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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주 (Michael Joo) |
등록일 |
2006-12-05 |
전시일정 |
2006.12.01~2007.01.28 |
전시장소 |
로댕갤러리 |
조회수 |
2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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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감지 Remote Sense 2005 크기 가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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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명 :『마이클 주(Michael Joo)』 - 기 간 : 2006.12.1~2007.1.28 (59일간, 월요일 휴관) - 장 소 : 로댕갤러리 - 출 품 작 : 15점(비디오 2점, 조각/설치 13점) - 마이클 주 강연회 : 12. 12(토) 오후 2시, 로댕갤러리 - 무료 전시설명 (평일 2시, 4시, 주말 11시, 2시, 4시)
다양한 장르의 현대 미술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향해왔던 로댕갤러리가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한국계 작가『마이클 주(Michael Joo)』의 개인전을 12월 1일부터 2007년 1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간 비엔날레, 기획전 등을 통해 국내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작가의 15년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15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이클 주는1966년 뉴욕주에서 출생한 한인 2세 작가로 워싱턴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숙명적으로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인간과 환경, 자연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맥락으로 깊고 넓게 확장되어 왔다. 결국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한국과 미국, 자연과 문명 등 대립적인 경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의 유연한 흐름과 이동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마이클 주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당시 글로벌리즘과 다문화주의 문맥 속에서 미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1994년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전시에 초대되면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 서도호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였고 2006년 광주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마이클 주의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대표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로, 그의 전반적인 예술세계를 조망하고 자연과 과학, 나아가 예술의 조화롭고 유기적인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의의
지난 1990년대는 다문화주의와 글로벌리즘이라는 흐름을 타고 현대미술의 중심이 이동하고 다변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처음 우리에게 다가온 마이클 주는 베니스비엔날레와 휘트니비엔날레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국내외에서 모두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와 동서양 사상의 조화로 주목을 받았다. 한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2000년을 전후로 인간과 환경, 자연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맥락으로 깊고 넓게 확장되어왔다.
그간 마이클 주의 작품은 국내에서 여러 전시들을 통해 소개되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졌지만, 막상 그의 작업을 깊이 있게 감상할 기회는 없었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199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의 신작까지 한 자리에서 살펴봄으로써 그간의 단편적인 이해의 틈을 메우고 마이클 주의 예술 세계를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이번 개인전은 일반적인 연대기순 작품 배열보다는 경계의 이동과 순환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 이념을 원용하였다. 기획전시 공간 앞의 글래스 파빌리온에 대형 작품 <원격 감지>를 설치하고 전시장의 입구에 작품의 일부인 모니터들을 설치하여 전시장 안팎의 연결을 꾀하였다. 또한,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제작된 비디오 작품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은 마지막 전시장의 대지를 주제로 한 신작과 소통한데. 그 사이에 배치된 1990년대의 대표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렇듯 수미쌍관을 이루는 공간 구성을 통해 관람객은 경계와 경계가 중첩되며 연속 이동하는 마이클 주의 개념적인 순환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개입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마이클 주의 예술세계
마이클 주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이다. 성장 과정에 당연히 동서양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경험한 그의 예술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작업 초기인 1990년대에 그는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특성(physicality)은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특성과 견고하게 결합된 관계가 아님을 역설하였다. 당시에도 예술의 재료로서는 극단적으로 여겨졌을 인체 배설물을 이용한 작품 <노란, 더 노란, 가장 노란(Yellow, Yellower, Yellowest)>(1991)은 세 개의 비이커에 소변(모두 작가의 것이라고 한다.)을 담은 것이다. 비이커의 뒤 쪽 벽면에는 징기스칸, 베네딕트 아놀드, 마이클 주의 이름이, 비이커가 놓인 알루미늄 선반에는 각 비이커와 짝을 이루듯 Yellow, Yellower, Yellowest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관람자는 색의 상대적 농도를 나타내는 이 단어들을 보고 소변의 색을 단계별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또한 곧바로, 제시된 각 이름과의 연관성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징기스칸과 짝을 이루고 있는 ‘Yellow’는 피부색을 통해 동양인을 구별하는 단어로 즉각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Yellower는 미국의 국가적 배신자인 베네딕트 아놀드와 짝을 이루고 있어, 그 인물에 대해 아는 관람객이라면 Yellow의 또 다른 의미를 포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Yellowest-마이클 주’ 결합에 이르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언어와 사회 문화적 통념이 얼마나 쉽게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유도하고 형성하며, 나아가 고착화시키는가를 일깨워준다. 여기에서 작가 마이클 주 자신은 바로 그 통념으로 접근할 수 없는 모호한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소변이 신체의 신진대사의 결과물이라면, 본 전시에는 출품되지 않은 1992년 작 <위인의 염기(Saltiness of Greatness)>는 신체의 유기적인 대사의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서양에 잘 알려진 동양인들인 징기스칸, 이바 토구리, 마오쩌뚱, 브루스 리가 생애 동안 소비했을 칼로리를 면밀한 추론으로 가상적으로 계산해내었다. 그리고 이를 각각 소금덩어리로 환산한 뒤 여기에 신체의 활동을 암시하는 인공땀을 조금씩 떨어뜨려 소금이 녹아 없어지게 하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생물학 지식에 상상력을 더하여 이들 동양인의 에너지 소비 과정을 개념적으로 가시화한 이 작품은 동서양 인종이라는 매개변수를 배제한 채 이들 개체 간의 신체성의 다양한 차이를 데이터로 제시함으로써 인종 차별의 비정당함을 꼬집는 듯 하다. 한편 이들이 역사적, 문화적, 정서적으로 어떤 정도로든 서양인의 땅, 서양인의 마음을 점령했던 동양인 아이콘들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또다른 강한 의도가 읽힌다.
