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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탐방로
아래 글과 사진은 부산일보 게재분(08.11.1)을 발췌 수록하였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800리 길
시범 구간 6개월새 4만명 찾아
지난 4월 27일 국내 최초로 도보여행자를 위한 장거리 도보 트레일(Trail) 코스로 개통된 '지리산 둘레길'이 가을 행락객과 산악인은 물론 등산이나 걷기를 싫어하는 전국 남녀노소 사이에서 조용하고도 빠르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길은 정복욕에 사로잡혀 숨을 헐떡이며 높이 오르려 애쓰지 않고, 걸음도 마음도 느긋하고 편안하게, 사색하고 관조하며 산허리와 기슭, 숲속을 걷는 친구나 연인 같은 길이다. 지리산권 시민사회단체인 지리산생명연대 부설 ㈔숲길(이사장 도법 스님)이 지난해부터 오는 2011년까지 산림청 지원을 받아 경남 하동·산청·함양군과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등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이 깔고 앉은 3개 도, 5개 시·군, 16개 읍·면, 100여개 마을을 환(環)형으로 연결해 나가고 있는 800리(약 300㎞) 정겨운 길이다.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함양군 휴천면 세동마을에 이르는 20.78㎞의 1차 시범구간이 조성돼 4월부터 손님을 맞고 있다. 지난달 22일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길 안내센터~매동마을 뒷동산 간 9㎞도 추가로 열렸다.
6개월여 만인 1일 현재 전국의 4만여명이 이 길을 걸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80%가량은 안내센터를 통하지 않고 다녀간 탐방객들이어서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이 길 곳곳에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거나 여유롭게 걷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산보하듯 간편한 차림으로 시범구간을 걷노라면 나무꾼들이 자주 이용했을 법한 고불고불한 옛길과 오솔길, 숲길, 고갯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 마을길 등 넓거나 좁은 다양한 형태의 길과 만날 수 있어 지겨운줄 모른다. 밟는 재미가 쏠쏠한 낙엽길이 있는가 하면 평탄한 흙길과 오르막이나 내리막길, 나무계단도 반갑게 다가와 걷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단풍은 물론 높고 푸른 하늘과 풍성한 가을걷이가 끝난 평온한 들녘, 길가에 핀 야생화와 산새 소리, 그리고 머리칼 흩뿌리는 선선한 바람을 접하면 눈과 귀를 비롯해 오감이 즐겁다. 한적한 산촌을 지나치다 촌로와 마주쳐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면 구수한 사투리가 돌아오고, 가끔은 후덕한 인정으로 홍시 등 먹을거리를 안겨주는 그들에게서 노동의 가치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도보여행은 때로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워 일으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고,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를 갖는 기회이다.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경제위기 같은 세상살이 시름도 털어낼 수 있다. 수직으로 바쁘게 오르내릴 게 아니라, 동행자와 길 주변의 모든 것에 수평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찬찬히 향유하며 걷다보면 끝내는 잃어버린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고 새로운 생활에너지를 충전해 돌아오게 되는 순례의 길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미국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에서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라 했다. 지난달 18일 농촌을 좋아하는 친정 아버지에게 이끌려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 문동경(31·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씨는 "평소 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버지와 천천히 숲길을 걸으며 오순도순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녀의 정이 돈독해지는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대자연의 품에 조용히 깃든 지리산 둘레길은 촌각을 다투며 돈과 경쟁에 마음을 다 내주고, 산을 타고 올라 정상을 정복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회풍토에 대한 대안운동의 하나다.
글=강병균 기자 kbg@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3, 5, 16 …'숫자의 의미는
'3, 5, 16, 50, 100, 300, 800, 2011' 이 숫자는 국내 첫 장거리 도보길(트레일·trail)인 '지리산 둘레길'이 가진 디지털적 외형이다.
경남과 전남, 전북 3개 도에 걸친 지리산권역 5개 시·군(남원시, 함양·산청·하동·구례군), 16개 읍·면, 50개 리, 100여개 마을, 300㎞(800리)를 오는 2011년까지 잇는 길이라는 뜻이다.
지리산 둘레 곳곳 복원 한창
산림청은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녹색자금 100억원을 활용, ㈔숲길에 의뢰해 지난해부터 지리산 둘레 곳곳에 걸쳐 끊어진 옛길과 고갯길, 숲길, 강변길, 마을길 등을 되살리거나 활용해 하나의 고리형(환형) 길로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숲길 소속 사람들은 "이 길은 민족의 아픔과 영광을 묵묵히 지켜본 지리산과, 이 산자락에 기대어 살다간 영혼들, 현재 살아있는 민초들과 만남과 소통을 꾀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한국형 트레일' 표준 될 듯
이 길을 온전히 잇는 것은 그동안 숱한 의도적 왜곡과 정치적 이해타산 탓에 단절됐던 각 지역과 이웃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잇고, 과거 지리산 일대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민족적 애환과 아픔, 갈등을 치유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800리 지리산 둘레길이 전면 개통되면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과 국내 최고의 청정수역 섬진강의 다양한 자연·역사·문화자원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지리산 주 등산로 주변 훼손도 줄일 수 있는 '한국형 트레일'의 최적 표준이 될 전망이다.
