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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이가 도착하는 것을 본 근상이가
“왔다 왔어 수동이 가 왔어.”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서 희상이에게 예기를 하였다.
희상이 울면서 나와 수동이를 얼싸 안았다.
영문도 모르는 준광이가,
“으아.”
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얼른 희상이 울음을 그치고 준광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십년 이상 헤어져 있던 모자 상봉을 구경하던 이모네 식구들은 실망 했다. 울고불고 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울고 싶을 때 아니 울어야 할 때 정말 후회 없이 펑펑 울어야 맺힌 한을 풀어버리는데 도대체 어이된 영문인지 수동이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리움과 원망이 공존하여 쌓인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스스로 다짐 하기는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행복을 꼭 찾아서 행복을 누리소서. 하고 빌지 않았던가.
희상은 준광이를 내려놓지 않고 하루 내내 안고 쓰다듬고 귀여워하며 보내고 근상의 집에서 나오는데 춘식의 아내가 소뼈 썬 것을 봉지에 담아 희상에게 주면서
“이모 이거 이모부 해 드리세요.”
“그래 고맙네. 질부.”
하면서 받아가지고 나왔고, 수동이도 인사를 하고 근상의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와서 희상이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나고 수동이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쉬는 날 영자는 집에 있던 파마 약으로 수동이 머리를 파마를 해 주었다.
그리고 머리에 미장원에서 쓰는 알루미늄 찍개가 꽂힌 줄도 모르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서 동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다가 쇼 윈도우에 비친 모습에서 찍개를 발견하고 황급히 떼어냈다.
그런가 하면 재덕과 정순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재덕 매일 하는 일이 공사장에서 하스리라고 콘크리트가 잘못된 부분을 떼어내기 위해서 왼손에 정을 들고 오른손으로 망치질을 하다 보니 오른쪽 어깨가 아프고 쑤셨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끙끙 앓다가도 아침이면 또 다시 공사장에 나갔다.
그렇다고 병원을 갈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한 것을 지켜보던 정순은 삶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수동이에게 손을 벌리기에는 맨날 재덕이 입버릇처럼 내 뱉은 말이.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자식에게 기대지는 않는다.”
하는 말이 정순의 발목을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동이 결혼을 시켜서 살림을 내 주고 한 달 후 생활비 좀 보태 달라고 영자를 찾아갔을 때 영자가 난처해하기도 했지만, 그 일을 안 재덕으로부터.
“그래 당신 낯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수동이에게 뭐 해준 게 있다고 손을 벌려. 내 사지가 멀쩡하고 계집애들이 다 커서 밥벌이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너무…….”
“시끄러 지금 그렇다고 굶어! 삼시 세끼 밥 먹으면 됐지.”
하며 입도 뻥긋 못하게 하지 않았던가.
재덕 또한 그때의 생각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를 고민에 빠져 있던 정순이 재덕에게 다시 망설이가 말을 열었지만.
또 한 번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월곡아파트에 사는 윤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정순에게 서산간척지를 지금 분양하는데 그걸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 재덕과 정순에게 남은 것은 달랑 방 한 칸 전세금으로 남은 돈은 팔십 만원도 안 되는 돈이 남아 있었다.
그 돈이면 겨우 전세를 끼고 다시 월곡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었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정자를 종현이와 떼어 놓아야 하는데 다시 월곡아파트를 사서 들어올 수는 더욱 없었는데 그런 제의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 번 알아보세요.”
“내 그럼 알아볼게요.”
“우리 두 늙은이 농사지어 먹고 살면 되니까 잘 알아보세요.”
그런데, 처음 월곡아파트를 살 때 계약을 했던 복덕방 광옥이.
“저 성남 시장에서 장사를 해보는 어때요.”
“시장 옆에 공터에 가게를 꾸미고 해장국을 만들어 팔면 그 식구 먹고 사는데 걱정 없을 거예요.”
