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다녔던 베베하우스라는 육아사이트에 올라온 최고의 육아일기에요.
경기도 덕소에 사는 심규문이라는 꼬마구 이제 5살이네요.
엄마인 김양현씨는 얼마전에 태교동화 시리즈를 출간할만큼 글재주가 좋은 분이에요.
규문이 육아 일기 읽으면, 육아지에서 일하면서 절대 얘는 낳지 말아야지 결심했던 것도 잊고, 딱 이런 아들하나 있음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든답니다.
천천히 꼼꼼히 보세요.
결혼하신 분이나 얘기좋아하는 분은 그냥 그렇게 될거에요.
그리고 규문이 육아 일기를 더 보고 싶으신 분은요.
bebehouse.com
에 들어가서 육아 일기를 찾아보세요.
1999년 육아 일기에 덕소골 규문이 사는법이라는 제목으로 육아일기가 쭉... 올라와 있어요.
이궁이궁 귀여운 규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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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옛날엔.....
- 2001년 12월 11일 33개월 스무나흘
규문인 매주 목요일이면 외가에 간다. 편찮으신 할아버지 뵈러 가는 거다.
지난 주 목요일, 아버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우릴 기다린다는 전화가 온 게 아침 9시다. 우린 그때 일어났는데...
가는 길에 볼 일도 보고 해서 규문이와 내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하고도 조금 넘었다. 아빤 강의 끝내고 벌써 와 있었다. 아버진 아버지대로, 엄만 엄마대로 약간 화가 나 있었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딨다고... 엄마, 아버지의 얼굴은 금세 풀어졌다.
저녁 시간, 오빠네 식구와 엄마, 2시간 전에 밥을 먹고도 또 먹겠다고 덤빈 규문이, 규문이 밥을 챙겨 먹이는 나, 이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규문이가 갑자기 외삼촌을 향해 한마디 한다.
"나도 옛날에 이렇게 집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해."
순간, 외삼촌은 기가 막혀 할말을 잃고 다른 식구들은 피식 피식 피시시시.
젓가락 잡는 법에 관한 얘기다. 규문이 외삼촌은 젓가락질을 못한다. 포크 잡듯이 젓가락을 잡고 엄지와 검지를 놀려 음식을 집는다. 그래 맛선 보는 자리에서도 가능하면 스테이크 먹고, 어른들하고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가능하면 젓가락질 안 한다. 어릴 적에 미국에서 살다 왔냐는 얘길 어김없이 듣기 때문이다.
규문이가 요즘 주력하는 건 젓가락질이다. 이제 제법 한다. 국수도 잘 먹고 콩자반도 잘 집는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자기가 요즘 주력하고 있는 종목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배우는 건 당연한 일. 외삼촌의 희한한 젓가락질을 보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래 한 말이 바로 위에 적은 "나도 옛날엔~"이다.
규문이가 '옛날'에 잡은 방법은 규문이가 보여준 대로 적으면, 네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잡은 후 엄지를 세우는 방법이다. '지금'은 네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잡고 엄지도 마주 구부려 잡는 법이다.
그 두 가지 방법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데 규문이가 얘기하는 투로 봐서 지금의 방법이 더 발전한 것임에 틀림없다. 고로 외삼촌은 규문이 자기보다도 젓가락질을 못한다는 얘긴데..... 자슥 건방지긴.
■ 우와!!!!! 뗐다!!!!!!
- 2001년 12월 19일
요즘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규문이가, 규문이가 마침내 기저귀를 뗀 것이다!!! 만 34개월만의 일이다. 정말 감동 감동이다. 기저귀 떼기에 관한 요 며칠 내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15일
서울로 사무실을 옮길까 하여 여기저기 알아보고 들어오는 길, 배가 출출한 아빠가 뭐라도 좀 먹고 들어가잖다.
"규문아, 갈비탕 먹을래, 순두부 먹을래?"
"갈비탕!"
"덕소에서 먹을까, 마석 가서 먹을까?"
"마석 갈비탕이 맛있지."
규문이 결정에 의하야 우린 천마산 기슭 평창이란 음식점으로 갔다.
갈비탕을 다 먹고 나니 아빠가 담배도 필 겸 먼저 나간단다. 그러라 하고 규문이 옷을 챙겨 입히고 나서 기저귀를 만져 보니 물컹물컹 오줌이 가득이다.
"누워. 기저귀 갈자." 하며 기저귀를 꺼내는데 규문이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쳐다보며 왈, "집에 가서 갈자~~~"
"안 돼. 차에 가다가 오줌 또 눌 텐데, 넘쳐. 너 옷 젖는 거 싫어하잖아."
