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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휘이잉~. 차가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세찬 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왠지 무서운 느낌에 살며시 눈을 뜨니 방구석에 귀신의 얼굴이 보인다. “꺄악!”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황급히 불을 켰지만 벽에 생긴 얼룩일 뿐이었다. 다시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벽의 얼룩은 계속 얼굴처럼 보이고 예전에 지금과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기분도 든다. 도대체 왜 이러지?
뇌? 뇌! 인터넷에 접속해 조사를 해 보자. 클릭 클릭. 엥? 벽의 얼룩이 얼굴로 보이고 지금 벌어지는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뇌의 착각이라고?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잖아. 이런 뇌가 착각을 해도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네. 먼저 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뇌, 넌 도대체 뭐니?
보고 듣고 느끼고 울고 웃고 상상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만 뇌를 쓴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 분, 일 초도 뇌를 쓰지 않는 때가 없어. 계속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도,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사랑에 빠지는 것도 뇌 덕분이야. 또 뇌는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상상할 수 있지. 꿈도 뇌의 작용이란다. 뇌는 우리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야.
말캉말캉 분홍이
뇌는 우리 주먹 두 개를 붙여 놓은 크기야. 생각보다 작지? 생김새는 호두처럼 많은 주름을 가진 둥그런 모양이야. 뇌를 노란색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 머릿속에 살아 있는 뇌는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분홍빛을 띠고 있단다. 게다가 젤리처럼 말캉말캉한 연약한 기관이지. 그래서 단단한 머리뼈와 뇌막이라는 가죽 같은 조직이 뇌를 감싸서 보호하고 있단다.
뇌의 구조 뇌는 여러 가지 부분으로 나뉘지. 대뇌, 소뇌, 뇌간은 물론 시상, 시상하부, 해마 등등 중요한 부분들로 가득해. 그림으로 꼼꼼하게 들여다 볼까?
뇌, 요긴 요일 조긴 조일! 뇌의 각 부위는 하는 일이 모두 달라. 좌뇌와 우뇌는 이마엽, 관자엽, 마루엽, 뒤통수엽으로 나뉘는데 이마엽은 추리와 기억, 말을 담당하고 있어. 한 마디로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들어 있는 공간이지. 관자엽은 듣고, 맛보고, 냄새를 느낄 수 있게 해 줘. 뒤통수엽은 볼 수 있게 해 주고 본 정보들을 정리한단다. 마루엽은 손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각을 담당하며,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본 정보들을 결합해 하나로 만들어. 또 거리를 판단해 우리가 다른 물체에 부딪히지 않게 해 준단다.
대뇌 뒤쪽의 소뇌는 몸의 움직임을 조절해. 팔을 흔들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도 소뇌의 명령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근육을 움직이는 일은 소뇌가 하는 일이라고 보면 돼. 말할 때 입술과 혀를 어떻게 움직일지 정하는 것도 소뇌란다. 뇌간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을 몇 번 쉴지, 심장이 몇 번 뛸지, 언제 눈을 깜빡일지 정해. 체온을 유지하고 소화를 시키는 역할도 하지. 한마디로 생명 유지 명령기관이야.
뇌의 중간에는 기억을 분류하고 저장하는 해마, 울고 웃고 화나고 무서운 느낌 같은 감정을 만드는 편도, 가장 원시적인 감각인 후각을 담당하는 후각구가 있어. 이 세 가지를 통틀어 변연계라고 한단다. 변연계 안쪽에는 시상과 시상하부가 있는데 시상은 몸의 신호를 뇌로 보내고 뇌의 신호를 몸으로 보내는 역할이야. 시상하부는 우리 몸의 내부 시계라고 생각하면 돼. 언제 자고 일어나며 먹고 마실지 알려 주지. 시상하부에는 조그맣게 앞쪽에는 뇌하수체, 뒤쪽에는 송과선이 달려 있어. 뇌하수체는 호르몬을 분비해 아기가 어른으로 자라게 해. 송과선은 눈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낮인지 밤인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제3의 눈으로 불린단다. 뇌가 이렇게 많은 부분으로 이뤄지고 많은 일을 한다니 정말 신기하지?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될까? 나의 모든 것을 조정하는 뇌.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야? 왜 벽의 얼룩이 귀신 얼굴로 보이는 거야! 어? 잘못 보고 착각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정말 보이는 대로 믿으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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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인면어. ②노린재 등의 무늬일 뿐이지만 사람 얼굴로 보인다. ③1976년 나사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찍은 화성 사진에 나타난 얼굴 모습. | 점 세 개면 사람 얼굴
벽에 있는 점 세 개 얼룩이 모이면 사람 얼굴로 보여. 모양과 위치에 따라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해. 인터넷에 화제가 된 인면어도 물고기 얼굴에 그냥 무늬가 있을 뿐인데 사람 얼굴로 보이지. 1976년 나사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찍은 화성 사진에 나타난 얼굴도 사실은 평범한 지형일 뿐이었어.
