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자격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5년 가량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7세부터 무예를 닦기 시작하고 12~3세 정도에 견습기사가 되어 21세가 될때까지 끊임없는 수련을 해야하죠. 그리고 나면 주군으로부터 기사의 작위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푸른 피"라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 붙습니다. 중세 유럽은 분명한 신분사회였고, 기사는 지배하는 귀족계급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땅에 기반을 둔 토지귀족에 한정되었죠. 베네치아나 피렌체의 상인귀족들은 기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여자도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사회 기준으로 볼때 여자는 기사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일 뿐 기사 자체가 될 수는 없었죠. 바이킹이나 켈트의 전설에는 여전사가 나오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그런것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매우매우 신분이 높은 여자의 경우에는 재미삼아 갑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나중에 영국왕 헨리2세와 결혼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같은 경우, 시녀들에게까지 갑옷을 입혀 제2차 십자군에 참가합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유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밑에 말씀하신 성 요한 기사단의 경우만 해도, 토지귀족들에게만 입단 자격을 주고 상인귀족들에게는 입단 자격을 주지 않았죠. 하지만 그것도 예외는 아니어서, 피렌체의 상인귀족이었던 메디치가의 경우에는 성 요한 기사단원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거야 그 집안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힘을 가진 탓이었겠지만.
그런데, "푸른 피"가 아니면서도 성 요한 기사단에 들어간 사람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1520년(중세라고 하기는 좀 늦은 시기) 로도스 공방전에서 활약한 마르티넨고라는 베네치아 출신 토목기술자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단원이 되었더군요(시오노 나나미 저, 로도스 섬 공방전).
중세 이후에도, 무기를 드는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토지귀족의 특권이었습니다. 절대왕정 시기 프랑스에서도 군대에 복무하는 귀족들은 거의 전부 예로부터 내려오는 토지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을 "검귀족"이라고 불렀죠(달타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사회상의 변화로 인해 평민계급에서 출세한 신흥귀족들은 "법복귀족"이라고 불렸지요. 이들이 대개 법관등의 행정관료로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평민이 기사가 되는것은...기사의 갑주를 입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읍니다. 영지에서 도망쳐서(농노니까) 용병대에 들어간 다음, 거기서 두각을 보이면 됩니다. 용병대야 어차피 혈통 따위를 따지지 않으니가요. 하지만 제대로 작위를 받아 기사가 된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출처:<디펜스 코리아>, 글쓴이: 슈타인 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