“그래요 그러면 우리 준광이 할아버지한테 이야기 해 볼게요.”
그렇게 해서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재덕에게 성남으로 가서 순댓국 장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성남시장 부근에 살림방 하나를 전세로 얻고 가게도 얻어서 이사를 하는 날이 되었다.
종현 엄마는 가기 싫다는 종현이를 잔소리를 해대서 이삿짐을 날라서 차에 실고 수동이도 하루 시간을 내어서 이삿짐을 날랐다.
용동이와 성동이도 와서 이사를 도왔다.
그러나 종현이 기대했던 것의 정 반대로 정순의 태도는 차가왔다.
그렇게 눈총을 받으며 성남 까지 가서 이사를 도왔다.
이사가 끝나고 서둘러 가게 열 준비를 서둘렀다.
비좁을 가게라 각목을 사다가 밖으로 허가 없이 멋대로 식당의 홀을 꾸몄다,
뺑 둘러서 바람막이로 비닐을 둘러치고 탁자 서너 개와 의자 열댓 개를 놓고 돼지고기 부산물을 떼어다 장사를 시작 했다.
정순은 그런대로 열심히 장사를 해나가고 있었고, 재덕도 열심히 도왔다.
손님을 끌 생각으로 듬뿍 듬뿍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순의 생일을 맞아 수동이와 영자가 성남을 찾았다.
재덕은 영자에게 많이 먹으라며 고기를 잔득 넣은 순댓국을 말아 주었다.
영자는 재덕이 기뻐 할 만큼 많이 먹었다.
그리고 정순이 의도한 대로 정자는 종현에게로 가지 않고 눌러 앉아서 종현이 오기만 하면 피해 버려서 종현은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자 종현 엄마도 아들 보고 포기 하라고 했고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한편으로 숭인동에 겨울 장사는 끝나가고 있었고. 수동이도 눈 오고 미끄러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수동이는 택시기사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자는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운전이라는 게 사람이 집에 들어와야 맘을 놓는 직업이고 가끔씩 TV뉴스에는 택시강도 사건이 보도되어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동이가 출근시간에 손님을 태우고 홍제동에서 시내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육교 밑에 손님이 있어 합승을 하려고 3차선에 들어갔다가 출발을 해서 시내방향으로 오는데, 맞은편에서 자가용 승용차 한 대가 급히 라이트를 번쩍이며 좌회전을 하고 있어서 섰다.
‘쾅, 부직.’
그 자가용이 수동이가 운전하는 택시의 우측 휀다(fender)를 승용차의 우측 문짝으로 치고 나가서 섰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수동이의 구두 뒤창이 빠지고 뒤에 탔던 손님은 내려서 다른 차를 타고 가버렸다.
수동이와 그 자가용 기사는 순경이 가라는 데로 서대문 경찰서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수동이는 차주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차주는 시골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고, 대신 차주 부인이 어제 일하고 쉬는 기사 세 명과 함께 11시경에 경찰서로 찾아왔다.
상대측에서 차량수리비를 물어 줄 테니 합의서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수동이는 경찰서에 있고 동료 기사들이 차를 가지고 자동차 정비 공업사에 가서 부풀린 차량수리비 견적서를 가지고 와서 제출을 했다.
기사들은 일 못하는 일당까지 달라고 요구 하자 못주겠다고 해서, 협의가 깨지고 상대측은 맘대로 하라고 했다.
기사들은 수동이만 남겨둔 체 그냥 돌아가고, 경찰서 교통조사반 형사가 조서를 쓰면서 판례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 했다.
중앙선을 넘었기 때문에 일방 과실이다.
아니다 삼차선 까지 넘어 왔으면, 불법 좌회전으로 봐야 한다,
중앙선 침범 일방과실로 얼마 전 판례가 났지만 좌회전은 아니다.
라며 한참 격론을 벌리더니 점심을 먹고 오더니 조서를 쌍방과실로 해서 올리고 다섯 손가락에 검은 스탬프잉크를 묻혀서, 서류 뒤에 다섯 손가락의 손도장을 찍었다.