두 작품 모두 냉철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증명의 형식을 빌고 있는 반면 시각적으로 눈에 확 띄는 <몽골족-B-29편(미스 미국) Mongoloid- Version B-29(Miss Megook Paintings)>(1993-2003) 두 점은 마이클 주의 뜨거운 감정을 전달한다. 작가 자신의 누드를 그린 이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비행기의 잔해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서양에서 전투기 동체에 여성의 이미지를 그리는 강렬한 남성적 취향의 ‘노우즈아트(nose art)’를 차용하고 있다. Miss Megook은 한국인이라면 ‘미국 아가씨’로,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미국’이라는 성(姓)을 가진 아가씨 쯤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Megook은 동양인(특히 한국계)을 비하하는 호칭인 ‘gook’과 나 ‘me'의 결합으로 더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주지해야할 점은 ‘Miss Megook’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 사용된B-29기에 미공군이 한국어를 섞어 만든 별칭이었으며, 작가는 글자체까지도 50여 년 전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본떴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마이클 주는 남성의 상징을 교묘하게 가림과 동시에, 성적 대상으로 기호화된 핀업걸(pinup girl)의 포즈를 취하며 B-29기의 ‘미스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동양인 남성을 남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세된 존재이자 동양인 여성과 다를 바 없는(때로는 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길 뿐인 서양 백인 남성 사회에 잔재된 식민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 엿보인다. 그러나 탈식민주의적 이해보다도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재료와 언어에 내포된 사회 문화 역사적인 다양한 함의로 의미층을 두텁게 쌓고, 그 안에 경계가 모호한 자신의 성적, 인종적 정체성을 교차시키며 유동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작가의 존재, 작가의 정체성은 경계들 사이를 넘나들며 다중적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수많은 경계들 사이에서 스릴있는 균형잡기를 하고 있다.
마이클 주는 정체성을 다룬 자신의 이러한 초기작들이 ‘성난 아시아인(angry Asian)’으로 읽힐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를 불식시키려는 듯,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인종의 문제를 드러내기 보다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수렴되어갔다. 두 종류의 가정용 세제를 사슴뿔 모형에 넣은 <사냥 Hunt>(1993-1994)은 그 좋은 예다. 이 두 물질은 서로 섞일 경우 유독한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 뿔이 평행하도록 물리적인 균형을 유지해한다. 이 작품은 ‘사냥’에 담긴 정복과 개발 중심의 서양의 오랜 자연관 대한 경고이며, 자연의 소비와 사용, 그리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비물질적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균형은 이 작품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이면서 나아가 그의 전 작업을 관류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업 이념이 미세하지만 차츰 동양 사상에 접근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작가의 퍼포먼스 비디오인 <소금이동의 순환(Salt Transfer Cycle>(1993-1995)은 비디오의 시간성을 바탕으로 균형의 의미를 서사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 비디오 작업은 뉴욕의 작업실에서 엄청난 양의 MSG 위에서 헤엄치는 장면, 유타주의 소금사막을 기어가다가 걷기 시작하는 장면, 한국의 산야에서 작가의 몸에 묻은 소금을 사슴이 다가와 핥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소금은 작가의 몸을 통해 사슴으로 이동하고 순환한다. 각 단계별로 모든 연결고리들이 자기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자연과 만물은 원활하게 순환을 반복할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이 효율성을 위해 분절적으로 쪼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총체라는 점에서 이 작품에서 우리는 과학적인 추론에서 출발한 마이클 주가 점차 분석적 시각의 맹점에 있던 ‘전체’를, 또한, 부분과 부분 사이의 틈을 보는 시야를 갖추어 감을 주목하게 된다. 불과 1~2년 전, 소변과 땀처럼, 인체라는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순환의 단편적인 외적 현상에 머물러 있던 그의 시각은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의 순환으로 확장되어 자신의 몸 자체를 보다 큰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에게 인간 정체성의 문제 역시 국적과 인종을 떠나 인류의 차원으로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여기서, 그가 원용하고 있는 과학은 순환의 원리와 이치를 드러내는 생태학적 탐구로서, 마이클 주에게는 동양 사상의 접점이고 하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마이클 주의 작업은 점차 형이상학적인 수준에 접근해가며, 점차 동양 사상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수정 올가미(Crystal Noose)>(1999)에서 그는 죽음을 상징하는 올가미, 특히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매듭 위에 인공적으로 수정을 자라게 하여 죽음의 메타포와 태어나고 성장하는 실재를 결합시키고 있어 동양의 윤회사상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반영하듯 이 시기부터 불상을 작품의 소재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1999년 작품 <눈에 보이는(Visible)> (1999-2000)은 마치 해부학 모형처럼 뼈와 내장기관이 다 들여다보이고 피부는 투명하다. 