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림은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소수의 적은 무리에게 전수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세계에 퍼져나가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바로 오순절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 날만큼 감격적이고 또 흥분이 되는 날도 없었을 것이다.
주의 제자들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위대한 역사적 오순절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날에 그들은 무기력증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며, 자신에게 의지하던 낡은 관념의 울타리를 털어버리고 전능자의 손에 붙잡히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구원의 모선이 힘찬 고동과 함께 항진을 시작했다. 물론 이 배의 선장은 그리스도였다. 제자들은 승무원들에 불과했다. 이 배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아는 이는 선장뿐이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인종이나 피부 색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사모하는 자마다 이 약속에 참예할 수 있으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혼들을 인도하는 구호령의 승무원으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항진을 시작한 이 배는 수많은 사람들을 깨우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했으며, 오늘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고 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이 배의 항진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 속에 성령의 충만이 없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님의 구원의 배의 승무원으로 승선하여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계십니까?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성령과 선교 본문 : 행1:8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 데에도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오순절날 성령 강림으로 교회 탄생과 함께 선교가 시작되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과 선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선교의 열매가 있고 선교가 활발한 곳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 성령과 선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선교의 동인이신 성령(행2:4)
1) 선교의 조성자 초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을 보면 성령님이 선교의 기묘한 조성자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 성령은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심으로써(행2:4) 군중들로 하여금 제자들을 향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함으로써 호기심을 갖게 하시고(행2:13),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그들의 마음속에 감동을 일으키사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하며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날 마음의 찔림을 받아 회개한 신자가 삼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유대 군중들에게는 복음을 듣지 않을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참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그러나 분명 살아 역사하시는 선교의 은혜로운 조성자이십니다.
2) 선교의 전략가 성령은 선교의 조상자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지휘자요 전략가이십니다. 성령은 필요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행동을 지시하시기도 하며(행8:29), 홀연히 새로운 선교의 장소로 이끌어 가시기도 하며(행8:39), 특별한 곳에서 선교 활동을 억제하는 대신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시기도 합니다(행16:6-10). 선교에서 특별한 활동이나 새로운 양상 등의 이면을 보면 항상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 전략을 세우는 일에 성령을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선교의 도구요 일꾼일 뿐, 그 전략을 세우고 진두지휘 하시는 분은 성령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2.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행13:2)
1) 선교의 주도자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란 이질 문화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래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 이러한 의미의 선교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행1:8). 그러나 제자들은 성령받은 후에도 예루살렘과 유대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은 예루살렘 교회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교인은 흩어져 사마리아와 이방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시작했던 것입니다(행8:4,5). 뿐만 아니라 이방인 전도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선교사 파송도 성령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13:2). 이처럼 성령은 선교 활동의 주도자이십니다.
2) 신학적 주도자 사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그들이 할례없이 복음 안으로 들어 온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위험스런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적 사고의 틀에 박혀 있던 자들로서 이방인들을 지옥의 땔감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도 성령은 이방인 선교를 신학적으로도 주도하신 주도자이셨습니다. 먼저 성령은 환상을 통해 베드로에게 이방인도 복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행10:9-16). 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 강하게 임하셔서 말씀을 증거한 베드로 조차 놀라게 역사하셨습니다(행10:44-48). 결국 이 일로 인해 초대 교회는 이방인 선교를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행15:8,28), 이후로 복음은 더 힘차게 뻗어나갔던 것입니다.
3. 선교의 권능이신 성령(행4:31-33)
1) 권능을 주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들에게 각종 권능을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게도 하시고, 병든 자를 일으키게도 하시며, 귀신을 내어쫓게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신비한 기사와 표적은 사도들의 권위를 더욱 높여 주어 복음 증거하는 일을 더욱 유용하게 하였습니다(행2:43). 사도들은 더욱 고무되어 힘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능은 그들의 언변에서도 뚜렷이 나타나 당시 최고의 학문과 언변을 지녔다는 산헤드린 공회원들 마저 압도하고 말았습니다(행4:13). 성령은 오늘날에도 복음 전파자들에게 약속되어 있는 능력과 언변의 권능자이십니다(마10:19,20;눅24:49). 성령은 누구에게든지 복음 전도자로 일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권능을 주십니다.
2) 은사를 나눠주시는 성령 성령은 권능을 주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각종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고전12:4-11).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은사는 선교를 위해 주시는 성령의 권능의 일부분입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교회에 주신 것이요, 우리의 은사는 모두 교회의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교회와 선교하는 일에 성령의 권능으로 작용하고 있느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선교를 목적으로 한다면, 교회의 지체된 우리의 은사 역시 선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롬6:12,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교의 권능으로 은사를 나눠주신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결론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장이 꽤나 둔화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성령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선교를 일으키고 친히 주도하시며, 선교에 필요한 각종 권능을 부여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 의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선교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령을 우리 중심에 모시고 그 지배와 지도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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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