양측이 가져온 견적서를 합쳐서 계산을 하더니 20일씩 면허 정지를 내렸다. 개인의 재산이지만 국가의 재산을 손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찰서 문을 나설 무렵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차주가 올라와서 선배 기사들을 질책했다.
운전을 십년을 넘게 한 사람들이 쌍방과 일방을 모르냐 면서 아무리 일방과실 경우라도 상대가 물어준다며, 그걸 받고 물려 나야지 괜한 욕심을 부려서 수리비에다 운전사 면허정지에 벌금까지 나올 거 아니냐고 했다.
소탐대실을 하고 만 것이었다.
정말 이주일이 되어갈 무렵 봉합 옆서가 배달되었다.
검사의 출두명령서였다.
검사실에 가서 차례를 기다려 여직원이 이름을 불러서 검사서기 앞에 갔더니 벌금 10만원을 내라고 했다.
“억울한데요.”
“뭐가 억울해.”
“보시다시피 상대방 차가 중앙선을 넘어왔고, 재차는 서 있는 상태에서 받친 거 아닙니까.”
“그래도 상대방차가 다 들어왔고 받친 부위가 조수석이 이라서 서 있었다는 게 인정이 안 돼.” “보십시오. 이차의 회전력에 의한 미끄럼에 의하여 내 차를 치고 나간 게 아닙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재심청구를 하려고 하는데요.”
그때 검사가 검사서기와 수동이의 대화를 들었는지.
“이 봐 어떻게 된 사건인데 그래, 이리 가져와봐.”
검사서기가 서류를 검사에게 갖다 주었고.
“이봐 당신 일루 와봐.”
수동이가 검사 앞으로 가서 검사서기 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 차의 회전력에 의하여 까지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검사가.
“어디다 대고 손가락질이야, 건방지게.”
호통을 쳤다.
나이는 수동이보다 너덧 살 위아래 같은데 위압적으로 호통을 처서 수동이는 주춤했고, 이내.
“죄송합니다.”
하고 말을 했다.
검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억울합니다.”
“뭐가 억울해.”
“이십일 넘게 면허정지당해서 일 못하고 벌금까지 내려니 억울합니다.”
검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러면 오만원만 내지.”
했다.
“네.”
그렇게 오만 원을 깎아서 벌금을 내고 일은 마무리 되었다.
설이 지나고 수동이와 영자는 근상이네 집으로 세배를 갔고, 이모는 외삼촌내도 들리자며 신림동으로 갔다.
외삼촌 남식의 집은 단독으로 꽤 컸다.
인사를 하고 세배를 했다.
이십 년 이 지나서 만난 것이다.
남식이 조그만 상자에서.
“수동아 이거 보아라.”
한 묶음의 사진을 내놓았다.
“이게 너 잃어버렸을 때 용동이 사진을 찍은 춘천시내 사진관에서 원판을 찾아서 이 부분만 이천 장을 인화 해다가 서울역 일대에서 뿌리다 남은 것이다.”
수동이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영자가 신기한 듯 한참을 들여다보며.
“준광이 꼭 닮았네요.”
하며 모두 웃었다.
근상이도 한마디 했다.
“어쩜 여태까지 그 사진을 보관하고 있니.”
“그럼요. 누님 언젠가 수동이가 오면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인데요.”
“그 땐 온 식구들이 수동이를 찾으려고 난리를 피웠으니 에이그 참.”
“그리고 누님 이번에 집 사게 되었어요.”
“그래 어디다가?”
“요 앞에 삼 층짜리 가게 있는 집을 이천오백만 원에 사기로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이백오십만 원을 줬는데. 중도금 줄 날짜가 사흘 남았는데, 집값이 삼천만 원으로 올라가니 그놈이 해약을 하자고 해서 오늘 천만 원을 찾아다 중도금을 줬더니 이놈이 안 받겠다고 해서 복덕방하고 가서 세 시간이나 승강이 한 끝에 돈을 팽개치듯 주고 왔어요.”
