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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공간
납치수용소
(원제 안락사論)
서 기 원
☞ 아래 소설은 6.25사변공간 납치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955년 창간된 <현대문학>에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56년 등단합니다. 소설 제목은 『안락사론』이지만 내용에 맞추어『납치수용소』로 바꾸면서 8쪽 분량이 다소 길다 싶어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었습니다. 당시 열악한 종이 지질은 세월의 무게에 눌려 연신 바스라지는 걸 한 글자 한 글자씩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먼 길 떠나기 전 가진 것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 옮긴이 -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 안으로 튀어드는 빗방울은 공교롭게도 바로 그 구멍 밑에 앉은 김우진의 머리와 얼굴 목덜미를 사정없이 타고 내렸다. 뻣뻣한 마른 걸레나 진배없는 노타이는 빗물을 빨아들이자 고리타분한 냄새를 뿜으며 우진의 등허리에 착 달라붙은 꼴이 헐대로 헐은 그의 표피와 다름없었다. 볼 위에서 입 가장자리로 흐르는 찝찔한 구정물 맛을 견디기엔 그의 생리가 지나치게 민감하였다. 이 방에 갇힌 백 명 가량의 사내들 가운데 하필 홀로 달갑지 않은 세례를 받게 된 좌석의 우연을 언짢은 태도로 실소할 여유가 그에게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억지로 입술을 비틀며 누렇게 뜬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제기랄 좀 비켜야겠는 걸 헛.”하며 무르팍으로 856호의 옆구리를 슬그머니 떠밀었으나 “왜 이래? 어디로 비키라는 거야, 소견머리가 그렇게두 없어?” 그러고는 도리어 우진 쪽으로 그 육중한 상체를 비스듬히 기대는 것이었다. 우진도 그런 대꾸를 미리 짐작 못한바 아니었기 때문에 저쪽으로 비키라고 도도하게 말할 수 없었다. “이 사람아, 예까지 붙잡혀 와서 이 고생을 서루 나누면서두 이럴 수가 있나?” 제법 의젓하게 목청을 가다듬었다. “…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일전에 한 말은 까먹었군 그래. 내 발모가지가 네 몸뚱이에 좀 닿기로서니 그래 그게 할 소리냐 말야. 어림없는 수작 마라.” 856호는 코웃음을 치고 나서 우진과는 반대편으로 등을 맞댄 ‘눈썹’을 바라보았다.
'눈썹'이란 별명 그대로 흡사 굵은 송충이 두 마리가 소나무 가지를 기어오르는 모양의 눈썹을 가진 사내인데 그에게 “자넨 안으로 더 조일 수 없겠나?”우진이 보라는 듯 빈정대는 말투로 건네니까 “날 눌러 죽일 셈인가? 헛헛헛!” ‘눈썹’마저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노여움을 의식하기 전에 보기 좋게 조롱당했다는 창피스러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양 옆구리에 붙어있는 827호와 828호에게 당부하려던 말문까지 막혀버렸다. 그때 “그러지 말구 한 치씩만 조이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하슈!” 방 한복판에서 낮지만 굵은 목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우진은 사방을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그 목소리가 박연철임을 알 수 있었다.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말라고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것을 꿀꺽 되삼켜버리는 동안 벌써 그들은 사방 두어 자 남짓한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옮기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가슴속에 남은 것은 朴에 대한 질투와 증오뿐이었다. 그보다도 서너 살은 손 아래로 보이는 박을 사람들이 박형, 박형 하며 경의에 가득 찬 눈으로 위해 바치는 것이 도시 그로서는 아니꼽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사변 전엔 모 반공학생단체의 지도자였다고 하지만 공산치하도 아닌 데야 낸들 못했으랴 싶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원래 자리를 살펴보았다. 심줄이 앙상하게 드러난 낡은 송판 마루 위는 방석 넓이만큼이나 거무스레하게 물이 배어 있었다.
시월에 접어들긴 했지만 요 며칠 사이로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검은 구름이 끼던 끝의 궂은비인 것이다. 우진은 온몸이 자꾸만 땅속으로 꺼질 듯 심난해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십여 명이 조금씩 몸을 조여서 자그마한 자리지만 그의 앞가슴을 압박하는 856호와 옆의 두 사내의 체중이 여느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고 사뭇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개돼지만두 못한 것들, 너희들 고린내 나는 모가지가 내 이 손아귀에 쥐어있는 걸 모르길 망정이지 어디 더럭더럭 코나 곯아 봐라.” 연방 뭐라고 입속에서 뇌는 것이다. 이런 욕설이 나오기까지엔 여간한 울분이 아닌 것이다.
