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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암 다 이겨낸 96세 권노갑 “아침주스 4잔, 이것 타먹는다”
카드 발행 일시2026.05.11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주먹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서원 기자
손은 눈보다 빨랐다. 경고도 없었다. 순식간에 권투 글러브를 낀 주먹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지만 이미 늦었다. 바람이 귀 옆을 스쳤다.
요즘 이 정도야. 뭘 놀라고 그래?
그 남자는 씩 웃었다.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등 복싱 동작을 쉬지 않고 선보였다. 어깨 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린
발과 탄력 있게 구부러진 무릎. 탄탄한 허리는 매끈하게 휘어졌다. 현란한 스텝 위에서 그는 자신만만하게 압도했다.
권노갑(96·이하 경칭 생략)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자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열여덟에 호남 복싱 챔피언에 오른 뒤
80년이 다 되도록 잊지 않는 폼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동교동계의 맏형,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고비를 온몸으로 돌파해 온 권노갑의
저력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백세를 앞둔 지금도 여전히 서슬이 퍼렇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권노갑 고문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민주당 상임고문단을 오찬에 초대했다. 단연 권노갑은 당내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대통령
앞에서 국정 운영과 관련해 격려만 하지 않았다. 민심을 가감 없이 꺼내놓으며 매서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한 흔적까지 갖고 있는 그가 이토록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걸 보면 본래
타고나기를 ‘강골’인가 싶지만, 아니다.
57세에 예고 없이 권노갑을 찾아온 당뇨병. 당뇨는 그의 영원한 동지이자 삶의 목적이었던 DJ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결국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바로 그 병이었다.
‘같은 병, 다른 결말’. 2009년 DJ가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 권노갑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만성 콩팥병,
혈액투석으로 동지가 스러져 가는 모습을…. 하지만 그는 당뇨에 전립선암까지 이겨내고 96세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권투 자세를 잡고, 필드로 나가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 그가 건강하게 DJ보다 17년을 더 살아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권노갑 이사장이 중앙일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00세의 행복〉 시즌3 첫 번째 화에선 96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기력을 뽐내는 권노갑이 암과 당뇨를
이겨낸 건강 비결을 담았다.
※권노갑의 섀도복싱과 아령 운동 등 믿기지 않는 신체 활력을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목차
📌 40년째 당뇨 조절, 아침 음료 4종
📌 암세포와 타협은 없다, 전립선암 그 후 14년
📌 “50대 애들도 나한텐 안 돼” 정력의 비결
📌 김대중 같은 정치인 나온다면… ‘쑥구’ 형님의 진심
“암 진단=사망? 옛말!”…암 이기고 전성기 맞은 ‘골든 에이저’
‘암 유병자 300만 명’ 시대입니다. 암 유병자란 암 진단 후 치료 중이거나 의학적 완치 기준인 5년 이상 생존한 사람을
뜻하죠.
암 유병자의 급격한 증가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암 발생률의 증가, 그리고 암 생존율의 향상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암 환자 10명 중 7명이 완치 판정을 받으며 ‘암 정복’이 현실화되고 있죠.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암 진단을 받은 이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에게 암은 더 이상 ‘사망선고’가 아니란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겐 ‘암 극복, 그 이후’의 이야기가 절실합니다.
더중앙플러스 〈100세의 행복〉 시즌3는 암을 이겨내고 인생 황금기를 맞이한 ‘골든 에이저(Golden ager)’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합니다. “암 투병자는 빨리 쇠약해지고 쉽게 늙는다”는 통념과 달리, 취재진과 마주한 이들은
100세를 코앞에 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은 외모에 넘치는 활력으로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골든 에이저를 직접 만나 암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지금은 건강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속속들이 물었습니다.
〈100세의 행복〉이 찾아낸 ‘암 극복, 그 다음 이야기’를 전합니다.
40년째 당뇨 조절, 아침 주스 4종
당뇨 환자에게 식탁은 매일 앉는 전쟁터다. 40년째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 자칭타칭 ‘당뇨 박사’라는 그였다.
이제껏 언론에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그의 아침 식탁을 확인했다.