영적인 존재인 존엄한 부처의 해부학적 신체 구조 즉 육체성이 강조된 이 작품에서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인 피부는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의미가 없다. 관람자의 시선은 안과 밖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영적인 세계(the Invisible)와 물질계(the Visible)의 경계를 상호적인 흐름으로 전환시킨다. 마이클 주에게 경계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존재하되 소통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마찬가지로 경계를 겨냥하여 만든 <접근/거부(Access/Denial)> (2002)는 유사하면서도 상반된 전략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는 차단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차단선은 미술 전시장에서라면 작품의 영역과 관람객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이다. 경계 자체를 미술품으로 전환시켜버리는 마이클 주의 유머 속에서 우리는 그가 주변에 편재한 경계들, 그것의 순환과 소통에 대한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계를 투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게 했던 <눈에 보이는>과 상반된 전략으로 경계를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얻는 것은 다시금 경계의 유동성이다. 이처럼, 느슨한 경계, 그 사이에 위치한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재확인에 다름 아니며 이런 면에서 <무리(The Pack)>에서 50마리의 제각기 행동과 포즈가 다른 코요테 무리는 하나하나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 그에 따르면 코요테는 인간 사회와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해가는 동물로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다른 세계와의 경계를 들고나는 동물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동양과 서양, 나아가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으면서 두 영역 간의 상호 순환적 소통을 도모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정확히 포개진다. 또한 마이클 주의 영매와 같은 모습이 많은 비평가들을 통해 요셉 보이스와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원격 감지(Remote Sense)>는 순록 모형들을 공중에 거대한 원형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각 순록의 배 속에 장착된 적외선 카메라는 360도로 주변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그 영상들은 순록과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설치된 모니터에 나타난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영상은 말하자면 순록 주변의 공간은 물론 때로 관람자까지 순록의 배 속에서 섭취되고 있는 형국이다. 스스로를 먹이연쇄의 최종 소비자쯤으로 여겼던 인간이지만 결국 거대한 순환 체계 속에 있을 뿐임을 겸허하게 일깨워준다. 이 자연의 섭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늘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마이클 주는 이 작품을 19세기 말의 거장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이 상설되어 있는 글래스 파빌리온 안에 설치하여 이 미술사의 걸작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역시 소화시키고 있다. 예술의 역사에 대한 작가 나름의 경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제스처는 그가 미술의 역사를 단선적 진보와 발전이 아닌 순환의 연속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다시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으로 돌아와보자. 2003년부터 제작된 이 작품은 소재상 어쩔 수 없이, 북극 원주민을 다룬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와 흔히 비교되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서양인의 혹은 문명인의 타자화하는 시선(그것이 호기심이든 연민이든)은 보이지 않으며, 그는 근대 초기 식민 열강의 만국박람회식 재현이 아니라 이누이트인의 신체적 본질을 다룸으로써 스스로 의미있는 현지의 한 개체로 보여준다. 알래스카는 북미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는 미국의 영토지만 몽골족 동양인의 오랜 생활 터전이었던 땅으로, 역사적, 인종적으로 상호침투되어 있는 경계의 땅이다. 이 경계의 땅 위에서 어둡고 긴 북극의 겨울을 보내는 이누이트인들에게 1년 주기로 발생하는 발작 증세를 가리키는 현지어인 ‘피블록톡’은 인체의 순환 리듬에 따라 일어나는 증상이다. 또한, 죽어서 박제되어 있는 동물은 작가에 의해 순환의 한 연결고리로서 다시 기능을 하고 있다. 한 인간 개체의 에너지 순환을 보여주고, 보다 큰 자연의 순환의 체계를 함축적으로 암시하면서 마이클 주는 그것이 알래스카로 상징되는 지역적 경계를, 동서양의 인종적 경계를 초월하는 대진리로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가운데에서, 한없이 자기 앞의 길을 걸어가는 마이클 주의 지루한 행로는 이렇게 반복과 순환이 무한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송유관을 따라 걷는 여정의 거의 말미에 마이클 주는 한 이누이트인을 만나는데, 이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같은 몽골족의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통이 단절된 두 사람은 차이와 경계가 바벨탑 이후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준다. 그것을 아는 마이클 주는 마치 시지프스처럼 긴 여정을 지속할 뿐이다. 마이클 주는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을 통해 자신의 작업 이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었고 또 한편으로는 광활한 알래스카를 경험하면서 대지를 포괄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로댕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들은 태양으로부터 얻는 원천 에너지가 자연에서 순환할 수 있도록 근간이 되어주는 것은 땅이라는 점에서 대지의 장엄한 존재감을 새삼 일깨운다.
