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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학생들의 이동진 기사 분석과 인터뷰
강의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특정 기자의 기사를 분석해오라는 숙제를 하기 위해서 부탁해오는 대학생들과 약식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구요.
그런데 제 기사가 분석되는 자리에 앉아 있어본 적은 작년 12월이 처음이었습니다.
멋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지난 12월 서강대 언론정보학부 전공 수업 시간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특정 기자의 기사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학생들이 발표하는 시간이었지요. 그 분석을 위해서 그 며칠 전에 저를 대상으로 선택한 학생들 세 명과 인터뷰도 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학생들의 그날 발표 내용입니다. 그날 강의실에 앉아서 발표 내용을 듣고 있자니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학생들의 분석 내용이 무척 날카롭고 성실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제 글쓰기 습관을 알게 된 것도 있구요. 좌우지간, 앞으로 좀더 신경 써서 기사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혹시 그날 그 발표를 했던 세 학생들 중 이 글을 보시는 분이 계시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세 분께 술 한 잔 사겠다는 약속, 좀 늦어지긴 했지만, 지키겠습니다. ^^
그날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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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 범위 >
1. 형식상 범위
우리는 조선일보를 통해 이동진 기자가 쓴 다양한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그가 쓰는 기사들은 영화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영화 리뷰 기사, 영화인들과의 인터뷰 기사, 기획기사 그리고 2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실리는 영화 칼럼 ‘시네마레터’, 이렇게 대략 다섯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이동진 기자의 기사를 스트레이트 기사, 영화 리뷰 기사, 인터뷰 기사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시네마레터’의 경우 이동진 기자의 스타일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기사와는 달리 칼럼 형식의 글이기에 이번 분석에서는 제외하였다.
2. 시간상 범위
이동진 기자는 2004년 8월부터 1년간 해외 연수를 다녀온 후 올 해 8월부터 다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본적으로 이 글은 <조선일보> 2005년 8월 31일자부터 11월 11일자까지의 기사를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필요에 의해 이동진 기자의 해외 연수 이전의 과거 기사들도 분석, 인용했음을 밝힌다.
< 기사 분석 >
1. 스트레이트 기사
이동진 기자는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그가 쓰는 영화 리뷰 기사나 시네마레터 같은 영화 관련 칼럼으로 우리에게 더 유명하다. 하지만 그 또한 기자이기에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동진 기자가 쓰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영화계 소식은 물론 영화제 같은 영화 관련 행사, 영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다. 이번에 기사 분석을 하는 기간에는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려 이동진 기자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비교적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1. 기사의 헤드(Head)에 큰 따옴표를 이용한 말의 인용이 비교적 많다.
이동진 기자가 쓴 스트레이트 기사의 헤드는 구어체적인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큰따옴표를 이용,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쓰인 헤드가 많다. 물론, 신문 기사의 헤드는 편집부에서 정하는 고유권한이기는 하다. 그러나 큰따옴표를 이용한 헤드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구어체적인 느낌의 기사를 쓰는 그의 기사 쓰기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져 기사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일조한다.
결국 말하는 듯한 느낌의 헤드는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 시선을 끌고 편안하게 기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의 기사와 어우러져 기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심은하 “저 결혼해요”
내달 28일 연세대 연구교수 지상욱씨와 (2005년 9월 21일 )
“시간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세 빛깔 그리려...”
부산 영화제 개박작 ‘쓰리 타임즈 허우햐오시엔 감독 (2005년 10월 7일)
1-2. 문체가 건조하지 않다.
흔히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한다면 굉장히 딱딱한 기사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동진 기자의 기사는 그렇지 않다. 스트레이트 기사로서는 건조하지 않고, 화려한 문체를 자랑한다. 그리고 구어체적인 그의 기본적인 기사 쓰기 스타일을 비롯하여 비유, 의성어, 의태어의 사용은 그의 문체를 드러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가 영화 분야이다 보니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데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일반적인 기사를 비롯하여, 기획 기사, 영화제 관련 기사 등 모든 기사에서 그의 문체는 글로 쓰여 있지만 마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생동감 있다. 기사가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고, 독자가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건조하지 않은 문체는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지난 10월 6일 개막했던 부산 국제 영화제의 소식을 전하는 그의 기사들은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부산 국제 영화제의 소식을 전하는 이동진 기자의 기사는 단순히 건조한 문체로 전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될 수도 있는 소식들을 스케치 기사에 가깝게 씀으로써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리드의 경우 그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졌다. 의성어, 의태어의 사용을 비롯하여 마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로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뜨거울 순 없다. 열 번째 영화 잔치를 치르고 있는 부산은 지금 가뜩이나 뜨거운 영화제 특유의 분위기에 한류 열풍까지 더해져 활활 타오르고 있다. 8일까지 팔려나간 티켓은 15만 3000장으로, 영화제 3일 만에 이미 작년 총관객수인 16만 6000장에 육박하고 있다. 부산영화제 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올 행사에서 예년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곳곳을 누비는 해외 관객들의 모습.
(2005년 10월 10일)
해마다 이맘때면, ‘충무로’는 부산의 거리가 된다.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충무로 영화인들이 총집결하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12일)
이 세 영화의 홍보사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해 관객과의 ‘스킨십’을 노린다. ‘청연’은 일제시대 배경이란 작품 특색을 살려 해운대와 남포동의 일본식 주점을 중심으로 독특한 마케팅에 나섰다. 청주에 ‘청연주’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주점에 주연 배우의 ‘이미지 포토존’을 설치해 관객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2005년 10월 12일)
1-3. 기자의 주관이 ‘너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는 기사이다. 기자가 자신의 생각을 기사에 담는다고 해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이게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독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동진 기자의 기사에서는 그의 판단이라고 보이는 부분이 지나치게 드러날 때도 있다.
최근 ‘한류에 대응해야 한다’는 항한론(抗韓論)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곤혹을 치른 성룡(51). 7일 오후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영화 ‘신화’의 주연배우로 참석한 그는 “중국 영화인을 만날 때마다 한국인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고 덧붙였다. 더 이상 ‘한류’에 대한 그의 ‘본심’을 묻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 것 같다. (2005년 10월 7일)
위의 기사를 보면 밑줄 친 문장을 쓰지 않고 사실만 전달했어도 기자가 의도한 것은 분명히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기자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을 불필요하게 추가하였다고 보인다. 물론, 그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에는 좋겠지만 기사는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가장 중심에 있는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타나는 그러한 문장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2. 영화 리뷰 기사
현재 영화는 현대인들의 문화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 비중만큼 산업의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극장에서는 매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다. 이제 영화는 우리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 분야인 만큼 어떤 영화가 볼만한 영화인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따라 각 신문에서는 영화에 대한 분석과 평을 담은 영화 리뷰 기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리뷰 기사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정보 제공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문의 영화 리뷰 기사 등을 통해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를 판단한다. 영화 리뷰 기사는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척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규모, 생활 속에서의 비중 등을 고려하면 영화에 대한 정보 요구는 당연한 것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와 비중만큼 영화 리뷰 기사는 상당한 책임이 따르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기자의 판단에 따라서 영화가 볼 만한 영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기사가 바로 영화 리뷰 기사이다.
2-1. 문체상의 특징
2-1-1. 다양한 비유 사용
이동진 기자의 영화 리뷰는 딱딱하지 않고 이해하기가 쉽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쓸 때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비유들 때문이다. 비유를 비롯한 각종 수사법이 신문 기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영화 관련 기사에서는 오히려 독자의 이해를 돕고 기사를 맛깔나게 만든다. 적절한 수사법의 활용으로 글을 더욱 풍부하고 문학적으로 만듦으로써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글이 되는 것이다. 몇 개의 예를 살펴보자.
