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한 믿음의 자매가 메일로 보내온 질문에 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관한 이해는 비단 이 믿음의 한 자매 뿐만이 아니라 더욱 많은 분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매의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도 올립니다. 다만, 이번의 글은 성화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잘 정리하여서 쓴 것이 아니라, 자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답변으로 한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후에 시간이 허락이 되면, 자세히 다루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자매와 메일로 받은 질문의 내용과 이에 사적으로 나눈 대화적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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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화에 관하여"
님이여!, 성화에 대해서 질문하셨네요. 이 질문 참 많이 하는 건데.....그만큼 의문이 많게 우리네 교회가 잘못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랍니다. 여기에 대해선 언제 글을 써서 개혁주의신앙공동체에 올려 놓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자매님이 궁금하니까 그 갈증이라도 해소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이야기 해 드릴께요. 그런 후 기회가 되면 자세히 그 부분을 다루어서 올려 놓지요.
성화란 말 한문을 그대로를 풀면 "거룩한 변화"이잖아요? 우리가 이 단어에서 쉽게 갖는 어감과 그 분위기는 "거룩하게 변화 받았음"보다는 "거룩하게 변화 받음"이라는 현재적인 면과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야 함"이라는 미래적인 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성화에 사용되는 단어의 뜻 자체는 "변화"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단지 "거룩케 하다"(to sanctify)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화란 뜻을 "---케 하다"라고 하니까 마치 "내가(성도가)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성화란 말 자체는 일차적으로는 "우리는 "이미" 거룩하여진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요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구주)로 믿는 믿음에 있을 때 죄 사함을 받았으며 이는 곧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뜻하고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룩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6절에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소유된 자"의 개념을 성도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과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만 이는 역설적인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이며 이런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 이 자를 성도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성도'란 말과 '성화' 또는 '성화 된 자'란 말과는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용어에 혼돈속에 있어 성화란 말을 들으면 "아!,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는 이미 거룩하여진 자, 그러니까 성화된 자인데, "우리는 거룩해져 가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거룩하여진 자이기 때문에 그런 우리에게서 또 무슨 거룩해져가야 할 부분이 남아 있어서 거룩해져 가려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하고 그래서 그 노력한 것만큼 거룩해져 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된 것은 더 거룩해질 부분이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성화입니다.
그러나 자매님!, 이 말을 오해하진 마십시오. 우리가 더 거룩해질 부분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더 죄 사함 받을 부분이 없다는 것이요 더 의로와져야 할 부분이 없다는 의미요 하나님의 자녀 된 데 모자라 부족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이미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의로운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쉽게 생각해 보세요.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데 있어서 더 노력할 부분이 있는가를 말입니다.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화의 이차적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이미 거룩한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거룩하여진 존재이기 때문에 더 거룩해져 가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죠. 구원받은 인간의 실태와 관련하여서 보면, 우리는 육신의 완전한 구속의 상태에 이르러 있지는 않습니다. 이 육신의 완전한 구속은 장차 우리가 겪을 부활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완전한 구속은 부활이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완전한 구속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과 관계성을 가지고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살지만, 우리 육신은 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속성을 발휘하면서 사는 데에는 이 죄성에 의해서 수시로 나오는 죄의 유혹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는 이 죄의 유혹과의 싸움만 있는 것은 아니죠. 죄가 활개치며 활동하는 죄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는 죄의 세력과도 싸워 나가야 합니다. 또한 그런 우리에게는 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선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의로운 일에 자신을 드려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대처보다도 더 적극적인 관계성입니다. 이는 죄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정신과 자세를 약화시키는 표현이 아니라, 죄와 싸우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힘써야 할 부분의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의 삶에 대한 내용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죠.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님이 들은 말과 같이 어떤 분이 묘사한 바와 같은 설명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오뎅을 2개 샀을 때 누구에게 뺏길까 하고 얼른 혼자서 2개를 다 먹어치우기에 급급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지금은 오뎅 2개 중에서 1개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여 줄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그래요. 그것이 바로 성화된 자의 "성화의 삶"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즉 오뎅 2개 중에서 1개를 베푼다고 해서 그만큼 성화되어 간 것이 아니라, 이미 그는 성화된 자(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 거기에 걸맞게 살아가는데 오뎅을 남에게 베풀어야 할 때 베푼 것으로 그 모습이 드러난 것이죠. 반면에 오뎅 2개를 샀는데 그중에 1개를 남에게 베풀줄을 모르고 예전처럼 몽땅 혼자서 먹었다!