지난 3월 11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기념사업회에서 만난 권노갑은 취재진을 흔쾌히 자택으로 초대했다. 닷새
뒤인 16일 오전 7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이른 시간에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말끔한 모양새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얼마나 귀한 산해진미로 건강을 챙기고 있을까?’ 당대를 휩쓴 원로 정치인의 거창한 보양식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챙겨 묵기에 이거시 최고여. 술 마신 다음 날도 똑같구마잉. 요렇게만 묵으면 나처럼 된다니께!
취재진의 상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백세 노 정객의 아침 밥상에 놓인 건 ‘4개의 컵’뿐이었다.
그 컵엔 각기 다른 색깔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각각 ① 사과와 당근을 갈아 만든 주스 ② 토마토 주스 ③ 우유에 검은 깨와 콩을 갈아 만든 음료 ④ 보리차가
담겨 있었다.
어느 집 냉장고에나 다 있을 법한 재료들이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권노갑의 활력 근원이 거기서 나왔다.
40년째 당뇨를 관리 중인 권노갑 이사장이 매일 아침 챙겨먹는 건강 주스 4종. 왼쪽부터 사과·당근 주스, 토마토주스,
흑깨·콩물 우유, 보리차. 그리고 구운 밤 8알. 김서원 기자
모든 음료는 설탕 등 당분을 전혀 첨가하지 않고 자연 재료로만 만들었다. 액상 형태라 목 넘김이 부드럽고, 위가
덜 깬 아침에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
하나 독특한 점이 있었다. 바로 과채 주스에 반드시 피시콜라겐을 녹여 마신다는 것이다.
비타민·마그네슘 등 영양제를 다양하게 챙겨 먹지만, 그중에서도 콜라겐은 몇십 년 째 거르지 않고 무조건 먹고
있어요. 머리카락이 안 빠진다니까. 허허
그는 액체로 된 식단과 함께 ⑤ 구운 밤 8알도 꼭 챙겨 먹는다.
아침에 저작운동, 입으로 씹는 것도 중요해. 주스는 꿀떡꿀떡 삼키고 밤은 꼭꼭 씹어먹어야지.
권노갑 이사장이 거실에 놓인 작업 책상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당뇨를 관리하기 위해 40년째 먹고 있는
식단이다. 김서원 기자
그가 고수하는 식이요법 원칙은 하나 더 있다. 밥·빵·면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 ‘노(NO) 탄수화물’ 식단. 젊은
시절 ‘면 귀신’으로 불릴 만큼 라면, 짜장면, 짬뽕을 좋아했던 그는 당뇨 진단 이후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생일날 케이크 한 입도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절제한다. 단 하나 예외를 둔 게 쑥떡이다. 하도 좋아하는 음식이라
가끔씩 먹는다.
유명한 ‘육식파’인 그는 점심과 저녁엔 소·돼지·오리·흑염소 고기만 먹는다. 대신 고기에 기름 있는 부위는 피한다.
기분 좋은 날은 와인도 한잔 곁들인다.
40년 가까이 지켜온 이 식단은 96세인 권노갑이 키 172㎝, 체중 63㎏의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먹고 싶은 걸 참거나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걸 선택한 것이제. 이제 탄수화물은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들어.
50년의 세월을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면, 나머지 50년은 내 몸을 위해서 절제할 줄도 아는 것.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 정객이 끝까지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암세포와 타협은 없다” 전립선암 그 후 14년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 끔찍한 당뇨가 그를 암에서 구했다. 당뇨 때문에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받은 정밀 피검사
덕분에 전립선암을 초기에 발견한 것이다.
아무리 상대 생존율이 높은 ‘착한 암’이라지만 암은 암이었다. 2012년 진단 당시 그의 나이 82세. 담당의는 고령을
이유로 “우리 아버지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전이가 없는 상태이니 수술하지 말고 지켜보자”며 만류했다.
하지만 권노갑에게 적당한 타협이란 없었다. 무엇이든 명확하고 깔끔하게 매듭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천성은
몸 안에 불청객을 그대로 둔 채 애매한 평화를 유지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주저 없이 암세포를 완전히
도려내는 절제수술을 택했다.
권노갑 이사장은 82세이던 201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우상조 기자
‘암세포는 잘라낼지언정 그 과정에서 생길 체력 저하와 후유증 같은 부작용은 어떻게 하려고?’
주변의 우려에도 그는 보란 듯이 일어나 한 달 만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꾸준히 컨디션을 관리하는 데 도가 튼 그는, 자신이 끝내 암을 이겨낼 거라 확신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암의 흔적마저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단 하루도 암 환자였던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산다.