㈔숲길은 이 길을 지리산길 기본구상과 생태·마을·자원조사를 거쳐 체계적이고 차별화된 친환경적인 트레일, 다양한 난이도의 걷는 길로 만들 계획이다.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지리산을 둘러싸며 품안에 넣는 도보 여행이 가능해진다.
능선따라 전설·역사 흐르고
먼저 남원구간(50㎞, 5일 소요)에선 지리산 주 능선을 가장 많이 조망하면서 주변에 널린 숱한 전설과 역사의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운봉들녘 제방길과 남원~구례 옛 고갯길인 숙성치, 동편제와 이성계의 왜구퇴치 전설 등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구례구간(90㎞, 10일)에는 천은사 화엄사 연곡사 등 이름난 절집과 함께 구례~하동 옛 고갯길(당재)의 원형이 남아 있는 숲길과 섬진강 제방길 등이 있다. 하동구간(65㎞, 7일)은 화개 자생차밭과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 악양 들판길 등 경관이 빼어난 길이다. 이 구간에는 지리산 일대에 많은 설화와 유적을 남긴 고운 최치원과 청학동, 빨치산, 토지 등의 이야기가 산재해 있다.
산청구간(60㎞, 5~6일)에선 선비정신의 원류인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이 숨쉬는 산천재, 덕천서원과 지리산 동부능선 웅석봉 숲길을 만나게 된다. 함양구간(35㎞, 4일)은 엄천강을 따라 걸어가는 강변길로 옛 선인의 발자취를 좇는 길과 벽송사 등 빨치산과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산사람길'로 돼 있다.
이미 유럽에는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르포르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약 700㎞의 '산티아고 순례의 길'이 조성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에코벨트 형성에 큰 역할"
㈔숲길 김석봉 상임이사는 "지리산 둘레길은 앞으로 한국형 트레일의 원형이 되는 것은 물론 지리산문화권을 동일문화권으로 만들고 지역 에코벨트 형성에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ilbo.com
단풍 가득한 지리산 능선 보고만 있어도 가슴 벅차
미지의 세상과 다름 없는 지리산 둘레길을 애정과 의미를 갖고 걸으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풍경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카메라 지참은 필수다.
끝 간 데 없이 겹쳐지며 저멀리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들의 웅장미는 기본. 매동마을~상황마을 간 중간쯤에 위치한 깊은 숲길에서 온갖 풍상을 견디고 우뚝 솟은 수백년 된 개서어나무 앞에선 당당함에 주눅이 들다가도 단풍 든 잎들이 간지러운 가을바람에 떨어지면 아스라한 현기증마저 인다.
오래된 옛길에서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돼 시간의 흔적을 읽기도 한다. 숲속 오래 묵은 논밭은 소나무와 잡목으로 뒤덮이고 세월의 이끼가 잔뜩 낀 채 원시상태로 되돌아가며 자연의 이치를 보여준다.
층층이 앉아 손짓하는 다랑논 사이를 지날 때면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이지만, 물댄 논에 깊고 높은 봉우리들이 잠겨 있었을 봄날의 풍경까지 떠오른다. 가을이 깊어가는 마을마다 돌담 뒤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 토담벽에 매달려 익어가는 곶감들은 도시에서 온 이방인의 눈을 즐겁게 한다.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대나무 숲, 소류지 옆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군락, 잘생긴 소나무 아래 너럭바위는 자꾸만 쉬어가라 유혹한다. 산 중턱에서 고즈넉한 산촌과 굽이치는 엄천강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묘미다.
곡선으로 굽은 길이나 탁 트인 길 곳곳에 피어나 주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알록달록한 야생화 등등…. 모두 가슴에 담아가고픈 소중한 풍경들이다. 강병균 기자 kbg@busanilbo.com
지리산 온전히 품에 안고 걷고 또 걸어 보리라
지난 4월 열린 지리산 둘레길 1차 시범구간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마을 간 10.68㎞의 1구간(다랑이길)과 함양지역 의중마을~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 간 10.1㎞의 2구간(산사람길) 등 모두 20.78㎞다. 사람에 따라 4~7시간 소요되는 이 길을 지나면서 매동·창원·의중·송대·세동마을 등 크고 작은 12개 산촌을 만나거나 조망할 수 있다.
