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환시인의 호남문화의 혼을 찾아서-소파 정현민 시인의 삶<上>
서글픈 三八線을 밤 새워 넘어 가네
새벽 달 지새는데 깊은 산골 접어들어,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몰래 갈 줄 뉘 아리.
“ 내 문학의 샘이 마르지 않는 한 철조망 지뢰를 걷어 내고 동트는 새벽을 불러들여 산악 처럼 우는 조국을 노래하고 싶다” 는 이시대의 마지막 남은 민족 시인이신 96세의 원로 대 시인 정소파. '호남 문화의 혼을 찾아서' 답사 문학 예술인들은 호남이 낳은 대 시인 정소파 선생님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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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3월 31일 한국 사이버문학인협회가 주최한 무진주문화마당에서 정소파 선생이 시낭송을 하고 있다. ©
| | 지난 2006년 3월 31일, 오후 6시 30분. 작은 지하철 무대에 노신사가 서 있다.
그는 무얼 이야기 하려함인가? 열린 공간에 어수선한 분위기는 순간 평온을 되찾고 무언가를 찾으려는 관객들은 숙연해진다. 한국 사이버문학인협회가 주최하는 시와 음악과 춤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퓨전 열린 “무진주문화마당”의 공연장 이였다.
원로시인 정소파선생의 시낭송이 지하철 열린 광장에 3~400여명의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열린 무대를 둘러싸고 많은 관객들이 기립하여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리고 노신사는 시낭송을 한다.
관객과 하나 되어있는 진지한 모습에서 원로시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노신사가 소파 정현민 선생님이다.
필자는 한국 사이버문학인협회 회장을 맞으며 평소 존경해온 정소파 선생님을 사이버문학인협회 평생 고문으로 모셨다. 그리고 협회가 주최하는 열린 광장에 모시고자 했다. 그러나 주위의 많은 문학인들이 열린 광장에서 시낭송은 안 된다는 권유와 함께 시낭송을 하는 것을 말렸다. 우리나라에 대 원로시인이 몸도 불편한데 그것도 장터 같은 열린 장소에서 시낭송을 직접 한다니 모두가 반대했던 것이다. 시낭송은 닫혀 있는 조용한 곳에서 낭송을 해야 시를 음미하며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였다. 필자가 학창 시절 만해도 책가방에 시집 한두 권은 넣어 다녔다.
지금 시집은 서점에서 마저 홀대를 받으며 대학교 진학용의 교과서속의 시로 변질되고 말았다. 어느 유명시인의 시집이 500원에 길거리에서 거래되고 있다. 문학적인 정서에는 관심도 없고 문학인들의 잔치로만 끝나는 문학인만의 잔치인 시낭송을 열린 광장에서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필자는 몇 차례 “지금 예향 광주는 아시아 문화 수도이고 문학적인 정서가 말라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권이 절벽을 내려가고 있는 현실에 선생님의 시 한편이 주는 훈시가 후학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참 문인이 그리운 시대에 선생님의 참 가르침을 시낭송으로 깨우쳐 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청했다.
정소파 선생님은 시낭송을 허락하시고 광주 지하철 상무역사에서 인간적인 정이 가득한 “ 무등영가無等靈歌”란 제목의 육성 시낭송이 이어졌다. 원로시인의 시에 흠뻑 빠져들어 모든 관객은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기립 박수를 쳤다. 이는 현시대에 시들어가는 인간적인 정서에 대한 갈증의 폭팔이요, 요구였고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기대였다.
정소파 시인! 그는 분명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큰 스승이요, 대 시인 이였다.
무등 영가 (無等靈歌) -정 소 파-
-우러러 아침 저녁 조아려 살피어도-
한결 미소 띤 체 어진 눈매 자애로이 한 세기 받들어 뵈는 내 눈에만 그런가! 분노 고작 떠뜨리면 활활 품는 분화구라 광란의 노도 앞에 무너지는 한 쪽 바다
다무른 묵비 그 속에 갊아 지닌 무게여! 그 가슴 때로 안겨 타이름 듣노라면~~ 거울처럼 맑은 마음. 이끄는 바른 길로- 뛰노는 정의의 맥박 파동 치는 그 고동! 손 얹고 바랄수록 둥구렷 떠오르는~~~ 크막한 원둘레라. 무등이라 일렀으리. 그 무릅 지란(芝蘭)을 길러 천년 영세 향 맑다. 당신 언제 부르셔도 민초 앞서 일어서서 불호령 포효로 맞서 그 계시 따르리니~ 불패의 민주의 영봉 무등이여, 임이여!
- 한국사이버문학인협회 주최 무진주 문화마당 육성 낭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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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를 앞둔 정소파 시인이 매일 책과 펜을 손에서 떼지 않고 시심을 키우고 있다. © /이승준 기자
| | 현 문단에서는 정소파 선생을 “그는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며 후학을 위해 “소파 문학상”을 제정하고 민족시 부흥을 위해 외길을 걸어온 “투명한 삶”속에서 시류에 편승치 않고 외길을 고매하게 걸어온 학명 우천의 표상이요, 시문학창조의 향이 살아 숨 쉬는 고절지기를 지닌 원로 시인이요, 교육자로써 한국 문단 사에 길이 남을 대시인이다. “라고 부른다.