팀 버튼은 팬터지 왕국의 수도이다. ‘비틀 주스’, ‘가위손’, ‘배트맨’, ‘화성침공’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은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궤적을 만들어가며 영화사상 가장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선보였다. 이를테면 버튼의 진실은 그의 상상력 안에 있다. …(중략)… 55m에 이르는 초콜렛 강을 직접 만들고, 호두 껍질 까는 다람쥐를 실제 훈련시킬 정도로 고집스런 버튼은 어느 영화에서도 만난 적 없는 풍경을 실크햇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마술사처럼 익숙하게 선보인다. (후략) (2005년 9월 13일, 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 리뷰)
(전략) 홍상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방부제이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섹스 코미디에 가까운 이 작품은 무엇보다 순수해야 할 것 같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조차 속물근성과 허위의식, 그리고 눈먼 욕망을 비린내 나는 체액으로 뒤섞인 채 펼쳐놓는다. ‘누가 누구와 어떻게 자는가’의 문제는 그의 영화에서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이란 동물의 작동원리이며, 그 수컷과 암컷들이 이뤄놓은 세계의 밑그림이기도 하다. (후략) (2004년 5월 2일,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리뷰)
2-1-2. 의문형 종결 어미의 사용
이동진 기자의 기사가 쉽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의문형 종결 어미의 사용 때문일 것이다. 그는 ‘~ㄹ까’, ‘~ㄴ가’ 등의 의문문을 종종 사용한다. 이동진 기자는 일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 후 바로 그 답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마치 독자에게 이 영화에 대해서 자신과 함께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말 걸기’처럼 느껴진다. 그의 글은 처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적’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미술과 문학 그리고 연극이 가능한 모든 형식을 다 실험하고 난 뒤에야 태어난 영화는 탄생부터 ‘영화적’이란 말에 대한 고민으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채워왔다. 그렇다면 이젠 그 고민은 충분한 해답을 얻어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명세는 처음부터 되묻는다. ‘형사 Duelist’는 대중적인 장르 영화의 외피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한 가지 질문만을 되풀이하는 영화다. ···(중략)··· 그러나 대화를 나눌 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게 만드는 구도가 선호되는 데서 짐작되듯, 혹시 ‘형사’는 소통을 잠시 잊은 감독의 혼잣말이 아닐까. 극중 너무나 멋지게 형상화되지만 슬픈 눈동자 두 개만으로 물화(物化)된 강동원과 다양한 연기 폭을 선보이지만 결정적 매력을 찾기 쉽잖은 하지원은 결국 감독의 복화술사로서 같은 내용의 독백만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2005년 8월 31일, 영화 ‘형사 Duelist’ 리뷰)
모든 영화감독에겐 꼭 한 번 만들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이 하나씩 있다. 섬세한 손길로 빛을 일궈낸 수작 ‘인어공주’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에게 ‘사랑해, 말순씨’(11월3일 개봉)가 그렇지 않을까. 그가 애초 감독 데뷔작으로 준비했었다는 이 영화엔 절제되고 정제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절실함이 화면 가득 물들어 있다. 과거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실한 안타까움,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절실한 소망까지. 어떤 것일까, 열네 살 소년에게 비친 세상은. 그리고 삶은. (하략) (2005년 10월 27일, 영화 ‘사랑해, 말순씨’ 리뷰)
서른 살을 주인공으로 삼고도 뛰어난 성장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오랜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남녀관계에 대해 알 것 다 아는 여자에게도 사랑은 여전히 신선할 수 있는 걸까.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는 혼란스런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다루면서 그 감정의 실체를 한 손아귀에 쥐어내려는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닿을 듯 내려앉을 듯 흩날리는 서른의 나날들 자체의 움직임을 응시한다. 깊이가 있다고 꼭 무거울 필요는 없다는 걸 증명하는 ‘사랑니’의 지혜로운 가벼움은 시종 기분 좋게 살랑인다. 그건 충무로가 오랫동안 살려내지 못한 감각이다. ···(중략)··· 다시 찾아온 첫사랑의 그림자에 설레는 여자 이야기로 평탄하게 진행되는 듯 했던 영화는 회상 장면에서 그녀의 과거 모습으로 보였던 여고생 조인영이 직접 서른 살 조인영을 찾아옴으로써 복잡하게 꼬인 구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를 직접 대화하게 만드는 초현실적 묘사일까. 아니면 그저 이름만 같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였던 걸까. (하략) (2005년 9월 22일, 영화 ‘사랑니’ 리뷰)
특히, 기사 말미 부분에 사용되는 의문문들은 기자의 생각을 주장하며 단정 짓기보다는 하나의 견해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겨 두는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지도 모른다’는 식의 문장도 기사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 역시 기자의 견해를 겸손히 소개하는 정도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여운을 남기는 글쓰기가 오히려 글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전략) 김정은은 그녀의 최선을 보여준다. 자신보다 열세 살 어린 연인에게 전화하다가 "끊지 마, 끊지 마"라고 애걸할 때, 김정은의 호소력은 실로 대단하다. 대중적으로 ‘사랑니’는 그런 김정은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성과가 갈릴 작품인 것도 사실일 게다.
초반에 ‘사랑니’는 누구나 평생 한 가지 사랑만 반복할 뿐이라는 ‘첫사랑의 영겁회귀 신화’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랑의 운명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영화 속에서 서른 살 인영은 뒤늦게 앓기 시작한 사랑니 통증의 신음 사이에 재미있다는 듯 가벼운 웃음소리를 섞는다.
열일곱 인영은 맹장수술을 받은 후 흉터를 걱정하지만 정우는 그 수술 자리가 오히려 예쁘다고 대답한다. ‘사랑니’는 아픔도 설렘도, 흉터도 추억도 모두가 사랑의 서로 다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거해도 큰 탈 없는 사랑니와 맹장처럼, 어쩌면 운명적인 사랑 역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혹시 이 영화는 사랑이 아니라 생(生)의 생생한 감각 그 자체를 살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확언하기엔, 세 남자와 한 여자가 마당의 평상 위에서 술자리를 벌이는 종반부 장면이 너무나 평화롭고 따뜻하지 않은가. 너무 젊지도 아직 늙지도 않은 나이, 조인영은 기회가 찾아오면 언제라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Join Young·조인 영) 서른 살을 지금 막 지나고 있지 않은가. (2005년 9월 22일 영화 ‘사랑니’ 리뷰)
2-2. 독특한 리드와 결말
2-2-1. 리드
이동진 기자의 영화 리뷰 기사 리드는 상당히 이채롭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의문형으로 시작하는 경우뿐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사용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있다.
문체상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언급했지만 일종의 ‘질문형 리드’로 시작하는 이동진 기자의 글은 독자에게 “이 영화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지 않으실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영화적’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영화 ‘형사’ 리뷰)”, “서른 살을 주인공으로 삼고도 뛰어난 성장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영화 ‘사랑니’ 리뷰)”라는 리드는 어떻게 보면 이 영화평의 결론이기도 하다. 리드에서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 핵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형사’ 는 매우 ‘영화적인’ 특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영화”이고 “‘사랑니’는 서른 살을 주인공으로 삼은 뛰어난 성장영화다”라는 결론을 리드에서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의 기사에서 나머지 부분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동진 기자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리뷰에서 리드를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된 사랑에 대한 성찰을 자기 자신과 독자에게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전개한다.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삶에는 두 종류의 비극이 있다. 사랑을 잃는 비극이 그 하나. 나머지 한 가지는 사랑을 얻는 비극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랑이 무료함 때문에 시작되어 싫증 때문에 끝나버리는 것일까. 마침내 목적을 이룬 간절함은 짧은 시간 환희로 꿈틀대다 독하고 질긴 권태에 뼈째 잡아 먹힌다. 수명이 다해 길게 누워버린 사랑의 시체를 허다하게 목격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설까. 또는, 왜 형해만 남은 옛 사랑을 못내 그리워하는 걸까. (하략) (2005년 11월 9일 영화 ‘이터널 선샤인’ 리뷰)
2-2-2. 결말
일반적으로 글의 마지막 부분은 전체 내용을 종합, 요약하거나 결론을 짓는 역할을 한다. 글의 성격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거나, 글쓴이의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동진 기자의 글이 인상적으로 읽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글의 말미에 있다. 이 기자의 기사 마지막 부분에는 기자의 의견이 짧고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상징이나 비유, 의문형 등의 기법을 통해 짧은 문장으로 여운을 남긴다. 또, 기자 개인의 종합적 의견이 아니더라도, 마지막 부분에 사용되는 문장들이 인상적 여운을 준다는 것은 비슷하다.
“‘형사’는 이명세 감독이 아직 길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지금 한석규는 쉽지 않은 승부를 하고 있다.”처럼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평가를 기사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명세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뤘으나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것을 ‘아직 길 위에 있다’라고 표현하거나 한석규의 부담스런 코미디 연기에 대한 평을 ‘쉽지 않은 승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압축해서 표현하는 이동진 기자의 글쓰기는 매우 감각적이다.
또 우리는 기사 마지막에서 이동진 기자의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사색적인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삶은 부서진 꿈의 퇴적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 멀리 어디선가, 소년들은 자란다. (‘사랑해 말순씨’ 리뷰)
그러나 섣불리 선동하지 않는 이 정치적인 영화는 제대로 뚜껑을 열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세상’을 준비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것만으로도 분명 최악은 아니다. (2005년 11월 3일. 영화 ‘시티 오브 갓’ 리뷰)
무차별적인 권태의 폭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랑했던 이유가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들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그 모든 기억마저 사라진 뒤에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은 남아 우리의 등을 다시금 떠민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곳이 진창이든 꽃밭이든, 그래, 좋다. 다시 또 한 번! (영화 ‘이터널 선샤인’ 리뷰)
강이 흘러 하류에 이르다 보면 온갖 것들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강은 계속 흘러야 한다. 드넓은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혼탁한 하류일 테니까. (2004년 5월 14일. 영화 ‘하류인생’ 리뷰)
유치하고 서툴렀지만 한없이 간절했던 시절을 영화와 함께 떠나보내며, 이 짧은 영화평도 어느 소설 제목을 빌려 마지막 조사로 삼는다. 장려(壯麗)했느니, 우리 그 낙일(落日)!(2004년 1월 12일. 영화 ‘말죽거리잔혹사’ 리뷰)
이러한 마무리는 보통 이동진 기자가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린 영화의 리뷰에서 발견된다. 아마도 그러한 영화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동진 기자의 기준에서 ‘좋은 영화’란 삶을 한 번씩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마지막 문장에서 자주 ‘쉼표’가 보이는데 이는 대단히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 호흡 쉬면서 뭔가 성찰하는 느낌을 가져다준다고나 할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마무리가 독자로 하여금 기사를 읽은 후 여운을 남게 하는 효과도 있다.아울러 아래 기사처럼 빨리 다음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영화관객으로서의 솔직한 표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치킨 런’ 개봉 후 이 영화가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5년. 점토 인형을 아주 조금씩 움직여 만드느라 제작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를 맛보기 위해서 또다시 그만큼을 기다려야 한다니! (2005년 11월 2일. 영화 ‘월레스&그로밋’ 리뷰)
2-3. 부족한 영화도 장점을 짚어준다.