전시 프로그램
- 전시설명 프로그램 평일 2회(14:00, 16:00) / 주말 3회(11:00, 14:00, 16:00)
- 마이클 주 강연회 : 12월 2일(토) 오후 2시~4시, 로댕갤러리
- 갤러리 음악회(격주 목요일 오후7시/로댕갤러리 글래스 파빌리온)
12월 7일 (목) 제1회 연주그룹 낭만 음악대 바이올린 - 유하나 / 첼로 - 이지행 / 클래식 기타 - 김현규 아코디언 - 김소미 / 퍼커션 - 엄기환 / 사회 - 이진욱
12월 21일(목) 제2회 재즈 그룹 프렐류드 < 크리스마스 & 러브 > 피아노- 고희안 / 베이스 - 최진배 / 드럼 - 라그리마스 주니어 알토 섹소폰 -최원석 / 테너 섹소폰 - 찰스 리, 리차드 로
1월 4일(목) 제3회 : 이지수 & 이슬기 의 <공존> 피아노 - 이지수(영화음악가-겨울연가, 실미도, 혈의 누 등) 가야금 - 이슬기
1월 18일(목) 제4회 Quartet ULLIM,<울림> 바이올린 - 박제희, 김정민/ 비올라 - 김남중 / 첼로 - 신애경 ※ 음악회 내용은 갤러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관 람 안 내 > - 관람요금 :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20인 이상 일반 2,000원, 초중고생 1,000원) - 관람시간 : 10:00~18:00 (월요일 휴관, 공연 시 21:00 까지 연장) - 위 치 :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 문의전화 : 로댕갤러리(www.rodingallery.org, 2259-7781)
마이클 주(Michae Joo)
1966 미국 뉴욕주 이타카 출생 1989 웨슬리안 대학교, 코네티컷주 , BFA, 워싱턴 미술대학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1991 MFA, 예일대학교
2006 현재 뉴욕에서 거주 및 활동 중
대표 화랑: Anton Kern Gallery, New York 주요 소장처: Guggenheim Museum,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T List Visual Arts Center, Massachusetts Denver Art Museum Damien Hirst, London Jay Jopling, White Cube, London
주요 전시 경력
2006 데미안 허스트 소장품전, 서펜타인 갤러리 제 6회 광주비엔날레 공동 대상 수상 2005 개인전 <보디 옵푸스케터스>, 아시아 소사이어티, 뉴욕 2003 개인전 ,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센터, 매사추세츠주 2000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00 코리아메리카코리아, 서울 아트선재센터 2001 제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1998 개인전, 화이트 큐브 갤러리, 런던 1995 개인전 <충돌>, 앤소니 도페이 갤러리, 런던 제1회 광주비엔날레
1994 데미안 허스트 기획 서펜타인 갤러리, 런던 1993 베니스 비엔날레 Aperto 참가 <태평양을 건너서>, 뉴욕 퀸스미술관, 서울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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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주기 리듬 Circannual Rhythm 2003-2005 3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설치 크기 가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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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버전 B-29 (미스 미국 그림) 1993-2003 223.5×183183×6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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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버전 B-29 (미스 미국 그림) 1993-2003 223.5×183183×6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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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Visible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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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탄, 나일론, 플라스틱, 철, 유리, 호두나무, 녹슨 철 152.4×121.9×121.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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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12-05 |
전시일정 |
2006.12.01~2007.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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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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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감지 Remote Sense 2005 크기 가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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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명 :『마이클 주(Michael Joo)』 - 기 간 : 2006.12.1~2007.1.28 (59일간, 월요일 휴관) - 장 소 : 로댕갤러리 - 출 품 작 : 15점(비디오 2점, 조각/설치 13점) - 마이클 주 강연회 : 12. 12(토) 오후 2시, 로댕갤러리 - 무료 전시설명 (평일 2시, 4시, 주말 11시, 2시, 4시)
