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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우스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이 철로 된 하우스 대가 전기를 땅으로 분산시켜 흐르게 하는데 수동이가 하우스 대에 발을 올려놓아 전기를 받았는데 바닥에 부도체인 장판이 깔려 있어서 직접 전기가 땅으로 흐르는 것을 막았고 전기가 하우스대로 분산 되어 땅으로 흐르는 바람에 살아난 것이었다.
수동이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벼락을 맞아봤다.
비가 그치고 나더니 이번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위에 덮은 보온 덮개가 바람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수동이는 급히 고정용으로 매달아 놓은 시멘트불럭 외에 더 줄을 늘여서 시멘트불럭을 주어다 매달고 영자는 보온덮개가 벗겨질까봐 물을 길어다 끼얹었다.
그렇게 불안한 밤을 보내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할미새가 열심히 키우던 맨홀에는 빈 둥지가 물위에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의만은 공사를 맡은 사람이 거푸집을 철거를 하려고 해도 못하게 했다.
콘크리트가 양생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겨울이 접어들 무렵에 일부나마 거푸집을 떼어 내기 시작 했다.
그리고 공사업자는 질려서 공사비를 조금 깎아서 돈을 받고 별 이익도 보지 못하고 그만 두기로 하고 거푸집을 떼어 갔다.
모든 사람이 다 그만둔 상태가 되자 집에 두고 일을 시키던 사람을 시켜서 겨울동안 의만이가 별도로 사서 대었던 거푸집을 떼어냈다.
85년 1월 10일 설을 얼마 안두고 윤희가 숨을 거두었다.
양평 단월에서 박계멱 진사의 큰 손녀딸로 태어나 효자정문 댁 작은집 장손이라는 허울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권유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간내월로 시집을 와서 오남매를 낳고 사십 전 서른여덟의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꿋꿋하게 오남매를 키워내고 일흔둘의 나이에 영면에 든 것이었다.
수동이는 연락을 받고 마침 방학인 준광이를 데리고 성남서 재덕을 만나서 같이 갔다.
그러나 정순은 가지 않았고, 재덕은 마음은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어서 형수가 아파도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
가는 도중 준광은 오랜만에 기차를 타서 그런지 신나 했다.
재덕의 앞에 앉은 재덕 연배의 손님이
“어디 까지 가십니까?”
“예 강촌 까지 갑니다.”
“옆에는 아들 손자 인가 봅니다.”
“예 아들 손자입니다.
“삼대가 같이 여행을 가는 걸 보니 보기 좋습니다. 어디 좋은데 가시나 봅니다.”
“예 저 의 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가는 길입니다.”
하고 수동이가 대답을 했다.
“아 백모께서 돌아가셔서 가는 길이군요.”
계란장사가 지나가서 수동이가 삶은 계란을 사서 건네고 준광이를 까서 먹이는 동안에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옛날부터 산 자리가 좋아야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산소자리 이야기라면 우리 동내에 명주실 한 꾸리가 다 들어가도 끝이 닫지 않는 깊은 소가 있는데. 그 소 위에는 좌청룡 우백호 가 기가 막히게 형성된 산이 있어요.”
하면서 재덕이 이야기보따리를 풀러 놓았다.
“그 동내가 가경자인데 거기에는 고흥류씨 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데 어느 날 아들 삼형제를 둔 영감님이 돌아갔는데 지관을 불러서 산 자리를 정해 주기를 아까 말한 그 자리를 잡아 주면서 땅을 팠는데 너래 바위가 나오는데 그걸 지관이 못 파내게 해서 못 파냈는데, 그 날 투덜거리며 집으로 온 형제들에게 시신을 염을 하지 말고 두루마기만 입혀서 입관을 하라고 하더랍니다.
또 한 번의 소동이 있고서 겨우 염을 해서 입관을 하고 장사 날 하관을 하려고 하니 시신을 거꾸로 묻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요.”
“난리가 나 겨죠. 안 된다. 지관이 시키는 대로 하자 하면서 말이 많다가 결국 똑바로 묻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회다짐을 하고 홍대를 깔고 흙을 덥으려고 하는데 회 섞은 것을 넣지 말고 흙을 한 켜부터 넣으라고 하더래요.”
“회는 강회를 많이 쓰잖아요. 그렇죠. 강회를 흙에 섞어서 피면 열이 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요즈음에는 옛날 강회가 없어요.”
“지관이 강회를 쓰지 말고 흙 반, 자를 한번 깔고 그냥 회다지를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그렇게 했더니 그리고 그 위에 서리태 한 말을 넣고 다시 흙을 반 자나 깔고 나서 흙을 다지고 나서 그때서야 강회 섞은 것을 깔고 회다지를 하게 하게 하더랍니다.”
“그리고 다시 흙은 반 자 깔고 다지고 조 한말을 붓고 흙 반, 자를 깔고 다지고 다시 강회 섞은 것을 넣고 회다지를 다섯 번을 더 해서 일곱 번의 회다지를 해서 봉분을 모아서 장사를 지내고 사흘째 되던 날 지관의 이야기가 오년 후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에는 매년 한 사람씩 과거를 보러 가시오. 이말 꼭 명심하시오 하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떠났답니다.”
“그래서요.”
“그리고 오 년 후 지관의 말대로 과거가 있었는데 그 영감님의 손자들이 과거를 보러 가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지관의 말을 들었으면 좋으련만 큰집 장손 과 둘째 작은집 장남 셋째 집 장남 까지 모두 과거를 보겠다고 나섰다지. 뭡니까?”
“그래서요.”
“그래 재비 뽑기라도 하던지, 아니면 나이순서 대로 가던지 했으면 좋으련만 사람의 욕심에 모두 가겠다고 나서서 그냥 보내고 말았답니다.”
“시험이 끝나고 시관이 채점을 하는데 네 사람의 문장이 어찌나 기가 막히게 썼는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더랍니다.”
“그래서 장원의 발표를 못하고 있는데 시관의 책임자가 시험지를 보더니 아니 이거 모두 형제 아니냐?”
“이거 베낀 거 아니냐? 이건 문제가 있다 하고 하나씩 불러서 물어보니 형제 사촌간이고 시험도 여기 저기 떨어져서 치렀다고 하고 문맥으로 보나 뭐로 보나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데요.”
“그래서요.”
“하나씩 불러서 어디서 왔냐? 하고 물으니 가경자에서 왔다고 해서 일단 장원을 다른 사람으로 발표를 하고 뒷조사를 해보니 제 작년 영감님 산소를 쓴 것을 알아내고 역적이 날 우려가 있다고 판단을 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형제가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른다면 분명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 하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그리고 뒷조사를 해보니 오 년 전에 할아버지 산소를 쓴 것을 알아내어 가지고 나라의 명으로 파묘를 하게 되었는데. 분상을 헐고 회를 한 켜 한 켜 찍어내고 조를 부어놓은 회를 찍어내자 땡삐가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공격을 하여서 한참 애를 먹고 간신히 벌을 잡고 나서 이번에는 다시 파고서 콩을 넣은 회를 걷어내자 왕탱이 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을 공격하여 모든 사람들이 쫓겨 가고 사람들을 독려하여 일을 시키려고 해도 모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며 일을 나오지 않게 되었답니다.”
“결국 나라에서 군사들이 풀어서 마지막 회 한 켜를 걷어내기 위하여 모였는데 먹장구름이 모여들고 천둥을 치면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군사들을 독려해 마지막 회를 걷어냈는데 퍼런 서기가 서리며 이무기가 튀어나와 산 쪽으로 도망을 해서 공포에 떠는 군사들을 동원해서 잡았답니다.”
“결국 삼형제의 아들들은 물론 후손들도 벼슬 한번 못해보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재덕의 이야기가 끝나고 기차가 강촌에 도착하여 내리면서 보니 재운이와 성동이 그리고 기순이도 내려 있었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가정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 황골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와보니 영동이 내외를 비롯하여 창진이와 옥자 그리고 우종이와 옥인이도 와 있었다.
염을 하고 용동이는 바삐 움직였다.
석재공장에서 대리석으로 된 돌관 두 벌을 맞추고 나서 재운과 재덕에게 이아야기 했다.
두 사람으로 서는 조금 부러움이 있었지만 용동이가 형님인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석관을 만든다고 해서 특별히 그리고 건너편 남의 산에 묻혀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온다고 하는데 대하여 반대를 하거나 할 게제가 없다.
그렇게 하면서 염을 하고 입관을 하고, 정자와 경자 그리고 경훈이 옥순과 내합이 재구 재봉 재혁 재훈을 비롯한 친지들도 도착하였다.