이동진 기자는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접근하면서 영화가 가진 문제점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다음 기사는 조선일보 2005년 10월 27일자에 실린 영화 ‘야수와 미녀’에 대한 기사다.
만화영화 속 괴물 소리를 전문으로 내는 성우 동건(류승범)은 앞을 보지 못하는 해주(신민아)와 사랑하는 사이.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동건은 고교 시절에 인기 높았던 친구 준하(김강우)를 떠올리며 해주에게 자신의 얼굴에 대해 설명한다. 어느 날 해주가 수술을 받고 눈을 뜨게 되자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고민하던 동건은 하와이에 출장 다녀온다고 둘러댄 뒤 성형수술을 받는다. 수술이 거듭 실패해 재회의 순간이 자꾸 미뤄지는 동안, 검사가 된 준하가 해주에게 사랑을 느끼고 접근하기 시작한다.
충무로 코미디는 점차 만화를 닮아가고 있다. 27일 개봉하는 ‘야수와 미녀’는 그중에서도 가장 만화적인 영화로 기록될 만 하다. 동화적이다 못해 유아적이기까지 한 연애담에 명랑만화적인 캐릭터를 풀어놓은 이 영화는 연기 스타일부터 카메라 구도와 특수효과까지 철저히 만화적이다. 카페에서 해주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준하를 겨냥해 동건이 질투심으로 빈 병을 던지는 시퀀스를 암전(暗轉) 후 해주가 맞아 비틀대며 쓰러지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데서 드러나듯 편집 역시 만화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문학적이거나 연극적이라는 평가가 그렇듯, 만화적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영화의 질적인 수준에 대한 척도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야수와 미녀’가 종종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마무리한 연재만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본적 리얼리티를 갖추지 못했고, 외모에 대한 농담으로 일관하는 에피소드들은 퇴행적이다. 마법에 걸렸다 깨어난 동화 속 공주 같은 캐릭터를 맡은 신민아의 연기는 종종 관객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태풍태양’에 이어 주연급 배역을 다시 맡은 김강우는 ‘범인과 직접 맞짱뜨는 열혈 검사’라는 익숙한 캐릭터를 어색하게 반복한다.
그래도 이 영화에는 류승범이 있어 일정한 재미를 보장한다. ‘품행제로’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의 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은 있지만, 당황하면서 둘러대는 그의 코미디 연기는 여전히 탁월하고 즐겁다. ‘미녀와 야수’란 익히 알려진 고전 제목을 ‘야수와 미녀’로 뒤집어놓을 만한 자격이 그에게 있다.
모자란 킬러 역으로 출연한 안길강의 시침 뚝 뗀 코믹 연기도 자주 웃음을 준다. 이 ‘오락’영화가 줄 수 있는 웃음의 최대치는 류승범과 안길강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 안에 담겨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전체적으로 이동진 기자는 영화 ‘야수와 미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부족함을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마무리한 연재만화’같다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요약해낸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표현이다. 또 기자는 전체적으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독자에게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지적해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덧붙여 이동진 기자는 전체적으로 만듦새는 무난하나 별달리 흥미를 끌지 못하는 영화를 평가할 때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준호가 출연한 ‘천년호’에 대한 리뷰 기사에서 “그러나 ‘천년호’는 나름대로 성실하고 무난하지만 이상하게도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의 데이트 제의 같은 영화다”라는 독특한 비유를 사용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런 문장들을 통해 이동진 기자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3. 인터뷰 기사
3-1. 인터뷰 기사의 형식
이동진 기자의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 째는 단순히 질문-답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너는 내 운명>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과의 인터뷰를 보자.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초 에이즈에 걸린 시골 다방 종업원 출신 여자와 농촌 총각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충무로 사람들은 이 영화의 흥행이 꽤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너는 내 운명’은 멜로 영화로 역대 최고 흥행성적을 이미 달성했다. 20일까지 282만명.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지난 2002년 노인들의 성(性)과 사랑을 다룬 연출 데뷔작 ‘죽어도 좋아’로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박진표(39) 감독. 그는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에 포함된 단편 ‘신비한 영어나라’에서 유창한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수술을 받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줘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사건과 사람들’ ‘뉴스 따라잡기’ 같은 프로그램에서 10여년간 시사 다큐멘터리 PD 생활을 했던 그는 영화감독에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01년 말 안정된 직장을 버렸다. 그리고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충무로는 묻혀진 사회 문제를 파고드는 예리한 눈과 소외된 사람들을 부둥켜안는 따스한 손을 함께 가진 감독 한 명을 갖게 됐다. 그건 한국 영화가 이제껏 소유하지 못했던 종류의 재능이다.
―‘너는 내 운명’이 가을 극장가를 휘어잡고 있다.
“그 많은 관객들과 가슴이 통한 거니까 무척 흐뭇하다.”
―이토록 성공하게 된 비결이 뭘까?
“처음 기획할 때 세상이 외면한 두 사람의 사랑을 나라도 축복해주자고 결심했다. 미학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으냐에 상관없이 나는 초심(初心)을 지켰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이 영화에 호응한 관객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멜로는 통상 남녀 관객비율이 ‘2:8’인데 이 영화는 ‘4:6’이란다. 남자 관객들이 연인과 함께 관람하며 운명적 사랑을 대리고백한다는데, 기분 좋은 일이다.”
―규모를 갖춘 대중영화는 처음인데.
“최소한 제작비는 회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다. 모두 47억원이 들어갔는데, 한 사람이 평생 일해도 못 벌 돈이 아닌가. 하지만 다른 부담은 생각보다 적었다. 사실 어떤 프로젝트가 대중적인지 아닌지 누가 판단할 수 있겠나. 아무도 영화화하지 않는 소재가 오히려 더 대중적일 수도 있다. 나는 ‘죽어도 좋아’도 상업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 대한 호응으로 두 주연 배우의 인기는 지금 절정에 달했다.
“자랑스럽다. 어찌됐든 내가 멍석을 깔아준 셈이니까. 전도연씨는 연기 본능을 타고난 동물적 배우 같은데, 그게 본능인지 계산인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온 신경과 촉수를 동원해 그 인물이 돼 버리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황정민씨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살려내는 감각을 거기에 뛰어나게 조화시킨다.”
―이 영화엔 직설적인 노래 ‘오빠’가 거듭 흘러나온다. 극중 다방 이름은 아예 ‘순정 다방’이다. 감독 자신이 ‘통속 사랑극’이라 명명도 했다. ‘이 작품은 신파’라고 스스로 적극 내세워 영화가 촌스럽다는 공격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 같다.
“미리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다. 직설적이고 신파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진심이 통하는 이야기라고 판단했다.”
―통속적 실화라고 꼭 연출까지 통속적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미학적 의문은 남는다.
“세련된 스타일에 플롯도 입체적으로 구성하면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내가 아직 ‘악’ 소리 날 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통속에 대한 비아냥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나는 통속은 ‘마음속’의 뜻이라고 믿는다. 우리 마음속에 통속이 있고, 난 그걸 꺼낸 것 뿐이다.”
―농촌 결혼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지고 가정 폭력 문제도 비중 있게 취급되는 등 멜로인데도 특유의 문제의식이 생생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많은가’라며 말렸다. 그런데 농촌 총각 얘기를 하는데 농촌에서 어떻게 사는지 드러나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봤다. 가정 폭력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영화 속에서 매우 폭력적으로 그려진 전도연씨의 전 남편은 통계로 나와 있는 전형적 인물이다. 술 마시고 때리고 싹싹 빌고 선물 사주고, 다시 처음부터 그 과정을 반복하는 일부 한국 남자들 말이다. 그런 게 녹아 있어야 인물이 살아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PD 경력이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떠올려 놓고도 말이 안 된다 싶으면 절대로 못 한다. 장점은 내 영화의 개성이라고 말씀해주시는 리얼리티에 있을 거고.”