다양한 장르의 현대 미술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향해왔던 로댕갤러리가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한국계 작가『마이클 주(Michael Joo)』의 개인전을 12월 1일부터 2007년 1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간 비엔날레, 기획전 등을 통해 국내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작가의 15년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15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이클 주는1966년 뉴욕주에서 출생한 한인 2세 작가로 워싱턴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숙명적으로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인간과 환경, 자연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맥락으로 깊고 넓게 확장되어 왔다. 결국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한국과 미국, 자연과 문명 등 대립적인 경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의 유연한 흐름과 이동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마이클 주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당시 글로벌리즘과 다문화주의 문맥 속에서 미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1994년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전시에 초대되면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 서도호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였고 2006년 광주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마이클 주의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대표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로, 그의 전반적인 예술세계를 조망하고 자연과 과학, 나아가 예술의 조화롭고 유기적인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의의
지난 1990년대는 다문화주의와 글로벌리즘이라는 흐름을 타고 현대미술의 중심이 이동하고 다변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처음 우리에게 다가온 마이클 주는 베니스비엔날레와 휘트니비엔날레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국내외에서 모두 인종적 정체성의 문제와 동서양 사상의 조화로 주목을 받았다. 한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2000년을 전후로 인간과 환경, 자연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맥락으로 깊고 넓게 확장되어왔다.
그간 마이클 주의 작품은 국내에서 여러 전시들을 통해 소개되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졌지만, 막상 그의 작업을 깊이 있게 감상할 기회는 없었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199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의 신작까지 한 자리에서 살펴봄으로써 그간의 단편적인 이해의 틈을 메우고 마이클 주의 예술 세계를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이번 개인전은 일반적인 연대기순 작품 배열보다는 경계의 이동과 순환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 이념을 원용하였다. 기획전시 공간 앞의 글래스 파빌리온에 대형 작품 <원격 감지>를 설치하고 전시장의 입구에 작품의 일부인 모니터들을 설치하여 전시장 안팎의 연결을 꾀하였다. 또한,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제작된 비디오 작품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은 마지막 전시장의 대지를 주제로 한 신작과 소통한데. 그 사이에 배치된 1990년대의 대표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렇듯 수미쌍관을 이루는 공간 구성을 통해 관람객은 경계와 경계가 중첩되며 연속 이동하는 마이클 주의 개념적인 순환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개입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마이클 주의 예술세계
마이클 주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이다. 성장 과정에 당연히 동서양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경험한 그의 예술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작업 초기인 1990년대에 그는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특성(physicality)은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특성과 견고하게 결합된 관계가 아님을 역설하였다. 당시에도 예술의 재료로서는 극단적으로 여겨졌을 인체 배설물을 이용한 작품 <노란, 더 노란, 가장 노란(Yellow, Yellower, Yellowest)>(1991)은 세 개의 비이커에 소변(모두 작가의 것이라고 한다.)을 담은 것이다. 비이커의 뒤 쪽 벽면에는 징기스칸, 베네딕트 아놀드, 마이클 주의 이름이, 비이커가 놓인 알루미늄 선반에는 각 비이커와 짝을 이루듯 Yellow, Yellower, Yellowest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관람자는 색의 상대적 농도를 나타내는 이 단어들을 보고 소변의 색을 단계별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또한 곧바로, 제시된 각 이름과의 연관성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징기스칸과 짝을 이루고 있는 ‘Yellow’는 피부색을 통해 동양인을 구별하는 단어로 즉각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Yellower는 미국의 국가적 배신자인 베네딕트 아놀드와 짝을 이루고 있어, 그 인물에 대해 아는 관람객이라면 Yellow의 또 다른 의미를 포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Yellowest-마이클 주’ 결합에 이르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언어와 사회 문화적 통념이 얼마나 쉽게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유도하고 형성하며, 나아가 고착화시키는가를 일깨워준다. 여기에서 작가 마이클 주 자신은 바로 그 통념으로 접근할 수 없는 모호한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소변이 신체의 신진대사의 결과물이라면, 본 전시에는 출품되지 않은 1992년 작 <위인의 염기(Saltiness of Greatness)>는 신체의 유기적인 대사의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서양에 잘 알려진 동양인들인 징기스칸, 이바 토구리, 마오쩌뚱, 브루스 리가 생애 동안 소비했을 칼로리를 면밀한 추론으로 가상적으로 계산해내었다. 그리고 이를 각각 소금덩어리로 환산한 뒤 여기에 신체의 활동을 암시하는 인공땀을 조금씩 떨어뜨려 소금이 녹아 없어지게 하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생물학 지식에 상상력을 더하여 이들 동양인의 에너지 소비 과정을 개념적으로 가시화한 이 작품은 동서양 인종이라는 매개변수를 배제한 채 이들 개체 간의 신체성의 다양한 차이를 데이터로 제시함으로써 인종 차별의 비정당함을 꼬집는 듯 하다. 한편 이들이 역사적, 문화적, 정서적으로 어떤 정도로든 서양인의 땅, 서양인의 마음을 점령했던 동양인 아이콘들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또다른 강한 의도가 읽힌다.