그러나 장현이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방에서는 고 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이야기 끝에 수동이가 시중에서 들었다는 전두환 고스톱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싹쓸이를 하거나 석장이 깔린 것을 먹어오면 상대방이 피를 한 장씩 주는 것이 아니라 먹은 사람이 상대방이 낳을 수 것이나 내가 한 장만 가지고 오면 낳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오는 전두환 고스톱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재구로부터 핀잔을 받았다.
장례식 날 절차에 따라 20m 안 되는 산소지만 꽃상여가 꾸며지고 세 번의 노제를 지내며 장지에 도착하여 윤희의 관을 하관하고 옆에 석관에는 재명의 이장을 동시에 했다.
먼저 돌아간 재명을 따라 윤희가 가는 게 아니라 윤희가 모셔지고 서방님 재명을 맞아들이는 형식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용동은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석물을 해 놓겠다고 했다.
석물로는 비석 상돌 망부석을 해 놓겠다고 했다.
재덕은 아버지는 맨바닥에서 밥을 먹고 자식은 돌로 된 상에서 밥을 받아먹느냐 면서 수동이 앞에서 불평을 했지만 정작 용동이나 영동이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재덕이 삼오재를 지내서 온다고 해서 수동이와 정자 경자 경훈이 준광이 옥순이 래합이 같이 기차를 타고 오다가 래합이 옥순에 수첩에 적힌 경훈의 이름을 보고 능청스럽게
“오경훈이라는 놈이 누구냐.”
했다. 이에 옥순이
“경자 신랑”
이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떤 놈이기에 남의 마누라 수첩에다 이름을 막 올려.”
이에 당황한 경훈이
“아니 형님 전데요.”
“아 자네야 나는 몰랐지 난 또 어떤 놈이 내 마누라를 꼬이려고 했나 했지,” 한 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옥순과 래합은 청평서 내렸다.
그리고 오다가 가락동 수산시장에 들려 정자가 산 낙지회를 한 접시 시켜줘서 모두 둘러앉아서 먹고, 수동이와 준광이는 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설이 되어 성남 셋방에 모여 설을 쇠고 내려왔다.
설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었다.
미군 탱크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고 마침 놀러왔던 구민이 소주 두병을 사가지고 미군에게 접근해서 코리아 위스키 첸지, 첸지 하면서 온몸으로 통화를 해서 씨레이션(C-Ration)을 두 상자나 바꾸어 왔는데 그 안에는 별게 다 들어 있었다.
준광이는 거기서 나온 것으로 밥을 비벼 먹이니 맛있다고 잘 먹었다.
그리고 과자도 나누어 먹다보니 남는 것은 커피로 커피는 어른들 차지가 되었다.
그 무렵 성증은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왔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운전을 하고 왔다
운전기사는 내리고 수동이가 성증의 운전 연습을 시키게 되었다.
몇 번을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게 하였다.
그리고 도로 가에 나와서 나가기 좋게 대 놓고 수동이가 룸 밀러를 조수석에서 보기 좋게 돌려놓았다.
“자 우선 비상경고등을 켜고요.”
“비상경고등이 뭐야.”
“아 요기 여 삼각형이 그려져 있는 이걸 누르면 되요.”
그걸 누르자 때깍, 때깍 하는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좌우를 둘러보아도 오가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우선 1단을 넣고 크러치에서 발을 천천히 떼세요.
차가 덜컹 거리며 출발을 했다.
“자 2단.”
조금 속도가 붙어서 수동이가 다시
“3단.”
속도계가 40을 넘어서고 있었다.
“자 4단 ”
부응 속도계는 50을 넘어서고 있었다.
“엑셀을 많이 밟지 말아요. 지금 그대로 쭉 가요.”
성증이 핸들을 꽉 잡고 앞만 주시하면서 가고 있었다.
속도는 오십을 유지한 체 가고 있었다.
어느새 룸 밀러로 보니 대 여섯 대의 차가 뒤에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차들은 기회를 보아 앞지르기를 해서 갔다.
그렇게 이황리를 지나서 저 멀리 장호원 주유소가 보였다.
수동이는 적당히 설 자리를 찾느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저기 동내 들어가는 입구에 버스 정류장 보이죠. 저기다 세워요.”
성증이 차를 세우고 수동이가 운전석으로 바꾸어 타고 가다가 장호원 주유소로 좌회전을 해서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다시 조금 가다가 버스정류장에 차를 대고 바꿔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운전을 해서 휴게소 짓는 마당으로 왔다.
그리고 기다리는 택시기사 수동이가 태평리 까지 차를 몰아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도중에 버스 정유장에서 다시 출발하여 장호원 주유소 까지 가면서
“뒤에서 쫓아오는 차 사이드 밀러로 보이죠.”
“응 보여.”
“그 차가 언젠가는 답답해서 앞질러 갈 거예요. 그 땐 신경 쓰지 말고 그대로 가거나 엑셀 조금 덜 밟아서 속도를 줄여줘요.”
그렇게 세 번째 돌 때 에는
“자 5단.”
“태평리 택시 기사가 5단을 넣으면 속도가 엄청나니 넣지 말라고 하던데.”
“괜찮아요.”
엔진소리는 커지고 속도계를 보니 60이 넘어 70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넣어도 될까.”
“걱정하지 말고 넣어요.”
성증이 기어 변속을 했다.
그리고 아까 보다 엑셀을 조금 덜 밟아요.
그렇게 두 번을 왕복하고 나서 이제는 비상 전멸등을 껐다.
그리고 좌회전 까지 시키며 두 번을 더 왔다 갔다 하고, 룸 밀러를 돌려주고 수동이가 고개를 돌려서 확인을 해가며 룸 밀러를 보면서
“자 저기 버스 정류장에 섰다가요.”
차를 버스정류자에 세웠다.
“잘 했어요.”
수동이가 뒤를 돌아보니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 우측 깜빡이를 켜고 룸 밀러로 뒤에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사이드 밀러로 확인하고 자 스톱 저기 보이는 저 차들 보내고 갑시다.”
그렇게 두 번을 왕복을 하고 장호원 주유소로 들어갈 때에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건너편에서 차가오지 않으면 들어가게 했다.
그러면서 다시 장호원 쪽으로 가면서 나래초등학교를 지나면서는
“반대편에서 차들이 안보이죠.”
“응.”
“길에는 추월해도 좋다는 점선이 그어져 있고.”
“응.”
“이런 곳에서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차들을 보내주어요.”
그렇게 하자 뒤 따르던 차가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를 조금 줄여주어서 앞지르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뒤따르던 차들이 순식간에 다 추월을 해나갔다.
“자들이 다 지나갔으니 깜빡이 끄고요.”
그러는 사이 장호원 주유소 가까이 가고
“이제 좌측 깜빡이 켜고 들어가요.”
그렇게 두 번을 더 왕복 했더니 성증은
“혼자서도 할 수 있겠네.”
하면서 혼자서 차를 운전하면서 돌아갔다.
성증은 오토바이를 타던 사람이라 빨리 배웠다.
그리고 한 달 뒤 식구들이 삼겹살을 구어 먹었는데, 준영이가 체해서 약을 먹이고, 이틀이 지났는데, 얼굴이 부석부석 해졌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보이고 약을 지어다 먹였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이천도립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고 약을 먹여도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꿈에 연순이 수동이를 쫓아오며 양할머니가 누구를 데리고 가면되느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수동이는 막내딸 이라면 모를까요?
하고 대답을 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기분이 안 좋아 반계리에 가서 천복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무쇠 솥 깨진 쪼가리를 구해다가 손바닥 삼분의 일 만하게 깨서 주면서, 산소에 가서 열십자로 꽂아놓고 오라고 했다.
수동이는 그길로 물막골 유가모이터 옆 원탱이에 있는 양 할머니 무덕의 산소에 가서 천복이 시키는 데로 하고 산을 내려와 도림개말에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성남에 들렸더니 정순은 일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재덕과 명옥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수동이가 물골안 갔다 온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명옥이의 주사가 시작 되었다.
“내가 이런 말 할게 아닌데. 사돈, 사돈이 우리 상묵 아버지 죽었을 때 잘 해준 거 다 알아요.”
“알면 됐지 내가 뭐래요.”
“그런데 우리 동생 고생하며 살고 있지 않아요.”
“고생이야 누군들 안 해요.”
“그리고 수자, 수자 이년 어디 갔어.”