단호히 바지를 벗겨 내리고 뉘였다.
하는 수 없이 기저귀를 갈게 된 규문이, 누워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엄마 이거 팬티지~~~~ 응, 팬티지~~~~~~"
"이눔아 팬티는 무슨, 기저귀지!"
그날 밤. 샤워를 하고 난 규문이에게 기저귀를 채우며 아빠가,
"규문이는 다 컸는데, 애기처럼 기저귀를 차는구나." 하니,
규문이 왈, "애기는 기저귀 차?"
"그럼! 애기는 어리잖아."
그러자 규문이 어덩이 밑에 깔려 있던 기저귀를 빼내며 멋지게 한마디 한다.
"기저귀 안 차. 팬티 입어!"
16일
아침까지 뽀송뽀송한 상태로 잘 자고 일어났다. "엄마, 오줌 마려워." 소리도 때 맞춰 잘한다. 바지 벗고 오줌 누고 받아놓은 오줌을 버리는 일들이 참으로 진지하게 진행됐다.
가방을 차지하고 있던 기저귀를 빼내고 대신 그 동안 옷장 서랍 속에서 빛을 못보고 있던 팬티와 그 밖의 아랫도리를 충분히 넣어 화원으로 출발! 규문이가 기저귀를 뗐다는 소식에 할아버지 할머니 싱글벙글이다.
아빠와 함께 외출했다가 저녁에 들어오니 오줌 한번 싸고, 삼촌이랑 의정부 갔는데 기저귀를 채웠단다. 아뿔싸! 하루만에!!!
그날 밤, 규문인 기저귀를 찬 채 잠들었다.
17일
아침 9시에 아빠가 규문이를 깨웠다. 하지만 더 잔다며 재워달란다. 그래 재우러 들어가는데 팬티 입고 자겠단다. 오호 사랑스런 놈. 팬티를 입고 한 시간을 더 자고 났다. 팬티는 뽀송뽀송.
오전 내 "엄마 오줌 마려."를 세 번이나 외치고, 음료수병에 늘어만 가는 오줌을 규문이 제 자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이모에게 가지고 가 들어 보이고 자랑이 대단하다.
시내 볼일을 보고 들어오니 소변만 조금 지렸을 뿐 싸지는 않았단다. 역시 효자야!!! 18일
그 동안 긴장을 해서인지 대변을 통 못 누고 있다.
"규문아, 똥이 안 나와?" 하니
응 안 나와." 한다. 안됐다. 변비 걸리는 놈이 아닌데.
"기저귀 채워 줄까?" 안된 마음에 한번 말해 보는데 아니란다. 기저귀를 차지 않겠단다.
오줌은 한번도 싸지 않았다.
19일
자기 전에 오줌을 누여서인지 아직까지 이부자리에 오줌 한번 안 싸고 잘 해내고 있다. 역시 오늘 아침도 뽀송뽀송.
밥 먹으라고 식탁에 앉히니 밥은 안 먹고 수다번창이다. 밥 먹으라고 다그치는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 똥마려."
밥을 먹다 말고 규문일 화장실로 데려다 앉혔다.
"똥이 풍덩! 읽어줘."
"알았어."
규문이가 똥을 누는 동안 난 그 앞에 앉아 '똥이 풍덩!'을 읽었다.
"나왔니?" 하고 책에 있는 대로 물어보니,
"안 나왔어."
"나왔니?" 또 물어보니
미안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왔니?" 하니,
"나왔어."
"정말?" 규문이 가랑이 사이로 변기 안을 들여다봤다. 크하하하하 똥이 있다. 똥이 정말 있다.
변기에서 내려놓고 휴지로 닦아주는데 정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하하하하하!!!!
난 늘 이런 말을 해왔다.
"규문이가 엄마 고생 안 시키려고 그럴 거야. 나중에 한번에 떼려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걸 거야. 만 36개월이면 알아서 다 뗀다니 기다려 보지 뭐."
규문인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ㅋㅋㅋㅋㅋ
■ 인격 모독은 싫어
- 2002년 1월 3일 34개월 열여드레
낮부터 '도가니탕 끓였으니 먹고 가라'는 아버님 말씀에 내내 버티다 밤 10시 규문이도 데리러 갈 겸해서 화원엘 갔다.