―주로 독특한 실화를 다루기에 ‘센세이셔널리즘’ 혐의를 두는 사람도 있다.
“난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특별한 이야기에만 주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편견이 있다. 왜 노인의 사랑과 성이 특별한가. 에이즈 걸린 사람은 사랑도 못 하나.”
―이 영화는 결국 사랑에 대한 낙관론자인 남자가 비관론자인 여자를 감복시켜 운명적인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당신은 비관론자인가, 낙관론자인가?
“비관론자다. 영화의 메시지와 달리 난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사랑이 안 변했으면 하고 바란다. 결국 이 영화는 내가 보고 싶은 세상,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후일담을 밝히자면 사실 두 사람은 그 후 헤어졌다. 사랑이 그런 거 아닌가. 그 순간은 없으면 죽을 것 같은데,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그걸로 된 거다. 순간이 없으면 영원도 없다. 참, 에이즈 보균자이지만 그녀는 현재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꼭 덧붙이고 싶다.”
―감독이란 오랜 꿈을 이뤘는데.
“어릴 때 TV에서 ‘신상’이란 인도 영화에 매혹됐을 때부터 감독의 꿈을 꿨다. 다큐멘터리 PD 생활을 오래했지만 난 먼 길을 돌아왔다고 보지 않고 준비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경력도 내겐 무척 소중하다. 하지만 그때는 무조건 객관적이어야 했는데, 지금은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희망적으로 할 수 있고 변형해서 내 마음대로 극화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2005년 10월 22일)
이런 인터뷰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이며 기자의 주관이 배재되어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또 다른 형식의 인터뷰 기사는 단순히 질문-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의 주관적 느낌과 인터뷰이(interviewee)의 대답을 섞어 한 편의 인물평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우 장동건과의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자.
장동건의 대표적 팬클럽 이름이 ‘아도니스’란 사실은 절묘하다. 그리스 신화 속 빼어난 외모의 아도니스가 사로잡았던 두 여성은 가장 빛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페르세포네였다. 향나무가 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그는 수줍은 소년이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게 사냥일 정도로 역동적이기도 했다. 화려한 스타 장동건에겐 빛과 어둠, 식물과 동물의 본성이 공존한다. 그가 총을 들고 50여 년 전 한국전쟁의 한복판에 나섰다. 무려 147억원을 들인 대작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생(원빈)을 지켜내려다 광기의 화신이 되어가는 진태 역을 맡았다.
“이전엔 제 역할만 신경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이 영화는 총체적으로 부담이 됐습니다. 촬영 기간 내내 주연으로서의 책임감을 제대로 배웠죠.” 그는 촬영 초기인 작년 6월 첫 전투 장면을 찍다가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수술을 하면 회복 때까지 두 달간 제작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는 감독과 프로듀서에게만 알리고 촬영장에서 강행군을 계속했다. 고생 끝에 촬영을 마친 뒤 영화를 본 소감을 물었더니 “일단 ‘때깔’은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확신이 생겼다”고 답했다.
장동건은 언제 만나도 겸손하다. 그의 겸손은 ‘예의’가 아닌 ‘체질’로 느껴진다. 자신을 내세우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그는 거듭 캐물으면 수줍어하며 ‘그나마’ ‘조금’ ‘다행히’ ‘그저’ ‘간신히’ 같은 부사(副詞)를 통해 단상을 먼저 깎아내린 뒤 그 위에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하지만 그런 그의 ‘식물성’ 이면에는 강렬한 동물적 야성이 도사리고 있다. 최고 TV 스타로 군림하다가 영화계로 진출한 뒤 그의 경력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기점으로 나뉜다. 처음엔 멜로를 주로 찍었지만 ‘아나키스트’ ‘친구’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찍은 뒤쪽은 대부분 대작영화였다. “처음엔 선택의 폭이 작았지만, 이젠 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대부’ 같은 작품들이거든요. ” 미소년의 대명사인 아도니스란 이름의 어원이 역설적이게도 셈어의 ‘군주(adon)’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바로 직전에 찍은 기이한 B급 영화 ‘해안선’에 출연했던 이유는? “과연 나는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정해져 있는 건가란 생각을 오래 해왔어요. ‘해안선’은 그걸 실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요. ” “실험으로 얻은 결론이 뭐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돌려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연기만 해도 남은 삶이 부족할 것이라는 거죠. ” 사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아도니스는 광포한 군신(軍神) 마르스가 될 이유도, 불을 훔쳐오며 위험한 모험을 벌이는 프로메테우스가 될 필요도 없다. 장동건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장 확실한 버팀목으로도 이미 배우로서 가치를 충분히 입증하는 것이니까.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에게 출연작 중 두 편만 DVD로 보내야 한다면?” 벌써 연기 경력 12년째인 그에게 질문했다. “음, 우선 ‘친구’는 보내야 할 것 같고, ‘인정사정…’과 ‘연풍연가’ 중에서 나머지 하나를 고민할 것 같은데요?” ‘친구’는 “‘그나마’ 연기하며 가장 인정받은 영화”이고, ‘인정사정…’은 “국제영화제 상영 경험으로 볼 때 서양인에게 ‘그래도’ 동양인이 멋지게 보이는 작품”이어서라는 게 설명이었다. 그런데 ‘연풍연가’는? “‘친구’와 극에서 극인 영화라서요. ‘친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내 모습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 겸손해서 그렇지, 역시 그도 자신의 매력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주도를 무대로 한 그림엽서 같은 멜로 ‘연풍연가’에서 그는 자연풍광을 압도할 만한 또 하나의 풍경이었으니까.
그는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했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에서 제니퍼 코넬리는 “결정을 잘해야 행운도 따라와요”라고 말했던가. 갈수록 고민이 많아진다는 이 최고 스타는 이제 또 어떤 결정으로 관객들을 기쁘게 해줄까. (2004년 2월 2일 영화배우 장동건 인터뷰)
이동진 기자는 장동건의 팬클럽 이름 ‘아도니스’에서 장동건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이끌어내며 기사를 시작한다. 또한 장동건이 겸손하다는 평에 이어 그의 말버릇까지 세심하게 잡아내어 인물 분석에 이용한다. 또 기사 마지막을 살펴보면 박진표 감독과 다르게 기자의 결론이 들어감을 알 수 있다(그리고 리뷰 기사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의문형으로 글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무리는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도 발견된다. 다음은 각 인터뷰 기사 끝부분이다.
10년쯤 지난 뒤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며 ‘아, 배우다!’라고 말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그에게 “그렇다면 지금 문근영은 배우인가?”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한 뒤) 배우가 되려는 학생이죠. 어쩌면 평생 배우가 아닐지도 몰라요. 사람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요. 아직은 학생이라고 구분짓고 싶어요. 그래도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니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려 해요. ” 단추 많은 분홍색 재킷을 입은 채 사진 촬영 소품으로 쓰려는 사탕을 입안에 넣고 아삭아삭 깨물어대는 이 ‘아이’는 벌써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를 다 마쳐가고 있었다. (2004년 3월 29일. 영화배우 문근영 인터뷰)
우리에겐 이제 뛰어난 작가의 ‘새로운 화풍’을 들뜬 심정으로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2003년 6월 23일. 김지운 감독 인터뷰)
그렇다. 선택도 노력도 행복도 모두 재능이다. 이 밝고 명민한 배우가 새로 열어젖힐 다음 4년은 또 무엇을 우리에게 재확인시켜줄까. ( 2003년 10월 17일. 영화배우 배두나 인터뷰)
어떤 배우에게 어떤 작품은 그의 연기 이력을 둘로 나누는 ‘비포 앤드 애프터’를 만든다. 김정은에게 ‘사랑니’가 그럴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흔쾌히 한 표! 지금 우리는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할 어느 재능 있는 배우가, 보호막이면서 굴레였던 하나의 알을 깨고 일어나, 이제 막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잖은가. (2005년 10월 5일. 김정은 인터뷰)
그는 영화 속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가장 달라보이는 배우 중 하나이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진지해서 당황스럽기까지 한 송강호는 밤새도록 이어지는 술자리에서조차 오로지 연기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거듭한다. 그래서 인터뷰 때 그로부터 듣게 되는 말은 간간이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농담이 아니라, 연기에 대해 오래 숙고한 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확신과 신중함으로 점철된 단단한 서언(誓言)들이다. 그는 “삼십대 후반부터 사십대 후반 정도까지가 연기자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이제 막 그 연령대에 도달하게 될 송강호의 경우는 어떨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꼬리를 무는 것은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라고 한 바이런의 말이다. 그의 지나온 궤적을 보면 그의 미래를 믿지 않을 수 없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송강호가 있어서 행복하다. (2003년 4월 24일. 영화배우 송강호 인터뷰)
저마다 다른 개성에도 불구하고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욕심쟁이’이거나 ‘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우석 감독은 둘 다이다. 생산성 높은 욕심쟁이이고 효율성 높게 독한 그는 ‘실미도’로 이제 막 또다른 단계에 진입했다. (2003년 10월 24일. 강우석 감독 인터뷰)
이 사람, 정말이지 모든 게 설경구스럽다. 스타에 대한 최소한의 자의식 없이 거칠고 솔직한 말투부터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 마시기를 즐기는 음주 스타일과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부르는 김광석 노래까지. “내 평생 라이벌은 김영호”라고 그는 말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대명사 김영호는 형용사 ‘설경구스러움’의 부분집합이 되고 말 터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2003년 12월 19일. 영화배우 설경구 인터뷰)
위의 예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물평 형식으로 된 기사에서 우리는 이동진 기자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를 느낄 수 있다. 한 영화가 개봉하면 배우나 감독들은 한꺼번에 많은 인터뷰를 하고 결국 비슷비슷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고 이런 것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다. 그러나 이동진 기자의 기사는 다르다. 사실 인터뷰이(interviewee)들의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동진 기자는 많은 것들을 끄집어낸다. 다른 기자들이 배우나 감독을 통해 영화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동진 기자는 반대로 영화를 통해 인물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위의 김정은과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3-2. 인물평 형식 인터뷰 기사에서도 나타나는 미려(美麗)한 문장
인터뷰 기사, 특히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인물평 형식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동진 기자의 미려(美麗)한 문장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다음은 설경구와의 인터뷰 기사 도입부이다. 영화 리뷰 기사처럼 리드에서 자신의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해 존 길거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배우 설경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참으로 문학적인 표현이다.
