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 북한산 자락 너머의 푸른 하늘은 살짝 건들면 깨질 듯한 맑고 투명한 얼음판 같았습니다. 그 하늘 오랜만에 보는 솔개가 선회하며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솔개를 보면서 저는 ‘비익조(比翼鳥)’를 생각했습니다. 비익조는 전설의 새로 한쪽 눈과 한쪽 날개만 있어서 사랑하는 짝을 만나야 비로소 하늘을 날아올라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두 날개가 아니면 날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 날개로 날것을 요구하고, 한 눈으로만 볼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흐름이 교회에도 흘러들었습니다.
기장에도 두 날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2010년, 10회의 대담을 통해 우리 기장이 어떻게 건강한 비상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대담의 주인공은 김경재 교수와 김경호 목사입니다. 두 분에 대해서 편집자가 부연해 설명하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김민수 : 기장이 시대격변기에서 어떻게 자기방향성을 잃지 않고 나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두 분을 모셨습니다. 사회가 경쟁구도로 가는 가운데 교회도 이런 사회의 구도를 따라가는 가운데 양적인 부흥 위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경재 교수님은 삭개오작은교회, 김경호 목사님은 분가교회 형식으로 작은 교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 작은 교회를 추구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미래의 교회가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모셨습니다.
김경재: 좁게는 기장, 넓게는 한국교회가 함께 찾아가야 할 바람직한 교회 상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기장교회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거나 위기라기보다는, 기장이 출범하면서 추구했던 꿈과 비전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관점으로 봅니다. 기장이 어떤 길을 갈 것인가를 알려면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다음의 것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첫째는 생태, 환경의 문제, 둘째는 지구촌의 지구화 문제, 양극화 문제로 생기는 소외된 자들의 문제, 셋째, 문화의 다양성으로부터 오는 문화적인 충돌, 넷째, 과학과 종교와의 갈등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도 기독교가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논리 속에서 헤매는 것은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과학이 밝혀주는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 얼마든지 기독교신앙은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신앙, 복음, 고백을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기독교 창조신앙이 무너진다는 허황한 공포와 착각 속에 있는 한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이 함께 동의해주지 않는 감성이나 행동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저는 이 네 가지 주제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문명사적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단계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확대되고 심화하고 깊어진 신관에 대한 탈바꿈, 허물 벗기에 대한 압박에 대해 옛 패러다임으로 대응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기독교가 가진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은퇴한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읽을 독서거리가 너무나 많아서 시간이 아까워요. 위의 네 가지 주제와 관련하여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들이 쏟아져나오니까, 내가 학창시절에 만약 이런 책들이 나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런 주제들에 대한 창조적인 응답을 함에서 기장이 여전히 화살촉 역할을 해야지 지엽적인 문제들로 갈등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민수 : 요즘 읽으시는 책 중에서 젊은 목회자들에게 추천해 주시고 싶은 책을 한 권만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책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김경재 : 과학과 종교와의 관계에서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 지휘한 콜린스의 <신의 언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는 무신론에서 불가지론으로 갔다가 다시 그리스도신앙으로 돌아온, 자신의 표현으로 건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입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는 책 중에 영국의 생물학자 무신론자 도킨스의 책이나 닐슨과 같이 종교를 부정하는 이들의 책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을 읽는 젊은 세대들이 회의주의나 극단의 보수주의자가 되어 헤매는 일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 현대 생물학이나 현대의 과학이나 천문학 모두를 충분히 마음을 열고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가장 잘 어울리고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진리의 종교라는 것을 해명해 주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그리스도교의 체제 안에 머물 수 있을까, 있다 해도 지성이 배제된 감성적이고 지성은 제외된 극단적인 감정, 단순화된 윤리적인 차원에 머물러버리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못 본척하는 것은 종교인들의 자세가 아니라, 직시하면서 그리스도 신앙으로 응답하면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신학적인 깊이를 가진 사명을 가진 교단이 기장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 기장의 책임과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수 : 김경호 목사님은 분가교회를 통해서 소규모의 교회를 추구하시는데, 성경공부를 굉장히 심도 있게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인들과 성경공부를 해오신 것을 시리즈로 출판하셨는데, 책의 내용을 보면 역사, 생태 등등 김경재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경공부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강도가 높은 편인데 성경공부의 과정과 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변화되어가는지를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호 : 강남향린교회를 할 때에도 들꽃향린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에도 목회의 중심은 성경공부였습니다. 성서 학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한 사람이 들어오면 2년 과정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일독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거기에 어떤 교리적인 전제를 갖지 않고, 사람들이 아주 기초적인 것, 이런 질문을 교회서 해도 되나 하는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자기 속을 내어놓고 하나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에 대해 다시 한번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역사라든가 성서의 역사가 서구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서 상당히 지배자중심의 역사관으로 성경을 보던 눈을 밑바닥 중심의 역사로 뒤바꿔보는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러 오시는 분은 많은 경우 이른바 보수적인 분들입니다.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은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참여를 합니다. 오는 분들은 순복음, 합동, 침례교, 고려파 이런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처음에는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성서에 근거해서 생각거리를 던지고, 스스로 생각을 열어가게 하는 과정의 커리큘럼이 여느 성경공부와 다르다 보니 계속 나오게 되고, 2년여 싸우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완전히 생각이 변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본래 진보적인 생각을 하시는 분들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도 크고 사회에 대한 의무감도 강하지요. 이것이 근본적인 목회방침입니다.
