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마음을 산에 두고 산을 마음에 담아 / 오태동

7월 29일, 용산역에 다섯이 모였다.
다들 집채만한 등짐을 지고 나타났다.
상기의 등짐은 한계량을 넘어 뒤에선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구례역, 역전 식당에서 재첩국을 시켰다.
섬진강의 일품, 콤콤한 맛과 뽀얀 국물이 순하고 넉넉하다.
화엄사 오른쪽 계곡을 따라 노고단을 오른다.
길이 험하진 않아도 20키로가 넘는 등짐을 지고 오르기엔 쉽지 않다.
화엄문전에서 잠시 짐을 풀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지리산 산신령께 안전 산행을 기원한다.
비가 내린다.
지리산의 비(雨)
경험이 많은 종수에 따르면 지리산에선 삼일 산행이면 그 중 하루는 비를 각오해야 한다.
비옷을 입었지만 비에 젖은 등짐에 발걸음이 무겁다.
맨 뒤 상기의 짐이 너무 무거워 행진을 멈추고 짐을 다시 나눈다.
몸은 늙어도 우정은 새로워 짐을 나눈 다섯 벗이 가파른 코재를 씩씩거리며 오른다.
성삼재에 올라서니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물은 물따라 흐른다.

노고단 지나 삼도봉 길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이는데 물맛이 죽인다.
몇 차례나 코를 박고 들이키니 살 것 같다.
금방 ‘물맛이 죽인다’고 했다가 바로 살 것 같다고 했나?
이게 바로 화엄(華嚴)의 표현이 아닐까?
생사가 한 줄에 엮여있다. 좋아서 죽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원효는 해골 물 한 바가지로 깨우쳤고, 우리는 임걸령 샘물 한 바가지로 힘을 찾았다.
배가 고프지만 “뱀사골에 가서 제대로 먹자!”
저녁 7시 30분, 다른 산인들은 야영을 준비하는데 다시 길을 떠난다.
랜턴으로 길을 밝히고 걷는다.
저 별을 어쩌나
비온 뒤의 참 맑은 지리산 밤하늘을 보았는가?
화폭에 뿌려놓은 별들의 축제. 언제 비가 왔단 말인가!
전라의 남북과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의 하늘.
저 건 내 별. 저 건 각시별. 아이들 별. 친구들 별, 아는 사람들 별.
공군에서 별을 달았던 상도에겐 저 하늘의 별이 어떻게 보일까?

(지리산 야생화를 주로 찍는 돌머리님의 사진에서 빌려옴)
화개재 쪽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551개로 알려져 있는데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옮기는 걸음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렌턴의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비가 손을 휘저어도 떨어질 줄 모르니
어쩜, 너희에겐 불빛이 그리움인가.
멀리 불 빛 하나, 뱀사골산장이다.
뱀사골 산장
산장 큰 방에 반달곰 다큐촬영팀. 야생화에 미친 학교 생물선생님과 그 분의 지인들.
지리산에 별 따러온 우리. 뱀사골 산장지기. 이렇게 둘러앉았다.
어느새 자연과 환경을 토론하는 장이 열렸다.
술잔이 돌면서 환경의 개발론과 보존론이 왔다 갔다 한다.
주장들이 고금을 오가고 동서양을 휘돈다. 여럿이 모이니 들을 게 많다.
열린 밤 열린 세상이다.
해마다 지리산을 찾는다는 생물선생님은 올해야말로 꽃풍년 이란다.
원추리, 산나리, 동자꽃, 금강초롱, 어수리, 모싯대, 둥근이질풀
끝없이 불러대는 꽃 이름이 신비하다. 선생의 얼굴 또한 야생화처럼 맑고, 정직하게 생겼다.

(지리산 야생화를 주로 찍는 돌머리님의 사진에서 )
7월 30일,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블랙으로 마시는 커피가 가슴을 적신다.
떠나려는데 지난 밤 토론회 친구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하룻밤 사이 산인(山人)들의 우정이다.
새벽까지 술과 얘기에 취해 기상이 늦어진 탓에 일정이 늦어졌다,
이심전심,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6시 출발이 9시로 늘어졌으니 계획 변경이 불가피했다.
오늘은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찌감치 잠자리를 정하자는 것,
대원사로 가는 긴 하산 길(7시간)을 백무동 길(3-4시간)로 바꾸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힘이 난다는 엽기적 산꾼 상기는 다소 불만이나 다수 의견에 따른다.