뛰어난 셰익스피어극 배우였던 존 길거드는 “연기란 절반은 부끄러움이요, 절반은 영광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자신을 잊어버릴 때 오는 영광”이라고 한 적이 있다. 말을 조금 바꾸어 보자. 설경구의 부끄러움은 충무로의 영광이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많은 배우들의 부끄러움이다. 그가 고함을 치거나 탄식을 발하고 나면, 삶이 포말로 부서진 자리에 언제나 영혼과 세월이 슬며시 내려앉는다.
3-3. 인터뷰이(interviewee)의 선택
이동진 기자의 인터뷰는 너무 인터뷰한 사람들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게 했었다. 물론 2004년 2월 18일에 실린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관련한 김하늘 인터뷰 기사에서 김하늘에 대해 “아무래도 솔직히 고백부터 해야겠다. 이제까지 개인적으로, 김하늘이란 ‘배우’의 연기에 온전히 몰입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예쁘다고 생각하거나 분위기 있다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말이다.”라고 서두를 쓰며 비판적으로 기사를 시작했지만 결국 그 것은 현재의 달라진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한 비판이었을 뿐이었다. 김동률 교수는 서울신문에 기고한 ‘인터뷰는 섹스와 같아야’라는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 인터뷰가 너무 칭찬일색의 주례사 인터뷰로 흐르는 것 같다는 걱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동진 기자는 어쩌면 인터뷰이(interviewee)를 선택할 때부터 자신이 긍정적으로 보는 배우나 감독들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그는 배두나와의 인터뷰 서두에 이렇게 썼다. “배우는 선택으로 말한다. 배우란 ‘왜’와 ‘어떻게’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고 할 때, 이미 고른 영화에서 연기를 해내는 방식이 ‘어떻게’에 해당한다면 어떤 작품을 할지 선택하는 것은 ‘왜’에 해당할 것이다. 결국 선택은 그 사람의 가치이고, 존재증명이다.”
어쩌면 기자도 이런 면에서 배우와 다를 바가 없다. 기자도 무엇에 대한 기사를 쓸지 선택하는 것은 ‘왜’에 해당하고 기사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써나갈지는 ‘어떻게’에 해당된다. 이동진 기자가 어떤 사람을 인터뷰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 것은 그의 가치의 반영이고, 존재 증명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평론가로서의 관점으로 볼 때 괜찮다고 생각한 배우 혹은 감독과 인터뷰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인터뷰이(interviewee)에 대한 호평 기사가 많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3-4. 새로운 시도, 독특한 형식
여기 이동진 기자가 쓴 독특한 인터뷰 기사가 있다. 2001년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8일까지 연재되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다. 인터뷰를 한 사람이 다음번에 인터뷰를 할 사람을 추천, 질문을 던지고 추천 받은 사람이 이에 답하는 이어달리기 같은 인터뷰였다. 이동진 기자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총 16회의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동진 기자가 매 인터뷰마다 형식을 바꿔 기사를 썼다는 점이다. 몇 개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박명천 CF감독(2001년 2월 22일) : 박명천 감독이 연출한 CF의 여주인공들이 박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는 가상 인터뷰 형식
1. 스물 직전-이동전화 TTL 광고 속 모델 임은경
―감독님 밑에서 이동전화 모델로 광고를 네 편 찍으면서 휴대폰이 잠깐이라도 나오는 게 한 편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
“영상엔 영상 어법이 따로 있는 거겠지 . 예전 청바지 광고 찍을 때 무명 모델을 썼더니 문의가 폭주했던 생각이 나서 호기심이 증폭되도록 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을 썼어.”
―감독님의 스무 살 이전은 어땠나요.
“중산층 가정에서 자유방임으로 자랐지 . 고교 때 검도부에 들어갔는데 담임선생님이 폭력 서클엔 왜 들어갔냐고 했던 게 생각나네. 우린 획일적인 삶의 기준 하에서 너무 비슷한 코스를 밟으며 사는 것 같아 .”
▶김영하 소설가(2001년 3월 1일): 김영하 씨가 쓴 소설 ‘아랑은 왜’ 속 문장을 물음으로 바꿔 질문.
-(사람들은 대체로 글쟁이들의 풍모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맞추고 싶지 않다. ‘아랑은 왜’ p71) 머리를 회색으로 물들이고 귀고리까지 한 모습이 의외다.
“작가는 자기가 사는 시대를 알 필요가 있다. 난 몸으로 익히는 스타일이다. 염색하는 기분을 알고 싶으면 염색해보는 거다. 패션을 바꾸면 생각도 바뀐다.
▶가수 윤수일(2001년 3월 15일) : 윤수일의 대표곡과 그 노래에 대해 기자가 가진 개인적 추억들을 연관시켜 질문.
◆1977년-‘사랑만은 않겠어요.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아이들은 모두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불렀다. 이 곡이 그해 최고인기가요로 뽑혀 그가 노래하던 기억이 난다.)
-데뷔 곡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는데.
“그무렵 첨단 유행이었던 고고 리듬을 가미한 새 트로트였다. 그땐 통기타 음악이 절정이었는데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헌의 ‘오동잎’과 함께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가요계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전통가요들이었지만 비트가 강한 ‘록가요’의 출현이었다.”
◆1983년-‘아파트’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에게 ‘아파트’는 젊음의 대명사였다. 누가 한 소절 부를라치면 나머지는 ‘으♥라으♥’를 외쳤고 어깨동무 준비를 했다.)
-‘아파트’는 오랜 세월 애창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인기가 폭발한 드문 예이다. 노래방이 없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학가에서 널리 불려진 것은 리듬과 선율이 쉽기 때문일 거다. 사실 그 노래는 5분 만에 작곡을 끝냈다.”
▶탤런트 김영철(2001년 3월 22일) : 한 연기자의 다섯 가지 감정, 혹은 그 감정들에 대한 인터뷰어(interviewer)의 다섯 가지 상념으로 주제를 나눠 인터뷰.
1.감사
“정말 고마운 건 연기자로서 지나온 삶이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청자의 사랑을 통해 승인받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한 분야의 일만 계속하고 살다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제 삶 전체에 의미가 부여된 것 같습니다.”
(감사의 본질은 외부에서 오는 은혜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함에 대한 고백이다. 진정으로 감사할 때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본다.)
▶배우·방송인 배유정(2001년 3월 29일):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직업별로 배유정을 하나씩 떼어내어 각자의 인물로 설정해 자기 자신을 말하는 형식으로 인터뷰.
⊙연극배우 배유정―요즘 난 ‘당신, 안녕’이란 연극에 빠져 있어. 4월 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계속되는 이 공연에서 난 권태에 지친 남편이 눈앞에서 자살하는 장면을 보는 50대 아내 역을 맡았지. (사진 촬영 때문에 무대 위 소품 의자 두개에 각각 멀찍이 떨어져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니 갑자기 인터뷰 자체가 연극처럼 느껴졌다.)
⊙통역사 배유정―대학 졸업이 다가오는데 난 취직은 죽어도 싫었어. 조직의 관료주의나 성차별을 못 참을 것 같았거든. 대학 내내 열심히 했던 건 영자신문사 기자 생활밖에 없었기에 얼떨결에 동시통역대학원으로 진학했지. 처음엔 통역사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어.
▶아나운서 이금희(2001년 5월 10일): 방송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에 착안, 시간의 조각을 점점 키워가며 살펴보는 그의 방송인생.