고 하면, 그렇게 먹어야만 하는 급박하거나 절박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너무나도 배고파서 라든지.....), 그렇지 않은데 혼자서 자기만 생각하고 욕심으로 먹었다면 그건 너무했죠!. 그렇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화된 자에서 덜 성화된 자로 떨어지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육신에 속한 자의 성질을 보였던 것이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즉 그런 모습은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육신에 속한 자의 성질을 보이는 자들에 대하여 질책을 하였던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안된다"고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자들인가를 항상 생각하게 합니다. "너희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이다. 그런 너희가 무엇을 향하여 바라보고 살아야 하느냐? 땅에 속한 것이냐? 하늘에 속한 것이냐?"고 말입니다. "너희가 육신의 소욕을 좇아서 살아야겠느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 너희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서 살아야 하지 않느냐?(이 말은 성령의 생각과 인도를 좇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임) 그래서 육신에서 나오는 정욕적인 것들을 이기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된 자의 생활"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이 말한 대로 "진리적 성화"라고 표현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행하며 사는 모든 삶은 사실 "진리와의 관계"에 의해서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놓여진 우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죠. 여기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배움과 연구의 자세를 가져 진리의 풍성함에 이르러 가는 모습을 띨 것이며, 이 진리의 깨달음을 가져 나가며 순종으로 자신의 삶을 여기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띨 것이며....그래서 내가 진리의 인도를 받아나가는 것에서 생각에서나 행동에서나 그 삶이 장성한 자의 모습을 띨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진리에 놓인 것에서 내가 살아가는 힘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서 장성한 분량은 뭐겠습니까? 가령 바울이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진리에 놓인 우리의 삶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삶"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여 살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것은 구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힘있고 성숙하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렀다는 말의 의미입니다(엡 4:13).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에서 교회의 모습을 띠어 가야 합니다. 언제나 진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의 모습을 띠는 것!(엡 4:15), 곧 언제나 진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는 것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보이고 설명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적 성화"로 표현한 것의 참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모든 성도는 "성화"에서 누구나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성화되었거나 덜 성화되었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더 성화되어가야 하거나 성화된 데에서 더 성화되어가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의 참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성화의 일차적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적 성화"입니다. 그리고 이차적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의 "성분적 성화"입니다. 여기서 성분적 성화는 염려하는 마음에서 거듭 말하지만 성분의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분의 변화로 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하면, 내가 의롭게 살면 온전하게 바뀌어져 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성분은 죽었다 깨도 안 바뀝니다. 부활에 이를 때까지는 우리의 육신은 구속을 필요로 하는 성질의 것입니다. 여기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죄성이 고약해서 구속을 많이 받아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죄성이 강하게 나타나지 않아서 구속을 적게 받아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육신의 완전한 구속을 받게 되는 죄성을 지닌 부패한 자입니다. 곧 부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걸맞게 여기에 합당한 성분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분적 성화"입니다. 누가 더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분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되었으면 또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분을 발휘할 수 있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많이 소유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적게 소유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 능력을 적게 발휘할 수 밖에 없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누구나 그에 합당한 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교회의 각 역할에 맞게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또 어떤 사람은 장로의 직무를 수행하고 집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또 그렇게 성도는 교회를 섬겨 봉사하는 각 일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어디 비단 일과 관련해서 뿐이겠습니다. 포괄적으로 성도가 갖는 교회적인 모든 관계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가져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힘있고 성숙하게 세워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두는 "진리 안에서, 그리고 진리에 의해서, 진리와 함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닌 어떤 행동과 여기에서 행해지는 어떤 힘있는 삶이란 "죄"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지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님이여!, 여기서는 이 정도로 글을 맺겠습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제 성화에 대한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여서 다시 올려 놓겠습니다. 부디, 이 정도의 글에서도 자매님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 이해가 안 가 계속해서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으면 또 연락 주시거나 질문을 올려 놓으시면 그 내용에 대해서 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오뎅비유가 머리에 확 꽂히네요.^^ 저도 적절하게 써 먹을렵니다. 두루뭉수리하게 알고 있었는데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고 배운데로 잊어먹지 않고 머리에 차곡차곡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