마침 수자는 정자네 집에 갔는지 안 보였다.
은자는 버스차장으로 다니느냐 보였으나 수자뿐 아니라 금자도 안보였다.
“이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수자가 방옥이 딸이라면서, 데리고 가야읍…….”
재덕이 명옥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들 앞에서 창피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재덕이 입을 막은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순이 집을 나가 있을 때 재덕이 명옥이에게 같이 살자고 한 걸 이야기 할까봐 급히 입을 막은 것이었다.
명옥이 발버둥 치면서 재덕의 손을 입에서 때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심하게 체머리를 돌려서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나 음”
재덕의 손이 급히 명옥의 입을 막았다.
명옥이 쓰러 졌는지 쓰러 틀렸는지 발버둥 치는 명옥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애초부터 명옥의 주사를 잘 알고 있는 수동이로서도 영자의 고종사촌 언니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재덕의 입장이라면 의심을 할만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요. 나만 창피 할 수 없지.”
그 말에 명옥은 다리에 기운이 빠지는지 늘어지면서 재덕을 노려봤다.
그리고 재덕이 급히 말을 돌렸다
“그 산소를 진즉에 화장을 해 버렸어야 하는데 그 응달 구석에다 산소를 써 놔가지고 잔디가 살기를 하나 조팝나무만 우거져 가지고 에이 벌초 안간지가 몇 해나 되는데 그 동안 경동이가 돈을 주고 했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작년엔 안 묶었는지 했나 보데요.”
“기왕지사 돈 주고 하는 거 했나 보구나. 돈 받고 하는 사람이 양심을 있나 보다.”
그러는 사이 명옥은 지쳤는지 술에 취한 것 때문인지 잠이 들어 있었다.
수동이가 가겠다고 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누군가 토끼고기가 좋다고, 해서 해주어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괜히 먹기 싫다는 여석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힘들게만 했다.
수동이와 영자는 생각 끝에 제일 큰 병원인 서울대학병원에 진단을 받아보기로 하고 서울대학교 아동병동을 찾아서 진찰을 했더니 신중후군이라는 병명이 나왔다.
신장이 불순물을 내보내야 하는데, 단백질을 내보내서 몸에 단백질이 모자라서 붓는다고 했다.
원인은 호르몬 이상으로 호르몬성분이 들어 있는 약을 장기간 먹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토하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지 응급실로 오라고 했고, 약은 종로 오가에서 지으면 싸게 먹힌다고 하면서 약 이름과 그리고 소변검사를 하는 독일서 수입해온 얇고 긴 플라스틱 끝에 소변 상태에 따라 색이 변하는 스틱을 사가지고 가라고 해서 종로에 약방에 들렸더니 월곡아파트에서 약국사장을 하던 사람이 약사로 있었다.
“경자 오빨 여기서 보내요.”
“막내아들이 신 증후군이라는 병이 들어서 약 사러 왔어요.”
하면서 적은 것을 보여주니 소변검사 하는 스틱은 여기 없으니 약국을 가르쳐 주면서 거기가면 싸게 살수 있다고 해서 싸게 구입을 해서 내려 왔다.
그리고 영자는 가위로 스틱을 반으로 갈라서 아침마다 소변을 받아서 검사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약의 양을 조절 해가며 먹였다.
음식은 짜고 맵지 않게 해서 먹이며 온 신경을 썼다.
그러나 조금씩 더 붓는 것 같더니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는 1월초 저녁을 먹고 조금 지났을 무렵 갑자기 토하기 시작 했다.
그 밤에 렌터카를 불렀다.
그리고 성증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준영이가 상태가 안 좋아 저서 병원응급실로 가니 애들을 보낼 태니 봐달라고 연락을 했고, 여주에서 렌터카가 왔는데 아는 기사가 왔다.
준광이와 혜영이는 오다가 태평리에 내려 주면서 이모내로 가라고 했다.
한밤에 달려서 11시쯤 서울대병원응급실에 도착했다.
택시기사가 삼만 원을 달래서 주었다.
응급실에서의 하룻밤동안 많은 것을 보았다.
조금 있으려니 구급차가 들어오는데, 아이 엄마가 울면서 따라들어 오는데, 아이는 온몸이 식어가며 굳어져 가고 있었고 의사들은 전기스토브를 켜고 마사지를 하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아이 엄마는 이 의자에서 저의자로 옮겨다며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공기총을 맞은 환자가 실려 오고, 그렇게 밤이 지나고, 10시쯤 입원을 할 수가 있었다.
영자가 입원실에 들어가서 보니 백혈병 이라는 아이 심장이 안 좋은 아이 준영이처럼 신중후군이라는 안성서 올라온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 엄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고 했다. 준영이를 입원시킨 영자가 수동이에게
“준영아빠 준영이가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돼지고기 목살 좀 사다가 엄마한테 삶아달라고 하면 안 될까?”
“그래 같다올게.”
수동이는 삼양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시장앞에서 내려서 돼지고기 목살을 사가지고 희상의 집으로 들어갔다.
두만은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 천식이 심해서 거동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어쩐 일이냐.”
“준영이가 아파서 서울대병원에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을 했어요.”
“그래 어디가 아파?”
“신 중후군 이라고 하는데 애가 퉁퉁 부었어요.”
“그래 어쩌면 좋으냐?”
“낳겠죠.”
“그래 들고 온 게 뭐냐?”
“돼지고기 목살이요.”
“그래?”
“어머니 이 목살을 삶아주세요. 준영이가 먹고 싶어 해서요.”
“그걸 어떻게 삶니 느 아버지도 저렇게 누워 있는데.”
수동이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알았어요.”
하고 수동이는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 뭉치를 들고 일어나서 집을 나왔다.
눈물이 나기보다 화가 났다.
희상은 그래도 동생들이나 두만을 생각해 고기를 사가지고 온줄 알았는데 달랑 지 자식 먹일 고기 한 덩어리 사가지고 와서 삶아 달라고 하니 화가 나서 한 말인데 녀석도 제 애비를 닮아서 발끈 해서 튀어 나갔다.
내 속이 짧은 건지 수동이가 철이 없는지.
수동이는 그길로 미양초등학교 앞에서 찐만두와 찐빵 장사를 하는 영동이를 찾아갔다.
급작스런 수동이의 방문에 영동이가 깜짝 놀라며 웬일이냐고 물었다.
“준영이가 병이 나서 앓는데 어제 별안간 토하고 위중해 저서 혜화동 서울대 병원응급실을 통해서 입원을 했어요.”
“그래 아이고 고생이 많구먼.”
장사를 하느냐고 바뿐 와중에도 생강을 사고 된장을 풀어서 돼지고기를 냄비에 앉혀서 삶기 시작하면서
“동생 집에 들어가 한숨 눈을 좀 붙이게.”
한숨 자고 병원에 가서 올라가다가 병실복도에서 어제 울고불고하던 애기엄마를 만났는데 아이가 회복이 된 모양이었다.
“아이 괜찮아요.”
“네 회복되고 입원 했어요.”
하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준영이도 빨리 낳았으면 하면서 병실로 들어가서 뭘 좀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밥 나온 것을 나누어 먹었고. 반찬은 잘 나온다고 했다.
어젯밤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택시를 대절해 올라올 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후에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고 하는 결과가 나와서 수동이는 내려가서 준광이와 혜영이를 밥을 해먹이며 지내며 희상에게 섭섭함을 드려내는 편지 써서 보냈다.
이틀 후 영동이가 부인 경순이와 문병을 왔다 갔고 사흘 후에는 재덕과 정순이 정자가 문병을 왔다 갔다.
한편 수동이의 편지를 받은 희상은 영희에게 편지를 읽어 달라고 했다.
어머님 전 상서.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날 밤 쫓기듯 어머님 집을 나오면서 얼마나 어머님을 원망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 아무리 힘들다 해도 돼지고기 한 덩이 삶아주기가 그렇게 힘드셨습니까?
준영이는 손자로 생각이나 하고 계시기나 한지요.
너무나 섭섭하여 이런 글을 써야 하나 많이 망설이다.
이렇게 불초소자 몇 자 적어 보내옵니다.
부디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소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그럼 가내 두루 평안 하시옵소서.
1986년 1월 24일
불효자 수동올림
희상은 다시 우울병이 도지고 말았다.
철없이 고기 한 근 못 사가지고 간 수동이나 애를 차를 대절해가며 응급실에 입원시키느냐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런 걸 이해 못하는 희상이나 서로 거기서 거긴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또 다른 벽을 쌓고 말았다.