“그래 돈 벌었구나.”
“그럼요 보름사이에 오백이나 올랐는데요. 그리고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해약을 하자고 한 거예요.”
하면서 연신 싱글벙글 했다.
수동이가 생각을 해보니 숭인동 김사장은 가을서부터 겨울까지 공장을 돌려서 백오십만 원 벌었다고 했는데, 외삼촌은 보름에 오백을 벌었단다. 모두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수동이와 영자는 준광이와 혜영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상이는 몇 칠 묵어서 갈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희상의 남편 석두만이 수동이를 보고 싶다고 해서 희상의 집으로 찾아 가게 되었다.
두만이 희상에게 수동이도 아들인데 뭘 몰래 만나지 말고 떳떳이 집에서 만나라고 해서 찾아가게 되었다.
수동이를 본 두만은 북에 두고 가족생각에 눈물을 지었다.
두만은 수동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많았고 기관지가 나뿐지 거담제를 먹고 있었다.
거기에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형욱과 중학교 다니는 영희 초등학교를 다니는 영옥 그렇게 다섯이 살고 있었고, 복덕방을 차려놓고 있었고, 젊어서 교육보험을 들어 놓아서 교육비는 웬만큼 해결을 하고 있었으나 생활은 넉넉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용현을 떼어버린 정자는 강장현을 만나서 살림을 시작했다.
재덕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고 무력해지는 지고 있었지만 정자의 무질서한 생활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영자의 막내 동생 미애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삼양사에 입사를 해서 종로에 있는 본사에서 수습과정을 밟아야 해서 올라와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재덕과 정순의 식당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했으나 정순이 손님이 가끔씩 부어주는 소주잔을 접하게 되면서 재덕은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고 그 나마 술이 얼간이 오르면 주방 일을 방치하다 시피 하니 재덕이 주방에 들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건 식당인지 술집인지 그런 날은 재덕은 일찍 문을 닫고 응얼거리는 정순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기고 눕혀야 했다.
그 옛날 매일 같이 도림개말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와 정순을 귀찮게 했던 시절과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술 마시면 어떻다는 걸 잘 아는 재덕은 무던히도 참아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날 다음날은 점심장사는 아무리 서둘러도 늦고 손님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물건을 산 외상값은 늘어가고 먹고 외상을 한 손님도 늘어가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차라리 어깨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망치질을 하는 게 났지 이 짓을 해야 하나 하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재덕에게 아주 반가운 제안이 들어왔다.
식당에 돼지고기 부산물을 대주던 사람이 방이동에 잔 밥을 거둬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걸 인수해서 잔 밥으로 돼지를 키워서 팔면은 돈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식당에 다니며 아침마다 잔 밥을 거둬오면 되고 낮에는 한가하게 잔 밥만 주면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정순이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있으면 젊은 녀석들이 누님, 누님 하는 것도 눈꼴이 시었고, 저러다 알코올 중독자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하는 생각이 미치자 식당을 넘기고 방이동 무허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한정된 땅에서 돼지를 기르기는 만만치 않았다.
재덕은 새벽같이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식당을 돌아다니며 잔 밥을 걷어가지고 돌아오면 집에서 돼지 먹이라도 덥혀 주면 좋으련만 처음엔 의욕적이던 정순도 차츰 등한시 했고 딸들은 엉덩이에 해가 치솟도록 자빠져 자고 있었다.
서로 도와서 돼지를 키우고 낮 시간엔 일을 나가면 모두 살 수 있으련만 모두 늙어가는 애비 등골을 빼먹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를 주어와 돼지죽을 덥히고 있자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어이구 인생사 꼬여도 되게 꼬였다. 왜 내가 바람을 피우고 조강지처를 버렸던가?’