왜 얼굴도 아닌 것이 얼굴처럼 보이는 걸까? 이건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상대의 얼굴을 재빨리 인식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래. 눈앞에 보이는 대상이 사람인지 아닌지, 낯선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해치려고 하는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빨리 알아채는 것이 살아남는 데 중요했다는 거야. 이러다 보니 사람이 아닌 물체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찾는 거지.
실제로 태어난 지 9분밖에 안 된 아기에게 무늬 없는 도형과 사람 얼굴 무늬의 도형을 보여 주면 사람 얼굴 무늬의 도형에 반응한다고 해. 이렇게 얼굴이 아닌데도 얼굴로 보는 착각은 뇌가 잘못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야.
어? 정말 같아?
어때? 윗 그림의 ㉠과 ㉡, ㉢과 ㉣이 같아 보이니, 다르게 보이니? ㉤과 ㉥은 어떤 색으로 보이니? 실제로 ㉠과 ㉡, ㉢과 ㉣은 같은 길이의 선이지만 주변의 선 때문에 길이가 다르게 보여. ㉤과 ㉥은 같은 색이지만 ㉥이 그림자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지. 배경을 가리고 보면 같은 길이와 색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길이와 색이 같다는 걸 알아도 다시 배경과 함께 보면 다르게 보이지? 우리가 도형이나 물체를 볼 때 그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배경과 비교해 길이나 색을 판단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깨닫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과 동시에 뇌에 저장되어 있던 여러 가지 정보들이 더해져 보이는 것을 판단한다는 증거란다.
이런 착시는 다양한 곳에 이용되고 있어. 예를 들면 같은 사람인데도 옷의 무늬나 모양에 따라 더 날씬하거나 뚱뚱해 보이기도 하잖아. 날씬해 보이고 싶다면 세로선의 옷을 입어 봐. 시선을 끌어내려 더 크고 날씬해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단다.
사랑은 착각? 휴~. 벽의 얼룩이 뇌의 착각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착각이라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놓이네. 그런데 아직도 잠은 오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FT아일랜드 오빠들 홈페이지나 들어가 볼까? 아앗! 내가 사랑하는 홍기 오빠가 팔을 다쳤다고? 마음이 너무 아파.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정말? 영국 런던대학교의 신경과학자 타니아 싱어 박사 연구팀은 16쌍의 연인을 모집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다른 연인도 아픔을 느끼는지 실험을 했어. 먼저 각 여성의 손등에 짧은 전기충격을 주어 아픔을 느끼게 했어. 이 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여성의 뇌를 찍어 고통에 반응하는 뇌 부위들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았지. 다음에는 사랑하는 남성의 손등에 전기충격을 주는 것을 여성이 보게 하면서 여성의 뇌를 찍어 보았어. 그랬더니 여성은 자신이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을 때처럼 고통을 느끼는 뇌 부위가 활발해졌어. 연인의 고통을 보기만 해도 자신의 뇌가 고통을 느끼는 거지. 오빠가 아프니 나도 아픈 것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오빠 나를 위해서라도 어서 나아 줘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 뇌의 특정 부위에 혈액이 몰릴 때 자기장의 변화를 감지해 그 부위를 마치 불이 켜진 것처럼 보여 주는 장치. 어떤 부위가 밝은지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 낼 수 있다.
이남석 박사님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착각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떨리지만, 반대로 가슴이 떨리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의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 박사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어요. 바로 불안한 구름다리 위에서 만난 사람과 안정적인 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사람 중 어떤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가질까에 대한 실험이랍니다.
캐나다에 있는 카필라노 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절벽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로 지은 다리예요. 높은 구름다리는 불안한 느낌을 주고 나무다리는 높이가 낮아 안정감을 주지요. 박사들은 여자에게 다리를 건너는 남자들의 설문을 받아오게 했어요. 물론 설문은 엉뚱한 내용이었지요. 설문이 모두 끝나면 질문지를 찢어서 여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면서 설문 결과가 궁금하면 연락하라고 말하게 했답니다. 그 결과 구름다리 위에서 설문을 한 남자들이 나무다리에서 설문을 한 남자보다 8배나 더 많이 전화했어요. 정말로 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를 한 거 아니냐고요? 똑같은 설문을 남자가 하면 결과를 묻는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요. 결국 안정적인 다리보다 불안한 다리 위에서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 남자가 8배 많았다는 거예요.
미국의 뉴욕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의 실험도 무척 재미있어요. 그는 남자들에게 여자 사진 10장을 보여 주면서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들려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심장박동 소리는 빠르기가 다르게 녹음된 가짜였지요. 많은 남성들이 비록 가짜였지만 자신의 심장박동이 빨라진 것처럼 들린 여자의 사진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대답했어요. 두 실험은 어떤 상황 때문에 가슴이 떨리는 것을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어요.
친구들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구름다리나 놀이동산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에서 고백해보세요. 착각 덕분에 사랑이 이뤄질지도 몰라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