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쓰잘데기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두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이고 또 하나는 철학자들이다. 이 들은 일신이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파고든다.
어떤 이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가 사형언도를 받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정신이 어덯코 영혼의 세계가 어쩌고 이야기를 하다가 미친 놈 취급을 밭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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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이 전혀 다른 분야 인 것 처럼 생각을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진리를 탐구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시각이 다를 뿐이지 목적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주로 물질적인 면에서 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비 물질적인 면에서 본다는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이 태동되면서 부터 과학과 철학이 만나게 된 것 처럼 보인다.
왜냐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의 세상 이지만 기실 들여다 보았드니 아무 것도 없드라는 것인데,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보면 또 물질이 있드라는 것이니, ㆍ색즉시공 공즉시색 ㆍ이라고 하는 구절과 양자역학이 일치가 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의식이 물질을 창조한다는 면에 대해서 과학쪽에서 먼저 증명을 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철학쪽에서 힘을 받게 되었는바, 도데체 이 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해서 논한 저서들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있기는 있었으나 어둠속에 있었으므로 인정 받지 못 했던 것이니 이 또한ㆍ색즉시공 공즉시색ㆍ이였든 것이다.
인간들은 죽을 때가 되서야 살아온 자기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그런데 이제는 죽을 때까지 가지 않고도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보석 같은 저서들을 통해서 말이다.
철학의 가장 큰 명제이자 의문점은ㆍ너는 누구냐, 또 나는 누구냐?ㆍ하는 것 일꺼다.
양자역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인해서 이ㆍ의식ㆍ이라는 것이 존재의 근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데 그러면 이 의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파고 들어 가지 않으면 않되는 중요한 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왜냐면 이 문제의 인식 여하에 따라서 인류의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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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ㆍ나ㆍ라고 할 때 뭐라고 인식을 할까? 생길 때 부터 격어 온
경험을 으로 이루어진 사고방식과 몇년 산 육신과의 결합체가 나인가?
간단한거 같지만 그렇게 명쾌하게 정의 하기에는 너무나 허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ㆍ내가 왜 이럴까?ㆍ하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때가 바로 나를 제 삼자적인 시각으로 보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아닐까
내가 나인지 , 너 왜그래? 하는 놈이 나인지 우리는 따져볼 생각조차 해 보지도 않치만 말이다.
최근에 살펴 본 주옥 같은 저서들의 공통적인 시각은,
진정한 ㆍ나ㆍ라고 하는 것은 ㆍ지켜보고 있는 존재ㆍ라는 쪽이다.
우리가 통상 ㆍ나ㆍ라고 하는 것은 ㆍ자아 ㆍ라고 하는 것이고ㆍ나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존재ㆍ가 ㆍ진아ㆍ라는.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지만 암튼 고강하신 현인들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이해를 넘어서 절감 내지는 깨달아 가야 할 인생의 커다란 숙제를 받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무슨 운명의 호작질이란 말인가.
ㆍ색즉시공 긍즉시색ㆍ이라~~~
첫댓글 우리는 나라는 불 명료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나라는 존재는
유동적이고 불 확실 하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올려주신글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단테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