체감 나이는 오십이야. 120살까지도 거뜬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건 없어.
병을 이긴 그의 몸을 지탱하는 건 멈추지 않는 지적 탐구심이다. 그 뜨거운 열정의 중심엔 평생 놓지 않은 ‘영어’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지독한 영어 사랑은 예부터 유명하다. 그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목포여고 영어교사로 일했다. 정치인
시절에도 그는 틈틈이 외신을 즐겨 읽었다. 93세이던 2023년 한국외대 영어영문학 박사 과정에 도전했고,
지금은 수료했다. DJ의 정치 철학과 사상을 주제로 한 졸업 논문 마무리 작업 중이다. 한국어 원고는 완성됐다.
학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뭔가?
배우는 일이 즐겁다. 공부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훈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기쁨이다. 영문학 박사과정도
학위나 명예 때문이 아니다. 영어 공부하는 게 좋았고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배움을 멈추면 안 된다. 배움은 사람을 젊게 만들고, 생각을 깊게 만들고, 삶을 더 넓게 만든다.
권노갑 이사장은 매일 아침 영자신문을 읽는다. 모르는 단어는 종이로 된 영한사전으로 찾아본다.
김서원 기자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영자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지금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종이로 된 영한사전부터 편다.
조간신문에서 가장 먼저 읽는 기사도 ‘시사 영어’ 코너다.
당신만의 영어공부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모르는 영단어가 나올 때, 핵심은 국어사전도 같이 찾아보는 것. 들어본 영단어인데도 다른 뜻으로 해석될 때 ‘이야,
내가 이런 것도 이제 알게 됐다’ 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잔잔한 스트레스가 확 풀려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 안 작업 책상 위엔 손때 묻은 영한사전과 국어사전이 손 닿기 쉬운 곳에 놓여 있었다. 사전
옆면에 묻은 손때는 그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펼쳐본 오랜 공부의 흔적이었다.
손때 묻어 너덜너덜해진 국어사전과 영한사전. 김서원 기자
지치지 않는 열정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체력·정신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나를 지탱하는 힘은 공부,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리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며 평생 책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습관을
배웠고,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뒤에는 그 뜻과 정신을 바로 계승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며 매일 운동한다. 몸이 약하면 뜻도 오래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부와 정치, 어떤 게 더 즐겁나?
공부가 더 재밌다. 공부는 파도가 없다. 하면 할수록 올라가기만 한다. 그런데 정치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우여곡절이
많다.
내 묘비명은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벗’
목포상고 후배로 ‘동교동계 좌장’으로 불린 권노갑 전 의원(13~15대)은 오랜 세월 DJ를 도왔다. 사진은 DJ(왼쪽에서
둘째)가 88년 13대 총선에서 목포에 출마한 권 전 의원(왼쪽에서 셋째)의 유세를 지원하는 모습. 사진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벗’
권노갑에게 남기고 싶은 묘비명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DJ를 빼고 ‘인간 권노갑’으로 기억되고 싶은 건 없냐고 다시 물었다.
아, 딱 하나만 쓰라니까. 나머지는 다 필요없어.
그의 인생에서 김 전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에게 조력자의 길은 자기 자신을 지우는 과정과 같았다. “가장 먼저 나를 버려야 한다. 사리사욕을 채우면 안 된다.
그분에게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는 게 그가 정의하는 조력자의 숙명이었다. 평생을 바쳐 DJ를 지켜온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얻은 가장 큰 행운 또한 “김대중과 함께 걸어온 덕택”이었다고 고백했다.
권노갑 고문이 인터뷰 도중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상조 기자
만약 그가 정치판에 발을 들이기 전인 2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김대중 같은 분이 나온다면 나는 그 길을 함께할 거야.
‘현 정치권에 그런 거목이 있다면 정치 일선에 나서겠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중 같은 대통령이 되라고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야. 그게 바로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으로 이어지니까.
특정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그리로 가겠다는 거야.
지금 그의 인생 나침반은 목포상고 선배였던 DJ를 따라 정계에 입문했던 65년 전과 여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죽음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 오직 남는 것은 김대중의 영원한 동지, 권노갑. 그것이 길이 남으니 됐지. 김대중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권노갑이도 영원히 기억된다는 말이야.