웬만한 경우엔 가령 무지몽매한 놈들, 저능아들, 하고 자신이 그들에 비해서 월등한 위인이며 식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으로 비위를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작자들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었다는 거창한 발상은 다름 아닌 그의 숙부가 6.25 전엔 북로당의 간부였고 시방은 정치보위부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요직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가 납치되어온 경위나 현재 수용소 생활의 생태로 미루어 봐서 그의 숙부가 그의 맹랑한 처지를 알 리가 만무했으며 또한 설사 알았다 치더라도 네 아랑곳 있으라는 뱃속이나 아닐는지 자못 의심치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믿음직한 배경이 못 된다고 몹시도 아깝게 여겨온 터였다.
하기야 나댈 곳 없는 논법이되 한편 마음구석에 적이 든든한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위안하기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고는 829호란 자기의 번호를 새삼스레 가감해보는 것이다. ‘섯다’노름에서 갑오니까 운수가 트일 것 같기도 한 망상을 한갓 망상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6호실 나오라~아!” 복도에서 인민군 경비병의 변소집합 구령이 울렸다. 하루에 세 차례 아침 끼니 전과 중식은 없으나 그 즈음해서 그리고 저녁 때 이렇게 세 차례인데 따발총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등으로 들으며 용변을 마치고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석 달 동안 틀에 짜인 습성은 그들의 생리현상까지 알맞게 조절해버려 그 구령을 듣기 전엔 곧잘 요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다.
6호실이라고 제법 근대적 시설이 완비되고 하얀 양회칠 벽에 넓은 유리창이 뚫린 병원의 입원실 번호라도 부르듯 상냥하게 발음할 수도 없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소위 인민학교 교실이었다. 더 내력을 캐자면 일제 시 어느 시골구석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었던 목조 단층의 초등학교인 것이다. 교실 수가 열 서넛 한 교실에 백여 명씩 가두어 놨기에 수용된 납치자들의 수는 곧 헤아릴 수 있었다. 거의 다 경인지구 출신이라는 것도 그들의 말투로 미루어 풀이되었다. 납치자라해서 뭐 두드러지게 드러난 반공투사나 사회의 저명인사들은 아니었다. 가령 의용군은 끝내 피하다가 잡혔다든지 혹은 전혀 까닭도 없이 걸려든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구태여 갖다 붙인다면 빨갱이들에 협력을 아니 했다는 죄과일까. 그러니까 이른바 악질 반공분자가 못되는 그들을 감금함에 삼엄한 경계는 아닌 듯 엿보이는 것이 천여 명의 수용에 비해서 불과 오륙십 명 정도의 붉은 군대로서 감당하고 있었다. 허나 방마다에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지는 않을망정 한일자로 뻗은 긴 복도의 양 모퉁이엔 낡은 것이나마 체크식 경기輕機를 사낭砂囊 위에 장치하고는 명령 없이 복도에 나타나는 그림자를 쏘아붙일 자세라든지 현관문 앞에도 역시 경기가 교정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를 겨누고 있으며 게다가 콘크리트 기둥을 세운 교문 안에도 마당을 노리는 중기重機며 ….
납치자들이 죄다 흐리멍덩하고 맥 빠진 분자라고 막상 깔보는 태세는 아닌 상 싶었다. 마당 한가운데엔 사방 두어 칸쯤 되는 흰 천에 적십자를 그린 표식이 땅위에 펼쳐있었고 또 게슴츠레해진 양기와 지붕에도 네 군데나 그려져 있었다. 일상 유엔군의 공습을 피하려는 수작이었지만 납치자들을 위주로 해석한다면 정녕 병명조차 없는 중환자를 수용한 병원이 기어이 아니라고는 못할 것이었다. 애써 병원을 고른다면 지난날에 한창이었던 이질과 결부시키면 될까. 중복 더위 때의 어느 날 갓난애 주먹만 한 콩과 보리로 얼버무린 밥덩이가 쉬었던 모양이었다. 설사가 이어져 이질이 되었고 하루 세 번의 변소집합이 여섯 차례로 늘어도 방안이 온통 변소같이 코를 찔렀다.
어쩌다가 우진의 방 ‘대퉁수’라는 중년이 쌀알만큼이나 됨직한 이를 한 마리 엄지손가락과 인지 사이에 끼우고는 “허어 이렇게 큰놈은 처음인걸.” 그렇지 않아도 긴 인중을 유난히 길게 늘이며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뭐? 이? 얼마나 큰 게야 어디 좀 보세.” 시름시름 졸고 있던 ‘말대가리’가 눈을 떴다. “음! 이거군. 바로 이 눔이야, 이질을 풍겨놓은 눔이 이게로군.” 그는 대통수와 같은 시늉으로 이를 눈앞에 대고 노려보았다. “허 허….” 대퉁수는 허탈하게 그러나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말대가리는 그 웃음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반듯하게 세우고 “정말야 옘병두 이가 꾀면 걸리지만 말이지, 이질두 그렇다는 걸 모르나? 이렇게 뱃속에 거무튀튀한 것이 백힌 놈이 탈이라는 걸 자네 모르나?”