수동이는 희상이가 우울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보냈지만, 영희와 영옥이는 아버지 두만과 어머니 희상의 병수발을 일주일이 넘도록 해야만 했다.
영희는 그런 수동이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끝내 희상은 준영이의 병실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영자는 준영이와 함께 병원에서 지루하게 보내고 있던 중 가끔씩 병원교회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해주고 갔다
동생 영철은 교회를 다니지만 아버지 천복은 아픈 사람들 침도 놓아주고, 남의 산소 자리도 보아주고 크게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전통 신앙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영자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씩 와서 기도를 해주며 교회에 나와 보라고 해서 준영을 휠체어에 태우고 내려가 보았다.
수동이가 일주일 지나서 준광이와 혜영이를 데리고 왔다.
그동안 수동이가 무얼 해 먹였는지 얼굴은 괜찮아 보였으나 씻기지를 않아서 꾀죄죄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명랑해 보였다.
수동이는 복도에서 영일섬유에서 같이 근무하던 임관순을 만났는데 조카가 백혈병으로 입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수동이가 다녀가고 이틀 후 심장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심장병을 알고 있던 아이가 밤에 상태가 나빠지고 의사가 분주하게 들락 거렸고, 그 아이 침대에는 커튼이 둘러 처지고, 의사들은 더욱 바삐 들락거리더니, 아이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몇 칠을 못 버티고 하늘나라로 갔다.
거기서 숨을 거두게 하다니 아이들이나 엄마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안 좋았다. 입원한지 20일이 되어도 붓기가 빠지지를 않아서 한 병에 오만 원을 주고 알부민(단백질) 주사를 사다가 맞았다.
그랬더니 붓기가 빠지고, 얼굴은 홉사 소말리아 사람처럼 말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을 먹이려면 힘이 들었다.
소금이 적게 들어간 음식을 먹이려니 안 먹어서 영자의 속을 태웠다.
그리고 보니 병원에서 치료라는 것이 호르몬제 투여 외에는 하는 게 없어서, 퇴원을 하겠다고 했더니, 퇴원해서 아침마다. 소변을 검사하고 기록을 해서 일주일 후에 올 때에는, 기록한 종이를 가지고 오라는 지시와 상태가 좋아지면 호르몬제를 한 알 또는 반 알 줄이라는 지시를 받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수동이는 막 직장의료보험이 시작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고물상협회도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것을 알고 의료보험에 가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내에 사는 사람이 자기 동생도 신장병을 알았는데, 음성에 있는 조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여서 호염을 봤다고 해서 음성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하니 신장사구체 염이라고 했다.
양약을 먹고 있는데, 같이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며 약을 세 첩을 지어 주면서 우선 한 첩을 달여서 먹여보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 효과가 있거나 상태가 나빠지지 않으면 약을 다 달여 먹이고 오고, 만약 나빠지면 이약을 가지고 오면 약을 다시 지어주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약탕관을 사다가 달여서 먹이고 다음날 소변검사를 해보니 수치가 올라가서, 수동이는 약을 싸들고 한의원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니 다시 약을 지어주며 먹여 보라고 했다.
약을 달여 먹이고,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북한군이 지금 쫓겨 가고 있다며 국군이 탱크에 태극기를 꽂고 오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소변검사를 해보니 좋아졌다.
한약은 한 첩을 달여 먹이고 또 한 첩을 달여 먹인 다음 재탕을 달일 때에는 먼저 달여 먹은 두 첩을 합쳐서 달여 먹인다.
재탕을 먹인 후 한 첩을 달여 먹이고. 한 약방에 가서 좋아졌다고 하니 약을 두 가지로 지어 주면서 요 세 첩은 먼저 먹이고, 이 세 첩을 먹이면서 좋아지면 계속 먹이고, 안 좋아지면 약을 가지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약을 세 첩을 달여 먹이는 동안에는 조금 좋아졌다.
그러더니 달여 먹여보고, 오라던 약을 달여 먹이고 그날 밤 수동이 꿈에 지금 중공군이 쳐내려오니 피난을 가야 한다고 하면서 피난민들이 지나가고, 피난 보따리를 싸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수동이는 영자의 얼굴부터 살폈다 약간의 그늘이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약을 바꾸러 갔다 와야겠지?”
영자가 고개를 끄떡였고 가서 약 세 첩을 바꾸어 왔다.
설이 지나고 서울대 병원은 일주일에 한번 씩 가다가 이 주일에 한 번 오라고 해서 이 주일에 한 번씩 올라가서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이천에는 현대전자가 들어오고 연립이지어지고 해서 연립을 알아보다가 신문광고에 잠실 지하에 어린이 전용백화점을 분양한다는 광고를 보고, 병원을 다녀오다 가 계약금을 오 만원 주었다.
어떻게든 준광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서울로 가서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자는 생각과 8학군이고 내 가계를 가지고 장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에다, 칠십만 원을 내고 이십만 원은 가계를 전세로 놓아 주겠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상가니 틀림이 없다는 감언이설로 꼬였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서 대금을 지급 했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주면서 친절하게 전세계약을 했다.
절반 정도의 가계가 문을 열고 장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최원식이라는 사람도 분양을 받았는데, 그 사람은 좋은 곳으로 세 개를 분양 받고 분양자들 에게 돈까지 꾸어 주었는데, 돈을 달라고 하자 수동이의 가계에 전세계약을 하게 해 주면서 월세로 돌려서 월세를 받으라고 종용을 해서 전세계약을 했다.
지어온 한약과 양약으로 병행해서 치료를 하는데, 한의원에서 지어주는 약에 녹각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녹각을 먹어서 효과가 있자 영자는 한의원을 찾았을 때, 용을 먹이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괜찮은데 많이는 못 쓴다고 하면서 용을 조금 넣은 한 첩과 녹각을 넣은 것을 다섯 첩을 지어 왔다.
그리고 용을 넣은 것을 먼저 달여 먹이고 관찰을 했더니 조금 나빠져서 하루를 지나서 녹각이 들어간 약을 달여 먹였더니 회복이 되었다.
그렇게 다섯 첩을 달여 먹이고 한의원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녹각 넣은걸 다섯 첩 더 먹이고, 좋아지면 그때 가서 용을 넣은 것을 먹여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영자는 일요일 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태평리에 있는 교회를 나갔다.
헤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의양은 직접 공사를 시작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모두가 도와준다고, 현대시멘트 트레일러가 에어로 시멘트를 하차 하다가 시멘트 덩어리가 걸려서 하차를 못하고 내려오다가 수동이에게 탱크에 들어가서 덩어리를 꺼내 달라고 해서 꺼내 주었더니 남은 시멘트를 쏟아야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래서 건물 뒤쪽에 방을 만들기 위해 막아 놓은 한 칸에다 쏟았는데, 족히 삼 톤이 넘었다.
우물은 지하수 뚫는 사람이 세 군데를 옮겨 다닌 끝에 일주일 만에 성공을 해서 배관은 수동이가 P.V.C로 배관을 하고 모터도 설치했다.
그리고 앞에 조경을 하려고, 삼발이를 세우고 체인불럭을 가지고 돌을 들어서 경운기에 고려대 다니는 의만의 큰 아들 영걸이가 경운기를 운전을 하는데, 체인불럭 쇠사슬이 적재함 바 고리에 걸려서 세워놓은 삼발이가 넘어졌는데, 영걸이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켜서 넘어 졌다.
머리에 맞았으면 즉사 하거나 중상을 입을 뻔 했다.
그리고 미장일은 나래리에 사는 박씨를 불러다 일을 시켰고 보조는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세경을 주기로 하고 시켰다.
조적 최씨는 어떻게 식당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가연희라는 여자와 같이 내려와 일을 했다.
의만의 생각은 자연석으로 조경을 할 생각이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고민을 하면서 우선 밭과 집에 심어 두었던 향나무를 캐서 주위 조경부터 시작했고, 우선 가장자리는 버드나무 꺾꽂이를 했는데, 마침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조경용으로 무궁화 묘목과 스토로브 잣나무 묘목이 나와서 주의에 심었고 밤나무 묘목도 사다 심고 등나무도 얻어다 심고 그리고 뒤에는 측백나무를 울타리처럼 심었다.
그리고 제천 백운면에 가서 밭에 있는 못 쓰는 돌을 실어 오려고 알아 봤더니 여의치가 않아서 콘크리트로 기초공사를 하고 벽돌로 마감을 하는 게 돈이 적게 먹히겠다는 생각에 자갈과 모래 두 차를 사서 마당에 부렸다.