두 작품 모두 냉철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증명의 형식을 빌고 있는 반면 시각적으로 눈에 확 띄는 <몽골족-B-29편(미스 미국) Mongoloid- Version B-29(Miss Megook Paintings)>(1993-2003) 두 점은 마이클 주의 뜨거운 감정을 전달한다. 작가 자신의 누드를 그린 이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비행기의 잔해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서양에서 전투기 동체에 여성의 이미지를 그리는 강렬한 남성적 취향의 ‘노우즈아트(nose art)’를 차용하고 있다. Miss Megook은 한국인이라면 ‘미국 아가씨’로,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미국’이라는 성(姓)을 가진 아가씨 쯤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Megook은 동양인(특히 한국계)을 비하하는 호칭인 ‘gook’과 나 ‘me'의 결합으로 더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주지해야할 점은 ‘Miss Megook’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 사용된B-29기에 미공군이 한국어를 섞어 만든 별칭이었으며, 작가는 글자체까지도 50여 년 전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본떴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마이클 주는 남성의 상징을 교묘하게 가림과 동시에, 성적 대상으로 기호화된 핀업걸(pinup girl)의 포즈를 취하며 B-29기의 ‘미스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동양인 남성을 남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세된 존재이자 동양인 여성과 다를 바 없는(때로는 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길 뿐인 서양 백인 남성 사회에 잔재된 식민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 엿보인다. 그러나 탈식민주의적 이해보다도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재료와 언어에 내포된 사회 문화 역사적인 다양한 함의로 의미층을 두텁게 쌓고, 그 안에 경계가 모호한 자신의 성적, 인종적 정체성을 교차시키며 유동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작가의 존재, 작가의 정체성은 경계들 사이를 넘나들며 다중적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수많은 경계들 사이에서 스릴있는 균형잡기를 하고 있다.
마이클 주는 정체성을 다룬 자신의 이러한 초기작들이 ‘성난 아시아인(angry Asian)’으로 읽힐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를 불식시키려는 듯,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인종의 문제를 드러내기 보다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수렴되어갔다. 두 종류의 가정용 세제를 사슴뿔 모형에 넣은 <사냥 Hunt>(1993-1994)은 그 좋은 예다. 이 두 물질은 서로 섞일 경우 유독한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 뿔이 평행하도록 물리적인 균형을 유지해한다. 이 작품은 ‘사냥’에 담긴 정복과 개발 중심의 서양의 오랜 자연관 대한 경고이며, 자연의 소비와 사용, 그리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비물질적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균형은 이 작품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이면서 나아가 그의 전 작업을 관류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업 이념이 미세하지만 차츰 동양 사상에 접근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작가의 퍼포먼스 비디오인 <소금이동의 순환(Salt Transfer Cycle>(1993-1995)은 비디오의 시간성을 바탕으로 균형의 의미를 서사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 비디오 작업은 뉴욕의 작업실에서 엄청난 양의 MSG 위에서 헤엄치는 장면, 유타주의 소금사막을 기어가다가 걷기 시작하는 장면, 한국의 산야에서 작가의 몸에 묻은 소금을 사슴이 다가와 핥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소금은 작가의 몸을 통해 사슴으로 이동하고 순환한다. 각 단계별로 모든 연결고리들이 자기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자연과 만물은 원활하게 순환을 반복할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이 효율성을 위해 분절적으로 쪼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총체라는 점에서 이 작품에서 우리는 과학적인 추론에서 출발한 마이클 주가 점차 분석적 시각의 맹점에 있던 ‘전체’를, 또한, 부분과 부분 사이의 틈을 보는 시야를 갖추어 감을 주목하게 된다. 불과 1~2년 전, 소변과 땀처럼, 인체라는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순환의 단편적인 외적 현상에 머물러 있던 그의 시각은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의 순환으로 확장되어 자신의 몸 자체를 보다 큰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에게 인간 정체성의 문제 역시 국적과 인종을 떠나 인류의 차원으로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여기서, 그가 원용하고 있는 과학은 순환의 원리와 이치를 드러내는 생태학적 탐구로서, 마이클 주에게는 동양 사상의 접점이고 하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마이클 주의 작업은 점차 형이상학적인 수준에 접근해가며, 점차 동양 사상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수정 올가미(Crystal Noose)>(1999)에서 그는 죽음을 상징하는 올가미, 특히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매듭 위에 인공적으로 수정을 자라게 하여 죽음의 메타포와 태어나고 성장하는 실재를 결합시키고 있어 동양의 윤회사상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반영하듯 이 시기부터 불상을 작품의 소재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1999년 작품 <눈에 보이는(Visible)> (1999-2000)은 마치 해부학 모형처럼 뼈와 내장기관이 다 들여다보이고 피부는 투명하다. 