어머님이 새로 꺼내 주시는 김치에, 아버님이 기름 제거하고 다시 불에 올려놓으신 도가니탕, 삼촌이 먹고 싶어서 한 돼지고기 편육하고 해서 밥을 먹자니 규문이가 저도 먹겠다고 덤빈다.
해서 삼촌, 규문이, 나 이렇게 셋이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편육 찍어 먹으라고 놔둔 새우젓은 쳐다보지도 않고 반찬으로 먹으려 꺼낸 오징어버섯젓으로 편육을 한 덩어리 싸 먹던 규문이가 도저히 못 넘기겠던지 도로 뱉어버리고 만다.
"야, 심규문! 왜 한꺼번에 많이 먹고 그래~ 조금씩 먹어 알았지?" 하면서 물 달라는 말에 컵을 가지러 다녀오는데, 규문이 눈이 옆으로 째지고 입이 나온다. 하면서 하는 말, 엄마를 반성하게 한다.
"규문이 보구 '야'가 뭐야?"
"뭐????"
띵~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물론 '야' 소리의 당사자인 난 말할 것도 없고 모두 말을 못하고 어안이 벙벙~ 맹랑하다.
"왜 그러면 안돼? 그럴 수도 있지 뭐~ 싫어? 그럼 뭐라고 해줘?"
"'규문아' 그래야지."
"응? 알았어. 미안해."
'야!'라는 말에 비난, 야단, 무시,.... 뭐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엄마의 말버릇을 고치려는 규문이 태도가 단호하다. 또 '야!'라는 표현이 정감 있거나 상대방을 존중한다거나 하는 투의 말은 절대 아니기에 두말없이 내가 '깨깽' 했지만, 기분이 묘하다.
반성 반, 기막힘 반에 반에 반, 기분이 좋지 않음 반에 반, 기분 좋음 반에 반에 반...
■ 엄마를 흑흑....
- 2002년 1월 24일 35개월 여드레
1.
며칠 전 일이다. 규문이가 기저귀를 떼고 나니 기저귀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다. 언제나 그 자리, 화장대 밑을 점령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들여다 봐 주는 사람이 없다. 하다못해 규문이까지도.
그래 베베하우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가들의 모임' 벼룩시장에 내다 놨는데, 영 반응이 없다. 그래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던 중,
삼촌이 규문이 기저귀 남은 거 어떻게 하냐고 물어왔다. 그래 벼룩시장에 내놓았는데 안 팔려 걱정이라 했더니 규문이 어느새 말꼬리를 가로채 왈, "응, 규문이 기저귀를 벼룩시장에 내놨는데 안 팔려? 응?" 한다.
"그래, 아무도 안 산대....."
다음날, 규문이 또 물어온다. 기저귀 얘길 꺼내지도 않았는데 대뜸 와서 묻는다.
"엄마, 규문이 기저귀를 벼룩시장에 내놨는데, 아무도 안 산대?"
"으응. 아무도 안 산대."
그리고도 하루 이틀 사이 몇 번을 더 물었다. 제 물건이니 신경이 좀 쓰였던 모양인지...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자기랑 놀자고 엄마를 이끌어내는 규문이의 뜻을 따라주지 않자 이눔 한다는 말이 엄마의 가슴을 치게 만든다.
"아빠, 엄마를 벼룩시장에 내다 팔어! 응?응?"
말뿐이 아니다. 당장 내다 팔자는 듯 등 뒤에서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 애를 쓰는 모습이려니... 내 참 가소로워서.
2.
그눔이 엄마 마음에 그렇게 못을 박더니만, 요즘엔 아빠에게 찰싹 붙었다. 아빠랑 둘이 어울려 놀면 온 집안을 지뢰밭을 만들어놓기 일쑨데, 그날 아침엔 블록으로 신호등인가 뭔가 만들어 놓고는 자동차들을 한 대씩 굴려가며 신호를 위반했네, 안 했네 하며 놀더니만 잠시 후에 그걸 그대로 내팽개치고는 거실 한복판으로 가서 또 뭔가를 만든다고 아빠랑 둘이 고개를 맞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규문이가 자주 쓰는 표현), 규문이가 만들어놓은 신호등이 버티고 선 네거리를 지나던 엄마가 발로 그만 신호등을 차버렸다. 한마디로 망가뜨린 것, 하지만 누가 거기에다 놓으라 했나. 그곳에 놓아둔 사람이 잘못이지.
전혀 미안한 마음 없이 방안에서 볼일을 보는데, 어디선가 날라와 내 귓가에 꽂히는 비수가 있었으니, "칫, 엄마는 얌체 같애." 으아아아아~~ 신호등 좀 망가뜨렸기로서니, 엄마 보고 얌체 같다고?