수동이가 목수가 조적공이 하던 것을 눈동냥으로 배운 게 있어서 가늘고 기다란 호스에 물을 넣고 표시를 해가며 수평을 맞추고 88올림픽을 상징하는 여덟 개의 계단을 높이와 폭을 계산해 설계도를 그리고 철근을 넣고 거푸집을 짜서 전에 받아놓은 시멘트를 가지고, 자갈과 모래를 넣고 일일이 삽으로 비벼서 전면에 두 개의 콘크리트 계단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조적을 하는 최씨가 최 저급의 흙벽돌로 마감을 했다.
뿐만 아니라 돌아가면서 화단 둘레도 기초가 되는 콘크리트 거푸집은 수동이가 짜고 다시 조적 최씨가 흙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미장이 끝난 내부 바닥은 여주에서 인조대리석을 사왔고, 이번에도 수평을 맞추어서 표시를 하고 간격에 맞게 줄을 치고 모래를 깔아가며 흰 대리석 붉은 대리석을 체크무니로 깔면서 끝 부분은 자를 대고 색연필로 줄을 그어 중앙시장에서 사온 돌 자르는 중고 기계에 물 호스를 연결해서 잘랐다.
자르는 도중 날에 무리하게 힘을 가하면 모터가 정지를 하는데 바로 전원을 끄지 않으면 콘덴서 [condenser]가 나갔다.
백 평의 바닥을 까는데 무려 3개의 콘덴서 [condenser]가 나갔다.
바닥을 다 깔고 마무리는 시멘트와 모래를 넣은 것은 묽게 풀어서 틈을 메워서 굳혔다.
의만의 부인은 매 때마다 밥과 새참으로 국수를 해 날랐다.
그리고 수동이의 펑크 수리점도 휴게소 앞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구옥에서 임시로 하라고 의만의 이야기대로 모두 옮겼다.
이제까지 포장도 되지 않은 곳에서 흙바닥에서 하던 때에 비하여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베풀어서 인지 의만에게 또 하나의 행운이 찾아왔다.
펑크수리를 마치고 나가려던 차가 구옥 옆 마당 가운데에 있는 전봇대를 받아서 전봇대에 금이 갔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들여서 전봇대를 옮겨야 할 형편이여서 돈이 들어가게 생겼는데 사고로 전봇대가 금이 갔으니 이 또한 행운이었다.
즉시 운전자가 사고 신고를 하자 한전에서 전기수리 하는 회사에 연락이 되어 이십분도 안 되어 전봇대를 실을 차가 도착하였고, 전기수리 회사에서 나온 책임자는 운전사에게서 서명을 받고 운전사를 보냈다.
의만이 작업책임자에게 이 기회에 전봇대를 아주 이설해 줄 수 없느냐고 하니 책임자가 전화를 걸었다.
한전 책임자와 한참을 통화를 해서 그렇지 않아도 휴게소로 들어오는 전선 때문에 세 개의 전봇대가 직선으로 가지 않고 약간 휘어져 서있는 것을 바로 잡고 하나의 전보대만 이설하고 인입 선에 별도의 전봇대만 세우면 된다고 설득을 해서 그 자리에서 설계도를 그리고 전봇대를 공사를 했다.
물론 의만이 최소의 비용은 부담하겠다고 해서 휴게소 앞으로 오던 전선을 뒤로 보내 즉석에서 작은 돈을 드리고, 의만이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
최씨의 소개로 유리 업자가 와서 유리를 끼우고 주방은 천장은 평 슬레이트로 마감을 하고 홀과 매장은 석고보드를 사오고 목수를 불러서 마감을 하고 전기배선공사가 끝난 뒤 수동이와 의만은 서울 세림에 가서 가로등을 주문해 놓고 전기가 적게 먹힌다는 나트늄 등과 건물 내부에는 매립형 형광등을 사다가 천장에 구멍은 마스크를 쓰고 먼지를 마시며 뚫어서 달았고 주방 가운데는 트렌치를 만들고, 타일과 좌변기와 소변기 두 개를 사가지고 내려오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차가 휘청 거렸다.
화장실은 좌변기를 안치고, 소변기는 도기를 두 군데만 달고 스테인리스강 ( stainless steel )을 길게 접어다 설치를 했고, 수도 배관은 추우면 얼지 않게 배관을 경사를 주었고 맨 아래 땅속에는 퇴수로를 정화조 안으로 설치를 해서 얼 염려가 있을 때에는 올라오는 배관을 막고 퇴수로를 열고 변기에 물을 내리면 배관의 물이 모두 빠지게 만들었다.
화장실 바닥은 본 건물 보다 싼 인조대리석을 깔아서 마감을 했다.
하루는 운창이 할아버지가 와서
“여보게 자내한테 부탁이 있는데.”
“무슨 부탁인데요.”
“우리 기름 드럼통하고 자내 드럼통하고 바꾸세,”
“아니 왜요.”
“글쎄 이유는 묻지 말고 바꿔줘, 우리 껀 미제라서 두껍고 좋아.”
“그래요 그러면 어르신 맘대로 하세요. 그런데 왜 바꾸시려고 하세요.”
하니 한참을 망설이더니
“자꾸 울어, 쇠가 울면 집안이 안 좋다 는데.”
“어떻게 울어요.”
“밤이면 꿍꿍 소리가 나,”
“그건 뚜껑을 꽉 막아놔서 그래요. 그리고 양지에다 놓아 두셨잖아요. 낮에 따듯할 땐 공기가 늘어났다가 밤에 차지면 공기가 줄어서 그러는 거예요. 뚜껑을 조금만 열어 놓으시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소리가 나면 오세요. 바꾸어 드릴 깨요.”
그리고 운창이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었다.
준영이는 병이 많이 나아가고 있을 무렵 가남교회 목사가 준영을 눕혀 놓고
배를 문지르며 안수기도 하는 중 배에서 무엇이 덜컹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녹용을 넣어서 약을 두 번 지어다 먹였다.
이번 꿈엔 북한군과 중공군이 물려가서 집으로 가야 한다는 꿈을 꾸었다.
소변에서 단백질이 안 나오는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의심이 간 수동이는 우유에다 스틱을 적셔보았다.
스틱의 색깔이 파랗게 변하는 것으로 보아 스틱에는 이상이 없고 나아가는 것 같았다.
영자의 작은 수첩에는 0월 0일 0 이라는 기록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태껏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면 사나흘에 한 번씩 밖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이 난건지 집이 싫어서 그랬는지 생각했지만 문제는 새끼를 낳을 적마다 다 주어 버리는 바람에 다른 곳에서 출산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길 없는 영자는 추석이 지나서 진이의 생일날 반계리에 간 김에 친정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가지고 왔다.
그 고양이 새끼는 수동이네 고양이의 새끼를 진이네 집에 갖다 준 것이 새끼를 낳았으니 외손녀인 셈이었다.
집으로 가지고 오고 나서 고양이가 집에 들렀다가 새끼 고양이를 보고 제 새끼로 보았는지 물고 가려는 것을 빼앗아 놓았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는 엄마인줄 알고 슬피 울었고 외할머니 고양이는 밖에서 계속 “야옹 야옹.” 하면서 불러 대다가 영자가 나오면 도망을 갔다.
도대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수동이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럼 당분간 가게에서 키우다 데리고 와야 하겠네.”
하고 새끼고양이를 가게 방에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그날 밤 어떻게 알았는지 비가 쏟아지는 가게 밖에서 할머니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울기 시작 했고. 안에는 외손녀 고양이가 “양 양” 거라며 슬피 울면서 대답을 했다.
도대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 고양이는 높은 창문을 뛰어넘으려고 시도를 하는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러더니 드디어 깨어진 창문을 넘어서 들어온 외할머니 외손녀 고양이와 해후를 했다.
비에 젖은 외할머니 고양이는 외손녀를 달래는지 계속 야옹 거리더니 이번에는 문을 긁어대며 울었다.
문을 열고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수동이의 얕은 생각은 높은 창이 있어 포기 하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 높은 창을 뛰어넘어 왔으면 같이 지냈으면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데리고 가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문을 긁어대다 못해 머리로 들이 받기 까지 했다.
수동이는 할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외할머니 고양이는 그 쏟아지는 빗속을 외손녀 고양이를 다리 아래에 걸리면서 야옹거리며 재촉을 해서 데리고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수동이는 랜턴을 켜들고 한참을 빗속으로 사라지는 고양이 조손을 지켜봤다.