토끼봉, 예쁜 이름이나 오르는데 숨이 차긴 마찬가지다.
저마다 색과 향을 달리하며 핀 꽃들, 누가 이 꽃을 피웠을까?
무량 세월 얼마나 피었다 지고, 지고 다시 피었을까?
골짜기를 지나는 햇볕, 바람, 비, 흙이
서로 관계하며 사랑하며 비비며 그렇게, 그런 관계의 망 속에 한 생명이 있다.
앙상하게 서있는 고사목, 죽은 나무엔 죽은 나무의 존재감이 있다.
벽소령 지나 선비샘에 도착하니 저녁 6시
9시간 산행을 한 셈이다.
비박을 하기로하고 좀 외진 곳을 잡아 자리를 폈다.
문수가 참기름, 고추장, 된장을 꺼내놓는다. 그의 프로정신을 알 수 있다.
햇밥, 곰탕라면, 김치, 꽁치통조림, 게장젓갈, 오징어젓갈, 햄, 소주, 대단한 산상만찬이다.
한 잔씩 들고나니 설거지도 귀찮아 한 쪽으로 몰아놓고 잠자리를 만든다.
판쵸를 깔고 방수커버를 씌운 슬리핑빽에 들어갔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미이라처럼 누웠는데 빗살이 떨어진다.
낙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심상치 않다.
문수와 성도는 껍질을 벗고나와 새삼 판초로 지붕을 친다고 야단이다.
날 잡아먹어라, 자루 속에 몸을 숨긴 상기는 기척이 없다.
다행히 비는 짧게 지나갔다.

(지리산 야생화를 주로 찍는 돌머리님의 사진에서 )
7월 31일.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밤 0시 30분.
눈을 감고 지리산과 말을 튼다.
산아 고운 산아 고마우니 내일까지 좀 잘 봐줘.
우리 같이 숨쉬기 하자. 산 하나 나 하나 산 둘 나 둘...
두벌잠을 잤나, 다시 눈을 뜨니 세시 반이다.
슬리핑 빽의 지퍼를 내리니 나무 사이로 그믐달이 곱다.
누구도 아침 먹자는 얘기가 없다.
세석산장에서 아침을 먹자고 했지만 빈속으로 세 시간의 산길은 무리다.
오늘은 하산을 해야 하니까 12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미숫가루가 있어 급히 타서 나누어 마셨다.
세석에 도착하여 아점을 하고 남은 짐을 나누었다.
배낭 무게를 비슷하게 하려고 식사 후엔 항상 짐을 재분배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11시 반. 백도통조림 한 통씩으로 보충하고
두 시간여 걸리는 천왕봉을 왕복하기로 했다.
장터목에서 문수가 짐을 지키기로 하여 다들 물통만 찼으니
갑자기 몸이 날아갈 것 같다.
구름과 안개로 가려진 천왕봉 길은 때론 앞이 보이지 않아 걸음을 늦춘다.
빗줄기 사이로 지나가기도 한다.
제석봉을 지나는데 고사목들이 안개 속에 서있다.
누군가 글을 써놓았는데 ‘살아서 백년, 죽어서 천년’이라...
백년이면 무엇하고 천년이면 또 무엇 하랴,
결국 순간이 영원이다.

천왕봉 꼭대기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되다’고 돌에 새겨두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그 글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글쎄, 지리산은 민족의 기상보다는 애환으로 얼룩진 산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땅을 치며 죽었던가.
그 한과 슬픔을 묵묵히 안고 있는 지리산, 어미 같은 산이다.
저 골짜기의 물들이 섬진강으로 흘러드나?
지리산과 섬진강은 오누이다.
서로 막지 아니하고 서로 건너지 아니하며 다정하다.
섬진강가에 서면 눈물 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슬픔 저 멀리 지리산이 있었다.
산은 벙어리 몸져누웠는데
돌아 흐르는 강물 슬퍼라
(졸시, 섬진강의 봄에서)
하산 길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무섭다.
2박 3일, 여정의 끝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대부분 마음이 풀어지면서 사고가 난다.
장터목으로 오니 곧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며 긴급 대피 방송을 한다.
부지런히 내려가면 아랫마을까지 세 시간 걸린다.
조급한 마음으로 캔커피와 비스켓으로 점심을 떼우고 하산을 서둘렀다.
종수와 앞장을 서다보니 뒤의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져 바위에 앉았다.
함께 쉬며 종수의 보행비법을 관찰한다.
평발에다 오른쪽 발은 옆으로 툭 불거진 혹이 두 개나 있는 핸디캡을 극복하며
항상 남보다 십분 쯤 앞장서 달리는 놀라운 기동력이 어디서 나올까?
비결을 공개한다.
종수는 자신의 발을 정말 사랑한다.
틈만 나면 신발 끈을 풀고 양말까지 벗겨서 열기를 식혀주고 애무해준다.
“발아, 너 참 잘 가는구나. 고생 많지. 조금만 참아라. 너를 사랑한다.”
애인에게 하듯 발과 대화를 한다. 발도 사랑에는 꼼짝 못한다.

백문동 마을은 계곡 전체가 텐트촌이다.
앞서 내려온 문수와 상기가 식당을 잡고 닭도리탕을 준비해두었다.
3일 동안 땀에 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얼린 맥주를 한 잔 마시니 갈증이 사라지고 세상이 내 것이다.
안전귀환을 자축하며 건배!
빈대떡, 막걸리, 닭도리탕에 또 행복하다.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쳐도 그냥 좋았다.
(2005. 7.29.-7.31.)
후기 : 장터목산장에서 정신없이 하산을 서두러다 카메라를 놓고왔다. 찾을 수 없었다.
지리산과 벗들의 온갖 모습을 다 담았는데 면목이 없었다.
그 벌로 하루 종일 컴퓨터 좌판을 두드리며 이 산행기를 썼었지.
지리산, 꼭 한 번 더 가보고싶다. (2013.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