망가진 신호등을 고치고 다시 아빠한테로 가 또 다른 뭔가를 만드는 규문이에게로 가 따졌다. "뭐? 엄마가 뭐 같다고?"
규문인 못 들은 체 하고 아빠가 옆에서 훈수를 든다. "얌체~"
"심규문, 왜 얌체 같은데, 응? 왜~~~~"
규문이는 눈길을 피하느라 고개를 떨구고는 열심히 블록으로 작업 중이다. 한데 괘씸하게도 입은 실실 웃고 있다.
난 계속 따졌다. "왜 말 안 해~~~~, 빨리 말해 봐~~~"
계속 다그치니, 미안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그냥 가~~~~"
"뭐라고?"
"그냥 가서 컴퓨터 해~~~"
그러고는 또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흥, 내 참 기가 막혀서... 4살배기가 엄마를 벼룩시장에 내다 팔자고 안 하나, 얌체 같다고 하질 않나... 이거 어떻게 역전시키지?
■ 아기 VS 규문
- 2002년 2월 24일 36개월 + 이레
- 동네 할아버지를 뵌 날
"규문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규문인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 뿐 인사를 안 하고 있다.
"어멈, 애긴가 봐. 인사도 할 줄모르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규문인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하고 따라 나오는 말, "애기는?"
"애기는 인사 못해."
"왜? 애기는 말을 못해서?"
"으응."
- 안 씻는다고 도망갈 때
"이상하다, 규문인 다 커서 혼자서 세수도 잘하던데... 그새 애기가 되었나? 우리 규문인 어디 갔지?" 하고 찾아다니면, 슬그머니 내 앞에 와 선다.
"이런, 우리 규문이가 여기 있었구나. 엄만 규문이 아닌 줄 알았어." 하면 규문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그럼, 엄마는 '웬 애기가 여기 있나' 했어? 규문이 없는 줄 알구?"
이럴 땐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응, 규문인 어디 가고 어떤 애기만 있는 거야. 세수하자고 해도 도망만 가는 그런 애기 말이야."
그럼 규문이 또 묻는다.
"애기가 막 안 씻는다고 난리야? 애기는 엄마가 '세수하자' 하면 막 도망가서 문 꼭 잠궈 버려? 엄마 못 오게?"
"하하하. 그래!"
뉘집 애기를 말하는 건지, 그 애기에게 미안하지만 규문이 버릇 들이는 데는 참으로 묘약이다. 약 먹일 때, 병원 데려갈 때, 밥 안 먹고 장난할 때, 말 안 들을 때, 고집피울 때 등등... 애기만 들먹이면 규문인 아주 말을 잘 듣고 있다.
■ 울보 떼쟁이
- 2002년 3월 2일 36개월 + 열나흘
미운 세살 아니었나? 그게 만 나이를 말하는 거였나?
세 살 땐 말을 곧잘 들었는데 이눔이 네 살이 되더니 영 말을 듣지 않는다. 툭하면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르고.....
두돌 무렵에는 할아버지만 쫓아다니던 놈이 이젠 할아버지가 싫단다. 재미없단다. 오로지 삼촌만 좋다며 삼촌에게 딱 달라붙어 다닌다. 분갈이하면 옆에서 같이 하고, 숯부작하면 옆에서 같이 숯으로 장난하고, 배달 가면 배달도 따라가고.....
씻자고 하면 내일 씻는다고 하고는 그 내일에 가서는 또 내일을 찾는다. 밥 먹자고 하면 이따가 먹는다고 버티다가 정작 먹을 땐 멍멍이처럼 입으로 먹다가 식탁에서 밥그릇을 떨어뜨린다.
화원에 가자고 하면 집에서 논다 하고, 집에 가서 자자 하면 화원에서 더 논다 한다. 툭하면 장난감 바구니를 거실 한 가득 쏟아버리고, 가위로 종이란 종이는 다 잘라버리고, 여차하면 의자 밟고 올라가 설거지 한다며 싱크대에 난리를 쳐놓고.....
그러면서도 누군가 혼을 낼 기미만 보이면 "으앙~~~~" 하고 울어버린다. 누군가 제지하려 하면, "말 하지 마." 혹은 "그런 말은 하지 말고~" 하며 또 울어버린다.
정말.....힘들다. 한 해가 지날수록 아이는 커 가고... 애를 다룰 요령은 부족한 듯싶고...