영적인 존재인 존엄한 부처의 해부학적 신체 구조 즉 육체성이 강조된 이 작품에서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인 피부는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의미가 없다. 관람자의 시선은 안과 밖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영적인 세계(the Invisible)와 물질계(the Visible)의 경계를 상호적인 흐름으로 전환시킨다. 마이클 주에게 경계는,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존재하되 소통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마찬가지로 경계를 겨냥하여 만든 <접근/거부(Access/Denial)> (2002)는 유사하면서도 상반된 전략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는 차단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차단선은 미술 전시장에서라면 작품의 영역과 관람객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이다. 경계 자체를 미술품으로 전환시켜버리는 마이클 주의 유머 속에서 우리는 그가 주변에 편재한 경계들, 그것의 순환과 소통에 대한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계를 투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게 했던 <눈에 보이는>과 상반된 전략으로 경계를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얻는 것은 다시금 경계의 유동성이다. 이처럼, 느슨한 경계, 그 사이에 위치한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재확인에 다름 아니며 이런 면에서 <무리(The Pack)>에서 50마리의 제각기 행동과 포즈가 다른 코요테 무리는 하나하나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 그에 따르면 코요테는 인간 사회와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존해가는 동물로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다른 세계와의 경계를 들고나는 동물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동양과 서양, 나아가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으면서 두 영역 간의 상호 순환적 소통을 도모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정확히 포개진다. 또한 마이클 주의 영매와 같은 모습이 많은 비평가들을 통해 요셉 보이스와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원격 감지(Remote Sense)>는 순록 모형들을 공중에 거대한 원형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각 순록의 배 속에 장착된 적외선 카메라는 360도로 주변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그 영상들은 순록과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설치된 모니터에 나타난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영상은 말하자면 순록 주변의 공간은 물론 때로 관람자까지 순록의 배 속에서 섭취되고 있는 형국이다. 스스로를 먹이연쇄의 최종 소비자쯤으로 여겼던 인간이지만 결국 거대한 순환 체계 속에 있을 뿐임을 겸허하게 일깨워준다. 이 자연의 섭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늘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마이클 주는 이 작품을 19세기 말의 거장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이 상설되어 있는 글래스 파빌리온 안에 설치하여 이 미술사의 걸작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역시 소화시키고 있다. 예술의 역사에 대한 작가 나름의 경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제스처는 그가 미술의 역사를 단선적 진보와 발전이 아닌 순환의 연속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다시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으로 돌아와보자. 2003년부터 제작된 이 작품은 소재상 어쩔 수 없이, 북극 원주민을 다룬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와 흔히 비교되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서양인의 혹은 문명인의 타자화하는 시선(그것이 호기심이든 연민이든)은 보이지 않으며, 그는 근대 초기 식민 열강의 만국박람회식 재현이 아니라 이누이트인의 신체적 본질을 다룸으로써 스스로 의미있는 현지의 한 개체로 보여준다. 알래스카는 북미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는 미국의 영토지만 몽골족 동양인의 오랜 생활 터전이었던 땅으로, 역사적, 인종적으로 상호침투되어 있는 경계의 땅이다. 이 경계의 땅 위에서 어둡고 긴 북극의 겨울을 보내는 이누이트인들에게 1년 주기로 발생하는 발작 증세를 가리키는 현지어인 ‘피블록톡’은 인체의 순환 리듬에 따라 일어나는 증상이다. 또한, 죽어서 박제되어 있는 동물은 작가에 의해 순환의 한 연결고리로서 다시 기능을 하고 있다. 한 인간 개체의 에너지 순환을 보여주고, 보다 큰 자연의 순환의 체계를 함축적으로 암시하면서 마이클 주는 그것이 알래스카로 상징되는 지역적 경계를, 동서양의 인종적 경계를 초월하는 대진리로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가운데에서, 한없이 자기 앞의 길을 걸어가는 마이클 주의 지루한 행로는 이렇게 반복과 순환이 무한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송유관을 따라 걷는 여정의 거의 말미에 마이클 주는 한 이누이트인을 만나는데, 이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같은 몽골족의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통이 단절된 두 사람은 차이와 경계가 바벨탑 이후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준다. 그것을 아는 마이클 주는 마치 시지프스처럼 긴 여정을 지속할 뿐이다. 마이클 주는 <1년 주기 리듬(피블록톡)>을 통해 자신의 작업 이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었고 또 한편으로는 광활한 알래스카를 경험하면서 대지를 포괄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로댕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들은 태양으로부터 얻는 원천 에너지가 자연에서 순환할 수 있도록 근간이 되어주는 것은 땅이라는 점에서 대지의 장엄한 존재감을 새삼 일깨운다.
