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40여명 ‘강 살리기’ 정화식물 3만그루 심고 돌무더기· 魚道 만들어 축산단지·양어장 20여곳 폐수방류도 꾸준히 감시
장맛비가 멈춘 지난 17일 낮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인천강 중·하류. 넘실대는 황토물 위로 하얀 왜가리 4~5마리가 날거나, 목 좋은 물가에 서서 유심히 강바닥을 노려보고 있다. 주민 김형인(43)씨는 손으로 가리키며 “황토물 아래엔 수십 개의 돌무더기가 있고, 돌무더기를 헤치면 몇 년 전까지 찾기 힘들었던 장어들이 3~4마리씩 꿈틀대며 숨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천강은 몇 년 전만 해도 오염된 하천이었다. 축산단지와 양식장의 폐수가 흘러들어 악취가 심했다. 곳곳에 쓰레기가 넘쳤고, 물고기는 석유 냄새 탓에 조리할 수 없었다. 60년대 이후 식량증산과 재해예방을 위해 하천을 직선화하고 중간중간 보를 쌓자 멀리 남지나의 심해에서 부화해 헤엄쳐 온 장어들은 서식처를 잃고, 상류에도 오를 수 없었다.
이제 둥근 산, 기암괴석, 한가로운 들녘과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루는 인천강은 크게 맑아졌고 주민 품에 보배로 안겼다. 강변 주민들부터 낚시나 천렵(川獵)에 나서고 있고, 올여름 들어서는 도시 단체들의 체험 코스로까지 각광받고 있다. 지난달 21일 모 기업체 임직원 가족 130여명 체험투어를 열었던 전주의 관광기획사 박일두(44) 대표는 “체험객 모두 아이처럼 맑은 물에 텀벙대며 장어를 잡아, 덜 자란 것은 놓아주고, 조리도 해 먹었다”며 “이달 하순 이후에도 단체 체험행사들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강물이 맑아지고 풍천장어가 되돌아오기까지에는 주민들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정현도(56·아산면 상갑리)씨 등 주민 20여명이 2001년 5월 ‘인천강지킴이’ 모임을 발족, 강 살리기에 나섰다. 지킴이들은 매월 한 차례 강과 주변에 쌓인 쓰레기부터 치웠다.
강 양안에는 창포 미나리 등 수질 정화식물 3만여그루를, 둑에는 이팝나무 배롱나무 등 조경수 1500여그루를 심었다. 작년부터는 고창군 후원을 받아 장어와 은어, 참게 등 치어들도 대량 방류해 왔다. 지킴이들은 장어가 서식할 돌무더기 200여개를 만들면서 회원 집 돌담까지 헐었다. 고창군은 모임의 건의로 강 중류 보 두 곳에 어도(魚道)를 냈다.
회원들은 인천강 중·상류 축산단지 및 양어장 20여곳을 찾아다니며 강에 오폐수를 버리지 말라고 호소했다. 물고기의 씨가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 배터리나 대형 그물을 사용하는 불법 어로 단속에도 나섰다. 폐수 방류 등에 대한 단속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은 ‘아산면내수면(內水面)어업계’를 발족, 군에 신고했다.
불법 어로나 폐수 방류, 쓰레기 투기 등이 자취를 감추기까지 회원들은 크고 작은 다툼에 휘말려야 했다. 모임 김선출(46) 총무는 “장마철에 몰래 물꼬를 터 폐수를 흘려보내 고발했던 양어장 주인으로부터 ‘지킴이들이 군 예산을 횡령했다’는 무고를 당해 경찰서에 드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킴이의 꾸준한 활동에 주민들은 서서히 성원을 보냈다. 면내 다른 단체들과 재경향우회로부터 활동에 보태 쓰라는 성금도 답지했다. 회원이 42명으로 늘면서 거의 모든 마을에서 1년 365일 강 환경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김연수 군 해양수산과장은 “군이 할 일을 앞장서 챙겨주는 지킴이들이 그저 고맙다”며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분들이 원하는 인천강 공원화 사업 예산 지원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에 래프팅(rafting) 시설을 갖추고 산악자전거 코스를 개설하면서 풍천장어 홍보관과 웰빙 타운을 조성하는 게 공원화 사업의 골자. 아산면은 풍천장어와 함께 복분자의 명산지인 데다, 세계문화유산 고인돌군에 전북도립공원 선운산까지 품고 있다. 인천강이 머물 시설을 갖추면 이들 명소와 연계되는 국내 유수의 체험관광 거점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지킴이들의 설명이다. 정현도 지킴이 회장은 “인천강은 자연이 준 커다란 선물로, 공원에서 수익이 생기면 모두 강을 더 맑게 가꾸는 일에 재투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