울창한 솔숲 속 '매동마을' 매력만점
지리산길 들머리인 매동(梅洞)마을 이름은 그 모습이 매화를 닮았다 해서 붙었고 울창한 솔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매력적이다.
부산·경남에서는 남해고속도로~진주대전고속도로~함양JC~88고속도로~지리산IC를 이용해 일성콘도 방향으로 가면 찾기 쉽다.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길 안내센터(063-636-0850·www.trail.or.kr)에 문의하면 대중교통편과 숙박·여행정보를 상세히 알 수 있다.
매동마을에서 1시간30분가량 걸으면 오밀조밀한 다랑논이 아름다운 풍광 아래로 중황·상황마을이 보인다. 다시 1시간30여분을 걸으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삶과 문화를 이어주던 고갯길로 거북처럼 쉬엄쉬엄 오른다는 등구재가 나타나 땀을 식히며 쉬어가게 만든다.
고갯길을 걷다 보면 창원마을이 반긴다.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해서 '창말(창고 마을)'로 불리다 지금 명칭으로 굳어졌다. 고지대의 다랑논과 함께 정겨운 골목과 집집마다 늘어선 나무들이 시골의 운치를 물씬 풍긴다. 이어 건너편 지리산 제1봉인 천왕봉을 보고 걸으면 엄천강이 나온다. 엄천강을 건너기 직전에 징검다리의 사투리인 '노디'가 옛 이름이었다는 금계마을이 있다. 1구간이 끝나는 지점이다.
600살 된 당산나무 '의중마을' 지켜
여기서 좁다란 의탄교를 건너면 600년 묵은 당산나무와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이 정겨운 의중마을 앞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시작되는 2구간에선 민족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지리산의 아픈 역사와 익살스러운 변강쇠와 옹녀의 가쁜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이 길은 지리산에서 제일 깊은 칠선계곡을 따라가다 벽송사 방면으로 연결돼 추성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벽송사 위쪽은 빨치산들이 제집 드나들듯 활동하던 곳. 지금은 관광 차원에서 공비토벌 루트로 정비됐지만 지리산 등반로 성격이 짙다. 벽송사 능선을 오르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예전에 빨치산 은신처이자 화전을 일궜던 송대마을과 마주친다. 마을 뒤편 해발 1,200m에 위치한 부처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와불 형상의 바위가 좌·우익 갈등으로 깊게 팬 상처를 씻어주는 듯하다.
송전마을, 산촌생태마을 지정되기도
송대마을에서 최종 목적지인 세동마을까지는 가파른 산 중턱으로 길이 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시범구간이 끝나는 세동마을이 속한 송전마을은 지난해 8월 함양군의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됐다. 이 마을은 지난 2월 산림청이 국내 3대 최우수 산촌생태마을로 지정, 자연생태를 체험하고 주변의 숨겨진 역사를 알기 위해 찾는 손님들로 주말·휴일과 휴가철이면 크게 붐빈다.
송전마을은 부산·창원 쪽에서는 진주대전고속도로 생초나들목으로 나와 20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송전마을이 남원 방면으로 순례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곳 여행정보는 홈페이지(www.songjunri.com)나 휴양소(055-963-7949)로 문의하면 된다.
글=김길수 기자 kks66@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윤정준 숲길 기획이사 "역사·정신 깃든 곳 … 위안 얻어요"
"걷는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과의 대화입니다."
㈔숲길 윤정준(41) 기획이사는 "지리산은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생장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수많은 문화유산과 역사의 현장을 갖고 있고 우리네 생활과 인생도 담고 있다"며 "역사의 산이자 정신·영혼의 땅인 지리산과 교감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걸으면 자아를 발견하고 위안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이사는 "지리산 둘레길은 정상 등정 중심의 수직적 등산문화에서 벗어나 체력적 부담 없이 수평으로 걸으며 인간과 자연이 소중한 만남을 갖는 도보문화를 확산시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 300㎞까지 이어질 전체 구간을 돌아보는 여정에 한 달가량 걸릴 전망인 지리산길 조성 사업은 생명의 산인 지리산이 잇단 도로 개설과 환경 훼손으로 신음 중인 것에 대한 대안이자 지역실정에 맞는 관리 방안으로서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윤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자연경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길 주변 역사·문화자원를 발굴하고 복원해 사계절 내내 자연·역사·문화체험을 하며 심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친근한 길로 만들겠다"며 "이 길을 통해 환경과 농촌, 농업에 대한 국민 인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숲길 측은 일부 끊어지고 버려지거나 사유지에 속한 길들을 잇기 위해 일일이 지역민과 소유주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고 있다. 주변 마을공동체들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염두에 두고 길 조성과 관리·운영에 노력하고 있다.
