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시씨(泰仁柴氏)
시(柴)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와 증보문헌비고 등의 문헌에 능향(태인), 태인, 김화 등 3본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1930년 국세조사 때 전북 정읍과 임실 등지에 94가구가 살고 있었다.
시씨는 고려 현종 초에 흥화진두(興化鎭頭)인 시신운(柴臣雲)이 사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자는 시준무(柴峻茂) : 사마시(司馬試) 연산군 10년(1504) 식년시 이등(二等)이 있다. 그러나 후대의 자료가 없다.
그래서 후손들은 시등과(柴登科)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본래 중국 사람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장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갔다. 그 뒤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하자 아들 시식 이 우리나라에 와서 정읍 태인에 눌러 살면서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후손들이 시등과 를 시조로 하고 태인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산은 태인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태인시씨는 ▲시산시씨 라고 부르기도 한다. 능향은 전북 정읍시 옹동면의 지명이다. 신라 때 태인의 관할 지역이었다. 그래서 태인시씨는 또한 ▲능향시씨 라고도 한다. 태인은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의 지명이다.
태인시씨의 인구는 2000년 현재 262가구 81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요파는 ▲참의공파 ▲장파 ▲중파 ▲계파 ▲문장공파 등이다. 시(柴)씨는 6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1,807명이 있다.
태인시씨가 가장 많고 그 다음 ▲능향시씨 784명 ▲김화시씨 135명 ▲평양시씨 53명 ▲능양시씨 1명 ▲시산시씨 1명 등이다. 한편 시(柴)씨와 한자가 전혀 다른 시(施)씨도 있다. 시(施)씨는 성주, 절강 등 총 2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2,121명이다.
( 성씨 전문기자 )