전시 프로그램
- 전시설명 프로그램 평일 2회(14:00, 16:00) / 주말 3회(11:00, 14:00, 16:00)
- 마이클 주 강연회 : 12월 2일(토) 오후 2시~4시, 로댕갤러리
- 갤러리 음악회(격주 목요일 오후7시/로댕갤러리 글래스 파빌리온)
12월 7일 (목) 제1회 연주그룹 낭만 음악대 바이올린 - 유하나 / 첼로 - 이지행 / 클래식 기타 - 김현규 아코디언 - 김소미 / 퍼커션 - 엄기환 / 사회 - 이진욱
12월 21일(목) 제2회 재즈 그룹 프렐류드 < 크리스마스 & 러브 > 피아노- 고희안 / 베이스 - 최진배 / 드럼 - 라그리마스 주니어 알토 섹소폰 -최원석 / 테너 섹소폰 - 찰스 리, 리차드 로
1월 4일(목) 제3회 : 이지수 & 이슬기 의 <공존> 피아노 - 이지수(영화음악가-겨울연가, 실미도, 혈의 누 등) 가야금 - 이슬기
1월 18일(목) 제4회 Quartet ULLIM,<울림> 바이올린 - 박제희, 김정민/ 비올라 - 김남중 / 첼로 - 신애경 ※ 음악회 내용은 갤러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관 람 안 내 > - 관람요금 :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20인 이상 일반 2,000원, 초중고생 1,000원) - 관람시간 : 10:00~18:00 (월요일 휴관, 공연 시 21:00 까지 연장) - 위 치 :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1층 - 문의전화 : 로댕갤러리(www.rodingallery.org, 2259-7781)
마이클 주(Michae Joo)
1966 미국 뉴욕주 이타카 출생 1989 웨슬리안 대학교, 코네티컷주 , BFA, 워싱턴 미술대학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1991 MFA, 예일대학교
2006 현재 뉴욕에서 거주 및 활동 중
대표 화랑: Anton Kern Gallery, New York 주요 소장처: Guggenheim Museum,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T List Visual Arts Center, Massachusetts Denver Art Museum Damien Hirst, London Jay Jopling, White Cube, London
주요 전시 경력
2006 데미안 허스트 소장품전, 서펜타인 갤러리 제 6회 광주비엔날레 공동 대상 수상 2005 개인전 <보디 옵푸스케터스>, 아시아 소사이어티, 뉴욕 2003 개인전 ,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센터, 매사추세츠주 2000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00 코리아메리카코리아, 서울 아트선재센터 2001 제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1998 개인전, 화이트 큐브 갤러리, 런던 1995 개인전 <충돌>, 앤소니 도페이 갤러리, 런던 제1회 광주비엔날레
1994 데미안 허스트 기획 서펜타인 갤러리, 런던 1993 베니스 비엔날레 Aperto 참가 <태평양을 건너서>, 뉴욕 퀸스미술관, 서울 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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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주기 리듬 Circannual Rhythm 2003-2005 3 채널 비디오 프로젝션/설치 크기 가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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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버전 B-29 (미스 미국 그림) 1993-2003 223.5×183183×6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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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버전 B-29 (미스 미국 그림) 1993-2003 223.5×183183×6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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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Visible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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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탄, 나일론, 플라스틱, 철, 유리, 호두나무, 녹슨 철 152.4×121.9×121.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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