〈1〉 5분-허탈한 시간
“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요란하지만, 돌아서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방송은 끝내면 남는 게 없어 허전합니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5분도 안 돼서 세트를 부숴요. 그래서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지요. 진솔한 말과 삶의 체취는 마음에 오래 남으니까요.”(‘이럴 수가!’라는 뜻의 독일어 감탄사 ‘Ach, du liebe Zeit’를 그대로 번역하면 ‘아, 사랑하는 시간이여’의 뜻이다. 결국 탄식은 시간에 대한 것. 그러나 어떤 이들은 지나간 것에 대한 탄식 대신 소중했던 시간의 여운을 음미한다.
▶야구해설가 박노준(2001년 5월 17일): 서른아홉 살 박노준과 열아홉 살 박노준과의 가상 대화.
⊙서른아홉 박노준-“몸은 좀 괜찮아? 어떻게 그리 심하게 다친 거니?”
⊙열아홉 박노준-“몸이 딱딱하면 부상이 오잖아요.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운동으로 유연성을 길러야 했던 건데 그저 던지고 치는 연습만 했으니. 경기가 끝나면 얼음찜질을 해야 하는데 더운물에 찜질을 해서 오히려 몸을 악화시킨 일도 많았지요.”
▶가수 이문세(2001년 5월 24일): 그의 노래 가사들과 기자의 개인적 회고를 통해 그의 현재 생각을 묻는 형식.
1.콘서트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요즘도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난다. 군대 시절 밤참 라면을 끓일 때 늘 이문세 5집을 들었는데, 그 라면을 먹을쯤이면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
“지금 20개 도시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인 팬들에게 콘서트로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찾아주고 싶다. 콘서트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한 건 10여년 전, 결혼도 하고 대중들 관심도 줄면서 인기 거품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부터이다. 결국 음반과 콘서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거다.”(오늘도 나는 광야를 달린다/잊혀져가는 맑은 꿈을 찾아서-‘야생마’ 중)
▶‘명필름’ 대표 심재명(2001년 6월 15일): 인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가정하고 쓴 시나리오 형식의 인터뷰.
#2.담장 밑
일요일 오후 4시. 마당에 내놓은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던 카메라가 날렵하게 몸을 낮춰 심씨 얼굴로 다가가면.
⊙심재명-대학 졸업 후 서울극장 카피라이터 모집 공고를 봤어요. 어려서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잠시 멈춘 뒤) 실제 영화사는 냉혹한 곳이더군요. 전 영화를 만들 때 출발은 순수해도 제작만큼은 철저히 따져가며 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그때 배웠으니까요.
◆내레이션-몇 해 전 종로3가 지하도에서 우연히 그를 본 적이 있다.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을 꼼꼼히 뜯어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면 인사해야지, 생각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포스터에 붙박여있었다.
이동진 기자는 프랑스 문정참사관 미셸 귀요의 인터뷰를 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간 만났던 ‘성공한 사람들’ 16명의 공통점은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왔던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다. 부딪쳐오는 우연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대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생산성 높은 무목적성’이었고, 결과보단 과정이었다. 시리즈를 끝내며 떠오르는 건 영화 ‘베티 블루’의 내레이션이다. “베티는 이제 인생을 알기 시작한 거다. 침묵과 함께.”
16회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동진 기자가 내린 결론은 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그러한 통찰력은 사물 혹은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사색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것을 살펴봤을 때 그는 탁월한 인터뷰어(interviewer)임이 틀림없다.
< 정리하며 >
1. 객관성 vs 주관성
이동진 기자의 기사를 분석하면서 영화 관련 기사는 다른 분야의 기사들과는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다’라는 말은 영화 관련 기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기자의 의도가 잘 드러났으며, 주관성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체 또한 다른 분야의 기사들에 비해 부드럽고, 화려했다. 분석 초반에는 그러한 기사가 좋은 기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 리뷰 기사 하나, 인터뷰 기사 하나는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지는 못해도 독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를 분석해 나가면서 영화 관련 기사는 다른 분야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관련 기사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른 분야의 기사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다른 분야의 기사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소식을 전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주요한 쟁점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에 대한 리뷰 기사나 인터뷰 기사 등은 소식 전달보다는 분석이 그 중심에 있다. 분석을 하는 기자 역시 사람이기에 다른 분야에 비해서 주관성의 부분은 배제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시 의문점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과연 기자의 주관적인 부분을 독자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타당성이 있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의문을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풀 수 있었다. 이동진 기자는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1
그 기준을 바탕으로 그는 기사를 쓰고 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선보였던 것이다.
영화 관련 기사는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기사는 단순한 느낌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의 기준에 근거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수반된 기사였다.
2. 문체
앞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동진 기자의 기사는 그 문체가 화려했다. 다른 분야의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같은 영화 분야의 다른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도 그 문체적 특징이 뚜렷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영화 관련 기사가 연성기사에 속하는 부분이지만 꼭 그렇게 화려한 문체를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동진 기자의 기사를 분석하고, 그의 기사에 몰두하게 되면서 우리는 그 의문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기사를 보는 사람은 독자이다. 신문의 헤드(Head)를 따로 편집부에서 감각적인 말로 정하는 이유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화려한 문체 또한 독자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슨 영화가 개봉한다. 어디서 개봉한다. 주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뭐라더라’와 같이 건조한 문체로 소식을 전한다면 그 기사를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실의 전달과 함께 독자를 기사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화려한 문체가 한 몫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논설문보다 수필,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이유일 것이다. 물론, 영화라는 분야의 기사이기에 그러한 문체가 일정 정도 허용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기사를 한층 맛깔 나게 만들어준다.
기사가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사실에 접근하는 기자 개인의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라는 분야의 특수성은 그러한 명제를 조금은 뒤로 미뤄두게 만든다. 대신,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타당성을 근거로 해야 할 것이다.
이동진 기자의 기사를 분석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고민을 했다. 계속되는 분석,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는 우리의 고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기사를 보는 시각, 특히 영화 관련 기사를 보는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이동진 기자 인터뷰 >
“연수 기간 1년 동안 본 영화 편수가 모두 1017편입니다.” 조선일보의 이동진 기자. 영화전문기자이기에 영화를 많이 볼 것이고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만났지만 1017 이란 숫자는 너무도 컸다.
이동진 기자. 조선일보의 '영화전문기자‘로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위 말하는 ’스타기자‘이다. 그가 5년간 써 온 ‘씨네마레터’라는 칼럼은 벌써 두 권의 책이 되어 나와 있고, 그는 신문 외에도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로써 우리와 접촉하고 있다. TV에도 가끔 출연한다. 심지어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지면 광고에서는 왕관을 쓰고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를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영 화전문기자로 만들었을까?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영화인 시대에 그 중심에 서있는 사람, 이동진 기자가 더욱 궁금해졌다.
“저는 entertainment부 소속입니다. 제가 얼마나 entertain적인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이동진 기자. 하지만 그의 말에서는 편안함과 유쾌함이 묻어났다. 다음은 이동진 기자와의 entertain적인 만남.
◆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다.
- 기자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종교학 공부를 계속 하려고 했었고, 심지어는 유학자금까지 모아놨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갔다가 어떤 개인적인 큰 계기가 있었고, 그래서 공부를 포기했어요. 공부를 포기하고 뭘 해야 하나 1년 정도 방황하다가 4학년이 될 쯤 기자를 선택했어요. 차선책으로 한 거죠.
- 기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공부 안 하길 잘 했단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 한 학기를 출강한 적이 있는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있지만 그걸 내가 실제로 했을 때 과연 보람을 얻고,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기자가 최선이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제 식으로 말하면 ‘차악’은 되는 것 같아요. 사는 게 최악이 아니라 차악만 골라 가도 괜찮은 인생인 것 같아요.
- 최근에 연수를 다녀오셨는데 연수 이후에 기사 쓰는 것에서 달라진 것이 있나요?
시네마레터 칼럼은 안 달라진 것 같고, 리뷰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글이 이성적이 됐다고 해야하나. 조금 딱딱해졌죠. 소위 말하는 ‘기름기’가 좀 빠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사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단점은 다른 분들이 말씀하시는 소위 ‘이동진스러움’이 좀 더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구요. 장점은 훨씬 더 가이드에 충실한 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기자는 정직해야 한다.
- 영화전문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첫째, 영화전문기자니까 영화에 대한 전문성이 첫째죠. 여기서 전문성이란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영화를 얼마나 잘 아느냐를 말하죠. 미학적인 식견, 영화사,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등등. 이게 첫 번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글쓰기 능력. 글쓰기 능력은 생각보다 중요해요. 왜냐하면 영화기자는 영화를 보고서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자기의 감상을 외화하는 거잖아요.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죠. 영화를 찍는 사람이 카메라를 잘 알고, 조명을 잘 알아야 되는 것처럼, 기자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쓰는 글, 자기의 수단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휘두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정직성. 다른 말로 도덕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옛날에는 정직성이라는 게 촌지의 문제였는데, 요즘 촌지 받는 기자 없잖아요. 그런 정직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정직성이죠. 자기가 본 바를 크게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자기 직업적인 윤리를 가지고 글을 써내려갈 수 있어야 해요. 그럴 수 없으면 기자 그만 둬야죠.