그렇게 수동이는 어미고양이의 새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면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외할머니 고양이가 배가 고픈지 온 것을 먹을 것을 주면서 보니 배가 홀쭉해 있었다.
저번에 출산을 하고 집으로 왔다가 외손녀 고양이를 제 새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영자는 얼른 고양이 목에 끈을 길게 묶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고양이가 달려간 곳은 동내 신씨네 헛간 멍석이 세워져 있는 뒤였다.
가보니 올망졸망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가 있었고. 조금 큰 외손녀 고양이도 있어서 준광이와 혜영이를 불러서 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복정동에서 별이라는 애완견을 가지고 왔는데 꿈에 친구 아버지가 준영의 목을 묶어서 마차에 실 는 꿈에서 빼앗다가 깽 하는 개의 소리에 깨어났는데, 이튿날 일어나 보니 집 안에서 있던 별이가 감쪽같이 없어졌고 찾지도 않았다.
꿈땜을 단단히 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별이라는 개가 자신의 새끼를 해칠 까봐 그랬는가 보다.
휴게소 공사는 그렇게 아시안 게임이 지나도록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
그런가 하면 재덕은 추석 때 수동이가 다녀가고 나서 늘 하던 대로 술을 즐기고 있었다.
정순이 생활을 책임져야 해서 일을 다니는데 사흘이 멀다 하고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살림에 조그마한 보탬을 주었던 은자는 성현을 만나 연애 끝에 임신을 해서 성남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86년10월 30일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 한다는 뉴스가 T.V에 나왔다.
이어서 연일 뉴스에서는 .
"200억톤의 물이 서울을 덮친다. 63빌딩의 절반 가까이 물에 잠기고" "남산 기슭까지 물바다, 원폭투하 이상의 피해" "수도권까지 물바다, 잠실올림픽 시절은 물론이고 한강변 아파트들은 완전히 물속에 잠겨"
운운하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하고도 남는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올림픽을 한다니까 훼방을 놓기 위해 별 별 짓을 다 한다고 하면서 TV에서 눈을 못 띠고 있었다.
재덕은 육이오 때 포로로 끌려가 개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순은 늘 하던 대로 어제 술을 마신 재덕을 위해 북어를 넣을 해장국을 끓여서 아침 소반에 담아서 들여왔다.
그럴 때면 언제 그제 안 들어오고 어제 늦게까지 아 들어와서 끓이던 속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악처가 열 효자 보다 났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홧김에 다른 날보다 한 병 정도를 더 마셔서 그런지 속이 야간 매스꺼웠다.
“해장 해야죠.”
하면서 정순이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어 뚜껑을 따서 소주잔에 찰찰 넘치게 부었다.
그리고 우선 뜨끈한 국을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려는 데, 입에서 역한 비린내와 함께 올라왔다.
정순이 얼른 요강을 갔다 대 주었는데 피가 한 대접이 넘게 토한 것이었다.
놀란 정순이 급히 재덕을 부축해 큰길로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성남병원으로 가서 접수를 시키고 수동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 애비냐?”
“예 어머니.”
“아버지가 피를 많이 토해서 지금 성남병원에 있는데 의료보험증이 필요하니 빨리 가지고 올라오너라.”
“네 알았어요.”
수동이가 급히 태평리로 완행을 타고 가서 급행을 타고 모란 정류장에 내려서 시내버스를 타고 성남 병원에 11시쯤 도착했다.
진찰 결과 술을 많이 먹어서 위에 구멍이 난 위 천공이며, 우선 입원을 하고 약을 먹으면 지혈이 되고, 당분간 금식을 하고 아물면 일주일 이내에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다.
재덕이 수동이에게
“가게 비워두면 안 되지 않느냐 내려가고 전화로 알려 주면 되니 내려가라.”
“그래 내가 있으니까. 아범을 내려가 결과가 나오면 알려 줄게.”
그렇게 바로 수동이는 여주로 내려왔다.
정순은 그런 경험이 십여 년 전에 있었다.
고종사촌 태준이가 월곡아파트에 살적에 들렸는데 술에 취해 와서 이튿날 아침에 상혈을 해서 약을 사다 먹인 적이 있어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촌동생이 아닌 남편이 아닌가.
이틀 금식 후 죽을 하루 먹이고 사흘째부터 밥을 주었고 이틀이 지나자 내일은 위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니 오늘 저녁식사 후 내시경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금식을 하라고 하면서 정순에게 검사비를 수납하라고 했다.
그러나 재덕은
“이 자식들이 나았으면 퇴원하라고 할 것이지 사람을 붙잡아 두고 봉을 잡으려고 해 나뿐 놈들 같으니라고.”
“그래도 검사는 해 봐야지요.”
“검사는 무슨 검사, 다 돈 벌려는 수작이지. 내 몸 내가 잘 알아 그냥 퇴원해.”
하긴 나흘 전부터 약만 주지 주사를 주기를 하나 입원했다고 특별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는데 굳이 병원에 있으면서 돈을 버리는 것 같았다.
재덕의 고집을 잘 아는 정순은 퇴원수속을 하고 퇴원을 시켰다.
재덕은 집으로 오면서도 자식들 아주 사람을 봉을 빼려고 한다며 지난번 교통사고 때에 잡아두면 돈이 되니까 기브스 해놓고. 다 아물어서 근질근질 대는데도 기브스를 떼어내 주지를 않고 날짜만 지나면 돈이 되니까 마냥 붙잡아 두더니 이번에도 누굴 봉으로 안다면 투덜거렸다.
12월 6일 평화의 댐 건설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
재덕은 그동안 정순의 잔소리로 술을 먹지 않으니 할 일이 없는 게 하루하루가 지루 했다.
그리고 쓰리던 속도 다 나은 듯 했다.
성금 걷는 생방송을 보면서 한잔 생각이 간절해 가계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들어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와 어제 먹던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까지 있었다.
김치찌개를 석유곤로에 올려놓고 우선 한잔 따라 마셨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쌉싸래했으나. 이내 뒷맛 달착지근한 게 이걸 여태 참느냐 그 고생을, 내일 당장 죽어도 술은 정말 못 끊겠다.
정순이 있으면, 못 먹게 말렸겠지만, 마지못해 찌개라도 데워서 상을 봐 왔을 텐데, 그런데 요즈음 정순은 약을 올리는 건지 가끔씩 혼자 얼큰해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이 그 내 팔자야 젊어서 사흘 도리로 취해 들어와 주사를 부린 것을 앙갚음 당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한잔 더 따라 마셨다.
이번에 아주 달달한 게 혀에 감겨오고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싸한 느낌이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석유곤로에 얹어놓은 찌개가 끓기 시작해서 불을 끄고 또 한잔을 따라 마셨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그리고 막 세잔을 따르고 있는데, 정순이 들어와 술병을 빼앗으며 당신 미쳤느냐 며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하며 따라 놓은 술을 마셔 버렸다.
그렇게 그날은 지나고 새벽에 속이 조금쓰리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재덕은 아직 술을 먹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리고 큰마음을 먹고 여의도 방송국을 찾아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모금함에 넣고 왔다.
‘자식들 또 쳐들어오려고 어림없다.’ 그렇게 뇌까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재덕은 기분이 좋았다.
그럭저럭 해가 바뀌었다.
한 달이 넘도록 술을 먹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정순이 한잔 걸쳤는지 알딸딸 해가지고 들어왔다.
이런 땐 술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정순의 손에는 소주 한 병이 들려져 있었고, 당신 하고 한잔 하려고, 하면서 어제 먹던 찌개를 연탄불에 올려서 데우고 상을 봐서 들여왔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부부가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러고 술에 취해있는 정순의 모습은 아직도 예쁘다.
철없던 때에 불장난으로 나를 만나 호강 한 번 못해보고 늙어가지만 사랑스럽다.
이튿날 아침 속이 편치는 않았지만 견딜 만 했고, 정순이 내가 좋아하는 두부에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고 해장까지 했다.
살아 갈수록 정과 사랑은 깊어지나 보다.
그리고 한 동안 술을 자제하며 지냈다.
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년 초부터 어수선 했으나 먹고 살기 바뿐 사람들을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면 늘 그랬다 공부나 하지 데모는 그러는 사이 설이 다가왔다.
수동이는 식구들을 데리고 전날 올라왔다.
그리고 영자는 정순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준비를 해서 설날 아침에 차래를 지냈다.
날이 날인만큼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시는 재덕에게 정순이.