‘왜 특별한 기술도 없으면서 물골안에서 땅을 팔고 나왔던가?’
‘나중에 듣기로는 전기가 들어와서 천수답이라고 관정을 박아서 매년 풍년을 구가하고 있다던데. 일 년만 참았으면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며 가을이면 남사당패를 만들어 신명나게 놀면서 보냈을 텐데.’
‘부모 복 없는 놈이 처복에 자식 복 까지 없구나.’
‘처복이 없는 게 아니지 내가 복을 차버려서 그렇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불을 때고 있노라면 돼지죽이 덥혀져, 퍼다 죽통에 들어부으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잘도 쳐 먹었다.
그럴 때가 재적으로서는 돈 버는 것을 떠나서 모든 시름을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돼지죽을 주고나면 정순이 아침을 지어서 차려 놓는데 소반에는 꼭 소주 한 병이 올라왔다.
“해장 하셔야죠.”
하며 따라주는데 싫지가 않다.
요런, 싹싹한 맛에 살지, 그리고 보면 저도 한잔 마셨으면 하는 눈치다.
“자 당신도 한 잔.”
그렇게 서로가 한두 잔을 하고 끝나면 좋으련만 술병은 금세 비었고 또 한 병을 꺼내어 비우고 얼근하게 취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재덕은 매일 술을 마셔서 중독이다 시피하면서도 거뜬했지만, 술에 취해 홍알거리는 정순이 어떤 때는 귀엽기도 했다.
그것도 돼지라는 게 적당한 두 수가 있어야 수입이 정상화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힘만 들었고 원하던 대로의 수입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넘겨주고 간 사람은 정보를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니까 작년 가을 박대통령 서거 전인 10월8일에 정상천 시장이 올림픽 유치를 공언 한 일이 있었고 고급 정보에 의하면 종합운동장에서 가까운 곳에 선수촌이 들어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재덕에게 넘긴 것이었다.
참 몰라도 한참 몰랐다.
그렇게 영업용 택시를 하던 수동이는 가리봉동에 살면서 그 동네 기아자동차 이사의 자가용 기사로 있는 팔촌 형 광동이의 소개로 이사의 공장건물에 세 들어서 고무공장 이사장의 포니 스테이션 웨건 기사로 취업을 하게 되어서 이사를 하려고 방을 빼고 가리봉동에 주택 2층 방을 계약했다.
출근을 해서 보니 그 곳에는 공장 건물이 세 동이나 되는데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공장 오토바이 라이닝을 생산해서 납품하는 공장 그리고 수동이가 일하게 된 공장은 성이화학이라고 화학을 전공한 사장이 유압기기에 쓰이는 고무링을 주로 생산하고 그 밖에 고무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불화학이라는 커다란 고무공장이 있었는데 성이화학 사장은 그곳에 고무배합 같은 것을 자문을 해주고 고무배합을 하게 되면 그곳에 있는 대형로러를 빌려서 고무배합을 해서 썼다.
라텍스 즉 생고무는 덩어리로 잘라서 무개를 달아서 카본 탄산칼슘 유황 어떤 경우에는 폐타이어 나 기름등을 넣고 대형로러에 수 없이 집어넣으며 국수 반죽하듯이 반복하여 고무가 잘 이겨져지면 적당한 두께로 빼내서 무개를 맞추어 잘라서 틀에 넣고 프레스로 압축한 상태로 열을 가하여 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 빼어내면 제품이 완성되었다.
열이 높거나 시간이 오래되면 타서 못쓰고 고무가 익지를 않은 면 못쓴다. 그리고 자가용은 한불 사장이 매달 얼마 씩 주기로 하고 출근 때는 청파동에 가서 모셔오고 퇴근은 안 시켜 주었으나 낮에는 중요한 업무가 있으면 같이 쓰고 있어서 두 사장을 모시고 다녔다.