- 기사를 쓸 때마다 정직하려 해도 영화계에서의 개인적인 친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영화를 쓸 때 거의 매순간 이를 악물고 써요. 그렇지 않으면 그 기자 혹은 그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신뢰를 가질 수 없게 되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이명세 감독을 무척이나 존경해요. 꽤 오래 전부터 그 분 영화에 열광했어요. 그리고는 올해 ‘형사’가 나왔는데 제가 기대했던 정도는 아니었죠. 그럴 때, 제가 만약 안 좋은 평을 쓰면 사실 인간적으로 어렵게 되거든요. 이명세 감독하곤 거의 7, 8년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데, ‘형사’에 대한 제 리뷰와 평가로 인해서 약간 껄끄러워졌어요. 그 사람과의 관계, 심지어는 인간관계 전반까지 파탄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직업윤리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죠.
◆ 나는 작품을 통해 본다.
- 인터뷰 대상은 어떻게 선정하는가?
문화부 쪽의 기사는 일단 인터뷰 대상을 고르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 대한 선호가 있어요. 대중의 요구이든, 기자 개인의 판단이든 간에 선호의 감정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내사랑 싸가지’를 보고나서는 김재원 인터뷰를 안 해요. 왜냐하면 할 필요가 없잖아요. 신문을 통해 제가 특정인의 연기에 대해 화를 풀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 사람은 그냥 잘못된 영화에 나와서 잘못된 연기를 했을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애초에 어떤 배우나 감독을 인터뷰할 때, 인터뷰하는 자체가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인정이 들어가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래요. 하다못해 그 사람에 대한 인기라도 인정을 하고 들어가요.
- 최근의 인터뷰 기사 중 배우 김정은과 관련한 인터뷰 기사는 김정은을 너무도 좋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칭찬 일변도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사랑니’라는 영화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를 정말 탁월하게 영화적으로 잡아낸 부분이 있어요. 김정은이 몇몇 장면에서 정말 닭살이기는 하죠. 예를 들어, 이어폰 하나씩 꽂고 김정은이랑 고등학교 애랑 ‘투 헤븐’ 부르는 장면, 너무 닭살이죠. ‘김정은스러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연기는 ‘저 배우가 저렇게까지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고 노력을 하는구나’ ‘서른 살의 나날의 한 순간을 나름대로 대단히 뛰어나게 잡아냈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해요. 자연스럽게 김정은이 궁금해졌고,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김정은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인 선호는 전혀 없어요. 그리고 편견도 없어요. 인터뷰 당시 김정은의 인터뷰 태도는 훌륭했어요. 물론 인터뷰 태도가 훌륭했다고 호감을 갖고 쓴 것은 아니에요. 이미 영화 ‘사랑니’에서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 적극적인 평가를 하고 시작을 한 거거든요. 그래서 기사가 그렇게 된 거예요.
-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영화를 통해서 배우를 이해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에요. 저는 작품을 통해서 배우를 봐요.
- 하지만 연예계가 뒷소문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법도 한데요.
예를 들어, 김정은 씨가 실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난 관심 없어요. 나는 연기자로 만날 뿐이니까요. 그 사람의 사생활이 어떤지도 관심 없어요. 물론, 기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쁜 여자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은 들죠.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영향을 받는 일은 없어요.
- 예전에 이영애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영애의 미모를 칭찬한 문구가 기억나는데요. 말이 많지 않았나요?
그것도 예쁜 꽃 보고 ‘아, 예쁘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가장 일차적인 감정이거든요. 그냥 이영애가 예쁘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예쁜 건 사실이잖아요.
사실, 인터뷰 대상에 대한 대중의 편견이 있어요. 예를 들어, 문근영에 대해서 호평을 많이 하면 사람들의 기사 반응이 너무 좋아요. 문근영은 ‘국민 여동생’이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김정은에 대해서 호평을 하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죠. 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가 최근에 쓴 기사 중에 추천수가 제일 낮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쓴 다른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그 인터뷰 기사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 영화를 더욱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우보다는 감독을 인터뷰하는 것이 더욱 나은 방법일텐데요.
사실 ‘사랑니’에 관한 인터뷰는 정지우 감독을 더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대중신문으로서의 한계가 있어요. 한 영화에 대해서 인터뷰를 두 사람, 세 사람 못하거든요. 신문의 지면이 한계가 있잖아요. ‘배우를 인터뷰할까, 감독을 인터뷰할까’에는 상업적인 타협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 ‘사랑니’처럼 감독을 인터뷰하고 싶지만 배우로 출연한 김정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면 김정은을 하는 것이고, ‘형사’처럼 ‘이 영화는 아무리 그래도 감독의 영화야’라고 생각되면 감독을 인터뷰하는 거겠죠.
◆ 전문적 아마추어
- 영화 관련 리뷰 기사를 쓰는데 나름의 원칙이 있을텐데.
저는 영화기자로서 저널리즘 비평을 하잖아요. 제가 쓰는 게 비평의 정도(正道)는 아니에요. 단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 최초의 제 감정에 대해서 제가 책임지고 싶어요.
- 전문적 아마추어라는 말을 하시곤 하는데 그것과 연관된 것인가요?
네, 바로 그런 표현인데요. ‘사랑니’라는 영화를 봤어요. 저는 그 영화가 대단히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탁월한 리듬을 가졌고, 훌륭한 연기 디렉션도 갖고 있고, 편집력 까지도 다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문제도 있겠죠. 어쨌든, 보고 났을 때 드는 최초의 느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아, 영화 괜찮다’ 혹은 ‘아, 이 영화 정말 아니다’ 이런 느낌이 같은 것이죠. 그에 대해서 나는 독자를 설득시켜야 해요. 설득시키기 위해서 저는 제 스스로 자문을 하죠. ‘아, 영화가 참 좋네, 근데 왜 좋지?’ 라고 제가 생각해보는 거예요.
- 하지만 비판을 할 때 그 강도가 다른 기자들에 비해 약한 것 같습니다. 너무 좋게 봐주는 것은 아닌가요?
영화 ‘야수와 미녀’는 그리 권할만한 영화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일단 그 영화에도 류승범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어떤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고, 관객들도 재미없게 보진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 야수와 미녀를 재밌게 봤다는 사람이 많아요.
리뷰 기사의 경우 장점과 단점, 양쪽을 다 짚어주기 때문에 기사가 그나마 덜 심하게 되죠. 영화를 평가할 때 가급적 너무 직설적인 말로 상처를 주려하진 않아요. 영화가 너무 심하게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저도 제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기왕이면 나의 어떤 주관적인 편견 때문에 상처를 안주려고 해요. 그런 노력은 하는데,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거죠.
◆ 형식은 이데올로기의 VECTOR다.
- 인터뷰 기사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뉩니다. 배우는 인물평의 형식을, 감독은 일문일답 형식으로 쓰시던데. 특별히 기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인가요?
기준은 없어요. 일반적으로 배우 인터뷰는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하잖아요. 웬만한 배우들은 개봉 전 인터뷰를 수십 건을 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터뷰만 하죠. 생각해보세요. 인터뷰를 하는데 질문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어요? “오늘 속옷 색깔이 뭐예요?” 그걸 묻지 않는 이상 다들 같은 질문을 해요. 그렇게 되면 기계적인 대답만 나오게 되죠. 배우들은 자신의 인터뷰 기사도 다 읽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인터뷰 대상자 스스로도 안 읽는 인터뷰를 기자가 하는 거죠. 사실 배우들과 인터뷰 안 하고 싶어요. 그런데 해야 되요. 대중은 그걸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배우에 대해서는 묘사를 할 수밖에 없어요. 문답은 재미없는 경우가 많아요. 다 똑같은 말을 외우다시피 반복하거든요. 그래서 배우를 인터뷰할 때는 말을 조금 넣고, 스타일을 풀어서 그 사람에 대한 느낌 자체를 전달하고, 연기에 대한 평가 자체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감독은 인터뷰를 하고 나면 나오는 이야기가 더 많다는 건가요?
감독의 경우에는 얘기가 잘 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감독들 중에 말 잘하는 분들 많아요.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 같은 분은 말한 것을 그대로 다 쓰면 그게 기사가 되요. 근데 거기다 대고 ‘박찬욱 감독이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뭘 뽑았는지.’를 쓸 필요가 있나요.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얘기를 그대로 옮겨주는 것, 제대로 옮겨주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독은 문답의 경우가 많아요.
- 글의 문체에서 ‘~하지 않을까’와 같은 의문형이 눈길을 끕니다. 그런 문체적 특징은 어떻게 해서 쓰게 됐는지.