“허….” 대통수의 웃음소리에 섞여 “너 먹구 싶걸랑 먹으라.” 하고 앙칼지게 쏘아붙인 것은 ‘눈썹’이었다. 모두들 키 키 키 키 하고 원숭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나 그들의 충혈된 눈망울 속엔 이건 빈대건 간에 노린내 나는 것에 대한 갈욕이 서슬을 품는 것을 놓질 수는 없었다. 우진은 덩달아 쓴 입맛을 다시며 달려들었다. “기가 막혀. 이질이 아니라 발진티푸스라는 게다. 허 기가 막혀. 이질이라니까 이가 서방질하는 병인 줄 알었군.”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그는 그럴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뜻밖에 효과를 거둔데 매우 흡족했던 것이다.
며칠 전부터 저녁식사가 끝나면 의례히 대통수와 눈썹이 박연철에게로 가서 셋이 이마를 맞대고 소곤거리는 것을 우진은 눈여겨보았다. 대퉁수는 항시 손에서 놓지 않는 여섯 구멍짜리 퉁소를 여전히 그 두터운 입술에 잇대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대퉁수는 그 방안에서도 좀 색다른 존재였다. 앞이마가 벗어진 말상인데 지금껏 두 차례나 경비병한테 볼 따귀를 맞아 가면서까지 끝내 그 때기름이 흐르는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에선 기막힌 숙맥이라 단정하는가 하면 다른 패들은 여간 수양된 도사가 아니라고 했다. 아무도 그 물건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자랑삼을 얘깃거리가 못되었던 것이다.
만주 간도에서 해방을 맞이하자 가족 없는 그는 낡은 륙색 하나를 짊어지고 귀국하게 되었다. 만주 사람 친구가 전별선물로 예의 그 퉁소를 선물했던 것이다. 마귀를 쫓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대견스럽게 여길 정도로 맹랑한 위인은 아니었으나 그 만주 친구의 정성이 고맙다기보다는 앞으로 내디디는 발자국 앞의 운명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인지라 어쩐지 그것을 팽개쳐버리기가 꺼림칙했던 것이다. 두 달 후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을 땐 타령깨나 불 수 있게 되었다. 만주에서처럼 종이장사를 시작했다. 경기도 일대에 서는 장마당 이름과 날짜엔 훤하게 되었다. 퉁소를 심심풀이 겸 손님을 끄는 도구로 삼았다.
사변이 터지고 피아군이 낙동강에서 싸울 무렵 서울 시내 단골 종이 매집 다락에서 숨어살았는데 얄궂게도 어느 날밤 퉁소를 신명나게 불어 제키다가 그것이 귀에 거슬린 내무서원에게 붙들렸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기묘한 결심을 하였다. 이것 때문에 우연히 붙잡힌 것이나 결국 이것으로 해서 나는 다시 살아나리라고. 이러한 그를 업신여기는 측 안에서도 우진은 누구보다 못지않았다. 근자에 와서 대퉁수가 박과 가까이 지내게 됨에 그를 멸시하던 패들이 점점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숙으러지는 눈치를 우진이 모를 리 없었다. 은근히 시기하면서 한층 더 반발을 느끼는 것이었다. 너 따위 서넛이 모의를 해야 별 신통한 수가 나서기는커녕 총살감이지….