■ "엄마, 숟가락통 챙겼어?"
- 2002년 3월 21일 37개월 + 닷새
규문이는 등원 첫날부터 숟가락통에 꽤나 신경을 썼다.
준비물 중 하나인 숟가락통을 보여주며,
"규문아, 밥 먹을 땐 이 통을 이렇게 열어서 이 숟가락하고 이 젓가락으로 밥을 먹은 다음, 다시 이 통에 담아 와야 하는 거야. 여기 심규문 하고 이름 써 놨으니까 꼭 여기다 넣어 와야 해." 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냥, "응." 하면 될 것을 또 엉뚱한 질문을 한다.
"설거지는?"
"푸하하하, 설거지? 왜 유치원에서 설거지 해오려고? 설거지는 안 해와도 돼. 집에 가지고 오면 엄마가 할게."
그날 저녁, 규문이 가방에서 숟가락통을 꺼내 씻으려는데, 자동차놀이를 하던 규문이가 달려오며 말렸다.
아냐, 설거지 안 해도 돼. 내가 거기 붙은 밥풀 깨끗하게 떼어먹었어. 그거 깨끗해."
열어보니, 정말 깨끗하다. 숟가락에 밥풀 하나 안 묻히고 가져왔다.
규문이가 오늘까지 열흘째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어제만 해도 "이젠 엄마가 데려다 주지 않아도 돼." 하던 놈이 오늘 아침은 더 늦게 일어났다. 부랴부랴 씻기고, 먹이고, 옷 입히고 해서 데리고 나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규문이가 급하게 물었다. "엄마, 숟가락통 챙겼어?"
이눔이 밥 먹는 재미에 유치원에 다니다 보다. 아무래도 그런가 싶다.
■ "애걔 너였니?"
- 2002년 3월 00000
턱을 꿰매러 병원에 간 규문이. 겁을 잔뜩 먹었단다. 침대에 눕힐 때부터 울고불고....
얼굴을 천으로 덮어씌운 채 턱 부분만 마취를 하고, 아빠, 간호사 달라붙어 규문이 팔 다리, 머리 붙잡고 있고, 의사는 피지까지 나와 있는 것을 최대한 흉터 없이 꿰매보려고 고심을 하는데.....
겁에 질린 규문이 내내 악을 썼단다.
"아빠~ 아빠~ 어딨어? 아빠 좀 불러줘요. 아빠가 안 보여요. 아빠~ 아빠~"
그렇게 아빠만 불러대던 규문이가 잠시 후 병원에서는 왕이 의사라고 생각했던지 의사 선생님을 불러 제끼기 시작했단다.
"의사 선생님, 이젠 됐어요~ 그만해요! 의사 선생님, 됐어요~~~~~"
그 소리에 의사, 간호사 모두 웃음을 터트리고, 밖에 감기 때문에 오셨던 할머니들도 웃고.....
치료를 마치고 규문이가 치료실을 나가니, 할머니들 왈,
"아니 말을 잘해서 큰앤가 했는데 너였니?"
■ 바들이
- 2002년 4월 3일
규문이네 유치원에서는 바깥나들이를 자주 한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크고 작은 행사를 하는 듯하다.
견학 갈 때면, 유치원에서 제일 어리고 작은 규문이가 잘 따라다닐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해서 규문일 잡고 일렀다.
"규문아, 밖에 나갈 때면 선생님 꼭 따라다녀야 해. 선생님 손 꼭 잡고. 알았지?"
하자, 규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란다.
"아냐, 바들이 누나 손잡고 다녀~~~"
바들이 누나? 바들이란 아이는 처음에 그렇게 알게 되었다.
"바들이 누나라니? 누나라고?"
"응."
"바들이가 몇 살인데?"
"다섯 살."
"규문아, 다섯 살이면 친구야."
"아냐 누나 같던 걸?"
"바들이는 키 크니?"
"응."
"그래서 규문이가 누나라고 해?"
"응."
"아니야, 학교에 다같이 들어갈 거니까. 친구야ㅡ 친구."
"난 네 살이잖아. 엄마, 나 네 살 맞지!"
며칠에 걸친 설득으로 이젠 바들이 누나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유치원에서 가장 친구는 바들이다. 한데 다른 아이 이름은 남우준, 노재영, 강헌이, 연서, 채린이... 등 제대로 부르는 것 같은데...바들이? 바둘이? 알 수 없었다.