“음복 하셔야죠.”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하면서 잔대 위의 조그만 술잔을 내밀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이 퇴주를 주전자에 따라서 벌써 탕국에 올려놓고 상을 보았다.
수동이 녀석은 내가 술 먹는 것에 지쳤는지 지겨워서 그런지 아애 한잔도 따라 주지 않았다.
하긴 지겨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녀석에게 술을 가르치지 않아서 소심한 성격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정자는 가끔 하는 것 같고 경자는 술을 곧잘 해서 언젠가는 요개 귀엽게 주정까지 하지 않았던가. 수동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가도 들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아침을 마치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천 원씩 주었다.
그리고 오후 저녁 무렵이 되자 수동이가 식구들을 데리고 내려갔다.
조금 더 있다가 갔으면 했는데 그 것도 마음뿐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는 것 같아서 “그래 조심해서 내려가거라.”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정자와 강서방이 광진과 영진이를 데리고 세배를 왔다.
장현이 이 녀석은 싱글 싱글 거리며 붙임성 있게 막 깨어서 출출할 때 찾아와 재덕을 반갑게 했다.
재덕은 지갑 속 깊이 넣어 두었던 천 원짜리 지폐를 광진과 영진에게 한 장씩 주었다.
그래도 진수만은 못해도 종현이를 떼어놓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아들을 둘씩이나 낳고서 없어서 셋방살이를 할망정 그런대로 오순도순 사는걸 보면 고마웠다.
그러는 사이에 경자가 오서방과 함께 미연이를 안고 들어왔다.
세배를 받고 오서방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밤이 이슥하여 곯아떨어질 때까지 마셨다.
그리고 초이튿날 아침 속이 몇 달 전처럼 울렁거리고 메스꺼웠다.
해장을 하면 괜찮겠지 하고 참고 있었다.
그러나 정순이 끊인 해장국이 들어오기 피비린내가 나며 토하기 시작하자.
정순이 토하는 소리에 걱정이 되어서 방으로 들어와 등을 두드리며.
“어쩐지 어제 많이 마시더라 뭐 조은 거라고 그렇게 많이 마셔요. 에이그.”
하면서 걱정스런 얼굴로
“그래 가지고 아침이나 드시겠어요. 병원에 가봐야지.”
그렇게 재덕은 정순과 함께 성남병원으로 갔다.
“먼저 내시경을 하라고 했는데 왜 안하고 가셨어요.”
구차하게 변명을 할 처지가 못 되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원을 해야 갰습니다.”
의사의 지시로 입원을 하고 우선 지혈이 될 때 까지 금식을 하라고 했다.
지혈이 되고 나서 이틀이 지나자 의사가 정순에게.
“금식한 김에 위내시경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정순이 재덕에게 위 내시경을 하자고 하자 재덕은 인상부터 썼다.
“에이그 그 오장 육부가 다 올라오는 것 같은 걸 하라고 에이 싫어.”
“그래도 해야지요.”
“괜히 돈 버리고 뭐 하러 해.”
“그래도 해 봐요.”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버티던 재덕이 마지못해 위 내시경을 했다.
그리고 담당의사가 정순을 오라고 불렸다.
“저 환자분이 위암입니다.”
“네?”
“여기 사진을 보면 여기가 천공이 되었던 부분이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퍼졌습니다.”
고 하면서 전위된 부분이 많아서 수술이 불가능 하다고 하며 앞으로 점점 고통이 심해질 것이며 치료제 보다 진통제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정순은 우선 정자와 경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재덕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기고 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죽을 먹기 시작하고 사흘을 더 있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약을 한 보따리 타 가지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정순은 수동이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수동이는 충격이기 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만큼 재덕에 대한 사랑이 없었는지 몰라도 수동이는 아주 차가운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만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김씨 상조회에 가입을 해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주민등록 초본을 내고 노인 중 돌아가시면 받는 것인데 가입된 사람 중 초상이 나면 그때 마다 통보가 오는데 이천 원만 내면 되요.”
“그런데 위암이고 육 개월을 못 산다고 하는데도 돼요?”
“되고말고요. 아무것도 안 들어가요.”
“진단서나 그런 거 안 들어가요.”
“그래도 건강진단서 같은 거 달라고 할 텐데요.”
“걱정 말아요. 내가 조 무웅씨 어머니 지금 여든다섯 이잖아요. 얼마 전 그 노인네 이름으로 내가 들었어요. 내가 돈 내고 반씩 나누기로 했어요. 안 들면 내가 들게요 나하고 나눌래요.”
그렇게 해서 수동이는 여주에 가서 가입을 했다. 보름이 지났는데 누가 돌아가셨다는 엽서가 나와서 계좌로 입금을 했다.
그리고 준영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렇게 날짜는 가고 있었지만 수동이는 어떻게 해보려고도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보던지 아니면 수술을 하면 나을 수 있는지 조차 알아보지 않았다.
그만큼 재덕과의 애틋한 정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구석으로는 뭔가 해 드리고 싶었다.
생각 끝에 하루 정도 가족과 함께 바람이라도 쏘여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양레미콘 기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출퇴근 하는 12인승 승합차가 있다면서 하루 빌려 주겠다고 해서 그 차를 빌려서 전날 저녁 광진내 집으로 갔다.
정자가 밥을 차려주고 밤이 이슥한데도 장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자는 이인간이 에이그.” 하면서 계속 투덜거렸지만 그보다 수동이는 정작 재덕의 집에서 자야 했지만 그리로 가서 자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았지만 가까워지기도 어려운 사이가 아닌데 멀리했다.
이튿날 재덕 정순 정자 경자 금자 은자 수자 경훈이를 태우고, 북한강가로 바람을 쐬러 차를 몰고 나면서.
“아버지 간내월에 한번 가 보실래요.”
“거길 뭐 하러 가, 가 봐야 친구들은 다 죽고 아무도 없어.”
경춘가도를 달려가는 곳곳에는 군데군데 벚꽃이 만발에 있었다.
차가 청평댐 위를 지날 때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 옛날 일제가 이 땜을 막을 때 열여섯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위해 공사판에 와서 일하던 때가 생각났다.
수동이가 차를 몰아 설악면 회곡리 강가에 도착했다.
강가는 벚꽃이 만발했고 산에는 봄나물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있었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꽃피고 온갖 나물이 꿈틀거리고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재덕은 나른한 몸으로 몸을 야외 돗자리에 한 귀퉁이에 앉아서 물끄러미 강가를 응시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은 언제 보아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정순은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강을 같이 바라보며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네.”
하더니 조금 수 산기슭을 돌아다니며 나물을 뜯었다.
경훈이 모터보트를 빌려서 아버님 하고 함께 탈까요? 했지만 재덕은 만사가 귀찮은 듯 낯놀림을 했다.
수동이의 생각에는 재덕이 좋아하지는 않아도 혹시나 타고서 간내월 앞을 휙 돌아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 했지만 재덕의 낯놀림에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정자가 전날 준비한 음식을 내놓았고, 재덕은 별도로 쇠고기 죽을 준비했으나, 벌써 얼마 먹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이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재덕은 벌써 자신의 병이 쉽게 낫지 않을 병이라는 걸 직감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들여석이 애비를 위로 한답시고 바람을 쐬러 나와서 식구들이 오순도순 하는걸 보니 행복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통증이 있었지만, 참았다.
모처럼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이를 지그시 물고 참아내고 있는데, 정순이 눈치를 채고 얼굴에 땀을 닦아주며, 약을 건넸다.
약을 받아서 먹는 것을 본 눈치 빠른 정자가
“왜 많이 아파,”
재덕은 낯놀림을 했다.
정순이 넘겨준 약을 먹고 나니 통증이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동이는 서둘러 여주로 내려갔다.
몇 칠 후 영동이가 왔다.
녀석만 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속을 재덕이 유일하게 속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다.
의례적인 말이 오간 뒤, 침묵을 깨고 재덕이 입을 열었다.
“내가 후회가 많아 무엇보다 수동이한테 미안해 해준 것 없이 너무나 많은 고생을 시켰어.”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재덕은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내가 왜 내 생각만 했는지, 그나마 장가드릴 때 반 정도 떼어 주었어도, 덜 후회가 되었을 텐데.”
그나마 직접은 말을 안 했어도 영동이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으니 조금은 시원했다.
사실 이 말은 수동이에게 했어야 했지만 정작 녀석과는 조용히 앉아서 다정하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녀석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다가가려고 시도해 보지도 않았고, 어려서는 강요만 그리고 자라서는 술의 힘을 빌어서 이야기 하면 술주정으로 비추어질까 입을 다물었다.