김민수 : ‘신앙인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는 인식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르기까지 고민과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과 갈등을 잘 극복해나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런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면 교인들의 신앙적인 성장을 위해 때론 갈등하고, 싸워야 할 때에도 임시방편으로 피하는 것이죠.
김경재 : 기독교는 성서 속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 예수님을 경험한 이야기, 성령을 경험한 이야기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를 소홀히 하면, 기장이 성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본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업만 열심히 해도 기장이 강한 내공과 큰 변화가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동안 기장이 신학적으로 말하면 소위 말하는 한국기독교가 가지는 문자주의적 성서, 영감설을 택하느냐 아니면 비판적 성서연구방법을 택하느냐 하는 양자논법에서 떨어져서 서로 아옹다옹거리는데 그런 일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우리 쪽에서 반성하자면 신학교에서 배운 성서비평학이라는 것은, 의과대학에서 생체해부를 통해서 좋은 의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생체해부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왔을 때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거든요. 성서비평도 그러합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서가 살아 꿈틀거리는, 성서가 가진 위대한 생명을 살리는 능력과 힘으로서의 말씀에까지 가야 비평연구방법이 제 기능을 감당하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데 기장 신학교육의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 목회현장에 가보면 성경을 거의 문자주의적으로 훈련 시켜버리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되지요.
기장 신학을 하면 부흥이 안 된다는 것은 미신이라고 봅니다.
목사가 정말 진지하게 독서하고, 기도하고,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 대한 신념을 갖고 교인들에게 뜨겁게 교육하고 설교를 한다면 부흥이 안 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한 것이지요. 목사 1인, 부목사 1인, 전도사 1인이 팀워크를 이뤄 200명 내외의 교회로의 발전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은사가 있는 분들은 몇 천명 목회를 하는 것도 좋지요. 그러나 전부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기장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교인들이 군중적 교회(교인의 이름도 모르는)가 아니고, 신도들의 영적 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200-250명의 단위의 본보기의 건강한 교회로 기장교회가 자리 매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퀘이커처럼 20-30명의 소 교회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천명의 교회가 되려고 안달할 필요도 없고, 목회를 해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250명 규모의 교회면 그 가족까지 치면 500 -1,000명이 되는 셈인데, 한 사람의 목회자가 그 이상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숫자에 연연해서 양적인 것만 추구한다면 교회가 아니라 사업이 되죠.
물론 큰 교회가 있어야겠지만, 다 그럴 필요는 없지요. 건강한 표준적인 교회목회, 영적 공동체가 되어 세상 한복판에서 숨 쉬며 살아있는 교회, 기장은 그런 교회다더라 하는 자리 매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장목회자는 물량적인 사고에 지배를 받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삭개오작은교회’라는 이름을 갖고는 있지만, 단순히 소형교회가 교회의 질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성장하기 마련이거든요. 성장하면 김경호 목사처럼 분가해서 200여 명의 교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왜 200명이겠어요. 경험을 해보니 그 이상의 교인들을 책임지고 목양하기에는 힘에 벅차기 때문이죠.