이렇게 우진은 일소에 붙이려는 것이었으나 한편 마음은 딴판으로 적어도 이 방안에서 무슨 일이고 간에 의논할 상대를 찾는다면 마땅히 나를 추대해야할 일이 아니냐고 설혹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할 탈주계획이라 할지라도 나를 빼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괘씸한 한편 섭섭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갈수록 박이 두각을 나타내고 인기가 집중되는 사실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는 우진으로서 첫째는 박에 호감을 갖지 않는 몇몇을 규합해서 이를테면 박의 반대파를 조직하여 그가 리더가 되는 것이 일은 적지 않게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박을 싫어하는 분자들이 과연 우진을 받들어 모실는지 그 여부는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다만 완전히 고립된 자기를 뼈저리게 의식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계획이 탈주라 할 것 같으면 그로서는 수용소에 들어올 당초부터 몇 번이고 망설이던 일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다시금 다짐해 보는 것이었다. 탈주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살행위로 믿고 있었다. 동란이 끝나면 송환되려니 믿고 있었다. 그 판단의 이면엔 실은 숙부와의 연락을 요행으로 바라는 심사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나….박을 중심으로 한 세 사람이 잡담인지 밀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태도로 때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하는 것이 남의 눈을 속이려는 캠프라지camouflage가 아닌가 싶었다. 딴 사람들은 한주먹 꽁보리밥의 부족감을 이젠 아예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식사당번이 주먹밥을 양동이에 받아다가 그걸 가지고 가에서부터 줄을 따라 가노라면 그들은 우선 양동이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큰 덩어리를 고르기에 혈안이 되곤 하다가 이건 내 몫이니 아니 내가 먼저 짚은 것이니 하고 말다툼 끝에 주먹질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먹고 나면 언제 누가 그런 추태를 부렸느냐는 듯 흡사 고급 양식이라도 양껏 채우고 난 뒤의 트림을 연달아 쏟으며 손발을 함부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븽븨븨 븽븨븨 븨븨븨븨 븨븨븨븨…’ 오래간만에 퉁소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리랑이었다. 그 소리는 상기 의식하지 못했던 바깥 비 내리는 소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먼 바닷가에서 물결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해변의 바위에 걸터앉은 김우진의 머리위엔 실오라기 같은 초승달이 아물거리고 있었다.
다른 바위틈에서 멋진 퉁소소리가 울렸다. 아니 어쩌면 그가 불고 있는지도 모른다. 앳된 아내의 얼굴이 그의 턱밑에서 웃음을 담고 쳐다보는 것이다. ‘븽븽븨 븽븨 븽븨…’ 퉁소의 아리랑은 춤추는 박자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퉁소의 두터운 입술에 눈총을 주었다. 불현 듯 잠시나마 퉁소소리가 그를 안가安價한 센티 속에 젖게 했음을 의식하자 밸이 뒤틀렸다. “집어 치워!” 자신도 모르게 양철을 비벼대는 소리가 나왔다. 발바닥으로 마루를 치며 일어섰다. 대퉁수는 고개를 멈칫했으나 그 물건은 여전히 입에 댄 채 우진에게 힐끗 웃음이 어린 눈짓을 보내고선 다시 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장 치우지 못해!” 우진은 두 팔을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어째서 치우란 말야 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락 소리를 지르고 불쑥 솟아난 것은 ‘눈썹’이었다.
굵고 긴 눈썹이 희미한 램프불 아래 짙은 음영을 이루고 있었다. “넌 또 뭐야? 듣기 싫으니까 치우라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우진은 입 모퉁이에서 거품을 뿜었다. “이 자아식이! 임마, 너 듣기 싫음 구만이야? 난 듣기 좋다 으쩔 테야?” 눈썹의 대꾸가 끝나기 바쁘게 여태껏 못 본체 하고 도사려 앉았던 박이 “거 구만 두어요. 김군도 참구….” 하는 것이었다. 김군이라니 우진은 “캑! 넌 또 뭔데 참견이야!” 주먹을 불끈 쥐어 허공을 마구 치면서 무릎으로 앞을 헤치려는 것이었으나 “망할 짜식!” 누군지 발목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이게! 그래, 이 빌어먹을 놈이!’ 어쩌구 하며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온 몸뚱이에 주먹질을 까마득히 느끼며 그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하편에 이어집니다.
徐基源
1930-2005. 6.25사변 때 공군에 입대 1955년 대위로 예편. 1956년 동화통신사 기자로 직장생활 시작. 1956년 <현대문학>에 『安樂死論』『暗射地圖』로 등단. 31세 때 조선일보 입사. 이듬해 서울신문 1963년 서울경제신문 36세 때 다시 서울신문 주일 특파원. 38세 때 동화통신사 경제부장, 1970년 청와대 대변인 1976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1988년 서울신문 사장 및 신문협회 회장 1990년 KBS사장 및 방송협회 회장을 지냈다.
심사평
서기원의 <안락사론>을 추천한다. 납치인 수용소 이야기로 물론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당시 납치된 사람들의 중추적 인물은 아니다. 소설에 있어서의 인물설정은 얼마든지 작가의 자유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설정된 인물들을 작가가 얼마만큼 살려 놓았는가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안락사론』의 작가는 이야기의 분위기 조성이며 인물 취급에 상당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저 주인공 김우진에 대비되는 인물 朴을 좀 더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것은 선자의 욕심일까. 문장도 순탄하면서 메마르지 않고 꽤 감칠맛이 있어 좋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 작가 황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