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요한복음(7장~9장) 묵상
※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요8장)
요한복음 8장은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로 시작한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조차도 없으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사신 삶과는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그럼에도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변함없는 주님의 사역의 모습이다.
말씀을 전파하시고 기도하시고 치료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한결같다.
바로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모세의 법에 따라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여여 할 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 여자가 느끼는 당시의 부끄러움과 수치는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같이 음행을 행한 남자는
도대체 어디가고 왜 여자만 정죄를 당하는가?
그 여자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그를 조롱의 눈으로 보고 있다.
그와 같은 멸시를 견디는 것이 인생에게 얼마나 가혹한가?
바로 그때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셨는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다시 한번 예수님을 시험한다.
그들은 율법으로 시험한다.
그런데 사실 율법을 자세히 보면
이 여자뿐 아니라 함께 간음한 남자 또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남자를 데려오지 아니하였을까?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그들은 율법의 일부분만 지킬뿐
율법이 의미하는 진정한 의미를 지키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이러한 일을 행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새로웠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몸을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성경에 손가락이 나온건 신약에서 이것이 처음이고
구약에서 다니엘서에 나온다.
그 하나님의 손가락이 이 장면에 등장하는건 놀랍지 않은가?
예수님이 무엇을 쓰신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 내용을 알 필요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들은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알려고 애쓰지 않는가
이 말씀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쓰셨던 내용보다는 예수님의 행동이다.
예수님은 지금 모든 죄인들 앞에 몸을 굽히셨다.
얼마나 겸손하신가?
자신을 고발하는 자들 앞에서, 또한 음행한 죄인 앞에서
예수님은 몸을 굽히셨다.
모든 죄인 앞에서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분께서는
몸을 굽히시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겸손한 태도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땅에 손가락으로 쓰는 그 내용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예수님이 그 음행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놀랍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명하셨다.
율법을 그대로 어기지 아니하면서,
그들이 죄인임을 또한 밝히면서,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실행할 수 없도록 하셨다.
그러자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듣는 모든 이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심령을 찌른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마음이 강팍하고 딱딱한 이들도
그들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한다.
시간이 꽤 흘렀을 것이다.
예수님은 땅에 쓰셨던 것을 마치시고 일어나셨다.
그리고 오직 여자만 있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르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공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그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다가오신다.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품으신다.
그리고 다시는 그 죄에 거하지 말것을 명하시며
사랑과 진리의 예수님을 경험하게 하신다.
아멘.
- 꿀송이 보약 큐티, 365일 성경 통독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