자식이 술이라도 한잔씩 하면 응어리진 아들 녀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었을 텐데, 언제부턴가 아들이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의 빚도 지기 싫어했고 꼭 갚았는데 녀석에게서 빌린 돈 빌리고 어영부영 하다가 못 갚고 그냥 가는가 보다 하니 참 으로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그 돈을 준다고 해도 내가 넉넉하여 주는 것이라면 모르는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삼촌이 주는 돈을 녀석이 받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녀석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내가 녀석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가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얼마 후 재운이 왔다.
강한 것 같은 재운은 들어오자마자 피골이 상접한 재덕을 보자마자.
“어 흐흐 어 흐흐 이 자식아 왜 이 모양이 이야 왜 흐흐흐.”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형님 괜찮아요. 나 일어날 거예요.”
재덕은 도리어 형 재운을 위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그친 재운은 더 있어 봐야 마음만 상할 것 같은지 점심을 걱정하는 재덕을 뒤로 하고 간다고 하면서 골목길을 나서서 몇 번을 뒤돌아보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칠이 지나서 창진이가 옥자와 함께 들렸다.
녀석은 늘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술을 사가지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술을 사 가지고 오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재덕에게 술을 할 줄 모르는 다른 조카 녀석보다 다른 면이 있어서 재덕과 가장 죽이 잘 맞았었는데 당연 했지만 웬 지 녀석의 빈손을 보니 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술잔을 마지하지 않으니 겸연쩍은지 별로 말이 없고 형식적으로 얼른 쾌차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녀석이 간 다음 쌀가게에서 쌀 한가마니와 연탄 이백 장이 배달되었다.
돈을 주면 안 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녀석은 쌀 한가마니와 연탄 이백 장을 시켜놓고 간 것이었다.
수동이는 나름대로 재덕에게 뭔가 약을 해 주려고 했다.
하루 시간을 내어 의만의 1.5톤 차를 몰고 황골 용동이네 집에 가서 위암에 좋다는 혼입 나무를 잘라 가지고 오다가 성남 복정동에 들려서 내려놓았다.
정순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 이거 다려 잡수시면 좋다고 해서 작은 황골서 배어 왔어요.
이거 솥에 삶아서 드세요.”
재덕은 말하기도 귀찮은지 고갯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이거 준경이네 집터에서 베어가지고 온 돌미나리예요. 다듬어서 나물해 드세요.”
하면서 낫으로 베어서 실고 온 미나리를 한 아름 내려놓았다.
재덕의 마음은 조금 있으면서 이야기라도 하다가 기회를 보아 미안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녀석은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무엇이 바뿐지 그대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수동이는 한 달 쯤 지나서 반계리로 차를 몰아 천복에게 아버지 재덕의 산소 자리를 잡아달라고 했다.
천복은 옷을 차려입고 수동이 차에 올라 물골안 양묵의 산소가 있는 곳에 가서 둘러보고 다시 차를 돌려 동두천 연순의 산소 부근을 둘러보았다.
“저기 저 위에는 선 대 들의 산소가 있고요. 이 옆에 산소가 둘째 큰어머니 산소 에요.”
천복은 고개를 끄떡이고 이내 분주하게 산세를 살피며 나침판은 들고서 방향까지 보았다.
“여기가 좋겠네.”
하면서 연순의 산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는 정문할아버지 산소 위쪽이었다.
조금 망설여지는 장소 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재운이 연순과 합장을 했을 때 형제의 산소가 가까이 있어서 죽어서라도 자주 다니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면서 수동이는
“장인어른 물골안 하고 동두천 하고 어디가 나아요?”
“동두천이 났네. 동두천에 쓰게.”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땅거미가 질 무렵 복정동에 도착했다.
천복이 재덕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한참을 눈을 감고 맥을 보고난 천복이
“사돈 곧 완쾌 되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에 재덕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힘없이 고갯방아를 찧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만은 휴게소가 다 지어 졌는데 무슨 생각에서 인지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양은 가계를 열지 않고 건물 가운데에 사무실이나 매점으로 꾸며놓은 곳에 부동산을 하는 박사장 이란 사람을 상주 시키고, 사무를 보는 아줌마도 채용을 했다.
그런데 그 아줌마의 남편이 찾아와서 그 아줌마는 그만 두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의양의 친구 민씨라는 사람이 기거를 했다.
그런가 하면 나래리 사는 미장이 정씨가 태평리에서 술 취해 사람을 벽돌로 쳐서 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정씨는 기구한 사람으로 사우디에 일하러 가서 돈 벌어서 몽당 보냈더니 부인이 어린 두 남매만 남겨놓고 돈과 함께 사라져 벼렸다고 했다.
몇 번 일하러왔을 때 보면 사람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안되었다.
나래리 사람들이 탄원서에 연명을 해서 여주지청에 제출을 하고 법원에도 아이들이 불상하니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서울서는 데모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재덕의 병세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예측한 대로 가고 있었다.
6개월을 못산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고 다섯 달이 지나고 있었다.
진통제를 먹고 아픔이 가시면, ‘아 김치에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 먹었으면.’ 하다가도 진통이 오면 감당할 수 없게 아프다가 진통제를 먹고 조금 있으면, 가라앉았다.
“여보”
하고 재덕이 정순을 불렀다.
“왜요 또 아파요.”
“아니 입맛을 다시며 저 개 목덜미 넣고 만든 보신탕이 먹고 싶네.”
정순은 모란시장으로 가서 개의 목 부분을 사왔다.
그리고 반을 갈라서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통 생강과 개고기를 넣고 석유곤로에 올려놓고 살이 풀어지도록 푹 고아서 마지막으로 대파와 마늘을 넣고 끓여서 질게 지은 밥 한 공기와 보신탕 한 대접을 차려서 내주었다.
재덕은 맛이게 반 대접을 비우고 물끄러미 정순을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면 고마울 수가 없다.
몇 년 전 집을 나갔을 때 원수 같더니만 그래도 내 곁에 있지 않은가. 어느 효자 효녀가 있어 내 곁에 있으면서 내 시중을 들어 줄까?
오늘 같이 먹으면 툴툴 털고 일어날 것 같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또 한 대접은 데워다 주니 어제보다 조금 적게 먹었다. 그리고 점심때에는 손을 저으며 못 먹겠다고 해서 야채를 넣은 죽을 조금 먹더니 조금 후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통증이 오는지 다시 약을 찾아 먹고, 조금 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세 시간 정도 지나 또 통증에 잠에서 깨어나 또 약을 먹었다.
이젠 약을 먹어도 서너 시간 밖에 가지 않는다.
빈속인데도 아무것도 먹기가 싫다.
저녁을 조금 떠 보라는 정순의 성화에 서너 숟가락 들다가 말고 이내 숟가락을 놓고 누워 버렸다.
그리고 또 진통이 와서 약을 먹었다.
밤에도 세 네 번씩 진통제를 찾아 먹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정순이 챙겨주면 근심스런 얼굴로 처다 보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죽고 나면 좋은 사람 만나서 말년이나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려 있는 힘을 모아 일어나 기다시피 걸어서 대문을 나서 화장실에서 토했다.
이젠 검붉은 게 올라오고 비릿한 냄새마저도 무디어 졌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걸어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힘을 써서 그런지 온몸이 나른하고 문밖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재덕은 정순에게 턱을 조금 움직여 보였다.
정순은 이내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를 하고 정자에게 전화를 하고 수동이에게도 경자한태도 전화를 했다.
연락을 받은 수동이는 수양 처남 강구민에게 전화를 해서 가계를 봐 달라고 하라고 하고 장인어른을 모시고 오라고 영자에게 말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정자가 달려 왔고 경자가 부부가 왔다.
재덕은 이제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감기는 눈을 떠서 둘러보니 아직 수동이는 보이지 않았다.
‘녀석에게 미안 했었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숨이 가빠져 오는데, 지켜보던 정자가 안타까워 속으로 기도를 했다.
‘사자님 모시고 가려거든 빨리 고통 없이 모셔가세요. 왜 이리 시간을 지체하세요.’ 하고 빌고 또 빌었다.
재덕은 가뿐 숨소리가 가늘어지더니 길게 숨을 내쉬고 이내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재덕은 예순다섯의 나이에 풍진세상을 뒤로 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애증의 강 편 끝.
첫댓글 정말 많은 것을 담아 내셨내요.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잘 보았는데 그 뒷애기도 궁굼해 지내요 다음 편은 없나요.
열심히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편인 소용돌이도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