칼럼에서는 의문형을 일부러 많이 쓰고 있어요. 리뷰에서는 일부러 많이 쓰는 건 아닌데 지금 생각하니까 초반에 그랬던 것 같네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제 개인적인 성격의 특징상 단정적인 표현을 안 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떤 영화가 재미없고 나쁘잖아요? 그럴 때 저는 가급적 ‘나빠’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아요. 영화라는 것은 보는 층위가 다른 거니까요.
- 의문형 문체를 통해서 의도하는 것이 있는 건가요?
아까 말했듯이 비평을 쓸 때 난 최초에 본 감정에 책임지고 싶을 뿐이고, 그 감정을 상대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을 뿐이에요. 관객들이 봤을 때, 절대적인 지표로 삼기를 원하지도 않아요. 다만, ‘아, 이 영화가 이렇구나’라고 참고삼아 한 번 듣는 기분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참 좋겠어요. 의문형으로 쓰는 건 그런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 의문형 문체 외에도 비평을 할 때 ‘그래도’, ‘그러나’라는 접속어도 눈길을 끕니다. 일종의 전환인데.
모든 영화에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 걸 조금이라도 짚어주려고 하죠.
그런데 글도 글 자체의 생명력이 있어서 컨트롤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영화 비평 기사도 그 자체의 논리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여러 번 꺾을 수가 없어요. 일단 방향을 잡고 나가게 되면 기사가 자기자신의 논리대로 나가는 게 있거든요.
사실 한참 영화를 비판한 후에 ‘그러나’라는 말과 함께 이런 게 좋고 이런 게 좋다고 쓰면 글 자체의 힘이 많이 떨어져요. 기사의 호흡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렇게 안 쓰려고 노력을 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칠 수 없는 영화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죠.
- 의외의 답입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쓴 리뷰 중에서 하나씩 예를 들어준다면.
예를 들어, ‘야수와 미녀‘ 리뷰는 제가 쓴 기사지만 맘에 별로 안 들어요. 어떤 글은 쓰고 제 맘에 드는 기사가 있어요. 최근의 예를 들면, ’사랑해 말순씨‘ 리뷰는 비교적 제 맘에 들었던 경우입니다.
- 2001년도부터 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 그 기사에서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셨는데요.
제가 기자 생활이 13년짼데, 하다보면 제 스스로 지겨워져요. 모든 직업에는 권태가 있잖아요. 제 스스로 좀 덜 지겨워지려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해요. 시네마레터라는 칼럼을 제가 거의 10년 가까이 썼는데요, 세상에 그 주제가 많아봤자 100개 정도 밖에 더 되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미 100번 이상의 칼럼을 썼거든요. 남들이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칼럼을 쓰더라도 제 개인적으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 오늘 시네마레터 칼럼을 보니 (성) 체위에 대한 걸 쓰셨는데요.(인터뷰 당일 발간된 내용이었다) 좀 신선했습니다.
시네마레터라고 포장은 됐지만 체위 얘기를 신문에 쓴다는 건 그동안의 설정이나 이미지로 봐서는 확 깨는 소재일 수 있잖아요.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좀 다르게 쓰고 싶어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도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것인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는 시작할 때 작심하고 썼어요. 이걸 10번을 하든, 100번을 하든 모든 형식을 다 달리 한 번 써보자고. 딴에는 만용을 부렸죠. 반만 통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 시리즈는 딱 괜찮을 때 끝난 것 같아요. 제 스스로를 테스트할 수도 있었구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알게 됐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독자들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잘 끝난 것 같아요.
-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함 포템킨’의 감독 에이젠슈테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현실은 이데올로기의 VECTOR다.’ 저는 그 말의 신봉자예요. 저는 형식주의자예요. 기사가 예술은 아니죠. 하지만 창작품에 있어서 내용보다 형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 너무나 예쁜 모델이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 모델을 그렸다는 것 자체가 뭐가 중요해요? 근데 그것을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사람은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진 모습으로, 벌린 입만 가지고 그린단 말이에요. 라파엘로 같은 사람이 그렸으면 근사하게 그렸겠죠. 그런 차이에서 드러나는 형식이 중요한 거지, 그 모델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형식주의자예요.
영화 하나에 대한 리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독자들의 리뷰를 포함에서 모르긴 몰라도 한 1000개는 있을 거예요. 그래서 기왕이면 다르게 쓰고 싶어요. 다루는 내용이 뭐 그리 다르겠어요? 형식이 다른 거 아니겠어요? 넓은 의미에서 형식은 문체도 들어가거든요. 문체도 형식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저는 형식주의자고, 그런 의미에서 형식이 내용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진정으로 기자가 되기를 원하는지 자문해보라.
- 기자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가요?
기자는 대단히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상대적으로 권태가 적은 직업이고, 재미있는 직업이에요. 아침에 출근해서는 ‘아, 언제 퇴근하나’라고 생각하며 허벅지 찔러가면서 버텨야 되는 직장은 진짜 괴롭거든요.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해요. 돈도 엄청나게 중요하죠. 그런데 사람이 돈만 가지고 살 순 없잖아요. 직업이라는 게 경제적으로는 어떤 최소한의 pay가 있어야 되지만, 그 이후에는 권태가 없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기자는 권태가 상대적으로 상당히 적은 직업이에요. 일단,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갈 때까지 ‘아 심심해 죽겠다’라는 순간이 제 경우에는 단 한 순간도 없어요.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 할 새가 없어요. 매 순간 ‘아, 재밌다’ 이러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지나고 나면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
- 기자가 되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세상에 어느 직업이 이처럼 재미있을까 싶기도 해요. 뭘 해도 스트레스 받고 너무 괴로운데, 어찌됐든 최소한 지루하진 않아요. 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문적인 아마추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 좋은 점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단점이라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보다 핸디캡이 있어요. 제 경우에는 주5일 근무를 하고는 있지만, 일요일에 근무를 한 게 지금 6주 연속이에요. 이번 주는 어떻게 쉬어볼까를 필사적으로 생각중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일요일은 근무하면 정상 근무거든요. 똑같이 밤 10시, 11시, 12시에 들어가요. 일주일에 집에서 밥 먹는 날이 하루 있을까 말까에요. 상대적으로 늘 가족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로는 일찍 죽어요. 통계적으로 일찍 죽어요.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는데 오래 살면은, 그게 이상한 거잖아요. 예전에 한 통계에서 성직자의 평균 수명과 기자의 평균 수명이 20년이 차이가 났었어요. 약간 쇼크였는데, 재밌는 대신에 자기 인생을 당겨서 쓰는 셈이죠. 그러니까 오래 살고 싶으면 기자하면 안 돼요.
- 기자 생활을 한지 10년이 넘으셨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위치나, 일하는 환경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나요?
90년대 중반에는 영화 기자가 소위 특권층이었어요. 그런데 2005년의 기자는 별로 특권층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말로 하면 끽해야 전문인? 근데, 굳이 선택하면 저는 지금이 좋아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영화 기사 하나를 쓰잖아요, 그러면 청탁부터, 촌지를 제공하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까지 참 많았어요. 촌지를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협박도 무서웠죠. 한국 영화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쓰면, 다음 날 전화가 와서는 소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협박을 하죠.
- 영향력이 그렇게 대단했단 말인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기자의 영향력이 지금보다는 그 때가 훨씬 컸을 거예요. 그 때는 인터넷 매체도 없었고, 영화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하는 매체도 사실 거의 없었으니까요. 신문의 위력도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구요. 요즘은 영화 평론가가 뭐라 그랬든 무슨 영향이 있어요? 그런 걸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영향력이 있는 거잖아요. 신문도 그런 것 같아요. 쉽게 얘기하면 덜 귀찮아졌어요. 만나자, 밥 먹자하는 사람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기사에 일희일비하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줄었어요. 영향력이 줄어서 행복해요, 진짜로. 내가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여지가 지금 더 커졌거든요. 그런 차이가 있네요. 다른 기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작아진 영향력이 더 좋다는 말인가요? 조금 의외입니다.
지금 저는 상대적인 영향력이 큰 거지, 절대적인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이 작은 영향력이 너무 좋아요. 근데 여기서 너무 줄어서, 내 기사를 한 일곱 명쯤 본다. 그러면 이제 또 그 때부터 괴롭겠죠. 근데 일곱 명이 보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700명은 볼 거 아니에요. 그럼 된 거지요.
- 기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자되기가 쉬워졌죠. 매체에 따라 다르잖아요. 어떤 기자는 굉장히 되기 쉽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기자가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정말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순간순간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일단, 자기 재능에 대한 좌절, 그거 무시 못해요. 혹은 인간 갈등, 가정에 대한 갈등 같은 수많은 갈등, 스트레스가 있는데,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자를 할 만큼 강렬하게 기자를 원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어요. 거기서 스스로 통과가 안 되면, 골프에 비유하자면 컷 오프가 되요. 어떻게 하든 컷오프가 되게 돼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자가 하고 싶다‘라고 스스로 판단이 됐다면 그때부터 어떻게 기자가 될지를 고민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