섰다.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 불모산동을 출발해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첫차 17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벗어나 굴현고개를 넘으니 북면 일대는 안개가 펴지는 즈음이었다. 안개는 대기 중 떠도는 수증기가 일교차가 큰 새벽에 끼는 현상으로 열대야를 치르면서도 계절이 바뀌는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외감마을 동구 밖에서 내려 달천계곡 입구를 비켜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 단감나무 과수원을 지났다. 봄날에 산나물을 마련하느라 드나든 숲인데 여름날 다시 찾았다. 양미재로 오르면서 등산로를 벗어나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된 숲 바닥을 누볐다. 오리나무가 주종인 활엽수림에 간간이 참나무가 섞여 자랐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붙는 영지버섯인데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양미재에 이르도록 안개는 더 짙어져 걷힐 기미가 없었다. 방향을 잘못 정해 돌너덜과 칡덤불을 헤쳐가느라 힘들었지만, 고추나물이 피운 꽃과 고추잠자리도 봤다. 찾아낸 영지는 적어도 자연산 땀을 흠뻑 흘려 옷이 젖었다. 산마루 바위 더미에 앉아 술빵 조각을 간식 삼아 얼음 생수를 들이켰다. 작대산 트레킹 길 양목이고개에서 중방마을로 내려서면서 영지를 몇 조각 더 찾아냈다.
숲을 빠져나가니 군부대가 떠난 사격장에 높게 짓는 아파트는 마무리 단계였다. 자영업을 하는 초등 친구와 연락이 닿아 감계에서 도계동으로 옮겨왔다. 친구와 콩국수를 같이 먹고 친구 사무실에서 커피를 들면서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귀로에 배낭에 든 영지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아도 집 근처 제과점으로 보냈다. 산행 중 간식으로 삼으라 챙겨준 캔디에 대한 사례였다. 24.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