이사 하던 날 재덕이 와서 수동이와 같이 짐을 일층까지 내려다 놓고 용달차를 불러서 짐을 실고 가리봉동에 도착하여 짐을 들여 놓고 정리를 했는데.
영자가 금붙이가 없어 졌다고 허둥지둥 대며 찾고 난리가 났다.
재순이 “얘 어디다 어떻게 두었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고모님 헌 덧버선 속에 넣어서 뭉쳐서 장롱서랍 안쪽에 넣어두었는데요.”
“아까 아범이 청소하면서 버리는 것 같던데.”
영자가 달려가 쓰레기통에서 헌 덧버선 뭉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사장도 공장 가까운 곳에 전세를 얻어서 살고 있었다.
공장직원은 동생을 포함해 네 명이 있었다.
그리고 사장친구들 모임에 가서 귀동냥을 했는데, 지금 사업하기 좋다고 하면서 국보위에서 어음을 100일 이상 끊지 말라고 해서 좋다고 했다.
한불은 로러스케이트 앞부분에 대는 고무를 생산하고 성이 화학 이사장은 고무로 만든 워키토키 안테나를 생산 했는데, 고무가 안테나로 이용되는 것을 본 수동이는 엉뚱한 생각을 가졌다.
저걸로 T,V안테나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고 불량이 난 안테나 몇 개를 가져다가 실내 안테나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형광등 스위치에 선을 길게 연결하여 전기가 얼마나 통하나 보기도 했다.
안테나 한쪽 끝에 선을 잇고 다른 쪽 끝에 연결을 해보니 불빛이 흐렸지만 켜 졌다.
사장에게 물어보니 고무에는 유황을 가류제로 쓰는데, 이게 절연효과를 내는 것이고, 유황이 아닌 전기가 통하는 가류제도 있다고 했다.
여름휴가 때 문막에 내려온 수동이는 사촌처남 순영이와 같이 가져온 안테나를 연결하여 옥외에다 세우고 시청을 했다.
엉뚱한 발상이나마 고무를 길게 뽑아서 나오면 잘라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무재료를 사서 고무파이프를 생산하는 곳에 의뢰를 해서 뽑으려 했으나 재료가 너무 딱딱해 나오지 않아서 실패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청파동에서 사장을 태우고 골목길을 나오는데, 오토바이가 약국 앞에서 상자를 내려놓고 있어서 경음기를 울려서 차가 지나가고 간다고 신호를 보냈는데, 상자를 들고 획 돌아서서 앞바퀴 밑에다 발을 집어넣었다.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이쿠, 하며 오토바이 기사는 발을 절룩거리고 수동이가 내려서 보니 오토바이기사가 양말을 벗는데 보니 새끼발가락 부분이 약간 벗겨져 있었다.
그냥 타넘어 갔으면 벗겨지지 않았을 텐데 너무 빨리 브레이크를 밟아서 마찰에 벗겨진 것이었다.
한불 사장은 내려서 택시로 출근을 하고 수동이는 차에 오토바이 운전사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봤으나 별 이상은 없었고, 일주일 정도면 다 낳는다고 했다.
그리고 수동이가 돈이 없다고 하자 오토바이 기사가 자기 돈으로 병원비를 내고 나와서 다방에 앉아서 사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사람은 수동이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의심이 났는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화장실에 가면 따라서 같이 갔다.
한참 후 한불 부사장이 와서 치료비를 흥정을 해서 10만원을 주고 합의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쉬는 날 수동이는 영자가 아이를 낳을 때가 다 되어서 반계리에 데려다 주고 올라왔다.
준광이에 혜영이 까지 세 식구를 맡기고 올라온 것이었다.
처제 미애는 수동이네 다락방에서 자고 출퇴근을 했다.
퇴근한 수동이는 근대를 사다가 바지락과 멸치를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약간 풀고 근대 국을 끓였다.
저녁에 퇴근한 미애가 맛있게 먹더니.
“이게 뭐야?”
하면서 조개 하나를 꺼내서 내 놓는데 개흙이 잔뜩 들어간 조개였다.
