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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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군 초급장교 시절이었다.
상관이던 박중령은 장군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는 계룡산의 유명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가 대령으로 있을 때였다.
장군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했다.
자신을 위해 예전 부하의 앞날도 서슴없이 꺽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소원인 별을 달았다.
군대에서 전역을 한 후 그는 이번에는 국회의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금뱃지를 달기 위해서는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사회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내게 이런 소리를 했다.
“장군을 했었는데 세월이 가니까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했던 것 같아.”
그의 얼굴에는 공허와 또다른 계급장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다.
고혈압인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 다니다가 어느 순간 뇌혈관이 터졌다.
마비된 몸으로 식물인간 같이 지내다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를 찾지 않았다.
비교적 빨리 인생을 마친 고등학교 선배인 검사가 있었다.
그는 검찰총장이 되는게 인생의 목표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정치검사의 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사권자를 신 같이 떠 받들었다.
명령만 받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 것 같았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암이라는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다.
거구였던 그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고통이 다가오자 그는 암병동으로 들어갔다.
병문안을 간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이렇게 될 건데 말이야 출세하겠다고 발버둥 치던 내가 한심한 것 같아.
장래의 장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까 봐 몸조심을 하던 게 웃겨.
내가 무슨 검사 뼈다귀를 타고 났다고 그랬는지 몰라.”
그는 진정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마지막에는 주치의를 보면서 “나 좀 죽여줘, 제발”하고 울부짖었다.
그가 소각로에 들어가 타고 있을 때 앞에는 친구였던 주치의와 후배인 나 둘만 있었다.
인간은 곧 잡아먹힐 운명인줄 모르고 모여있는 돼지 떼 같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고르는지도 모르고 주둥이를 밥통속에 박고 꿀꿀거리면서 사료를 먹는데 정신이 없다.
계급장을 탐하는 인간의 권력욕이 돼지의 사료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를까.
내남없이 사람들은 운명이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어떤 준비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의뢰인의 자살을 보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았다.
그들이 가졌던 사회적인 지위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의미가 없었다.
적막한 병실의 바이털을 알리는 모니터의 그래프와 기계음을 들으며 그들은 비로서 깨닫는다.
계급장이나 금뱃지 보다는 가족과 함께 한 번이라도 더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걸.
그리고 한 번이라도 바닷가의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볼 걸 하고.
그들은 사랑이 넘치는 기억들을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죽는다는 걸 안다.
병상에 있는 걸 보면서 나도 앞으로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의 소원을 보면서 아내에게 더 잘해주고 친구를 잘 대하고 나도 사랑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