12일 학부모 상담일이다. 내 기어코 오늘 바들이의 본명을 알아내리라. 천둥과 번개를 가르며 유치원엘 갔다. 그래 바둘이의 이름을 알아냈으니 바로, '심다슬'이었다. 어라? 심씨네.
다슬이는 규문이네 반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다. 견학 가는 날, 가장 어리고 작은 규문이 짝으로 가장 큰 다슬이가 적합할 것 같아 짝을 지어줬더니 그날 이후로 서로 잘 어울린다고.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슬이가 규문일 동생 돌보듯 돌봐주는 수준이다. 우유도 가져다 따주고, 요구르트도 따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듯하다. 같이 놀아주는 건 물론이고... 다슬이에게 뭐라 고맙다고 해야 할지...
■ 다섯 살 중에 네살
- 2002년 4월 18일 38개월 이틀
며칠 전 일이다. 규문이가 함께 논 아이들 이름을 대는데 모두 여자아이였다. 아니? 다슬이랑 어울리더니 여자아이들이랑만 노나?
"규문아, 남자 애들하고는 안 놀아? 남우준하고 안 놀아?"
"안 놀아."
"왜?"
"규문이보고 애기래."
"그래? 애기라서 안 놀아준대?"
"응. 그래서 규문이가 뭐라 그랬어?"
"'아니야, 나 애기 아냐! 난 어른이야!' 그랬어."
"그리고는?"
"'애기는 니가 애기야!' 그랬어."
규문인 자기가 네 살인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 유치원에서 남자 아이들이 안 놀아주는 모양이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규문인 규문이대로 혼란스럽다. 분명히 자기는 네 살인데, 다섯 살하고 똑같다니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난 그럼 다섯 살 중에 네 살이야?"
"응??????"
2월생 규문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설 때 떡국 많이 먹이고 다섯 살이라 그래줄걸. 내년엔 규문이도, 함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한테도 잘 안 먹힐 텐데..... 내년엔 유치원을 옮겨야 하나?
■ 규문이는 싸움대장?
- 2002년 4월 18일 38개월 이틀
어제 저녁 때 화원으로 규문일 데리러 가니 아주 신이 나서 논다. 낮잠을 4시부터 7시까지 자고 나 똥 누고, 밥 먹고 했으니 기분이 최상이다. 입은 입대로 노래를 쉬지 않고 부르고, 몸은 몸대로 이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한데 입술이 터졌다. 입 주변이 울긋불긋하다. 이상한데.....
"규문아, 너 오늘 유치원에서 누구하고 싸웠니?"
"윤여범하고."
"왜?"
"응, 내가 노는 걸 뺏어 가잖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밀었어."
"그랬더니?"
"그냥 가더라."
"정말?"
"응."
"넌 입술은 왜 그래?"
"그건 물어보지 말구~~~~"(규문이가 말하기 싫을 때 쓰는 수법이다)
"규문이 너 내일 유치원에 가서 여범이한테 '미안해' 하고 얘기해. 응?"
"아까 했어."
"선생님이 '여범아, 미안해.' 하라고 하셨어?"
"응. 그래서 했어."
"그랬더니 여범이가 뭐라고 그래?"
"그냥 '응' 했어."
여범이를 규문이가 먼저 친 게 맞는 듯했다.
오늘 아침,
"규문아, 친구들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거야. 유치원 장난감은 유치원 착한반 아이들이 함께 쓰는 거잖아. 그건 규문이 거 아니잖아. 친구가, '나 그거 필요한데 좀 줄래?' 하면 "응, 여기 있어.' 하면서 주는 거야. 알았지?"
하고 다시 한 번 타이르는데,
"여범이 얼굴 여기 하고 여기 뭐가 났더라. 안 씻었나 봐." 하고는 거실로 나가버린다.
여범이 얼굴에 뭐가 나? 혹시 규문이가 낸 상처 아닌가? 지기 싫어하는 규문이가 여범이랑 엉겨 붙었다가 상처를 냈을 수도 있다. 이걸 어쩐다.
규문일 유치원엘 데려다주면서 선생님 뵙기를 청했다. 어제 규문이가 여범이랑 싸웠냐니 애들 놀다 그런 일이니 괜찮단다. 여범이에게 상처를 내지는 않았느냐 물으니 아니란다. 여범이 괜찮다고. 그러면서 규문이가 '미안해.' 하고 사과했다고, 규문이가 '미안해'란 말은 아주 잘한다고 했다.
일단 규문이가 여범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니 안심이 되는데,,, 규문이가 '미안해'라는 말을 잘한다니... 그럼 혹시 규문이가 싸움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