호남 문화의 혼을 찾아 방문자 일행은 방문자 정소파 선생님을 뵙기 위해 광주광역시 남구 무등 아파트를 찾는다.
96세의 원로 시인은 반갑게 일행을 맞으며 안으로 들기를 청한다. 필자는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고 그간의 정황과 건강을 여쭙는다. 아직도 정정한 노시인! 소탈한 웃음에 진실한 정이 방문자일행을 흠뻑 빠져 들게 만든다. “차라도 한잔해야 하는데...” 말씀마다 우리에게 주는 따뜻함과 인간미 흐르는 인품이 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민주 작가라 하면 신들린 사람으로 고결한 인품과 향기로운 인격의 소유자로써 지상에 살면서도 성인과 같은 태도나 마음을 갖어야 할 것이다.” 진정 참 문인이 되려면 진실 된 참 인간 이여야 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정소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후배 시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한다.
정소파 시인은 현 96세로 하동 정씨 가문에서 대대로 450여년을 살아온 광주서동에서 태어났다. 현 목포공고인 송정 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여 전라남도 도청 등에서 행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50년부터 여수중학교 국어 담당 교사로 교직 활동을 시작하여 전남여중고 . 수피아여고 등 많은 학교에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선생은 교직에 근무하면서 여수바다를 배경으로 한 “ 소리섬” 이라는 시를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하고 윤석중선생이 발행한 한국 동요동시선집에 “ 유리창 캠퍼스”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또한 화정 중학교 등 20여개의 학교 교가를 만들어 후학의 정서 함양에 온힘을 기우렸다.
소파 정현민 선생은 1930년 개벽지를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1935년 순수문예지인 춘성 노자영선생이 발행한 “신인문학”에 작품을 발표하고 1947년 조선중보, 동광신문 신춘문예,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에 당선되어 문단활동의 전성기를 맞는다.
1957년 10월 3일, 조선조 마지막 과거제도가 없어진 60년 만에 제 1회 전국 백일장대회가 정부 주최로 “독 임란 사 유감” 이라는 시제로 열렸다. 옛날 과거장을 제현 시켜 전국 예선을 거쳐 본선을 서울 성균관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제 1회 백일장대회에서 정소파 시인은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장원하여 삼현육각이 울러 퍼지는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수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 후 선생은 시. 시조. 동화 ,동시, 소설 등 많은 저서와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단사에 우뚝 서는 수편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소파선생의 삶을 통해 문학의 진수를 깨우쳐보고자 방문한 일행은 현 문학인의 자세를 묻는다.
잘 정돈된 거실에 한 세기를 외길로 걸어온 민족 문학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리 우는 선생님의 모습들이 신선한 향을 품으며 실내를 사로잡는다.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학을 가볍게 보고 문단에 입성하는 현 문인들의 자세가 너무나 안이하고 애처롭다. 문학인은 도인이다. 나는 문학을 종교로 생각하며 한평생을 외길로 문학에 전념했다. 현 문인들을 보라, 명예에 급급하여 등단하여 문장 서두에서 마지막까지의 창작이 피를 말리는 노력과 산고의 고통속에 한편의 작품을 출산해야 하는데 문장 수업도 받지 않고 문학을 가벼이 여겨 잡 글을 쓰는 문학인을 배제 하고 싶다.
일본인들은 “ 씨 말음”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몸이 야위어 간다는 말을 하며 창작 활동을 한다. 당가 따위도 국민 시로 개작하여 정부가 인정 할 정도로 자기나라 문학을 숭상한다. 문학은 순수해야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습작을 통해서만이 이뤄 낼수 있는 것이다. 현 우리시는 일본에 비하면 음율이나 그 형식에 있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하여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이 훌륭한데 요즘 문학의 현실을 보면 말장난을 한다든지 현실을 똑바로 보고 비판, 풍자하는 맛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면으로 볼 때 우리 문학인들이 많은 문 촉을 쌓아서 더욱더 깊이 있는 작품을 소화시켜 내야 할 것이다.
민주작가라 하면은 신들린 사람처럼 고결한 인품과 향기로운 인격의 소유자로 지상에 살면서도 성인과 같은 태도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시인이란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 인데 그걸 모르고 함부로 문단에 발을 딛는 것은 깊이 생각할 바가 크다. 그야말로 같은 인간이면서 그런 인격 뒤에 나오는 시라야 높은 경지의 시가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한 세기를 문학이라는 화두 속에 자신을 내던진 시인, 정소파! 그 분의 메시지를 통해 현시대 문학인의 자세가 얼마나 안이한가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좀 더 진지한 모습 속에 거듭나야한다.
방문자 일행은 정소파 선생님이 즐겨 찾으시는 산책로로 자리를 옮기기로 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다음호에는 정소파 선생님의 초, 장 ,중년기시절의 문학의 길을 통해 선생의 삶에 대한 모습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대담자: 이전안시조시인. 고운석시인. 정형래수필가, 최미옥시인, 정상미시인 사진•자료모음: 정상미시인, 이금자시인 글: 나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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