죽은 바지락을 모르고 넣어서 유통이 된 게 처제의 국그릇에 들어간 것은 조개를 까먹으려고 억지로 벌리니 개흙이 나온 것이었다.
어떤 날 저녁에는 수제비를 끓여 먹기도 했는데 공장에서 일을 마친 몇 몇이 와서 맛있게 먹고 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9월9일 진은 오늘도 가을걷이에 바빠서 일을 나갔다.
영자는 아침에 배가 이상스러워서. ‘엄마 오늘 일 나가지 마세요.’ 하는 말을 하려다가 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아픈 배를 참고 준광이 점심을 먹이고 혜영이 분유를 타 먹이고 났는데 진통이 시작 되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준광이가 상을 찌푸리며.
“엄마 아파?”
“으 으 음 엄마 아파. 준광아 요기 외숙모 집에 기사 외숙모 있으면 오라고 해.”
“응.”
준광이가 고갯방아를 찧고 쪼르르 달려가 현숙이를 불러 왔고 현숙이 진이가 일하고 있는 논으로 달려가 진이를 데리고 들어왔을 때 영자는 벌써 사내아이를 낳은 다음 아들 녀석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진이 깜짝 놀라.
“아니 그새 낳았네. 아이를 낳았으면 누워 있어야지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하면서 요를 펴 눕게 하고 태를 가르고 석유풍로에 물을 올려놓고 불을 붙이랴 미역을 담그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낳지 못한 아들을 둘이나 순산을 하니 절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물을 덥혀 손자 녀석을 씻기고 물을 버리려 나오는데 아이고 이번에는 손녀 혜영이가 징얼 걸린다.
바쁘다 바빠, 배가 고픈 모양이 들어가.
“예 혜영이 분유 몇 숟가락 넣으련?”
“분유통에 있는 숟가락으로 다섯 개 넣고 젖병 목까지 채워서 주면 먹어요.”
분유를 타서 혜영이를 주고 영자 후산을 시키고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고 미역을 돌을 쥐고 문질러서 씻어서 들기름을 넣고 볶다가 받아놓은 뜨물을 붓고 끓이고 한마디로 콩 튀듯 했다.
들녘에서 돌아온 천복이 왼새끼를 꼬아 숯과 고추를 중간 중간 꽂아서 대문에 걸면서도 천복도 싱글벙글 했다.
그렇게 한 바탕 법석을 떨고 나서 부부가 저녁에 준광이 혜영이 그리고 건넌방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니 오랜만에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건넌방에 건너간 진이는 나란히 누워있는 딸 영자를 보면서 낮 동안의 피로도 다 잊고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추석을 맞아 수동이는 이사장의 식구를 태우고 청원 부강 이사장 고향에 까지 식구들을 데려다 주어야 해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청주 요금소를 빠져나왔다.
조치원 외각을 지나는 국도가 빠르다며 이사장이 일러주는 대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국도에는 양쪽으로 프라다너스 나무가 터널처럼 이어져 있었고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앞을 보니 쭉 뻗은 길이 훤해 보였고 경운기가 앞서서 달리고 있었다.
수동이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없고 해서 경운기를 앞지르려고 차선을 변경하여 경운기와 나란히 선 순간 앞에서 버스가 갑자기 나타났다.
첫댓글 상상을 초월하는 만남이네요.
누구나 모자 상봉을 슬프고 펑펑 울어야 하는데. 그렇게 울어야 맺힌 한도 풀어내고 그래야 가슴에 멍울도 없어지는데
수동이나 희상이나 가슴에 멍울을 떼어내질 못했네요.
첫날밤 그렇게 펑펑 울던 수동이의 다른 면을 보는것 같아서 과연 우리가 수동이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아직도 풀지못할 무언가가 남아 있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눈물 마져 말라 버렸을 까요?
우리의 짐작을 벗어나게 하는게 또 다른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