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지족 가는 길
입추와 말복 사이 팔월 중순 일요일이다. 간밤은 열대야 기준에서 내렸는지 더위가 주춤해지는 느낌이다. 휴일 새벽잠을 깨면 일찍부터 근교 숲을 찾았는데 걸음을 나시지 않고 집에서 미적댔다. 점심나절에 나들이가 예정되어 남해 지족으로 가야 하는 일정을 앞두어서다. 퇴직 후 방학은 의미가 없다만 청년기부터 교직을 함께 수행해 온 대학 동기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낼 날이다.
지난겨울은 내 고향 의령 덕실 ‘감빛마을 체험장’에서 1박을 했다. 마침 창원에서 교장으로 퇴직한 친구가 현직 시절부터 준비해온 퇴직 후 귀촌한 곳이 의령 가례였다. 친구는 처와 함께 장모를 모시며 꽤 넓은 논을 밭으로 바꾸어 전업 농부가 되다시피 했다. 일행은 이튿날 벽계 골짜기에서 일붕사를 빠져나와 읍내 메밀국수로 점심을 먹고 헤어지면서 올여름 남해에서 보자고 했다.
시골에서 초중고를 나온 나는 대학 진학이 삼사 년 늦었던 관계로 동기들은 아직 현직도 있어 한 친구는 이번 팔월 정년이다. 나는 도중에 중등으로 옮겨 평교사로 마쳤지만 모임을 같이 하는 여덟 명 가운데 한 친구를 제외하고 교장을 지냈다. 대구 사립 초등학교로 갔던 친구는 사학 정관에 따라 나이와 무관하게 직을 더 맡을 수 있어 내년에도 현직에 머물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40여 년 전 진주 소재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각처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 친구는 임지를 대구로 정해 그곳에 정착했다. 부임 첫여름부터 총각 교사 8명은 방학이면 1박을 같이 하면서 각자 처한 상황이나 정보들을 교환했다. 세월 따라 가정을 꾸려 처자식을 거느리고 산촌 학교 교정에서 텐트를 쳐 야영하거나 섬 학교도 방문했다. 그 사이 울산은 광역시로 분리되면서 나누어졌다.
통영 섬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이스카우트 활동도 열성이던 한 친구는 정년까지 이르지 못하고 먼저 퇴직했다. 초등교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사명감을 불태우던 친구는 벽지 근무 승진 가산점도 상당해 교감 승진이 눈앞이었는데 명예퇴직을 신청해 의아했다. 당시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던 친구 아내가 다단계 판매를 겸하면서 남편을 사업 동반자로 권유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했다.
친가 처가 부모는 여의었거나 일부 생존해 계시기도 한다. 몇 자녀는 인연이 맺어지기도 했으나 나이가 수월찮게 드는데도 부모는 지켜만 보는 정도다. 우리 집에선 십여 전 아내가 병고를 치르면서 혼자 다니는데, 최근 울산의 한 친구는 나보다 상황이 좋지 않아 안쓰럽다. 부부 교사였던 친구는 먼저 교장이 되어 중임으로 재직하던 중 아내를 간병하느라 정년을 못 채우고 나왔다.
모임에서 만나는 동기들 가운데 유난히 금실 좋은 친구였는데 아내가 불치의 병이 오자 병간호를 위해 교장직도 내던지고 수도권 요양원으로 가 곁을 지켰다. 몇 해에 걸친 남편의 지극했던 정성도 허무하게 작년 여름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친구는 지난겨울에는 얼굴을 비치더니 올여름은 혼자 오기 머쓱해서인지 지금은 동남아 어딘가 머물러 나라 안에 있지 않다고 한다.
대학 동기들과 1박을 하는 하계 모임 참석을 위해 일요일 점심나절 길을 나섰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한낮은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매번 부부 동반인데 여러 해 전부터 나는 혼자 다님에 익숙하다. 간단한 여장을 꾸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진교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선택하지 않고 사천 삼천포행 버스를 탔다.
사천에 들린 버스는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다. 삼천포창선대교 건너 창선도에서 삼동면으로 간 지족에 숙소가 정해졌다. 겨울이라면 창선 연륙교를 걸어서 지족으로 갈 생각도 있었으나 여름 뙤약볕에는 무리였다.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통영에서 가는 친구와 합류해 삼천포창선대교를 건너 지족에 닿았다. 정해둔 펜션에 여장을 풀고 친구 내외들을 만나 저녁상을 받았다. 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