김민수 : 목회의 영역은 전인적인 삶과 연결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는 목회하면 교회 안에서만이라는 뉘앙스가 많다 보니, 김경호 목사님이나 김경재 교수님이 대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진보 혹은 좌파라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김경호 : 저는 기장목회는 통 큰 목회, 양극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목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톨릭 같은 경우는 주교단이나 사제단은 입장이 대단히 보수적입니다. 개신교의 보수적인 분들이 갖는 것 이상의 보수적인 성향이죠. 그러나 정의평화구현사제단이 대사회적인 일을 할 때는 주교단이나 사제단이 큰 틀에서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고, 그래서 그쪽이 나가서 일하게 해주는 일을 잘합니다. 실제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지로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그 결과 개신교의 보수성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간 분들이 최근 몇 년간 2백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톨릭이 통 큰 정치를 하는 거죠. 자기들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 역할이 다른 것을 이해하고 서로 일할 수 있게 지지해 주고,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보수적인 틀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찌 보면 기장이 영광을 누리고 받아야 할 분량을 가톨릭이 가져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고, 우리 교단이 성장이냐, 사회참여냐를 가지고 서로 마치 다른 사람인 것 마냥, 상대방 때문에 우리 교단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큰 교회는 그 물적 토대를 세워주고,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참 기독교가 살아있구나 하는 이미지를 알리면서 우리 기장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도 사는 역할들을 서로 나눠서 하고 있다는 통 큰 정치가 필요하고, 우리 기장은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경재 : 목회는 현장이 다양하지만, 메인은 로컬 처지(Local church)지요. 회중이 있는 바로 그곳에 교회가 있고, 그리스도의 몸이 있으니까 그분들 중에서 오늘날 한국의 이슈, 예를 들면 생태환경, 미디어법, 용산참사, 남북평화 등 이슈에 대해서 몸으로 진지하게 동참을 하는 목회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목회지에서 온 힘을 다해 목회하면서 소위 성공적인 목회를 하면서 사회적인 이슈에 참여하는 목회자가 있고, 소위 기장성이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일차적인 목양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건 현장만 뛰어다니는 목회자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후자는 반대입니다. 목회자는 일차적으로 목양지를 성실하게 지키는 목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나서 잉여에너지를 가지고 사회적인 이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기 때문에 한다는 인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한국의 정치나 사회 NGO 그룹이나 국회가 성직자들이 그런 이슈에 몸으로 가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해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성직자들이 참여하는 것을 좌파 혹은 진보요 운동권이요, 목회의 정도에서 탈선했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대림절을 보내고 있는데 예수님의 생애를 여는 첫 시작은 말구유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십자가입니다. 이 둘을 빼놓고 기독교를 말할 수 없지요. 진정한 목자는 말구유가 상징하는 삶의 가장 아프고 낮은 곳에 몸으로 현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진실과 평화와 참을 증언하려면, 열정이라고 하는 패션(PASSION-열정,고난)의 두 의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면 고난이 따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교회 안에서 복음적인 은혜에 감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열정이 완성되려면 고난이 동반되는 삶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장 선배들이나 70-80년대 사회민주화 운동을 위해 힘썼던 분들이 믿음이 없어서 탈선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어두운 죽음의 시대에 그들이 몸으로 현장에 참여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회참여를 이차적인 과제나 진보 혹은 좌파 등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 둘은 하나라고 봅니다. ‘목회는 잘하는 데 사회참여는 안 한다, 혹은 사회참여는 잘하는 데 목회는 못한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둘이 하나가 되야 합니다.
김민수 : 목사 한 사람이 어떻게 서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회도 많고 그리스도인들도 많은데 그만큼 제 역할을 감당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삶과 분리된 신앙이 문제겠지요. 이런 것들은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솔하게 서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부정적인 요소들도 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것들을 봐야겠지요.
김경재 : 저는 기장의 젊은 목회자들을 보면서 희망을 봤습니다. 세 가지 모델을 예로 소개해 드리자면 농촌교회의 모범적인 사례로는 지난번 농목 20주년 기념대회가 열린 들녘교회의 이세우 목사,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중간형인 용진교회 김선구 목사, 도시에서는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 이런 분들의 목회는 가히 모범적이라고 봅니다.
이곳을 방문해 보면 목회를 아주 잘하잖아요. 교회가 교회로서 살아있는 느낌, 교인들이 좋다 하고, 교인들이 모이고 그런 목회를 하면서도 사회참여에도 열심을 낸단 말이에요. 이것이 기장교회의 건강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민수 : 여담이지만 제가 총회와 관련해서 지난 4년간 담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1위가 김경재 교수님이셨습니다. 우연하게 2위는 김경호 목사님이셨고요. 사진에 많이 담겨서 두 분을 모신 것이 아니라 두 분과 함께 대담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두 분이 모두 작은 교회를 추구하시는 공통점과 대사회적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는 것, 그리고 목사님만 참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것 등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경재 교수님께서 모범적인 사례로 말씀해 주신 목사님들뿐 아니라 참으로 많은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장에는 희망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어 기장엔 희망이 있는 것이지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대담정리 :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