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일본리포트] 일본에도 '로또 열풍'
2003-02-18 11:19
'대박 꿈' 한국서 자극 … 공짜 심리 '일심동체'
며칠 전 서울에서 온 손님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가다 깜짝 놀랄
광경을 발견했다. 웬 40대의 남자가 앉아서 연필로 뭔가 열심히 선을
긋고 있었다.
사실 난 그 중년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손님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일본에도 로또 복권이 있어요?"
그 때서야 나는 귀가 번쩍 트였다. 그 유명한 로또 복권이 일본
에도 있다구? 처음 듣는 소리에 나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 남자
에게로 갔다.
사실 우린 일본에 있기 때문에 친지와 뉴스를 통해서만 한국의
로또 복권 열풍을 알았지 실제로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눈 앞의 중년 남자가 열심히 선을 긋고 있는 그 종이가 바로
로또 복권이란다. 그러고 보니 로또 복권이라고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얼마 전 1등 당첨금액이 800억원이 넘는다고 한국이 복권 열풍에
휩싸여 있을 때 일본 언론들도 덩달아 바빴다. 왜냐하면 흥분에 들뜬
한국인들의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하루 종일 방송했기 때문이다. 덕분
에 우리는 추첨하는 날 앉아서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로또 복권이 일본에도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일본에서 생활한 이후 그 어떤 복권이든
전철 안에서 복권을 긁는 일본인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중년 신사는 너무나도 열심히 그 로또 복권에 선을 긋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의 로또 복권 열풍이 일본에까지 번진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이튿날 저녁 일본에 사는 후배와 함께 복권을 파는 곳
으로 갔다. 하지만 로또 복권을 살 수가 없었다. 다른 복권은 파는데
로또 복권만은 7시 이후에는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복권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다시 그 이튿날 가 보았다. 그랬더니 복권을 파는 50대 아줌마가
깔깔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아니 며칠 전부터 왜 그렇게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이 많아."
그래서 내가 냉큼 물어 보았다.
"한국인이에요, 일본인이에요?"
"아이쿠 물론 일본인이지. 근데 며칠 전부터 로또 복권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부쩍 늘었어. 그다지 인기 없던 복권이었는데.
아마도 한국의 로또 바람이 여기 일본에까지 온 모양이야."
"한국의 로또 붐을 아세요?"
"그럼 알고 말고. 로또 복권을 사가면서 한국에서처럼 대박이 안
터지나 농담을 하면서 사가는데."
세상에. 자극을 받을 게 없어서 한국의 로또 열풍을 자극 받다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한 술 더 떴다.
"당신도 그래서 로또 복권 사러 온 것 아니우? 하긴 나도 그래서
몇 장 써 넣었긴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로또 복권에 대한 한국의 열풍 뉴스가 나가고
난 뒤, 도쿄 시내의 로또 복권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일본 친구들도 여럿 로또 복권을 샀다. 물론 한국 뉴스를
보고 산 것이었다.
대개 일본인들은 연말에 집중적으로 복권을 산다. 3억엔이 당첨
금액인 연말의 복권이 가장 인기가 있는데, 몇 번 당첨자를 낸 적이
있는 신바시나 유락조 역 일대에는 수 백 미터씩 줄을 서서 복권을
사기도 한다. 복권을 사는 이들은 대부분 화이트 칼라의 샐러리맨들.
하지만 한국처럼 수백, 수십 만원의 거금을 들여 복권을 사는 이는
거의 없다. 일본의 국민성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 사고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일한 만큼 대가를 바라는 의식
구조가 배어 있기 때문에 복권에 목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로또 복권만은 예외인 모양이다. 한국인의 과열된
로또 열풍을 보고 자극을 받아 많은 일본인들이 로또 복권을 샀으니
말이다.
아무튼 공짜 심리만큼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yoo jae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