윤 이사는 "유흥으로 흐르기 쉬운 단체행락객보다는 가족, 부부, 친구, 지치고 괴로운 사람, 인생전환을 바라는 개인 등 소규모 탐방객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지리산길을 많이 찾아 추억에 도움이 될 귀중한 체험시간을 가지며 길의 가치를 발견하고 아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강병균 기자
박남준 시인 "소통의 한 통로… 소중한 공간이죠"
"길이란 소통의 한 통로이며 만남에 이르게 하고 관계를 만들어 주는 소중한 공간이죠."
지난달 18일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을 5시간여 동안 밟았던 박남준(51) 시인은 '소통'이란 단어에 힘을 주며 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리산 둘레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걸어도 좋다"면서 "지리산은 장엄하며 역사의 질곡 등을 갖고 있어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거나, 그 의미를 생각하는 등 사색하며 걷는다면 자신에게 더욱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4년 전부터 지리산 기슭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동마을에서 살고 있는 박 시인은 서울 지인이나 친구들이 자주 집을 찾아와 이때마다 지리산 동행을 원해 지리산길 출입이 잦다고 했다. 그는 "지리산길처럼 처음에 아무도 없었으나 여러 사람이 계속 가다 보면 길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행복도 길과 마찬가지인 것을 길에서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숲길에선 꽉 죄는 옷보다 편안한 차림으로 풍욕이나 피부호흡을 하는 게 좋고, 지렁이처럼 아주 느리게 걸으며 모든 걸 눈으로 충분히 보고 가는 것이 필요하단다.
박 시인은 "가을에 산과 들녘에서 주변 색과 다른 것들을 자세히 보면 꽃 아니면 쓰레기이며, 어떤 사람들은 꽃을 보고 무심코 꺾어 버리거나 집에 가져가 심을 욕심에 캐 간다"며 "다음 사람을 위해 자연상태로 놔두는 배려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산골에서의 삶을 시로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는 그는 "길은 어떤 마음을 갖고, 누구와 같이 걷느냐가 중요하다"며 "길의 복원에도 왜 필요한가, 어떤 길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을 느끼게 하려는가 등 생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병균 기자 kbg@busanilbo.com
지리산권역 지자체들 케이블카 설치 다툼
경남 산청·함양군 등 4개 시·군 "단순한 관광지 전락" 반발 거세
느림과 상생으로 주목받는 도보여행과 달리 지리산권역 각 지자체들은 '산은 올라야 제맛'이란 듯 지리산 곳곳에 빠르고 쉽게 오르기 위한 케이블카 개설을 경쟁적으로 추진 중이다.
현재 지리산에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거나 적극 검토 중인 지자체는 경남 산청·함양군과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등 4개 시·군.
이들 지자체는 지리산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나 산악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케이블카가 오히려 자연훼손을 최소화해 환경 보호와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노약자들에게도 필요한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부는 지난 2004년 만들어진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관련 지침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올해 연말까지 지침을 새로 손질할 예정이다.
산청군은 지난해 시천면 중산리에서 장터목, 문창대, 중봉 등 3곳에 이르는 3개 후보 노선을 마련한 뒤 올해 들어 1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자연공원협회에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관련 용역을 의뢰해 두고 있다.
산청군은 환경부의 케이블카 관련 지침 손질을 통해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고 1개 노선을 확정해 추진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함양군도 군의회에서 지리산 관광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마천면 창암산∼지리산 제석봉 3㎞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현재 검토하고 있다.
남원시는 주천면 고기리 삼거리∼정령치 간 4㎞의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지리산권 광역관광벨트 조성 사업에 포함시켜 적극 추진에 나섰다.
또 지난 1990년대부터 지리산 온천랜드∼성삼재 간 2.9㎞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 온 구례군은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현재 차량 통행량이 많은 성삼재 일대 교통량을 줄일 수 있어 지리산 자연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국시모)'과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 35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9월 9일 서울 조계사에서 '국·도·군립공원 안 관광용 케이블카 반대 전국대책위원회'를 발족해 "케이블카 관련 지침 완화에 반대하고 지리산 생태계를 케이블카로부터 지켜내겠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윤주옥 국시모 사무처장은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는 자연생태계의 소중함을 느끼고 배우는 데 필요한 자연공원을 외관상 경치만 보고 가는 단순 관광지로 전락시켜 자연과의 진정한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선규 기자 sunq17@busanilbo.com
지리산권 지자체들이 추진 중인 케이블카 사업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장터목, 문창대, 중봉 등 2㎞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암산~제석봉 3㎞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성삼재 2.9㎞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삼거리~정령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