철저한 식단과 꾸준한 공부, 여기에 지독한 운동이 그를 만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권노갑은 서울시내 호텔
헬스장으로 향한다. 트레드밀을 타며 유산소 운동을 하고, 양손에 5㎏짜리 아령을 250번 들며 팔 근력을 보강한다.
아령을 든 채로 스쿼트 100회도 진행한다. 그렇게 1시간 동안 허벅지 스쿼트, 런지와 전신 스트레칭을 번갈아가며
소화해낸다. 헬스장에 가지 않는 날엔 집에서 TV를 보면서도 틈틈이 운동한다.
독학으로 터득한 골프는 그의 오래된 취미다. 아흔 넘어 크게 실력이 늘었는데, 작년엔 이글(Eagle·골프에서 지정
타수보다 2타 적게 홀인하는 것)과 70타를 기록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는 취재진과 만난 다음 날에도 원정
골프를 위해 제주로 떠났다. 지난 2월엔 태국에서 일주일 내내 골프를 쳤다고 했다.
권노갑 이사장이 골프 스윙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골프는 아무리 쳐도 지치지도 않아. 피곤한 게 하나도 없어. 아침에 벌떡벌떡 일어나. 골프장 캐디도 나보고
50대인 줄 알았대. 나는 50대도 이기지. 애들이 나한테 기를 못 편다니까.
20세기 정치판을 호령했던 그의 저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관통한다. 지난 3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등 117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권노갑 백인평전』 출판기념회 현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참석자들 사이에선 “이 기세라면 서울시장에 출마해도 손색 없겠다”는 유쾌한 농담이 나왔다.
현장을 압도하는 권노갑의 기력을 목도한 이들에게, 그의 ‘출마’는 단순한 우스개가 아닌 진지한 가능성으로 들렸다.
실제로 축하 화환이 늘어선 국회 박물관에서 100세를 앞둔 권노갑은 무릎 높이의 단상을 겅중겅중 뛰어 오르내렸다.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레 발을 떼는 80대 후배들 사이에서 유독 가뿐하고 날렵한 권노갑의 몸놀림에 객석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나왔다.
지난 3월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권노갑 백인평전' 출판기념회. 권노갑 이사장이 김민석 국무총리, 김영배·전현희
민주당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짜 오래 산 비법은…” ‘쑥구’ 형님의 진심
아내 박현숙(89)씨는 권노갑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출판기념회장에서도 그는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연신 팔다리를 주무르며 챙겼다. 60년 가까운 결혼 생활, 아내를
돌봐온 내공이 쌓인 손길이었다.
저 사람 없으면 나 아무것도 못 해. 내 눈엔 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
권노갑이 감옥에 드나들던 시절, 집을 팔고 식당 일을 하며 옥바라지하고 가택 연금 생활 중에도 아이들을 키워낸
아내였다. 그의 한마디 말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을 만나 고생만 해온 아내를 향한 애틋함이 묻어났다.
지난 3월 출판기념회장에서 권노갑 이사장은 행사 내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선희연 기자
그는 인터뷰 내내 순수하고 털털한 모습의 ‘쑥구(‘어리숙한 바보’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형님 그 자체였다.
곤란한 질문에도 말 돌리는 법 하나 없이 곧이곧대로 답변을 해준 그였다.
“물고문을 당하는 등 정치적 역경과 고난을 숱하게 겪었는데, 억울하거나 원망스러운 적 없었나”라는 질문에도
역시나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나로서는 엄청나게 억울하제잉. 근디 싹 다 용서해부렀어. 못 풀면 내가 먼저 죽어부러. 내가 풀어부러야
오래 살어. 넘을 미워하지도 않고, 나를 욕한 사람한테도 웃어버리고잉.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노갑 이사장에게 영원한 동지다. 우상조 기자
관용과 용서는 그가 DJ에게 배운 자산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을 가볍게 대하지 않고 가능한 한 진심으로 대하려는
자세. 미워하기보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먼저이기에, 권노갑은 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유연하게 넘겨왔으리라.
‘인간 권노갑’으로 돌이켜보면 대체로 후회 없이 살아왔제. 내 나름의 원칙과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왔으니께. 평전을
받으며 생각했어. ‘아, 내가 그래도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그 마음 하나로도 참 감사헌 일이제.
권노갑 이사장이 어퍼컷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우상조 기자
[출처: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